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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894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11 21:50
조회
54
추천
2
글자
9쪽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DUMMY

*

“이거면 되겠습니까?”


로운이 해독약을 내밀었다.

당요한은 병마개를 열고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는 살짝 찍어 맛도 보았다.


“하~ 대체 뭘로 만든 건지 감도 오지 않네. 평생을 독만 파고 살았는데도...”

“찍어 먹지 마시고. 부족하면 어떡할라고.”

“알겠소. 그럼 시작합시다.”


해독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취소연이 스스로 깨어나면 가장 좋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직 깨어날 때가 멀었는데 강제로 깨우는 것인지라 취소저의 몸에 부담이 많이 갈 거외다. 작은 실수라도 큰 악재가 될 수 있소. 단단히 긴장하고 준비하시오.”


당요한이 장침과 단침을 늘어놓고 크게 숨을 한 번 들이 쉬었다.


- 피피피핏!


노인의 손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사천당가의 일원이고 전대 당주의 형제인 만큼 그가 지닌 일신의 무공도 보통은 아니었다. 때로는 상대를 죽이는 살법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생법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개의 장침과 더 많은 단침들이 취소연의 이마부터 어깨와 가슴까지 꽂혀들었다.

어떤 곳은 깊게 꽂았고 어떤 곳은 얕게 꽂았다. 어떤 곳은 찔러 두었고 어떤 곳은 찌르고 다시 뽑았다.


그러자 갑자기 누워 있던 취소연이 눈을 번쩍 떴다.


“아! 정신이 들어?”


취소연은 눈을 떴지만 반응이 없었다. 동공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앞만 멍하니 바라볼 뿐.


“육신이 깨어난 거요. 아직 정신은 저 밑에 잠들어 있는 거고.”


당요한은 설명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이 쉬지 않고 침을 꽂고, 뽑고, 요혈을 누르고 두드렸다.

그러자 취소연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됐소! 지금! 해독제를 먹이시오! 어서”


로운이 약병을 들고 소연한테 다가갔다. 약병을 기울여 입에 넣으려고 해도 앙다문 소연의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입으로!”

“입으로 먹이라고요?”

“입으로 열란 말이오! 입으로 입을!”

“!”


당황했지만, 당황이나 하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냅다 소연의 입에다 입을 맞췄다. 처음 약을 넣어줄 때도 입으로 넣어줬으니 첫 입맞춤도 아니다. 또한 이건 남녀 간의 일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그런데 난감했다.

벌려진 입에다 약을 흘려 넣어주는 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닫힌 입을 여는 건.....

로운이 뭐 모쏠도 아니고 딥키스를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꽉 다문 입을 강제로 열어본 경험은 없었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그게 형사겠는가? 치한이지.


“어허! 입술로 어찌 입이 열리겠는가! 입술 말고 거!”


어찌나 다급했는지 당요한은 반말로 버럭 호통을 쳤다.


입술이 아니면....? 아!

로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죄책감 같은 거 느낄 이유가 없는데도 왠지 소연한테 미안했다.


잠시 후 소연의 입술이 조금씩 열렸다.


“됐습니다! 이제 약을....”

“입으로!”

“입으로 열었다구요. 소연이 입을”

“입으로 먹이란 말이오. 입으로 약을!”


조금 전 했던 말과 앞뒤만 바뀌어 있었다.

입으로 약을 머금은 뒤 다시 소연의 입술로 다가갔다.

그때 소연의 눈빛이, 허공을 주시하고 있던 그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로운은 눈치 채지 못했다, 몸만 깨어 있던 취소연의 정신이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고 있단 걸.


로운의 입술이 취소연의 벌어진 입에 닿았다.

그리고 입 속의 해독제가 조금씩 소연한테로 흘러 들어갔다.


“고만! 고만! 언제까지 입맞춤만 하고 있을 거요!”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법이다. 누워서 떡 먹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하물며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이 날 밤 군웅맹 맹주 이로운은 사천당가 노친네한테 불호령을 들어가면서도 고분고분 시키는 걸 다 해 냈다.


취소연의 몸 한 곳에 모아둔 극독을 작은 구슬처럼 뭉쳐 놓고, 몸 속 해독제의 기운을 끌어모아 그것을 감쌌다. 로운이 주입한 내공으로 그 독환(毒丸)과 해독제 주위를 다시 한 번 감싸 모았다.

그리고 조금씩 독환을 이동시켰다. 아주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두 시진 만에야 그 독환이 소연의 기도를 타고 목줄기까지 이동했다.


“자! 마지막이오! 독환을 끌어내시오!”

“예? 어떻게?”

“입!”


마지막도 입과 입으로 하는 것이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컥!”


로운이 소연의 입에서 독환을 빨아냈다. 소연의 몸에 있던 독환이 로운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여기!”


당요한이 내민 은잔에 독환을 조심스럽게 뱉어냈다.

로운이 독환을 뱉어내자 내공이 흩어지면서 극독이 원형의 형체를 잃고 잔 안에 찰랑 고였다.

물방울이라기엔 많지만 잔 바닥에 겨우 깔릴 정도였다.


“하! 이것 보시오. 이게 지금 해독제가 섞여서 이 정도지 진짜 독은 한 방울도 채 되지 않을 게요. 그런데 이 잔 색깔이 변한 것 보이시오? 내 평생 이런 극악한 독은 처음이외다.”


은잔의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됐네! 이제 다 됐어. 나는 이 독을 좀 더 살펴 봐야겠소. 너무 흥미롭거든.”


당요한은 은잔을 신주 모시듯 조심스럽게 들고 밖으로 나갔다.


로운은 침상에 누워 있는 취소연을 내려다보았다.

핼쓱했던 안색에 홍조가 돌아오고 있었다. 파르라니 질려있던 입술도 붉은 핏기가 확연했다.

해독은 잘 된 것 같았다.


가만히 손을 들어 다시 잠이 든 소연의 이마에 대 보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내가 지켜준다고 했잖아.....”


뒷말은 다하지 못했다.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방을 나오려고 돌아서는데


“고마워요. 그리고.... 좋아해요.”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소연은 로운이 듣지 못하게 혼자만 말하고 들으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로운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나가려던 발걸음이 움찔 멈춰 섰다.

대답을 해야 할까? 대답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흔들렸다.


나도 좋아해,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알아.”


로운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고전 영화에서 본 대사였다.

스타워즈에서 레아 공주가 한 솔로한테 ‘사랑해요’라고 했을 때, 원래 대본에는 ‘나도 사랑해’였다고 한다.

그런데 해리슨 포드는 ‘나도 알아’라고 대사를 쳤다.


순간 그 마음이 뭔지 깨달았다.

떠나야 할 사람과 남아야 할 사람, 좋아하는 감정도 사랑하는 감정도 결국 미련이 되고 슬픔이 될 것이니까.


“곁에 있어 주세요.”


소연이 또 말했다.

로운은 금방 눈치 챘다. 곁에 있어 달란 이 말,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이 세상에 남아 달란 부탁이라는 걸.


로운은 몰래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활짝 웃었다. 미소가 아니라 개그 캐릭의 그런 과장된 웃음.


“알았어! 오늘 밤은 곁에서 지켜줄게. 오빠가 아픈 누이한테 그 정도는 해줘야지! 와하하!”


로운은 침상 옆 의자를 당겨 앉았다.


“깼으면 깼다고 티를 좀 내지! 걱정 했잖아! 독은 다 꺼냈으니까 이젠 멀쩡해. 곧 벌떡 일어날 거야.”


소연이 떠벌떠벌 떠드는 로운을 보고 고운 미소를 지었다.

소연도 알고 있는 거다. 로운의 마음을.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엉뚱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로운의 마음 속 깊은 진심을.


둥그런 달이 휘영청 밝은, 아름다운 밤이었다.


*

그 아름다운 밤에 은형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비종이 죽고 은형도 자결한 걸 황궁 금지에 있는 자검위의 주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내력이나 무공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손을 댄 자들이 천리 밖에서 죽었는지 만 리 밖에 살아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었다.


부하들이 죽은 것이 이로운 때문이라는 것도, 이로운이 다른 세상에서 온 것도 다 알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흘에 하나, 극한 고통으로 생겨나는 악령을 마시면서.


때가 되면, 이로운의 영혼을 찢어 발겨서 절대 악령으로 만들어 들이키는 그 순간을 꿈꾸었다.

절대 악령까지 마실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악령들로 가득 채울 수 있을 테니까.


*

“괜찮냐? 부축해 줄까?”

“쳇. 내가 누구 같은 줄 아세요? 멀쩡한데 부축해 달라고 하게?”


로운과 함께 길을 나서는 취소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기를 되찾았다.


“부디 조심하시고. 군웅맹을, 중원 무림을 다시 재건해 주시기를, 맹주!”


당요한이 떠나는 로운에게 포권하며 허리까지 숙였다.


“걱정 마시고. 여기 더 있지 말고 돌아가요. 가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지, 사천당가!”

“매, 맹주의 명이라면 곧장 받들겠사옵니다!”

“으휴, 어젠 고함 빡빡 지르더니 왜 이러셔? 누가 보면 노인 겁박하는 양아친줄 알겠네!”


당요한이 취소연을 보며 웃으며 당부했다.


“맹주를 잘 보필하게나. 두 사람 참.... 젊은 날의 취도관과 엄지효를 보는 듯 하이. 아니 둘이 더 잘 어울려, 훨씬 더! 허허허”

“취도관은 맹주잖아. 너 아버지. 근데 엄지효는 누구야?”


엄지효. 취소연의 어머니.

한 때 강호 무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남선녀 부부라던 취도관과 엄지효.

그 두 분보다 더 잘 어울린다는 로운과 취소연.


소연의 얼굴이 홍옥처럼 타올랐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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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39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1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5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7 2 11쪽
»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59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6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4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0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3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5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5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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