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04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6.16 23:09
조회
85
추천
3
글자
9쪽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DUMMY

*

로운은 쉬지 않고 달렸다.

해가 기울 때 까지 스물 일곱 개의 큰 산을 지났고 두 개의 강을 건넜다.


그리고 여섯 번째 만나는 마을에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취소연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길에서 죽나 싶었다. 팔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배도 고팠고 멀미도 났다. 무엇보다 빨리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들이 있었다.

지밀원 27, 45, 72.


로운을 추격하라는 명을 받은 3개조 3인 이었다.

은밀하게 추격하란 명이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미, 미쳤다, 저 새끼! 저게 인간인가? 저게 인간의 속도인가? 저게 인간의 발인가? 저게.... 제기랄! 각각 따로 추격하고 있지만 비슷한 욕이 절로 튀었다.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세 사람 모두 숨이 턱에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72였다.


- 우웩!


길 가에 엎어져서는 그대로 아침에 먹은 걸 모두 토해냈다.

엎어져 토사물에 얼굴을 박은 상태였지만 고개도 들지 못했다.

토사물에 익사할 것 같아 겨우 고개를 옆으로 돌린 게 전부였다.

그리고는 그대로 혼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5도 쓰러졌다.


- 콰다당


죽어도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했지만 점점 발이 꼬였고 결국 자기 발에 걸려 나뒹굴었다.

어찌나 빠르게 달리는 중이었던지 나뒹군 거리만 해도 백장에 가까웠다.

내장은 다 뒤틀리고 뼈는 조각난 것 같았고 근육은 갈가리 찢어진 것 같았다.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엉엉 울었다.

은밀한 추격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27


셋 중 가장 먼저 쓰러졌다.

그 역시 길바닥에 토했고 눈물도 찔끔 흘렸다.

그렇지만 일찍 포기했기에 오히려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다.


주저앉은 채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27이 기르는 매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내려와 그의 어깨에 앉았다.

정수리에 멋진 깃털이 돋아난 뿔매였다.

머리가 좋은 그 녀석은 주인을 따라 날아오면서 추격 목표가 뭔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27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몇 번 콕콕 찍더니 다시 훌쩍 날아올랐다.

하늘 높이 치솟은 녀석은 무섭게 달리는 로운의 뒤로 피어오른 자욱한 흙먼지를 금세 찾아냈다.


27이 기르는 뿔매 ‘나타’는 주인 대신 로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

설산 기슭 연무대에서는 율리납이 무릎을 꿇은 채 눈비를 맞으면서도 꼼짝 않고 신의 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흘째 새벽.


- 지이이잉


갑자기 내려놓은 일월신주가 울기 시작했다.


“일월의 이름으로!”


율리납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신의 사자를 맞이했다.


- 무엇 때문인가?


“말씀 올릴 것이 있사옵니다.”


율리납은 그가 보고 받았던 내용들을 모두 얘기했다.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인물, 이로운.

그가 꺾은 일월교의 고수들. 소격동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일들.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는 단봉.


- 일월신주와 같은 물건..... 그것이, 그 자가 바로 균열이다!


- 신의 뜻으로 명하노니! 그를 말살하라! 그것의 신의 사자를 너에게 준 진정한 목적이니라!


“일월의 이름으로!”


*

로운과 소연은 가장 큰 객잔을 골라 들어갔다.


“맛 좋고 비싼 걸로 쫙 깔아 봐! 술도 제일 좋은 걸로.”

“저희 음식은 맛 좋고 저렴합지요. 두 분이신 요리 두어 개 정도?”

“두어 개로 여기 쫙 깔 수 있겠어? 배 엄처 고프니까 탁자 꽉 채우라고”


로운이 탁자에 은조각을 올려놓자 주인 얼굴이 활짝 피었다.


“네, 네, 네이~ 대협! 잠시만 기다리십쇼. 야, 주방! 그거 꺼내 와! 고기! 생선! 젤 큰 놈으로!”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네 갈래 길목에 있는 곳이라 객잔 안은 제법 북적거렸다.

대다수가 신발에 흙이 잔뜩 묻었고 작은 바랑이나 짐을 내려놓은 게 이곳을 지나는 행객들로 보였다.

그 중 몇군데 손님은 무기를 비끌어 매거나 내려 놓은 무인들이었다.


그들 모두 얘기는 한 가지였다.

군웅맹과 일월교.

바로 불령산 소격동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문이란 발이 없는데도 무엇보다 빠르고 입도 없는데 점점 얘기가 자라난다.

로운이 그렇게 빨리 달려왔는데도 소문이란 놈은 더 먼저 이 곳을 휩쓸고 지나갔나 보다.


“소격동이 완전히 무너져서 일월교도는 물론이고 맹주 이하 군웅맹도 싸그리 죽었다니까.”

“그냥 무너진 게 아니여. 전신(戰神)이 내려와서 확 쓸어 버렸다더만.”

“전신이라고? 나는 손오공이라고 들었는데? 여의주를 땅에 쾅 박았는데 다들 죽었대잖아!”


하다하다 로운은 원숭이가 되어 있었다. 손오공이라니. 단봉 얘기가 여의봉이 된 건가?

떠들어 대는 사람들 얘기에 취소연이 큭큭 거렸다.

그런데 웃느라 입을 가린 소연의 손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한나절 내내 손목을 잡고 그렇게 끌고 다녔으니 아무리 내공이 깊다 해도 손목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자기 때문이란 걸 안 로운이 손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얘기 하지 그랬어?”

“아.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걸요. 내일 아침엔 멀쩡해질 거예요. 아프지도 않을 거고.”

“지금은 아프단 소리네. 내가 널 지켜주겠다고 휘와 약속 했는데 오히려 나 때문에 아프면 말이 안 되잖아.”

“하나도 안 아파요. 그냥 살짝 부은 거 뿐인 걸요. 저도 도산검림에 사는 강호인인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어요.”


정말 손목 통증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작 걱정되는 건 다른 곳이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에 서걱 베인듯한 느낌.

고통도 달콤함도 아닌,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느낌.

‘널 지켜주겠다고 약속’이라고 할 때 스걱, ‘나 때문에 아프면 안 되잖아’ 또 한 번 서걱.


가슴이 아팠다.

달콤하게 아팠다.


로운과 함께 있으면 그랬다.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느낌과 감정을 훅 느껴버리고 만다.


아프면서도 달콤했다.

그렇게 달콤하면서도 자꾸자꾸 두려워졌다.

자꾸자꾸 두려우면서도 자꾸자꾸 듣고 싶었다.

지켜 준다는 그 말을.


*

밤이 다 지나고 새벽이 올 즈음에야 27은 마을에 도착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옮기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옥불을 디디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하루에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정사대전 중에 급보를 전하기 위해 전력을 위해 달렸던 적이 있다.

그때 말을 타고 사흘을 달렸는데 그만큼을 오늘 하루에 뛴 것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와 나타를 찾아 보았다.

다행히 나타는 대로변 커다란 객잔 지붕에 앉아 있었다.


27은 객잔 입구가 잘 보이는 골목 구석진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다리가 뭉개지는 것 같았다. 온 몸은 뼈가 사라진 듯 흐느적거렸다.


‘그래도... 지금 도착했으니 해 뜰 때까지는 쉴 수 있겠구나. 조금이라도 기력을 회복한 뒤....’


그 순간 객잔 문이 끼익 열렸다.


순간 27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들이다! 추격 대상, 이로운과 취소연.


“아함~ 새벽 공기 시원하다~ 슬슬 또 달려볼까?”


27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냐, 저것들! 이 새벽에 떠난다고? 어제 그렇게 달려놓고 이 새벽에 또 떠난다고? 나는! 나는 지금 막 도착했는데! 다리가, 온 삭신이 아파 죽을 거 같은데!


“씨바!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질러 버렸다.

로운과 소연이 동시에 27을 돌아보았다.


놀란 27이 얼른 골목 안쪽으로 몸을 틀어 숨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거기서 소리를 지르다니, 지밀원 소속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동안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골목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미 떠났는지 아무도 없었다.


27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더 이상 추격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지밀원주에게 실패 보고를 할 수 밖에.

그래도 하나 희망은 있었다.

뿔매 ‘나타’가 자신을 대신해 끝까지 추격해 주기를.


*

로운은 소연의 속도에 맞춰 달렸다.

어젠 뒤따르는 놈들이 있어 속도를 냈지만 오늘은 그렇게 까지 달릴 필요가 없었다.

취소연의 부은 손목을 보고 후회도 했고.


속도를 맞추어주자 취소연은 로운 조금 뒤에서 달리며 그의 보법을 보고 따라했다.

배운지 하루 된 거지만 소연의 성취 속도는 빨랐다.

그 보법이 제법 익숙해지자 예전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고 내공 소모는 반으로 줄었다.


“배고프지 않냐?”

“저는 괜찮아요.”

“치킨 좋아 해?”

“네? 치... 뭐라구요?”

“아하하~ 닭고기나 오리고기 같은 거 좋아하냐고.”

“음... 좋아하는 편이예요.”

“그래? 그럼 한 마리 구워 볼까?”


로운이 멈춰 섰다.


“여긴 객잔도 식당도 아무 것도 없는데?”

“걱정마. 오빠가 요리해 줄 거니까.”


로운이 씨익 웃으며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


로운이 갑자기 하늘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 쐐액------ 퍽!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돌멩이가 까마득 높은 하늘을 날던 새 한 마리를 때렸다.


정수리에 멋진 깃털이 돋아난 뿔매, 나타는 그렇게 숨을 거뒀다.

낙장불입.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모전 이후 / 연재 주기에 관해 / 6월 3일 수정판 +1 23.05.14 125 0 -
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39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7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5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