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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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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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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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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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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DUMMY

몇 개의 마을을 더 지나 인적이 없는 숲과 평원을 지나고 생각보다 넓고 깊은 시내를 건너자 깔끔하고 잘 정리된 군복을 입은 병사 5명이 나타나 헤리오스를 막아섰다.

하지만 말을 타고 있고, 햇빛에 그을리지 않은 고운 피부를 가진 얼굴을 보고 정중하게 물어온다.


“지금 귀하께서는 벨로시아에서 후크 백작령으로 넘어오셨습니다. 특별한 용무가 있으십니까?”


그런 병사들에게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실례했습니다. 헤리오스 레크 벨로시아 공자님. 방문목적은...”

“백작님을 찾아뵙기 위해 가는 중이다. 보다시피 일행 따위는 없다.”


병사도 없이 홀로 여행을 하는 귀족이라니. 다섯 명의 병사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얼굴로 헤리오스를 쳐다보니 헤리오스가 품에서 꺼내 날린 단검이 그들 뒤에 있는 나무에 박히지 않고 쾅 소리와 함께 커다란 구멍을 내고서는 뚫고 그 뒤에 나무에 박혀 우지직 소리와 함께 부러지는 것을 보자 일제히 몸이 굳은 채로 턱을 덜덜 떨며 들고 있던 서류를 돌려주며 말한다.


“후...후크... 백작...령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선임병사는 그 말을 헤리오스 앞에서 하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얼굴은 비를 맞는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고, 다리는 덜덜 떨고 있었다.


“환영이라니 매우 기쁘군. 백작께 알아서 미리 연락을 넣도록. 난 천천히 마을과 풍경을 구경하며 성으로 향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헤리오스가 살짝 말의 옆구리를 치자 말이 길을 따라 앞으로 가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헤리오스가 단검을 던진 쪽을 다시 한번 쳐다보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호위병이... 없을만해.”

“백작님께 알려야...”

“그래. 네가 가.”


선임병사가 말을 꺼낸 병사를 지목했다.


“네?”

“빨리 가. 그렇지 않으면 저 단검을 아까 그 벨로시아 공자님에게 네가 직접 건네주던가.”

“최선을 다해 영주성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천천히 말을 타고 길을 따라 이동하는 헤리오스를 피해 오솔길을 타고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하는 병사. 감히 귀족이 가는 길을 추월하거나 말을 타고 달려 눈높이를 맞추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는 없으니 그저 달려갈 뿐.


병사가 달려가는 것을 알았지만 헤리오스는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신경도 쓰지 않고 느긋하게 이동했다. 남쪽으로 이동할수록 날은 따뜻해지고 있었고, 바람도 살살 불어 이마와 콧잔등을 만지고 지나가자 기분까지 좋아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는지 부드럽고 기분 좋은 향기까지 코 안으로 들어오자 헤리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길 위에 잔잔하게 울렸고, 말도 그 노랫소리가 듣기 싫지는 않은 지 리듬을 타듯 앞으로 툭툭 치고 간다.


- 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 잎이


-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둘이 걸어요


전생의 기억속의 노래를 부르며 가다 보니 나오는 마을에는 병사들이 창을 들고 서서 헤리오스를 맞이했다.


“귀하신 분께서 마을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병사의 인사에 헤리오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례를 하고는 마을로 그대로 들어가자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맞이한다.


“과하군...”


작게 투덜거렸지만 이런 풍경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타 영지의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귀족은 귀족, 평민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또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어떤 불만도 제기할 수 없다. 지금까지 헤리오스가 태어나서 자란 벨로시아가 매우 독특한 곳이었던 것이다.


“평민에게 많은 것을 주시는 벨로시아와는 다르겠지만 이 곳에는 이 곳의 방식대로 귀하신 분을 모시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이 불편하시다면 모두 물리고 다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흰머리가 무성한 촌장이 고개를 더 숙이며 헤리오스의 기분이 상했는지 조심스레 엿보고 있다.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단지 하루 묵어가고 싶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성심성의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러나려는 촌장과 마을 사람의 표정에는 어두움이 잔뜩 끼어 있다.


“쓸데없이 가축을 잡거나 밤에 시중을 들 여인을 들일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난 번잡한 것을 싫어하니.”

“...그러면 어떻게...”


귀족이 오면 대접은 항상 마을에 각종 가축을 도축하여 고기를 올리고, 마을에서 나이가 찬 처녀를 시중들게 보내고, 함께 온 병사와 기사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주며 눈치를 보았었다.

그런데 다른 방식을 원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녁에는 간단히 닭요리 하나면 된다. 그리고 밤에는 수련을 해야 하니 시중은 필요 없다. 아침에 목욕을 할 것이니 물이나 데워놓아라.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안내해라.”


단호한 헤리오스의 말에 촌장은 굽신거렸고, 마을 주민들은 티는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또한 가장 기뻐하는 것은 바로 이제 어린 티를 막 벗어나기 시작하는 여자아이 하나였다.


그날 저녁 촌장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된 헤리오스는 닭으로 만든 스프와 구이, 빵을 먹고는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키가 크고 몸이 성장하여 전생의 무력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력이 쌓이는 속도도 빨라지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몸 자체가 아직 독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아 언제 시간을 내서 독의 내성을 쌓는 수련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그였다.


다음 날 아침 촌장의 집에서 나와 마을을 슬쩍 둘러보니 마을의 모든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고, 입고 있는 옷은 낡았지만 뜯어진 곳 없이 깨끗했다.

우물도 크고 넓게 파 사람들이 사용하기 좋았고, 아이들의 얼굴은 깨끗했다. 어린 아이들의 옷도 깨끗하고 손도 보드랍다. 아마도 아이들은 일을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래. 이런 삶이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곧 벨로시아도 이렇게 바뀔 것이다. 고개를 돌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병사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병사복을 입고 있고, 큰 덩치와 녹슬지 않은 창을 들고 서 있다. 영주의 힘이 이런 변방까지 미친다는 이야기다.


“재정도 풍부하구나. 이런 곳까지 병사를 파견하는 것을 보면...”


변방 부근임에도 벨로시아 영지의 평민들보다 풍족하게 지내고 있다. 물론 벨로시아도 올해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다.


마을을 떠나기 전 귀족으로서 답례를 하기는 해야 했다.


“뭐가 좋을까? 촌장. 난 항상 전쟁과 죽음을 함께하는 벨로시아의 영지의 후계자다. 그러니 그대에게 금이나 보석을 내려주는 않을 것이다. 다만...”


품 안에 손을 집어 넣은 헤리오스가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것은 지혈제다. 칼에 베이거나 바닥에 넘어져 피가 날 경우 이것을 바르면 하루 뒤에는 피가 멎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품 속에서 다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건네준다.


“그리고 이 주머니에 있는 것은 감기로 열이나고 몸이 많이 아플 때 한 알 먹이고 재우면 다음 날 상태가 나아질 것이다.”


품 속에서 상자와 주머니가 술술 나오는 것이 신기하여 멍하니 바라보던 촌장은 주머니와 상자를 건네 받고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귀하신 분께서 이리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신께서 공자님을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시대 변방의 마을에는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 중에 치료사 같은 고급 인력은 평생에 한 두 번 정도도 만나기 힘든 이들로 변방의 평민이 치료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만나기 힘든 것도 그렇지만 치료비가 무척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헤리오스가 준 약은 여벌의 생명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돌아가실 때에도 부디 이곳을 지나가시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엎드려 헤리오스에게 사정을 하는 모습에 병사들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라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뭐... 사정을 보아 그리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헤리오스는 말을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길을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엎드린 채 헤리오스가 사라질 때까지 예를 표했다.


그렇게 경치를 보니 넓은 밀밭에 씨를 뿌리기 위해 나와 일을 하는 남자들이 보였고, 그런 남자들을 도와 깔깔대고 웃는 여인들과 그 주변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후크 백작의 통치가 무척 잘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웃고 뛰어노는 영지라니...”


수도로 가는 길에 보았던 풍경은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국왕령에서 늑대와 함께 살던 클라라도 사람이 아닌 늑대가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구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영주 밑에 있는 관리들은 무척 뛰어나겠지? 영주민이 웃는 다는 것은 그만큼 비리가 적다는 거잖아?”


몇 개의 마을에서 신세를 지고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영주성. 검은 돌로 지어진 영주성에는 백작령의 상징이 박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문 앞에는 기사들이 도열하여 헤리오스를 맞이하려는 듯이 양 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정말 나를 맞이하려고 기사들까지 나와 있는 걸까?”


가면 자연스레 확인이 될 일이다.


성문 앞까지 가자 기사 하나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혹시 헤리오스 레크 벨로시아 님이 맞으십니까?”

“그렇다.”


그러자 기사는 헤리오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도열해있던 기사들 역시 자세를 더욱 바로 잡고, 성 벽 위에는 병사들이 자리하며 안에서는 북소리가까지 들려온다.


“후크 백작성에 오신 공자님을 환영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않겠습니까? 영주님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백작님께서 직접이요?”


이런 환대라니? 슬슬 불안해지는 헤리오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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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당연히 허세지 +3 21.10.30 2,248 51 12쪽
112 그냥 여자가 아니야 +6 21.10.27 2,479 50 9쪽
111 이건 아주 많이 과한 겁니다 +3 21.10.25 2,583 51 10쪽
110 나 잘한 걸까 +6 21.10.24 2,597 48 8쪽
109 차라리 바람둥이가 나아 +4 21.10.24 2,557 46 11쪽
108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4 21.10.23 2,606 46 11쪽
»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4 21.10.23 2,577 49 10쪽
106 잘하자 +3 21.10.22 2,619 50 9쪽
105 고생하면 고생한 만큼 굴리면 되니까 +3 21.10.20 2,747 56 11쪽
104 소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더럽단 말이다! +3 21.10.19 2,786 53 10쪽
103 제가 숲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3 21.10.18 2,942 58 11쪽
102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4 21.10.17 2,931 52 12쪽
101 방랑기사라... 좋구나 +5 21.10.16 3,058 55 10쪽
100 헛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네 +6 21.10.16 3,188 56 11쪽
99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4 21.10.14 3,249 63 12쪽
98 안해봤겠어요 +4 21.10.13 3,379 58 12쪽
97 현명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4 21.10.12 3,460 63 13쪽
96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5 21.10.10 3,426 63 12쪽
95 왕께서 우리 성으로 오셨습니다 +4 21.10.07 3,619 63 9쪽
94 왜 못하지 +7 21.09.25 3,789 76 9쪽
93 인사드립니다 +8 21.08.27 4,477 91 10쪽
92 첩자들이 하는 거 아냐 +5 21.08.21 4,432 92 11쪽
91 왕이 되려면 말이다 +5 21.08.20 4,506 82 10쪽
90 정보가 필요해요 +5 21.08.16 4,685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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