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식량 - 좀비인류 멸망의 날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래몽래인
작품등록일 :
2023.05.23 13:14
최근연재일 :
2023.06.12 19:26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914
추천수 :
34
글자수 :
93,615

작성
23.05.30 12:36
조회
30
추천
1
글자
9쪽

<1-13> 아비의 눈물, 딸의 눈물.

DUMMY

*

리나를 뉘이자 공혜경이 몇가지 전자장비를 연결했다.

모니터에서 리나의 상태를 알려주는 몇 개의 그래프와 숫자로 표현된 결과치가 출력되었다.


“괜찮아. 충격이 컸기 때문에 정신을 잃은 거 뿐이야. 머리의 출혈도 심한 건 아니고....”

“와! 다행입니다. 아까 잠깐 깨어났다가 또 정신을 잃어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벗어봐”

“네?”

“백선수 윗도리 벗으라고. 내가 보기엔 그쪽이 훨씬 심각해.”

“아, 아닙니다. 저는 뭐 몇 군데 긁히고....”

“손 내밀어 봐”

“손이요? 저 생명선 무쟈게 길거든요.”


그러고 보니 백다운의 유니폼 곳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외부에서 튄 것도 있지만 백다운이 흘린 피가 번진 부분도 적지 않다는 걸 공혜경이 모를 리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백다운이 내민 손도 마른 피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찢어진 손아귀에 피가 굳어 있었다.


누운 백다운의 몸을 의료 스캐너가 훑고 지나갔다.

공혜경이 모니터에 출력 된 결과를 읽어 주었다.


“선상골절 2개소, 창상 12개소, 찰과상 27개소. 긴급 치료 요망.”


백다운이 일어나 앉으며 멋 적게 웃었다.


"별 거 아닌가 했는데 쫌 많긴 하네요."


공혜경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좀 많긴 한데 별 거 아냐."


공혜경이 별 거 아니라면 아닌 거다.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들한테 그녀의 진단은 언제나 옳았다.

벌 거 아니라는 공혜경의 말에 남몰래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백다운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안전구역 밖에서는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없는 일들이.


*

텐진 시내의 안전구역은 번화가를 중심에 놓고 약 5km의 지름을 가진 사각형에 가까운 원형으로 방어선이 구축되었다.

방어선상에 있는 대로와 골목 마다 병력을 배치했지만 충분한 병력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에 민간인들 중에서도 자원자를 받았다.

이상열을 따르던 세 명의 동료도 자원 병력으로 합류했다.


이상열만 호텔에 남은 건 리나 때문이었다. 

다솜이를 꼭 닮은 리나.


*

이상열은 북한, 공식 명칭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에서 태어났다.


북한군 대좌까지 올랐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이 된 그는 특수부대인 항공 육전 여단 소속으로 근무했다.

유사시 적 후방 주요 도시 및 거점 점령, 테러 및 주요 인사 사살, 발전소 등 중요 시설 파괴가 주목적이었으며 전황에 따라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부대였다.

항공 육전 여단은 공군 저격 여단과 함께 공수 부대 역할을 했다.


특수 부대 안에서도 이상열은 특수, 특별한 존재였다. 사격도 출중했고 격박술에서도 그를 넘어 설 자가 없었다.

성격도 좋았다. 유쾌하고 밝았다.

상급자들을 그를 아꼈고 하급자들을 그를 따랐다.

아버지의 배경을 빼고 개인적 능력 만으로 판단해도 모두들 그가 장성급까지 진급할 거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2017년 대 재앙의 날을 지나고 남한에 노재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화해 모드로 돌변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손을 잡았고, 남한 주도의 북한 지원이 활성화 되면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 반대로 경제는 탄력을 받아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후 반대 성향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고 남한의 경제는 급락하며 바닥을 쳤다.

그 몇 년 동안 국민들은 치가 떨리는 공포를 겪어야 했다. 결국 그 집권 기간 동안 뼈저린 경험을 얻은 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


막혔던 개성공단이 재개 되었고 비슷한 공동경제구역이 연이어 조성 되었다.

금강산 여행에 이어 백두산 여행길도 열렸다.

무너졌던 한국의 경제도, 문화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군부 내에서는 급진파와 화해파가 충돌했다. 전 정부에서 득세했던 급진파가 힘을 잃고 화해파가 대세로 올라섰다.

급진파에서는 화해파를 배신자라 불렀고 화해파는 스스로를 통일파로 불렀다.


202X년 여름,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정상은 2050년 까지 완벽한 통일을 목표로 한 단계적 남북 통일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을 인정하지 않은 급진파는 비밀리에 군부 쿠데타를 도모했다.

이상열의 아버지도 급진파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이상열 역시 아버지를 도와 쿠데타를 준비했다.


하지만 급진파의 쿠데타는 거사일을 이틀 앞두고 발각 되었다.

가담했던 부대들 대부분이 저항했고 내전에 가까운 치열한 전투가 북한 전 지역에서 발생했다.

수많은 군인들이 사살되었고 전투에 패배하고 자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상열의 아버지도 그를 체포하러 온 병력 앞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상열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했다.

이틀 밤 사흘 낮을 산을 타고 이동해 압록강을 건넜다.


타 부대와 몇 번이나 조우했지만 교전은 한 번 밖에 없었다.

거의 대부분은 보고도 모른 척 보내주었다.

심지어 비상 식량까지 던져 준 경우도 있었다.

동족 간의 상잔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는 더더욱.


압록강을 건넌 이상열과 그를 따르던 부대원 27명은 중국에 정식 망명을 신청했다.

그리고 텐진에 정착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 온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텐진 지역에 탈출 북한인 중심 조직이 생겨난 건 필연이었다.

그 조직의 수장이 이상열이었다.


세월은 사람을 바꾼다. 

이상열도 그 세월 안에 있었다.

독재의 벽에 갖혀 있던 북한이라는 시공간이 아니라 눈과 귀가 열린 텐진이란 공간의 세월 안에.

전쟁처럼 치열한 구역 싸움을 벌였던 조직도 자리를 잡아 가면서는 조금씩 합법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분노, 적개, 복수의 감정들이 옅어졌다.

북에서 지낼 때 가졌던 자신의 생각이 편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한 부정적 감정들이 지워진 자리에 불쑥 사랑이 찾아왔다.

결혼을 했고 늦둥이 딸이 태어났다.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래서 사랑의 옛말, 순 우리말로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


'다솜'


*

다솜이를 잃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인 다솜이를 물어 뜯은 건 다솜이 만큼 사랑했던 아내였다.

그 아내를 괴물로 만든 건 그녀의 부모였고, 그녀의 부모를 그렇게 만든 건.....


북한에서 모든 걸 잃었을 때, 복수심으로 견뎌냈다.

그리고 결국 마음의 평화를, 일상의 행복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모든 걸 잃고 말았다.

이번에 잃어버린 것들은 그 어떤 복수심으로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것을, 평화로운 일상은 두 번 다시 되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을 때 까지 죽이려고 했다. 

죽이다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보았다.

다솜이는 아니지만 다솜이를 닮은 리나라는 아이.


이미 평화를, 행복을 한 번 깊이 맛보았던 때문일까?

하여 죽이는 것 보다 살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의미라는 걸 그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던 걸까?


쌔근쌔근 잠이 든 리나를 보며 이 아이를 데리고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고향으로 가서, 자식 잃은 아버지와 부모 잃은 딸이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그리고 잠 든 리나 옆에서 울었다.

압록강을 건널 때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던 뒤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가.

끄윽끄윽 숨을 누르며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다솜이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내레... 아무도 지키디 못했디. 부모도 마누라도 애새끼도 지켜주지 못했디.... 죽어서 너희들 앞에 고개 쳐박구서리 잘못을 빌어 마땅한 놈이디만... 내레 이 아이 한 번 살려 보갔어. 기리니끼니... 여보.... 다솜아.... 쫌만 기다려 주시구레.....'


도시 곳곳에서 눈물들이 넘치는, 그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석아람은 호텔에 도착한 뒤 공혜경의 요청으로 임시 병동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다.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의사로서 해야 할 일도 중요했다.


중간중간 바깥 상황을 알아보려 했지만 정규 방송도 이미 끊어진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무선 통신 체계는 완전히 복구 불능 상태인 것 같았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인터넷 통신까지 불가능했다.


가족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다가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정신을 차리곤 했다.

백다운이 살아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고 밤이 깊어서야 잠시 숨 돌릴 틈을 얻었다.

숨 돌릴 틈이란 게 걱정과 슬픔이 사무치는 시간이란 걸 사람들이 없는 곳을 골라 찾아 올라간 옥상에서 깨달았다.


조금씩 흐느끼다가 이내 엉엉 목을 놓고 울고 말았다.


백다운이 옥상으로 올라 온 것도, 올라 와서는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도, 울고 있어서 한참 동안 제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조심스레 다가온 백다운이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조금 부끄럽고 많이 화 났다. 이 사람이 자기를 차에 밀어 넣었다. 아니었다면 죽든 살든 가족들과 함께 있었을 텐데.


‘철썩!’


자기도 모르게 뺨을 후려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식량 - 좀비인류 멸망의 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에 대해 +2 23.06.14 41 0 -
공지 공모전, 이후 연재 주기에 관해 +2 23.06.03 28 0 -
22 <2-3> 총구의 방향이 왜? 23.06.12 29 0 9쪽
21 <2-2> 정의를 위해 상관을 쏘다 23.06.09 25 0 9쪽
20 <2-1> 지옥 탈출, 목적지는 희망인가 또 다른 지옥인가 23.06.08 19 0 10쪽
19 <1-19> 대한민국 군인의 책무 23.06.07 25 0 9쪽
18 <1-18> 산 자를 위해 죽는 자들 23.06.06 21 0 10쪽
17 <1-17> 진화한 괴물, 놈들의 중심체는? +2 23.06.05 24 1 9쪽
16 <1-16> 괴물들의 역습 23.06.02 23 0 10쪽
15 <1-15> 죽어 가는 동료, 무너지는 팀 23.06.01 35 0 9쪽
14 <1-14> 괴물들이 진격하는 악몽의 밤 23.05.31 31 0 9쪽
» <1-13> 아비의 눈물, 딸의 눈물. 23.05.30 31 1 9쪽
12 <1-12> 북한 사람 이상열 23.05.29 35 2 9쪽
11 <1-11> 머리에서 가슴으로 +2 23.05.27 35 1 10쪽
10 <1-10> 삶의 끝, 사랑의 끝. 23.05.26 29 1 9쪽
9 <1-9> 인간이 변한 괴물, 인간 그대로의 괴물 23.05.25 32 1 9쪽
8 <1-8> 제3 긴급안전지구 +2 23.05.25 45 2 9쪽
7 <1-7> 가족, 그리고 가족 같은.... 23.05.24 42 1 9쪽
6 <1-6> 감염 확산 23.05.24 42 1 10쪽
5 <1-5> 탈출 +2 23.05.23 52 3 10쪽
4 <1-4> 괴물, 감염자들 +2 23.05.23 52 3 10쪽
3 <1-3> 종말의 서막 +4 23.05.23 70 4 10쪽
2 <1-2> 빽또라이와 석아람 +2 23.05.23 76 5 11쪽
1 <1-1> [프를로그] 외계에서 온 비행체 +6 23.05.23 142 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