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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14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13 23:04
조회
58
추천
2
글자
10쪽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DUMMY

*

날아오는 대도를 보고 곽진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목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때 뜬금 없이 ‘따악’ 뭔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눈을 떠 보았다.


틀림없이 자신을 베어 오던 벽리산이 눈 앞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이마에 뭘 맞았는지 한 손을 대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 어떤 놈이냐! 썩 모습을 드러내라!”


고함을 지르며 이마에서 손을 떼자 이마 한 가운데 불룩하게 혹이 솟아나 있었다.


“나야. 기억 나? 우리 구면이지?”


부서진 문으로 일남일녀가 걸어들어 왔다.

이로운과 취소연.


둘을 본 벽리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대답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어.... 어엇! 네... 네 놈은!”

“맞잖아? 유유곡 앞에서 딱밤 맞고 뻗은 거. 너도 거기 있었지?”

“오냐! 오늘 반드시 그 빚을 갚아 주마!”


치욕스런 기억이었다. 이전에 로운한테 딱밤을 맞은 관쌍을 놀려대긴 했지만 설마 자기도 똑같이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딱밤에 당했다. 관쌍처럼 맞고 혹이 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혼절하고 말았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 선우요화와 야율, 관쌍과 함께여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누구라도 그걸 피했다면 그 사람한테 평생 놀림감이 되었을 테니까.

네 명 모두 서로 입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그 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지밀원주가 소문을 낼 리는 없고 효지림이 좀 마음에 걸리지만 그녀도 새파랗게 어린 취소연한테 일검을 당했으니 자랑스럽게 떠들지는 않을 거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그 이로운이 나타난 거다.

뭘 어떻게 했는지 이마에 또 다시 충격적인 딱밤을 날리면서 말이다.


벽리산은 이미 눈 앞의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딱밤을 맞아 기절하더라도, 아니 딱밤으로 죽을지라도 교도들의 시신 위에서 죽을 요량이었다.


“덤벼라! 이로운! 네 놈이 지옥에서 온 괴물이라 해도 나 창해산은 오늘....”


버럭 소리 지르는 중에 로운이 한 손을 들어 막았다.

벽리산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멈추었다.


“이로운? 등천운이 신인을 배알하옵니다!”


등천운이 이로운 앞으로 달려와 포권의 예를 갖추었다.

이로운은 다시 손을 들어 막았다.


말없이 주위를 돌아보는 이로운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게... 뭐냐?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처참하게 죽은 일월교도들의 시신을 돌아보는 이로운의 말소리가 흔들렸다.


“이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입니다. 사악한 마교....”


등천운을 휙 돌아보는 로운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등천운이 움찔하며 하던 말을 삼켰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로운이 씹어서 뱉듯이 한마디한마디 꾹꾹 눌러 물었다.


“아.... 이건.....”


등천운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말을 우물거렸다.


“누구겠는가! 저들! 중원의 협객이라고 자처하는 악마들이 죄 없는 교도들을 학살한 것이다!”


울부짖는 짐승처럼 벽리산이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냐! 네 놈들이 먼저 중원을 침노하여 수많은 동지들을 도륙하고!”


곽진산이 벽리산을 가리키며 맞받아쳤다.


“닥쳐라! 이 살인마들아!”


분개한 벽리산이 도를 휘두르며 곽진산을 향해 뛰어 들었다. 단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곽진산도, 등천운도 가만있지 않았다. 신인이 이 곳에 당도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둘이 함께 벽리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로운이 번쩍, 움직였다.


“그만 해!”


- 떵! 떠엉!


서로 달려들던 세 사람이 모두 가슴을 부여잡고 튕겨 나갔다.

세 사람 모두 가슴이 진탕되어 피를 토했다.


“안돼!”


취소연이 세 사람을 후려치는 로운 앞으로 끼어들어 말렸다.

그녀가 방해하지 않았으면 로운의 주먹 하나에 세 사람 모두 가슴이 박살 난 고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가 로운의 팔을 꽉 잡고 말했다.


“진정! 진정하세요! 여기 있는 모두 죽일 셈이어요?”


로운의 팔이, 온 몸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로운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진정하려고 애를 쓰면서.


당한 세 사람은 물론이고 일월교 측도, 중원 무림 쪽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로운만 바라보았다.


“여긴 도시 한복판이에요. 오라버니가 폭주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예요.”


로운이 이를 악물었다.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분노하면, 분노해서 저들을 다 때려죽이면 저들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로운이 눈을 떴다.


벽리산, 등천운, 곽진산. 그리고 교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로운을 주시했다.

로운이 벽리산과 일월교도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너희 모두를 죽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다 죽여 버리고 싶고, 죽일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만 다 죽였다.”


마음으로만 죽였다는 말은 실제로는 죽이지 않겠다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벽리산과 일월교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모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음으로만 죽이고 실제로 죽이지 않았으니까 너희는 이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내일을 맞을 수 있는 거다. 너희가 살아가는 남은 날들은 나의 배려로, 내가 죽이지 않았기에 얻게 된 시간이다. 그러니 이제 덤으로 살아가는 날들은... 서로를 죽이지 마라. 마교라고, 군웅맹이라고, 서로 적이라고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길을 나선 등천운과 곽진산은 대체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인이시여! 어째서 저들을 살려두려 합니까? 싸움은 기세입니다! 놈들을 다 쓸면서 교주까지 가야 합니다!”


로운이 그들을 돌아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들이라고 죽이지 않았을까? 벽리산을 죽이기 전에 너희들부터 죽였다.”


등천운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곽진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이 들은 이야기들, 소문 속의 신인은 그렇지 않았다. 일월교 앞에서 그는 저승에서 온 사자와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일월교를 살려주겠다고 한다. 더하여 신인을 따르고자 온 자들을 먼저 죽였다고 한다.


“아니야! 당신은 신인이 아니야! 신인을 빙자하여...”


로운이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당연히 아니다. 나는 신이 될 수 없지. 신인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냥 사람. 경험치 낮은 초짜 형사. 어쩌다 이 세상에 오게 된 그렇고 그런..... 흠결 많은 사람일 뿐이니까.”


벽리산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겪었고 당했다. 소문 속의 신인이 그라는 것을.

하지만 이 자리에서 로운을 처음 만난 등천운과 곽진산은 달랐다. 속았다는, 속은 거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이 믿는 유일한 희망인 신인이 그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등천운이 가슴 고통을 참으면서 도를 들어 올렸다.


“꺼져라! 나는 갈 것이다! 진짜 신인을 찾을 것이고 그와 함께 마교로 갈 것이다!”


로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법도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다 한들 인간의 본성은 다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로를 악으로 지목하고 죽고 죽이는 살육을 벌리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죽이든가! 아니면 꺼지든가!”


등천운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내상을 입어서 피를 토하면서도.


로운이 품에 손을 넣었다.


“다들 여기서 멈춘다. 이건 신이 아니라 인간, 맹주의 명이다!”


품에서 나온 로운의 손에는 맹주령이 빛나고 있었다.


*

그 날 밤을 지내고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 취소연은 난주의 감숙지단을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감숙지단에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원에서 온 등천운과 곽진산, 그를 따라 온 무리들이 교단 뒷마당에 땅을 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자신들이 죽인 일월교도들을 자기 손으로 묻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교도들과 싸우다 죽은 중원 무사들의 시신도 벽리산과 청령기 대원들의 손으로 안장되었다.


일월교의 제주가 올리는 제사를 등천운과 곽진산도 함께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등천운과 곽진산은 감숙교단에 식객으로 머물렀다.

그곳을 지나가는 중원의 무사들을 설득해 온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서였다.


등천운과 곽진산이 그렇게 한 것은 맹주령을 보고 명주의 명에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로운이 맹주령을 꺼낸 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은 게 맞다.

그런데 이로운과 밤이 깊도록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흔들리던 마음이 바뀌었고, 바뀐 마음이 굳어졌다.


로운은 명철한 철학가도 아니고 박식한 이론가도 아니며 홀륭한 웅변가도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하물며 깊은 명상과 관조에서 비롯된 생을 관통하는 올바른 인생관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세계로 넘어 온 뒤 짧은 시간에 엄청난 경험들을 했다. 다른 세상에서 처음 겪는 일들은 가슴에 전해지는 파급이 훨씬 클 수 밖에 없었다.

그걸 간곡하게 전했다. 어려운 말을 쓸 줄 모르니 쉬운 말을 썼고 조리 있게 말할 줄 모르니 간곡하게만 얘기했다.


그게 상대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진심은, 정말 절절한 진심이란 놈은 어눌 말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

로운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평화롭게 바꾸려고 애쓰는 동안에

교주는 조금씩 살심(殺心)을 키우고 있었다.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이기 위해 교단으로 오는 길이면서 그런 식으로 화해와 용서를 베푼다는 건 가식일 뿐이니까. 가식은 악을 가리기 좋은 외투 같은 거니까.


‘악을 향해 끊임없이 살심을 가져라’


그것이 일월의 큰 교리이니까.


교주는 그가 오길 기다리며 매 순간 마음으로 죽였다.

실제로도 죽이기 위해.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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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0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6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9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5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9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4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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