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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895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6.26 23:51
조회
73
추천
2
글자
9쪽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DUMMY

*

“내가 내 몸을 보고... 연구하다.... 떠오른 게 있다.... 검법이다.... 내 친구... 철검자... 위해 만들었다. 그걸 주겠다. 배워라.”


생의선이 검법을 창안했다고 했다. 철검자를 생각하며 만든 검법.


“그러면 그건 제 것이 아닌데요?”


로운이 취소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안 준다. 취소연 준다. 원래. 철검자 꺼다.”

“아... 네.... 좋네요. 저도 찬성입니다. 하하하”

“너는 다른 거. 다 가질 거니까.”

“뭘 또. 저는 안 주셔도 되구요. 소연이 많이 주십시오.”


생의선이 취소연한테 검법 구결을 알려 주었다.

단 세 개의 초식이었다. 로운은 옆에서 들었지만 일단 뭔 말인지 모르겠고 뭐가 좋은 건지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연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생의선한테 구결과 요체를 듣고 난 그녀는 순서가 바뀌었다면서 얼른 삼배를 올렸다.


“필요 없다. 사제. 예법. 나는 너한테 아니고 친구. 철검자. 선물이다.”

“네. 그 마음 간곡히 받겠습니다.”

“됐다. 이제 해 봐라.”


생의선의 명에 소연이 숨을 크게 들이 쉬고는 몸을 꼿꼿이 세웠다.


- 스악---


발검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솟구쳤다. 솟구침과 동시에 검이 사방을 뒤덮었다. 일대가 모두 철검으로, 실제로는 철검의 잔상으로 뒤뎦혔다. 일초식이었다.


순간 잔상들이 그녀의 몸을 향해 모여들었다. 잔상으로 보이던 수십 개의 철검이 실제 그녀 손의 철검으로 합쳐졌다. 다음 순간 하나가 된 철검이 동시에 사방으로 쏟아졌다.


- 쏴아아--


검이라기 보다 화살, 아니 수많은 파편을 뿌리는 폭발. 두 번째 초식이었다.


파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손에 쥔 철검까지 사라졌다. 빈손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검이 튀어나갔다.


- 슈라락— 슈라락- 슈라라락---


한자루 검이 꼬리를 길게 끌며 허공을 난자했다. 순식간에 그 검영이 사라지면서 또 다시 새로운 검 한자루가 그녀의 손에서 튀어 나와 사방을 할퀴었다. 뒤이어 또 다른 검영이.

소연은 모두 일곱 자루의 검영을 연속으로 출수했다. 이기어검. 마지막 초식이었다.


“됐다. 삼성 예상했다. 내공이 탄탄하다. 한 번에 칠성이다. 십이성 이루어라.”


생의선이 어린애처럼 활짝 웃으며 칭찬했다.

취소연은 허리를 깊게 굽혀 절했다.


“이제 너. 내가 준다. 모든 거. 마지막이다.”


생의선의 말에 로운도 허리를 굽혀 절부터 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란 뜻일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이 단계를 지나면 한계 돌파 과정에서 무너진 로운의 내공이 안정될 것이다. 사부들이 안배한 것이니 어긋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걸 겪게 될지, 이 과정 이후에 로운의 성취가 어디에 이를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무공에 대해, 내공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지라 성취에 대한 욕망도 적었고 그러니 관심이 크게 있을 리가 없는 거다.

로운은 그냥 빨리 여기서 나가 교주의 일월신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 반드시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거든요. 그래도 잊지는 않겠습니다.”


생의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아까부터 어린애처럼 환한 미소를 놓지 않고 있었다.


생의선의 지시에 로운이 결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의 뒤에 생의선이 앉았다.

생의선이 근축혈에 양 엄지를 대고 두 장심을 로운의 등에 붙였다.

로운은 눈을 감았다.


생의선의 장신을 따라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생의선의 기운이 온 몸에 퍼지면서 로운의 내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 몸이 잔잔한 호수 같았다. 그러더니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몸 속 물길을 따라 움직였다.


‘오오! 좋은데? 전에 열빙지 맛사지도 좋았지만 이건 또 다른.... 으헉!’


단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등줄기를 타고 머리 쪽으로 가던 내공이 갑자기 무언가에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는 등줄기로 올라 간 내공이 정수리까지 갔다가 슬며시 다시 내려서면서 몸 앞으로 흘러내려와 단전에서 다시 자리를 잡는 순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공이 정수리 끝으로 몰려 올라가는데 예전의 그 흐름과 달랐다. 막힌 길 앞에서 방향을 잃고 소용돌이치는 느낌, 그런데도 이어지는 내공의 흐름은 계속 그 곳을 밀어대고 있었다.



로운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이대로 머리통이 터져 나가는 게 아닌가 싶은 위기감을.


‘밀어라. 그대로. 믿어라. 나를.’


생의선의 전음이었다.

상황과 달리 평온하고도 따듯한 전음. 마치 어린 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하던 말씀 같은 애정이 담긴 그 목소리에 로운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밀어라. 밀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생의선을 믿었다.

몰두.

오로지 막힌 길 앞에 소용둘이 치는 내공을 그대로 밀어내는데 몰두했다.

몰입.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내공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몰입했다.


그러자 갑자기 길이 열렸다.

막혀있다고 생각했던 그 곳이 뻥 뚫리고 제자리 소용돌이치던 내공이 순식간에 길을 따라 돌진했다.


- 콰아아아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머리속에서.


한 번 길을 연 내공은 대지를 가르는 장강의 물결처럼 로운의 몸 안을 구비쳐 달렸다.

단전에서 멈추지도 않고 정수리에서 내려앉지도 않았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정확하게 제 길을 따라 몇 번이고 몸속을 순환했다.


생사현관(生死玄關)의 타동

그 길이 열려 임맥(任脈)과 督脈(독맥)이 하나의 길로 연결된 것이다.

강물처럼 내달리는 로운의 내공은 십이정경의 작은 물줄기로 나눠 달리고 기경팔맥까지 뻗어나갔다.

로운의 머리 끝에서 손발 끝까지 모든 곳에 내공이 존재했다.


정순하기 이를 데 없는 내공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온몸의 뼈가 으드득거리며 위치를 바꾸었다. 뼈를 감싼 근육들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로운의 몸은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해골처럼 수축했다.


“아!”


놀란 취소연이 신음과 탄성 그 중간 쯤의 소리를 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환골탈태.


할아버지가 이루었던 경지, 하지만 아버님은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

말로만 들었던 그 순간을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으드득 거리던 로운의 몸이 다시 원래의 틀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식경 정도일까?

하지만 취소연은 그것이 영원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반대로 로운은 찰나의 순간으로 느꼈다.


그러하다.

몰입과 몰두의 시간은 깨어나면 찰나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로운이 눈을 떴다.

하지만 아직도 생의선의 장심은 등에 붙어 있었고 로운의 내공은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몇 번의 대주천이 더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의선의 두 손이 툭 떨어졌다.


“아!”


로운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생의선의 삶도 이제 끝난 다는 것을.


“어르신!”


로운이 돌아 앉으며 앉은 채 무너지려는 생의선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안색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인간의 생기와 온기가 거의 빠져나가고 있었다.


로운이 얼른 그의 가슴에 손을 댔다. 조심스럽게 내공을 밀어 넣었다.

생의선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로운을 마주보았다.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아니 하지 말라고.


급박하게 밀어 넣은 한 줌의 내공 덕택일까?

생의선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길 수 있었다.


‘죽고 싶다는 것과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어느 것이 더 슬픈 일인가?“


나지막히 읊조린 선문답 같은 그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눈을 감고도 미소를 띠고 있었다.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표정.

안온한 죽음이었다.


끝이라는 의미보다 그리운 아내와 아이를 만나러 가는 출발의 의미가 훨씬 깊게 느껴지는 그런 죽음.


로운은 눈물을 흘렸다.

휘가 죽었을 때 쏟았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다 주겠다고 했던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알게 되어 가슴 아팠다.

얼른 다 끝내고 교주를 찾아 갈 생각만 했던 일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한 사람 일생을 오롯이 받고 말았다는 생각, 그것은 책임감도 부담감도 아니었다.

고마움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었다.

말로는,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거.


소연이 다가왔다. 그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도 로운의 손바닥에 걸쳐져 있는 생의선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뉘였다.


그제야 고단했던 삶을 놓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누웠다

생의선의 육체는.


두 사람은 그 앞에 주저앉아 고개만 푹 떨구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뜻하지 않은 자의 뜻하지 않은 말이 들려온 것은.


“바쁘지 않으면 나 좀 볼까?”


놀란 로운과 소연이 돌아보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인물.

미소 짓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빨갛고 파랬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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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7 프로매니아
    작성일
    23.06.27 08:05
    No. 1

    불사자에게 죽음은 안식일까요? 생각 좀 해봐야 겠습니다. 확실히 글에 깊이가 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 래몽래인
    작성일
    23.06.27 11:05
    No. 2

    본문에 말을 길게 늘여 놓았다가 다 지웠어요. 감정을 깊게 끌고 가져가야 하나, 아니고 그냥 던져주고 마는 게 맞나 고민했어요. 작가님이 '깊이' 말씀을 달아 주시니 잘 지웠다 싶어요. ^^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pe******..
    작성일
    23.07.17 21:44
    No. 3

    죽고 싶다는 것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의 차이를 되새겨봅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3.08.08 16:50
    No. 4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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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1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5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7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59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6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4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0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5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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