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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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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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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10.10 23:13
조회
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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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12쪽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DUMMY

영지에 왕이 직접 온 것은 개국할 때 말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어서!”


서두르는 집사의 어깨를 붙잡고 힘을 주어 숨을 고르게 했다.


“로만! 진정해. 응?”

“공자님. 하지만 왕께서...”

“왕이 왔지. 그래서 뭐?”

“네?”

정신을 못차리는 집사에게 따끔하게 이야기 했다.


“정신차리고 말해. 예법이고 뭐고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잖아.”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쉬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헤리오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왕께서 마차를 타고 오셨습니다. 현재 영주님과 만나고 계시지만 대화 중에 공자님을 꼭 만나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그런데 오겠다는 연락도 없지 않았어?”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헤리오스를 가만히 지켜보던 집사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헤리오스에게 독촉을 위해 입을 열려고 하자 헤리오스가 먼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고 소리를 냈다.


“쉬이~”


집사의 입을 막고 조금 더 생각을 했다.


‘왕이 연락도 없이 왔다.’


“로만. 왕의 일행과 옷차림이 어때? 화려해? 아니면 기사 위주야?”


헤리오스의 물음에 집사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옷은 평상복이었고, 약간 구김이 있었습니다. 같이 오신 분들은 4왕비님과 5왕비님, 그리고 4공주님과 5왕자님이 오셨습니다.”

“응? 기사들은 몇 명이나 왔지?”

“그게... 기사는 없었습니다. 병사도 없이 마차 한 대에 모두 타고 계셨습니다.”


집사의 말에 헤리오스는 왕이 정상적인 방문을 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마차에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까지... 게다가 국왕령에서 가장 먼 이 곳으로 왔다면... 서부와 중부 귀족과 사이가 껄끄럽다는 것이고, 일왕자와 이왕자는 바로 서부와 중부의 지지를 받지. 일왕비와 이왕비가 없이 왔다는 것은...”


가만히 생각하던 헤리오스가 중얼거렸다.


“왕자의 난... 음... 그래! 반란이군.”


왕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맞다고 확신한 헤리오스가 기다리고 있는 집사에게 안내하라고 말하고 방을 나섰다.

집사가 안내한 곳은 응접실.

안에는 초췌해진 왕과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공작이 찻잔을 앞에 놓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왕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헤리오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자 아들의 얼굴을 보고 여전히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무언가를 주저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 두 사람이 자신과 관계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추측을 했다.


“실로 오랜만이군.”

“이렇게 먼 곳까지 직접 와주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뭐 세상 일이 다 그런거지.”


잠깐 안부를 물으면서 헤리오스는 왕의 행색을 살폈다. 과연 옷의 구김과 얼굴의 고단함을 숨기지 못한 것이 눈이 들어왔다.


“아직 라이비아 공주님은 만나지 않으신 듯 합니다.”

“그래. 우선 공작과 이야기를 하여 보려고 했지만 공작의 결정이 쉽지 않은 것 같군.”


공작과 이야기 할 자신의 이야기.


‘기사로 임명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결혼입니까?”

“눈치 하나는 정말...”


왕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헤리오스의 머리 속은 빠르게 상황에 대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순박하고 순진하지만 왕처럼 수도에서 정치적으로 모략을 일삼던 이들과는 다르다. 내가 그 동안 느끼고 생각해왔던 것 보다 더 영리하고 교활하다. 만약 내가 공주와 결혼을 한다면 왕이 얻는 것은 뭐지?’


짧은 순간 헤리오스는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의 왕국의 정치적 흐름과 정세는 그야말로 일본의 전국시대로 가는 것처럼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다만 서부와 중부는 거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영주가 중심이 되어 힘을 휘두르고 있었고, 동부는 아직 강한 힘을 가지고 지역을 이끄는 영주가 없었다. 그런데 왕이 이런 동부로 왔다는 것은 그리고 벨로시아로 왔다는 것은...? 그리고 영지의 후계자와 공주의 결혼이 성사된다면...?


헤리오스의 눈빛이 빛나는 것을 본 왕은 바로 공작에게 말했다.


“오랜 시간 여행을 했더니 피곤하군. 일단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떤가?”

“그러도록 하시지요. 쉴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바로 빠져나가는 왕을 보고 헤리오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녁 식사를 왕의 일행에게 대접하기 위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가운데 헤리오스가 얼굴을 구길 수 있는 최대한으로 구기면서 들어섰다.


“고...공자님.”


인상이 험악해진 헤리오스의 분위기에 그간 이 영지의 후계자라는 인간에게 숱한 가르침을 빙자한 머리박기, 구르기, 선착순 및 어깨동무 후 앉았다 일어나기 같은 괴롭힘을 당해왔던 주방의 일꾼들은 마치 얼음처럼 온 몸이 굳어 헤리오스가 들어선 입구만 입을 벌리고 공포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오셨습니까? 지금... 최선을 다해 식사를 준비...”

“됐고! 후퍼!”


짜증이 묻어나는 부름. 그 짜증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다가 영지 외성문까지 선착순을 하고 싶지는 않기에 주방장 후퍼는 군기가 잔뜩 들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옛! 공자님. 후퍼 여기 있습니다!”

“쫄지말고... 내가 영지 후계자같냐? 아니면 영지 수석 주방장 같냐?”

“...네?”

“대답!”


살기위해 그리고 자신만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방의 식구들을 위해 후퍼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가며 생각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한다. 만약 후계자라고 한다면... 주방으로 와서 이렇게 짜증을 내는 저 작은 악마가 후계자가 여기에서 요리를 해야 겠냐면서 화를 낼 것이고, 수석 주방장이라고 한다면 영지 후계자를 뭘로보고 그딴 소리를 하냐고 또 굴리겠지...?’


“어쭈! 대답 안하지?”


뱀보다 더 섬뜩하게 노려보며 문가에서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헤리오스에게 후퍼는 최대한 비굴하게 미소를 짓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더 없이 총명하시고 현명하신 벨로시아 영지의 후계자이신 공자님께서는 저희에게 매우 관대하고 자비로우심을 보이시며 주방에서의 실력과 마음가짐을 가르쳐주시는 아주 고마우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요.”


영지의 후계자인 자신이 매우 관대하고 자비롭다고 아부하고 있는데 화풀이를 할 수는 없고,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리며 속으로 궁시렁댈 뿐이었다.


- 속 사정이야 어찌되었던 왕국의 수도에서 여기까지 왕께서 오셨으니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요리 중 가장 맛있고,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도록 하거라.

- 그간 해오던 것이 있는데 괜히 영지의 후계자라는 둥, 귀족의 품위가 어쨌다는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짜증을 겨우 가라앉히고 후퍼에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오늘 요리는 뭘 올리려고 했지?”


헤리오스의 물음에 후퍼는 공손히 대답했다.


“먼 길을 오셨다고 하니 편안하게 드실 수 있는 스프와 부드러운 빵을 먼저 드리고, 속이 달래지면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어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들고, 부드러운 고기를 구워 달콤한 소스를 뿌린 후 드시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과일을 갈아 만든 즙에 달콤한 꿀을 넣어 식사를 마무리 할 생각입니다.”

“오! 훌륭한데?”

“예? 아! 가... 감사합니다.”


뜻밖의 칭찬에 후퍼가 당황하는 사이 헤리오스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하지만 가뜩이나 심란한 나의 마음에 고춧가루를 뿌린 결과는 그렇게 무난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하지 않아!”

“네?”

“보여주지. 나의 분노를 담은 저녁 식사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식재료를 가져와! 먼저 무! 당근!”


그리고 주방에서는 헤리오스의 칼질 소리와 함께 음침한 웃음소리가 식사 준비가 끝나는 순간까지 울려퍼졌다.


사각. 사각. 사각.

탁탁탁탁탁탁


“흐흐흐흐흐!”


만찬장의 식탁에 공작 내외를 비롯하여, 왕가의 식구들이 모여 앉아 식사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었다.


“수도에서 맛 본 벨로시아의 후계자의 요리는 정말 처음 맛보는 별미였지.”

“하하하! 저의 아들이 미천한 재주를 가지고 왕의 혀를 즐겁게 하다니 정말 기쁘군요.”


왕과 공작이 서로 웃으며 이야기 하는 동안 라이비아 공주의 시선은 그의 생모인 사왕비인 클라라 세이르멘을 향했다.


“오랜만이구나.”

“그래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딸의 물음에 사왕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중에... 왕께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직접 말을 해주신다고 하셨으니 그저 기다리면 된단다.”


그 말에 라이비아 공주는 왕실에 문제가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만찬장의 문이 열리면서 하녀들이 주방에서 만든 음식들을 식탁으로 나르기 시작했고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저... 저것은...!”


두 명의 하녀들이 끙끙거리며 옮기는 것은 사람의 키만큼 커다란 크기의 조작이었다. 그런 조작들이 계속해서 들어왔고, 왕의 앞에는 입에서 곧 불을 뿜어댈 것 같은 모습의 드래곤이 날개를 펴고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고, 공작의 앞에는 처음보는 모습의 새가 조각되어 들어왔다. 온 몸이 불에 타는 듯한 모습에 힘찬 날개짓으로 곧 하늘 위로 날아 갈 것 같은 붉은 조각이었다.


“세상에...! 이런 생생함이라니...!”


그 외에서 무채로 파도를 만들고 그 사이에 숨어 뛰어 오를 것 같은 잉어의 모습과 커다란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사납게 덤벼드는 모습등이 각종 야채와 과일로 조작되어 들어와 사람들의 앞에 놓여졌다.


“정말... 멋지군요.”


사람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막상 포크를 들어 먹으려고 해도 먹을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멋진 조각을 먹자니 왜인지 껄끄럽고, 그 주변에 있는 장식된 과일과 야채를 먹자니 그 양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하녀들이 다시 가져오는 음식은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파이 같은 것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았는데 사람들이 나이프로 자르니 안이 비어 있었고, 잘린 조작을 입 안으로 넣어도 별로 씹지도 않았건만 그냥 녹아 목으로 넘어간다.


“정말... 새로운... 음식이군요.”


오왕비 바네샤 세이르멘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을 했고, 사람들의 표정도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왕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게 굳어만 갔다.


다음 음식은 허연 국물이 들어있는 황금색 대접이 각자 앞에 놓여졌고, 뒤이어 야채모음과 고기, 그리고 밥 등 세 덩이 음식이 놓인 네모난 접시가 황금색 대접 앞에 놓여졌다. 그리고 주방에서 헤리오스가 나와 식탁의 자신의 자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준비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저번에도 뵈었었지요? 헤리오스 벨로시아입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왕은 굳어진 얼굴로 헤리오스를 바라보고 질문을 했다.


“매우 멋진 음식을 준비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아...! 왕께서 먼 곳에서 오셨기에 왕께 어울릴만한 멋진 모습의 요리를 준비해보았습니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음...”


도착해서 지금까지 날선 헤리오스의 태도에 왕의 심기는 불편해졌고, 헤리오스 역시 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돌려서 질책을 하는 중이라 그 숨은 신경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사왕녀와 오왕자는 어떻게 음식을 먹을지 몰라 난감해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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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4 21.11.03 2,120 42 12쪽
115 어떤 새끼가 동부는 밥이라고 했어 +4 21.11.01 2,112 45 11쪽
114 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6 21.10.31 2,188 49 11쪽
113 당연히 허세지 +3 21.10.30 2,248 51 12쪽
112 그냥 여자가 아니야 +6 21.10.27 2,479 50 9쪽
111 이건 아주 많이 과한 겁니다 +3 21.10.25 2,582 51 10쪽
110 나 잘한 걸까 +6 21.10.24 2,597 48 8쪽
109 차라리 바람둥이가 나아 +4 21.10.24 2,557 46 11쪽
108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4 21.10.23 2,605 46 11쪽
107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4 21.10.23 2,576 49 10쪽
106 잘하자 +3 21.10.22 2,619 50 9쪽
105 고생하면 고생한 만큼 굴리면 되니까 +3 21.10.20 2,747 56 11쪽
104 소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더럽단 말이다! +3 21.10.19 2,786 53 10쪽
103 제가 숲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3 21.10.18 2,942 58 11쪽
102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4 21.10.17 2,931 52 12쪽
101 방랑기사라... 좋구나 +5 21.10.16 3,058 55 10쪽
100 헛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네 +6 21.10.16 3,188 56 11쪽
99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4 21.10.14 3,248 63 12쪽
98 안해봤겠어요 +4 21.10.13 3,379 58 12쪽
97 현명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4 21.10.12 3,459 63 13쪽
»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5 21.10.10 3,426 63 12쪽
95 왕께서 우리 성으로 오셨습니다 +4 21.10.07 3,618 63 9쪽
94 왜 못하지 +7 21.09.25 3,789 76 9쪽
93 인사드립니다 +8 21.08.27 4,477 91 10쪽
92 첩자들이 하는 거 아냐 +5 21.08.21 4,432 92 11쪽
91 왕이 되려면 말이다 +5 21.08.20 4,506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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