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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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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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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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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4,085

작성
21.10.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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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
11쪽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DUMMY

헤리오스는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얼이 빠져버렸다. 후크 백작은 만연이 미소를 띄운 채 직접 하얀 말을 타고 나와 헤리오스를 맞이했고,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니 기사들과 병사들이 도열하여 마치 왕을 맞이하는 것처럼 경의를 표한다.


“백작님. 저는 아직 후계자일 뿐인데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는 것은...”

“허허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지.”


헤리오스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허허 웃는 백작. 이전에 라이비아 공주와 함께 영지를 방문 했을 때와는 달리 무척 호의적이었다.


“우선 간단히 차를 한잔 하고 방을 안내해줄테니 잠시 앉지.”


응접실에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가구와 깨끗하고 반짝이는 찻잔 그리고 그 찻잔에 부어지는 붉은 빛의 차가 수증기를 만들어내었고, 강렬한 향기가 방 안 가득 찼다.


“어떤가? 차 맛이?”


후크 백작의 눈빛에 어떤 음흉함? 아니 자세히 보니 악동같은 그런 장난끼가 보인다.


- 후루룩.


조용히 차를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비싼 찻잎을 쓰신 것 같은데...”

“하하하! 그렇지! 사실 이번에 자네가 온다고 해서 내가 좀 무리를 했지.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음... 그런데 이런 차를 자주 안드셨나봅니다?”

“어? 그게 무슨...? 난 이 차를 물 대신 마시고는 하지. 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말은 아니라고 하는 후크 백작.


“그럼 이렇게 물 온도도 맞추지 못해 떫어진 차를 즐겨드시다니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찻잎도 아주 듬뿍 넣으셔서 향은 세지만 입에 넣기에는 과하고요.”


전생에 중원에서 즐기던 취미는 바로 차. 물론 차에다가 각종 독을 섞어 톡쏘는 맛이라던가 알싸한 맛, 뭐... 죽여주는 맛 등을 즐기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헤리오스는 차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손을 내밀어 찻잎이 담긴 그릇의 뚜껑을 열어보니 마른 찻잎이 이파리 그대로 담겨있다.

그 찻잎을 내력을 사용하여 적당하게 부수고는 차주전자에 기존에 있던 차를 비우고 담았다. 그리고 물이 담긴 주전자를 살짝 만져보고는


“식었네요.”


내력을 운용하여 물을 데웠다. 부글거리며 끓는 소리가 들리자 후크 백작은 놀라 동그랗게 변한 눈을 깜박거리지도 못하고 얼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다가 뜨거운 물을 차주전자에 부어 찻잎을 적시고 바로 버렸다. 그리고 다시 조금 씩 천천히 물을 부어 차가 우러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잔에 차를 따른다.

후크 백작의 찻잔을 채우는 차에는 더 없이 향긋하고 감미로운 향이 피어오른다.


“어...! 이거...!”


헤리오스는 자신의 잔에도 차를 채우고는 조용히 들어 향을 맡고는 살짝 입 안에 머금었다가 조용히 삼켰다.


“어떻습니까?”


처음과 달리 연한 빛으로 약하게 붉은 기가 도는 차는 아까와는 달리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더 없이 상쾌하고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흥! 역시 조금도 져주는 법이 없는 녀석이군.”


투덜거리는 후크 백작.


“우리 라이비아 공주님께 들었지. 잘난 구석이 많아 잘난 척이 심하고, 누구한테도 져주는 법도 없고, 뒤끝도 심하고, 이상한 힘도 사용할 줄 안다고...”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래도 내가 잘 알지도 못하지만 차를 이렇게 준비했는데 고맙다는 말보다 내가 차를 마실 줄 모른다고 면박을 주다니 상당히 섭섭하군. 일단 방으로 안내할테니 가서 쉬도록 하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응접실에서 나가버리는 후크 백작을 보면서 헤리오스는 멍하지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집사에게 안내받아 들어간 방은 매우 호화로웠으며, 시녀들이 목욕물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욕조에 들어가 가만히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던 헤리오스는 여전히 자신이 잘났고,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전생의 위치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도가 어떻든 백작은 자신에게 비싼 차를 대접했고, 자신은 그 차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고 잘난 척을 하며 백작을 차에 대해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백작을 모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


“이거... 확실히 내가 잘못한 게 맞네. 어떻게 사과를 하지?”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잠시 기다리자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가 준비 되었습니다. 영주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시니 지금 가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헤리오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집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얼마 후 도착한 식당에는 큰 식탁에 차려진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과 의자에 앉아있는 백작, 뒤에서 시중을 들어줄 시녀들이 있었다.

식당으로 들어선 헤리오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시녀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들지...”


무뚝뚝하게 식사를 권하고 조용히 스푼을 들고 음식을 뜨는 백작에게 헤리오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 저의 무례를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헤리오스의 사과에 눈썹이 꿈틀하는 백작.


“사과의 의미로 제가 아는 의술로 백작님의...”


탁!


식탁에 스푼을 세게 내려놓은 백작.


“자네의 문제는 바로 그것이야. 무엇이든 토를 달고 조건을 달고 이유를 달고 의미를 달아 그냥 시원하게 끝낼 일도 꼬아서 어렵게 만들지.”

“...”

“아까 차가 문제가 있으면 그냥 솔직히 맛이 없다고 말했으면 되는 것이었어. 이번에 사과를 할 때에도 미안한 마음을 그냥 전하면 되는 것이야. 대가가 항상 있어야 하나?”


헤리오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화를 내고 있는 백작.


“에이...!”


이제는 아예 식사를 할 마음이 없는 듯 수건까지 치워버린다.


“제가 아직 많이 모자라 속에 담긴 뜻을 깨우치기 어렵습니다. 제가 알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흥! 자네 성에 있는 나의 외손녀는 언제 거둘 건가?”

“네?”

“설마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 영지에서 그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는 것과 알고만 있는 것은 미묘하게 달랐다.


“결혼을 할 나이에 영지의 후계자를 따라 들어가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아.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후계자가 없는 난 이 영지를 라이비아에게 줘야 하지. 여기서 뜻을 펼쳐도 될 것을 굳이 그 곳까지 가서 기약도 없이 남자만 바라보고 있는 내 손녀! 내 손녀를 어찌할 것이냐고 물었단 말이야!”

“아... 그게...”

“만약 거둘 생각이 없다면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을 하게! 난 내 손녀가 바보같이 남자에게 반해 인생을 버리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 없으니까!”


인생을 버리고 있다는 말이 헤리오스의 심장을 찔러왔다.


“혹시 같이 들어간 그 여인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이라면 둘 다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둘 다라니요?”

“왕이 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네?”


후크 백작의 말은 예상보다 더 과격하고 엄청났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 뺏어가서 이제는 내 외손녀를 빌미로 내 땅까지 가져갈 생각을 하는 능구렁이에게 당할 것 같은가?”

“하지만 그리되면...”

“왕국의 꼴을 보게. 이미 왕은 실종되었고, 귀족들은 권력을 위해 왕을 찾아 선위를 시키려고 하지. 나중에는 모든 영지가 전쟁에 휩싸일 걸?”

“...”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왜 욕심이 없나?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받는 것도 겁나서 모른척 하는 머저리가 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남의 인생을 낭비시키지 말고 빨리 포기 시키도록 하란말이야!”


소리를 지른 후크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식당에 남아 있는 헤리오스와 시녀. 그리고 어마어마한 음식들. 그러나 헤리오스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 없는 행동이 두 여자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지적을 받았고, 애써 외면하던 것을 이제 마주하고 해결하려 하니 그저 암담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지만 그저 심란함에 어떤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아 그대로 밤을 새고 다시 집사의 부름에 식당에 가니 불퉁한 표정의 후크 백작이 보였다.


“흥!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군.”


초췌해지고 푸석해진 얼굴을 보고 후크 백작의 매섭기만 한 눈초리가 약간은 부드러워진다.


“백작님.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두 여인이 저를 따라 온 것도 알겠고, 저 역시 두 여인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후크 백작이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외손녀를 그대로 놓고 어쩔 줄 모르겠다고 하니 어찌 화를 내지 않겠나.


“허허허허... 그래... 이제 제 나이에 맞게 말을 하는군.”


하지만 오히려 웃는 후크 백작.


“그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두 사람이 서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피하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지. 부디 그 생각과 그 마음을 돌아가서도 변치 말고 라이비아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하네.”

“그럼 공주님의 마음이 어떤지...”


헤리오스는 라이비아 공주가 자신의 마을을 후크 백작에게 전했을까 하는 생각에 슬쩍 물었지만...


“망할...! 그 녀석도 자네랑 같은 소리를 하길래 그냥 관뒀지.”

“화를 안내시고요?”

“그렇게 예쁘고 귀여운 녀석에게 어찌 화를 내겠나?”

“...”

“영지에 돌아가면 제발 진지하게 고려하게...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후계가 없는 후크 백작령의 상속자는 라이비아 공주. 그 다음이 4왕비. 결국 4왕비가 계승을 포기할 시 남편인 왕에게 모든 것이 넘어간다.

하지만 라이비아가 결혼을 하게 될 경우 그 남편에게 우선권이 생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에는 왜 왔나?”

“저... 라이비아 공주님이 너무 바쁘셔서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서 공주님을 도와줄 인력을 좀 구하고 싶어 왔습니...”

“뭐? 내 외손녀가 힘들어? 그 얘기를 왜 이제 하는 것이지? 내 당장 사람을 불러야 겠어!”


다시 벌떡 일어나 식당에서 나가는 후크 백작.


“아... 오늘 아침도 굶어야 하나...?”


식당에 홀로 남은 헤리오스는 알 수 없는 처량함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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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6 21.10.31 2,187 49 11쪽
113 당연히 허세지 +3 21.10.30 2,248 51 12쪽
112 그냥 여자가 아니야 +6 21.10.27 2,479 50 9쪽
111 이건 아주 많이 과한 겁니다 +3 21.10.25 2,582 51 10쪽
110 나 잘한 걸까 +6 21.10.24 2,596 48 8쪽
109 차라리 바람둥이가 나아 +4 21.10.24 2,557 46 11쪽
»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4 21.10.23 2,605 46 11쪽
107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4 21.10.23 2,576 49 10쪽
106 잘하자 +3 21.10.22 2,619 50 9쪽
105 고생하면 고생한 만큼 굴리면 되니까 +3 21.10.20 2,744 56 11쪽
104 소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더럽단 말이다! +3 21.10.19 2,786 53 10쪽
103 제가 숲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3 21.10.18 2,942 58 11쪽
102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4 21.10.17 2,930 52 12쪽
101 방랑기사라... 좋구나 +5 21.10.16 3,057 55 10쪽
100 헛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네 +6 21.10.16 3,188 56 11쪽
99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4 21.10.14 3,247 63 12쪽
98 안해봤겠어요 +4 21.10.13 3,379 58 12쪽
97 현명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4 21.10.12 3,458 63 13쪽
96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5 21.10.10 3,425 63 12쪽
95 왕께서 우리 성으로 오셨습니다 +4 21.10.07 3,617 63 9쪽
94 왜 못하지 +7 21.09.25 3,789 76 9쪽
93 인사드립니다 +8 21.08.27 4,477 91 10쪽
92 첩자들이 하는 거 아냐 +5 21.08.21 4,431 92 11쪽
91 왕이 되려면 말이다 +5 21.08.20 4,506 82 10쪽
90 정보가 필요해요 +5 21.08.16 4,684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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