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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12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6.19 21:12
조회
63
추천
3
글자
10쪽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DUMMY

*

“아, 달콤 양념치킨! 바삭 후라이드! 그립구나 그리워~ 근데 얘도 쫄깃쫄깃 먹을만 하다야~”


직화로 구운 거라 제법 맛이 괜찮았다. 닭고기 보단 훨씬 질겼지만 좋게 보면 쫄깃 아닌가.

맛도 분위기도 쫄깃했다.

역시 음식의 맛은 누구랑 먹는가도 중요한 거다,


“어떻게 매를 잡을 생각을 하셨어요?”

“귀찮게 자꾸 따라오니까”

“우릴 따라 온 거라구요?”

“새벽에 그 놈, 소격동에서부터 뒤따르던 놈이거든. 떼어냈다 싶었는데 그 새벽에 나타났잖아. 거리도 엄청난데 그게 우연은 아니지.”


소연이 놀라 먹던 걸 멈추고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으휴, 볼수록 귀엽다.


“근데 어떻게 객잔을 찾아왔겠냐?”

“어떻게 찾았을까요?”


로운이 닭다리, 아니 매 다리 하나를 들고 살짝 웃었다.


“아!”

“요놈이 우릴 계속 따라 왔거든. 잠깐 사라졌다가 또 따라오고 그러더라고. 요놈이 그 놈한테 계속 방향을 알려준 거겠지.”

“매가 따라온 걸 알고 계신 것도 대단하신데 그걸로 추격을 추측하시다니 정말 혜안을 지니셨어요!”


으쓱했다. 처음엔 까칠하기가 고슴도치 같던 애가 지금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혀에 꿀처럼 달콤하고 촉촉하다.

뭐라도 주고 싶은데 줄 거라곤 마음밖엔 없네.

아! 있다! 줄 거.


“이제 또 출발할까요?”

“너 보법 많이 늘었더라? 무공도 좀 가르쳐 줄까?

“무공을요? 어떤....?”

“낙장불입”

“낙장불입!!!”


잘못 들은 건가 했다. 낙장불입은 로운의 독문절학이다. 그걸로 냉야탄과 설파혼을 절명 직전까지 몰았다. 일월교 교주의 절대무공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전무후무의 무공, 낙장불입.

그런데 그걸 전수해 준다고?

절대무공을 창안하면 가전절기로 삼고 혈육한테 전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게 아니면 사제의 연을 맺고 애제자한테 전해준다.


“저와 사제의 연을 맺고자 하시는 것인지요?”


취소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제의 연? 우리 사이에 뭔 그런 걸 따지냐?”

“일신의 절기를 아무한테나 전수하지는 않으니까요. 사제지간이거나 가족이 아닌 다음에야....”

“그래! 좋네, 가족! 너랑 나랑 가족 같은 사이 하자, 뭐!”


소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족 같은 사이라면, 지금 저 분이 내게..... 부부의 연을.....?


“오빠라 불러. 말도 편하게 하고. 얼른 한 번 불러 봐, 오빠!”

“아..... 오누이......”


소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버렸다.

그래, 내가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야. 바보처럼. 오빠 동생. 그 정도라도 정말 감사한 거지. 어릴 때부터 오빠가 갖고 싶었으니까. 벽자룡과 오누이처럼 지낼 때도 너무너무 좋았는 걸. 그래. 진짜 오빠야. 저 분은. 언제나 나를 지켜줄 오빠......

기쁜 일이 틀림없지만 가슴 한 편이 허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로운도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오빠오빠 하면서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남녀 관계란 게 다 그런 거지 뭐. 근데.... 난 어차피 내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거긴 진파란이 있는데. 소연이랑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면.... 아.... 그것도 문젠데.....

소연과 다른 의미로 로운의 가슴 한 편도 허무해졌다.


그래서 낙장불입을, 낙장불입이라도 꼭 전해주고 싶었다.


“전 그런 대단한 무공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자격 상관 없는 일이야. 내가 휘와 약속했지? 너 지켜준다고. 근데 내가 나중에 떠나면? 낙장불입을 가르쳐주는 건 그거 때문이라고. 니가 낙장불입으로 스스로를 지키면 그게 또 내가 지켜주는 셈이 되잖아.”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봐라. 너한테 준다고 나한테서 없어지는 거 아니지? 낙장불입이 두 명으로 늘어나는 거잖아? 나는 손해 보는 거 없고 너는 새로 얻는 거고. 완전 개이득 아냐?”


도대체 이 사람 주장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니까.


“개이득이 그냥 이득의 의미라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만! 토 달지 말고, 오빠 말 좀 들으라고! 그냥 쫌!”


로운이 버럭 했다.


“네......”


소연이 대답하자 로운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를 더 기다리는 그런 기대감.


“.....오라버니.”


로운의 눈이 반짝 빛나면서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다.


“훗. 오라버니가 하는 말 잘 들어! 이거 기초, 강화, 완성 3단계 지옥수련 동안 죽을 만큼 어렵게 배운 거니까!”


로운은 낙장불입의 구결과 요체를 천천히 일러주었다. 자기가 사부한테 처음 들을 땐 하나도 알아먹지 못해서 뭔 개소리냐 싶었는데 취소연은 글 한 자, 문장 한 줄 모두 따라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너 지금 알아듣고는 있는 거냐?”

“놀라워요! 새로 눈을 뜬 것 같아요. 이렇게 간단한 이치들을 그 동안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래? 확실히 넌 나보다는 똑똑한가 보다.”

“그럴 리가요. 지금 저는 신을 친견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무(武)의 신(神)!

“누가? 내가 신이라고?”

“당연히 대협이시죠.”


로운이 갑자기 대화를 멈췄다. 빤히 소연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오... 오라버니가요,”

“훗. 그래? 너 참 복 받은 거다. 거의 신급인 오라버니가 최강 무공을 가르쳐 주잖아. 그치?.”

“잊지 않을게요. 이 은혜. 영원히.....”


소연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발그레 달아오르는 볼을 감추기 위해.

세상에, 이런 말을 입으로 직접 하다니.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말을.

소연은 자신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짧은 시간에, 그것도 한 남자 때문에.


둘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로운이 조금 느긋하게 달리면 소연은 떨어지지 않고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아니라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보법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취소연은 달리면서도 낙장불입의 구결을 수도 없이 되뇌며 기억했다.

다음 구결이 너무 궁금했다.


생의선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 시간이 오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법을 배우고, 무공을 배우며 이렇게 함께 가는 길이 길게길게 이어졌으면 했다.


*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라고 하는 건 인간의 오만이다.


이름이란 건 인간이 붙이는 것일 뿐, 그 본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곳은 산들이 빼곡히 모인 곳에 있다.

앞도 뒤도 옆돋 모두 삐죽삐죽 가파르게 솟은 산들 뿐이었다.

그 많은 산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산, 거기에 그 곳이 있었다.


아마 사람의 발은 단 한 번도 닿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길을 잃은 사람도 그 곳까지 흘러가기 전에 죽고 말 테니까.


그러니 그런 곳에 이름이 있을 리가 없었다.

말했다 시피 이름이란 사람이 짓는 법인데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곳이니.


그런데 거기는 이름이 있다.


유유곡(幽幽谷)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두 명 뿐이었다.

이 곳에 처음 온 사람과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던 친구.


친구는 이곳을 다녀가며 유유곡이란 이름을 지었다.

친구가 있는 곳에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하기에.


그윽하다, 피하여 숨다, 멀다, 아득하다.....

그런 뜻의 유(幽)를 두 번 썼다.

멀고 아득한 곳. 피보다 짙은 우정을 나눈 친구가 피하여 숨은 곳, 친구를 생각만 해도 그윽해질 이 곳.


그리고는 바로 그 이름을 기억에서 지웠다.

잊혀 지려는 친구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의리였기에.

기억을 지운 그가 죽고 나자 단 한 명만이 남았다.


유유곡에 사는 사람, 유유곡에서 죽으려는 사람,

생의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사의귀로 남은 바로 그 사람.


*

이로운도 취소연도 거의 사람 꼴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열흘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처음 닷새는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밥도 사 먹고 술도 사 먹고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도 잤다.

그런데 닷새 전 부터는 그냥 산, 산 넘어 산, 그 산 뒤에 또 산이었다.


단봉 네비게이션이 고장 난 게 틀림없다 싶었다.


“하! 씨바! 이거 고장 아니면 지도 업글이 안된 거다! 여긴 절벽인데 여기로 가라고? 그냥 투신 자살이라도 하라고?”


길도 없는 쪽으로 가자는 단봉을 버려두고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없는 길을 만들거나 빙빙 돌아가거나 어떻게든 단봉이 가자는 곳으로 갈 수 밖에는.


“진짜 이제 안 믿어! 못 믿어! 생선인지 뭔지 이런데 살 리가 없잖아!”


인내가 한계를 넘고 진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발악을 할 때 바로 그게 눈앞에 딱 나타났다.


사람 키 두 배는 될 정도의 바위.

거기에 용사비등 평사낙안의 유려한 필체로 새겨진 세 글자.


幽幽谷


“여기다! 여긴가 보다! 여기겠지? 여기여야 해!”


듬성듬성 자라는 수염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이로운이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취소연은 놀란 눈으로 음각의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맞지? 여기 맞겠지? 왜 그래? 뭐가 잘못 됐어?”

“맞아요. 여기 틀림없어요. 그 글씨는.......”

“응? 이 글씨가 뭐?”

“할아버지 필체예요. 생의선 그 분과 형제 같은 우정을 나누셨던.... 할아버지....”

“거 맹주 하다가 교주한테 당하신?”


소연의 두 눈에 눈물이 주륵 흘렀다.

대답 대신이었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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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0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6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5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9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4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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