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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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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190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10.16 16:52
조회
3,054
추천
55
글자
10쪽

방랑기사라... 좋구나

DUMMY

영주성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아니 있는 것 같았다. 헤리오스가 마을어귀에서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아 끌고 들어서자 사람들이 눈치를 보고 피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향했던 곳은 바로 헤리오스의 허리에 채워진 검.


“폼으로 차고 나왔더니 이런 상황도 생기네.”


평민들이 이런 검을 차고 다니지은 않으니 귀족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면...


“멈춰라!”


창을 든 두 명의 경비병이 헤리오스를 향해 달려와 손에 든 무기를 겨눈 채 소리쳤다.


“검을 차고 어디로 가는 거냐? 신원과 목적을 밝혀라!”


확실히 군기가 들고 나름 열심히 훈련한 티가 나자 흐뭇해진 헤리오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왜 실실 웃고만 있나? 어서 두 손을 들고! 칼을 풀어서 땅에 내려 놔!”


둘 중 나이가 어린 신병티가 나는 경비병 하나가 웃고 있는 헤리오스의 모습에 욱하는 심정이 들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러댔지만 뭔가 좀 앞뒤가 안맞는 지시를 내렸다.


“응? 두 손을 들고... 검을 풀어?”


헤리오스가 손을 내리려고 하다가 다시 올렸다가 움찔움찔하고, 신병은 옆에서 쿡쿡거리며 웃는 주민들의 웃음소리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땀까지 뻘뻘 흘리고 있었다.


보다 못해 고참 병사가 한숨을 내쉬고 헤리오스에게 겨눈 창을 치우지도 않은 채 지시했다.


“따라와라.”


그리고 신병을 쏘아보고는 명령을 내렸다.


“넌 저 자의 뒤에서 창을 겨누고 감시하면서 따라 와!”

“예!”


주민들이 없는 곳이라봐야 아직 규모가 작은 마을에서 마을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결국 간 곳은 경비대가 머무는 경비대의 숙소 앞 작은 오두막이었다.


“신분을 증명할만한 것이 있나?”


헤리오스는 천천히 한 손을 내려 품 안에서 영주가 신분을 보증해주는 증명서를 꺼내 경비병에게 주었고, 증명서를 본 고참 경비병의 얼굴에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바로 차렷자세로 바뀌며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며 인사를 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공자님께서 어쩐 일로 여기에 오셨습니까?”

“아... 비밀. 그나저나 열심히 하네?”


공자님이라는 말에 신병은 두 눈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무슨 소린지 파악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퍽!


뒷통수를 후려친 고참병사가 신병에게 으르렁대며 말했다.


“정신 안차려? 영지의 후계자이신 헤리오스 공자님이시잖아!”

“네?”


순간 신병이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바지의 색이 사타구니에서부터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아... 아니! 공자님께 한 말이 아니라... 이 망할 새끼...!”


고참병사는 작은 오두막에 퍼지는 지린내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헤리오스의 표정, 그리고 자신이 오줌을 싸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햐얗게 질린 얼굴로 뻗뻗하게 굳어 있는 신병을 보고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리고 신병의 멱살을 잡아 채고 바로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피식.


자신이 평민들과는 다른 신분의 귀족이라는 자각이 신병의 모습을 보며 실감이 갔다. 다만 영주성에서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태도 역시 거의 모든 것을 용인해주는 수준이었기에 편안하게 지내왔던 것이다.


“맞아. 이런 세상이었지. 그나저나...”


오두막 안에 흘러내린 누런 액체는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들어 은은하게 지린내가 진동하게 만들었다.


끼익!


슬쩍 문을 열고 나가니 고참병사가 신병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미친 놈아! 죽으려면 혼자 목을 매고 죽지 왜 같이 죽자고... 오줌을 싸? 미친 놈아! 썩을 놈! 병신!”


고참 병사는 눈에서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목소리를 높이지도 못하고 이를 갈며 신병을 갈구고 있었고, 신병 역시 곧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지 멍해져서 고참병사가 흔들어대는 대로 머리가 이리저리 휘둘러졌다.


“됐다. 그만 해라.”


헤리오스가 나와 있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던 고참병사와 귀족의 품위를 지키며 느긋하게 말을 하는 자신의 영지의 후계자의 모습에 신참병사는 바로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 죽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이 그 둘에게는 천사가 들려주는 구원의 목소리와 같았는지 펑펑 울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으허엉! 살려주셔서... 감사... 흐으윽! 정말...”


그런 그 둘을 잠시 지켜보다 헤리오스는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마을과 근처의 상황에 대해 알고 싶은데... 들려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예! 마을 촌장이 누구랑 바람을 피우는지까지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촌장이 바람을 피운다는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혀 멈칫한 헤리오스.


“촌장님이 바람펴?”

“아니... 그 쥬디네... 그거...”

“그건 아니지.”


둘이서 아주 작게 쑥덕이지만 내력이 수발이 자유로운 헤리오스에게는 다 들린다.


“우선 쉴 곳을 안내받고 싶구나. 그리고 나의 신분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고참병사가 먼저 대답했고, 신병이 뒤를 이어 질문까지 해왔다.


“영지에 잘못하는 놈 있나 잡으러 오신거죠?”


그 말에 고참병사가 신병의 뒷통수에 손을 올리고 바로 땅으로 박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도 땅으로 박고 다시 용서를 빌었다.


“이놈이 무지렁이라 정말 몰라서 공자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를...”


고참 병사의 말에 신병은 자신도 모르게 귀족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땅에 머리를 박은 채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하아... 되었으니 둘 다 일어나도록... 그리고 편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곳을 찾도록 하지. 나의 신분은 그래... 떠돌이 용병으로... 알겠나?”


헤리오스의 말에 고참병사는 엎드리고 머리를 박았던 땅에서 몸을 일으키며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고, 신병은 일어서며 헤리오스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중얼거렸다.


“그 얼굴에 용병은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중얼거림을 둘 다 못들었을 리가 없다.


“이 미친 놈아! 그냥 혼자 혀를 깨물고 뒤질 것이지...!”


하지만 헤리오스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납득을 하고 신병에게 물었다.


“그래. 신병.”

“예. 공자님.”

“내가 용병이 아닐 것 같이 생겼나?”

“그야... 너무... 잘 생기셨고, 또 귀해보이시니... 누가 봐도 용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겁니다요.”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고참병.


“호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신분과 어울릴 것 같으냐?”

“그야... 귀족같이 생기셨으니 귀족이 맞겠지요.”

“귀족... 귀족 중에 편히 다니려면 맞는 것이 있겠지?”

“방랑 기사가 어떻겠습니까요? 가끔 왕국의 여기저기를 돌며 주군을 찾아 헤매는 기사님들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거의 다 공자님처럼 젊고, 잘 생기고, 옷도 아주 멋졌습니다. 어떤 분은 번쩍거리는 갑옷도 입고 계셨습니다.”

“방랑기사라... 좋구나. 너에게 상을 내리도록 하지.”


그 말에 신병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기대를 하는 것이 바로 표정에 드러났다.


“조금 전의 무례에 용서를 해주지. 즉 너의 목숨을 살려준다는 이야기다.”

“예? 아...! 네!”


엄해진 헤리오스의 표정을 확인한 신병이 고개를 푹 숙이고 식은 땀을 흘렸다. 상대는 귀족. 처음부터 경비병으로서 하던 일은 절차 상 지시받은 대로 한 것이지만 귀족에게 범한 무례는 절차고 뭐고 필요없다. 게다가 자신은 귀족의 얼굴을 보고 질문까지 하지 않았던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병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헤리오스.


‘그래. 귀족으로 권위를 세워야 하는 세상이었어. 마냥 대한민국에서처럼 사람을 대했다가는 만만하게 생각하고 기어오르는 세상.’


헤리오스의 위엄에 두 경비병은 그저 굽신거릴 뿐.


“나를 헤리 경이라 부르고, 방랑기사의 신분으로 수련을 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물으면 이야기 하도록 해라.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곳을 찾아라.”

“예! 알겠습니다.”


고참병은 신참병의 귀를 잡고 얼른 건물 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간 들려오는 둔탁하게 빨래줄에 이불을 널고 몽둥이로 때려 먼지를 빼는 소리가 들려왔고,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잠시 하늘을 보니 어느 덧 해가 거의 다 넘어가며 하늘에는 아름다운 붉은 빛이 물감을 풀어 물든 듯이 펼쳐져 있었다.


“예쁘네.”


중얼거리는 헤리오스. 곧이어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중년 사내가 허겁지겁 뛰어와 헤리오스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다.


“뤼베르스 마을의 경비 책임을 맡고 있는 코우린입니다.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헐떡이는 숨을 참고 차분하게 예법대로 인사를 하는 이는 마을의 경비 책임자였다.


“가지.”


헤리오스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코우린이 얼른 몸을 일으켜 헤리오스를 여관으로 안내했다.


나름 깔끔하고 넓은 방에 자리를 잡고 코우린이 마을과 주변 마을의 상황에 대해 보고를 했고, 헤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궁금한 점을 묻고는 했다.


그렇게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마을을 떠나며 코우린에게 금화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어제 두 명은 절차대로 경비 업무를 잘 했다. 병사들 관리를 잘 했더군. 그 돈으로 작게나마 회식이라도 해라.”


말을 타고 남쪽으로 달려가는 헤리오스를 보며, 코우린은 어제 밤새도록 두들겨 패서 치료사의 집 침대에 입원시켜버린 두 병사에게 다시 뭐라고 하며 칭찬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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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어떤 새끼가 동부는 밥이라고 했어 +4 21.11.01 2,108 45 11쪽
114 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6 21.10.31 2,186 49 11쪽
113 당연히 허세지 +3 21.10.30 2,246 51 12쪽
112 그냥 여자가 아니야 +6 21.10.27 2,478 50 9쪽
111 이건 아주 많이 과한 겁니다 +3 21.10.25 2,580 51 10쪽
110 나 잘한 걸까 +6 21.10.24 2,595 48 8쪽
109 차라리 바람둥이가 나아 +4 21.10.24 2,554 46 11쪽
108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4 21.10.23 2,602 46 11쪽
107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4 21.10.23 2,574 49 10쪽
106 잘하자 +3 21.10.22 2,617 50 9쪽
105 고생하면 고생한 만큼 굴리면 되니까 +3 21.10.20 2,743 56 11쪽
104 소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더럽단 말이다! +3 21.10.19 2,785 53 10쪽
103 제가 숲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3 21.10.18 2,941 58 11쪽
102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4 21.10.17 2,928 52 12쪽
» 방랑기사라... 좋구나 +5 21.10.16 3,055 55 10쪽
100 헛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네 +6 21.10.16 3,186 56 11쪽
99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4 21.10.14 3,246 63 12쪽
98 안해봤겠어요 +4 21.10.13 3,377 58 12쪽
97 현명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4 21.10.12 3,457 63 13쪽
96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5 21.10.10 3,424 63 12쪽
95 왕께서 우리 성으로 오셨습니다 +4 21.10.07 3,616 63 9쪽
94 왜 못하지 +7 21.09.25 3,787 76 9쪽
93 인사드립니다 +8 21.08.27 4,476 91 10쪽
92 첩자들이 하는 거 아냐 +5 21.08.21 4,430 92 11쪽
91 왕이 되려면 말이다 +5 21.08.20 4,502 82 10쪽
90 정보가 필요해요 +5 21.08.16 4,682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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