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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899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20 22:40
조회
41
추천
2
글자
9쪽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DUMMY

*

- 차박차박차박


일정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 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


압박감도 그만큼 커졌다.


- 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


이제껏 상대했던 인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제룡.

그도 목숨을 걸었었다. 하지만 그는 ‘승부’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기든 지든 이로운과 한 번 싸워보고 싶다는, 무(武)의 본질에 대한 도전 같은 것이었다.


교주는 그게 아니었다.

살의(殺意)


확실히 느껴졌다.

지지 않겠다는, 죽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 반대로 이기겠다는, 죽여 버리겠다는 그의 살의가.


그런데 그 살의의 저변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으면 살기가 떠오른다. 그 살기를 만드는 것은 보다 본질적인 감정, 살의다.


분노, 원한, 복수 같은 감정이 살기를 만든다.

혹은 탐욕이나 승부욕, 명예욕, 혹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살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긴 하나 쾌락 때문에 살기를 만들기도 한다. 살인 자제를 즐기는 부류.


교주한테도 너무나 명확하게 살기가 느껴졌다.

살기의 안 쪽, 죽이고 말겠다는 살의 또한 로운의 온몸을 압박해왔다.


그런데, 살의가 어디서 발현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살의 안에는 분노도 욕망도 쾌락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순수한 살의가 살기가 되어 로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순수한 살의? 그런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느끼는 압박감은 바로 그 순수한 살의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로운이 뒷춤에서 꺼낸 단봉을 앞으로 내밀면서 옆에 있는 취소연을 멀리 밀어 냈다.


- 슈아악----


교주의 검이 로운을 덮쳐 왔다.

한 자루의 검이 만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로운의 주위가 온통 검으로 변했다.


- 따다다다당!


로운이 단봉을 휘둘렀다.

로운의 단봉도 만 개가 되어 만 자루의 검을 받아쳤다.


교주가 달려드는 속도로 로운이 물러났다.


- 까다다다당---


달려드는 검과 물러나는 단봉이 부딪히며 불꽃을 만들었다.


만 개의 검과 만 개의 단봉이 일백만 개의 꽃불을 개화했다.

대전 안이 불꽃으로 가득 차올랐다.


두 사람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검도 단봉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커다란 불꽃덩이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 쿠앙---! 쾅---! 콰다당---!


불꽃덩이가 가는 곳마다 바닥이 벽이 박살나고 천정이 뚫리고 바닥이 뒤집혔다.


- 콰앙--!


불꽃덩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각형 대전의 문이 있던 자리는 불덩이에 박살 나 원형으로 변해버렸다.


- 콰콰콰콰----


불꽃이 지나는 곳마다 폐허가 되었다.

재건으로 나날이 모습이 새로워지고 있던 백탑성이 순식간에 다시 박살이 나버렸다.


그 불꽃 안에서는 교주와 로운의 삶과 죽음이 찰나지간에도 몇 번 씩 교차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위기에 피하고 기회를 노려 공격하는 게 맞다.

이 싸움엔 그게 없었다.

교주는 자신의 생명은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만 존재했다.

교주가 그러하면 로운도 그리해야 했다.

그 흐름에 맞추지 못하면, 그 기세에 올라타지 않으면 이길 수 없었다.


때문에 둘 사이에 방어를 위한 방어는 없었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의 초식들만 연이어 펼쳐졌다.


로운이 단봉을 휘두르면 교주의 눈앞에 죽음의 사자가 달려들었고 교주가 검을 찔러가면 로운의 머리 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교주의 검이 로운의 살을 베면 로운의 단봉이 교주의 뼈를 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각이 일다경이 되고 한식경이 되고 한시진이 되었다.

하지만 둘을 감싼 불꽃은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교단 안에 있던 모든 일월교의 사람들이 나와 불덩이를 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손을 모으고 교주를 위해 일월의 신에게 빌고 있었다.

그 사이에 취소연만이 로운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로운과 교주의 싸움은 처음과는 점점 다른 양상이 되어갔다.


피부만 스치던 검날이 살을 파고들었고 살가죽만 때리던 단봉이 뼈에 닿도록 파고들었다.

애초에 공(攻)만 있고 수(守)가 없던 둘인지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치명적이 되어가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이 싸움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둘 다 죽는 거다. 그것이면 족하다!’


교주는 이대로 가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정말 죽자고 덤비는구나. 이대로라면 결국.... 둘 다 죽는 거다. 젠장!’


로운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로운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싸움의 시작은 교주가 열었다. 싸움의 흐름도 교주가 만들었다. 이걸 바꾸지 못하면.... 둘 다 죽는 거다!’


로운이 이를 악물었다.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흐름을 끝내야 한다.

단, 그게 원래 정해져 있던 둘 다의 죽음, 동귀어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다.

방법은 단 한가지, 동귀어진이면서 동귀어진이 아닌 것.

바로 그 경계에서 끊는 것 뿐.


“오냐! 같이 죽자----!”


로운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로운은 모든 방위의 경계를 열었다.

경계에서 끌어 모은 모든 내력을 단 열격에 실었다.


낙장불입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교주의 눈에 섬광이 스쳤다.

드디어 끝을 낼 순간이 온 것이다.

목숨을 버려야하지만 그 댓가로 상대의 목숨을 취할 그 순간이.


교주의 검이 단봉을 향해 달려들었다.


- 번쩍-----!

- 꽈릉-----!


벼락이었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 터지는 천둥 벼락이 아니라 검과 봉이 부딪쳐 터진 벼락.

근처에 있던 일월교도들이 폭약에 맞은 듯 휩쓸려 날아갔다.

소유혼과 취소연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백탑성 대전 앞 광장의 모든 편석이 뒤집혀 박살이 났다.

대전 건물 전면의 벽도 으스러져 무너져 내렸다.


백탑성을 이루고 있던 흰 벽돌들이 부서져 가루 되어 날았다.

온통 자욱한 먼지가 일대를 뒤덮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바람이 먼지를 걷어낼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만년이라도 흘러간듯한 그런 무거운 시간이.


두 사람 모두 먼지 속에 서 있었다.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지만 둘 다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붉은 색.

선혈이 온 몸을 적셔 둘의 옷 빛깔이 똑같이 붉은 색이 되어 있었다.


둘의 형국도 똑같았다.

검이 로운의 가슴을 뚫고 있었고 단봉은 교주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둘의 표정과 심중은 판이하게 달랐다.


“어째서.... 죽이지.... 죽지 못하였는가.....”


교주가 먼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믿을 수 없었다.

마지막 일격으로 죽이고 죽었어야 마땅했다.

그 외에는 다른 결론이 나선 안 되었다. 다른 결론이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죽이지도 죽지도 못했다.

교주한테 그건 패배와 같았다.

의도했던, 목표했던 종점에 다다르지 못했으니까.


“다행이 죽이지도.. 죽지도 않은 거지.”


로운도 겨우겨우 쥐어짜듯 입을 열었다.

만족할 만 했다.


“어째서 나의 검이 심장을 찌르지 못했던 거지? 어째서 너의 봉이 심장 앞에서 멈춘 거냐?”


교주가 물었다.


“어깨 넘어 배웠거든. 배우려고 한 건 아닌데 기억이 나더라고.”

“뭐가?”

“검법 있어. 아는 영감님이 원래 내 누이한테 준 건데, 누이가 그거 하는 거 봤거든. 근데 그게 딱 생각이 나데?”


생의선이 철검자를 위해 만든 삼 초의 검법. 철검자 대신 취소연한테 전수한 바로 그 검법으로 교주의 검법을 마지막 순간에 파훼한 것이다.


“끄응--!”


로운이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내공을 상처에 모아 출혈을 막으면서.

뽑아 낸 검을 교주한테 던져 주었다.


“자, 내 봉도 돌려 줘. 이제껏 니 흐름대로 한 판 벌였으니까 이번엔 내 흐름대로 한 번 붙어보자고. 말해 두지만, 이번에 넌 나한테 져.”


교주는 검을 받아들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다시 싸워서 진다면... 다시 싸울 이유가 있나....?”


질문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했다.


“내 말이! 싸우지 말고 대화부터 트자고 그랬잖아. 그럼 이쯤에서 얘기로 풀자고, 맹주 대 교주로! 싸나이끼리!”


교주가 가슴에 박힌 봉을 쥐었다.


“대화를 할 사람도, 다시 한 판을 벌일 사람도 내가 아니야.”

“응? 뭐래? 교주가 아니면 더 높은 놈이 있나?”

“교주를 만나시게.”

“?”

“나는 교주가 아니라네. 나는 검무룡이네.”

“응? 검 뭐?”


로운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교주는 봉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콱!


봉은 뽑히지 않았다.

교주는 봉을 더 깊이 박아 넣어 버렸다.

단봉이 교주의 심장을 뜷어 버렸다.


- 쿵!


교주, 아니 검무룡이 쓰러졌다.


*

검무룡.

죽었지만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검무룡, 그의 이름은 율리혁.

율리납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였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숨겨졌다.

태어난 것도 숨겨졌고 사실 율리혁이란 이름 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씨앗으로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한 명은 일교의 교주가 되었고 한 명은 숨겨지고 지워졌다.

율리혁이 후자였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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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39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5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7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6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4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5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5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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