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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03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14 23:26
조회
65
추천
2
글자
10쪽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DUMMY

*

멀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설산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로운과 소연은 늦은 요기를 하기 위해 설산이 보이는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로운과 소연이 나타나자 신기한 동물을 본 듯 기웃기웃, 수군수군, 힐끗거렸다.

아이들은 뒤를 졸졸 따라오기도 했다.

로운과 소연은 딱 봐도 이쪽 지방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외모도 그렇고 옷차림도.


두 사람은 작은 식당 앞에 내 놓은 탁자에 자리 잡았다.


“어서옵셔~ 뭘로 드릴까? 저희 집은 맛있는 비계가 잔뜩 들어 있는 고기가 있고요.”

“아. 비계 없는 고기로 잔뜩 주시고. 술도!”


추운 지방이라 그런지 비계가 많을수록 고급 재료라고 자랑했다. 서울이었다면 망하기 딱 좋은 가게다.


“캬~ 뷰 죽인다! 내가 만년설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천 개의 산이 모여 있다고 해요.”

“아! 저기가 거기야? 천산산맥?”

“아시는군요. 그 산맥을 넘으면 끝도 없는 모래의 바다가 있다고 해요.”

“응 고비사막”

“고비?”

“우린 그렇게 불러. 내가 사는 세상 말야.”


소연이 잠시 씁쓸한 웃음을 짓더니 로운한테 물었다.


“어떤 세상일까요? 대협, 아니 오라버니가 살던 그 곳은. 중원하고 여기만 해도 이렇게 다른데 거긴 정말 많이 다른 곳이겠지요?”

“다르지. 중원하고 여기가 다른 거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지. 왜냐면 공간이 다른 게 아니라 시대가 다른 거니까.”

“오라버니가 들려준 그 세상 이야기를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떠오르지가 않아요.”

“잊어버려. 어차피 딴 세상 이야기잖아.”


그 말에 소연은 로운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딴 세상,

그리고 거기로 떠날 사람. 어차피.


“그래도 사는 건 똑 같지 뭐. 다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냐? 나도 여기 와서 잘 지내고 있잖아. 아, 잘 지내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안 죽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덕분에 이런 멋진 장관도 보잖아. 천산산맥의 설산! 캬~ 풍경에 취하네, 취해!”


로운은 소연 속도 모르고 계속 혼자 신나서 떠들었다.


“얼른 먹고 또 출발하자. 설산 위에 호수가 있댔지? 그 호수 곁에 일월교 본교가 있고? 가서 빨리 확인해 봐야겠어. 으휴! 이 놈의 임무! 얼른 끝내버려야 속이 시원하지.”

“.......”


소연의 맘이 아팠다. 빨리 떠나고 싶다는 그 말이 너무 아팠다.

소연은 느리게느리게 시간이 흘렀으면 했다.

어차피 떠나야 할, 헤어져야 할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이별을 맞고 싶었다.


“왜? 무슨 일 있냐? 힘들어? 표정이 안 좋네?”

“아니에요. 얼른 먹고 출발해요. 그래야 오라버니 일도 끝내고 돌아갈 수 있을 거니까”

“아.....”


그제야 소연의 마음을 눈치 챘다. 느려 터진 놈. 이러니까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지.

로운이 속으로 자책해도 이미 늦었다.


“천천히 가도 돼. 언제 또 이런데 와 보겠냐? 원래 중요한 경기 앞두면 몸도 마음도 좀 릴렉스 해줘야 되는 거거든.”

“다 드셨으면 일어나요.”


이미 마음을 다친 소연이 쌩하니 일어났다.


“아, 좀 앉아 봐. 저 경치도 보고...”


로운이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분위기 전환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갑자기 거리가 웅성웅성 하더니 일단의 말을 탄 무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무리들 맨 앞에는 낯익은 이가 앞장서서 다가오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까지 하면서.


“여기서 또 보네요.”


실제 나이는 쉰을 넘었을지도 모르지만 겉 모습은 여전히 이십대로 보이는 효지림이었다.


“어? 너는?”


효지림은 말에서 훌쩍 내리더니 토각토각 경쾌하게 골반을 흔들며 다가왔다.


“일월교 외진각 부각주 효지림! 교주의 명으로 귀인을 모시러 왔어요.”


효지림의 모습이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가슴은 더 커지고 허리는 더 잘록해졌다. 망토를 느슨하게 둘러 어깨의 반과 쇄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입술도 왠지 더 빨갛게 도드라졌고 볼도 뭔가를 발랐는지 발그스름 생기가 느껴졌다.

한마디로 예전보다 훨씬 발랄하고 요염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효지림은 취소연을 흘깃, 싸늘하게 보고는 금세 로운한테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곳에서 교단까지는 제가 모실게요.”

“왜?”

“교주님께서 편안히 모셔오라 하셨어요.”

“그건 교주 사정이고!”

“네? 지금 저희 본교로 가시는 길 아니세요?”

“그건 내 맘이고.”

“아.....”

“내가 그랬지? 맘 내키는 때 갈거라고. 수틀리면 안 갈 수도 있고. 근데 니가, 아니 니네 교주가 뭔데 날 오라마라야!”

“그게 아니라 교주님께서는 감숙교단에서 하신 말씀에 깊이 공감하시어 교주와 맹주로 만나....”

“뭐래? 내 말에 걔가 왜 공감하고 난리야! 안 그래 누이?”


취소연은 짐짓 딴 데를 보면서 몰래 빙긋 웃었다.

효지림한테 괜히 엇나가는 게 아까 자기 마음에 상처 준 걸 털어버리려고 그런다는 게 느껴졌다.


“교주한테 가서 전해. 가고 말고는 내가 정하는 거고, 날 기다리고 말고는 교주가 알아서 하라고.”

“아.... 제가 모셔가면 훨씬 편한 잠자리와...”

“여행은 말이지, 어떤 곳에서 자고 어떤 곳에서 즐기는가 보다 누구와 같이 가는 지가 훨씬 중요하거든.”


로운이 슬쩍 소연의 표정을 훔쳐보며 한 말이다.

소연도 기분이 조금 풀린 거 같았다.


“가자, 누이. 가다가 좋은 데 있으면 차도 한 잔 하고, 사진도 찍... 아! 폰이 없구나. 그냥 얘기도 하고 그러자고.”


로운을 따라가면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효지림 앞을 쌩하니 지나칠 때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녀와 일검을 나누어 승리했을 때 보다 훨씬 더 짜릿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잘 아는 법.

효지림이 로운한테 마음을 두고 있는 걸 취소연이 모를 리가 없었다.


효지림은 이를 어찌나 악다물었는지 이빨이 으스러질 지경이었다.

당장 혈편을 꺼내 취소연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교주의 엄명은 둘째 치고, 무기를 꺼내는 순간 또 취소연한테 지고 마는 거니까.

무공과 무공의 대결이 아니라 여자 대 여자의 승부에서도.


*

소격동 안에서는 연일 회의가 이어졌다.

소격동은 은거지로는 더 없이 안전한 곳이었지만 동굴이 무너지고 나니 스스로 감옥에 갇힌 꼴이 되어버렸다.

로운과 소연을 밖으로 내 보내긴 했고 로운의 능력이라면 교주와 일전을 벌여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지만 불안한 마음은 누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군웅맹의 주력이 이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로운과 소연한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해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니까.


“단 한 명이라도 절벽을 올라가 봅시다. 튼튼한 밧줄을 갖고 올라가서 아래쪽으로 드리우면...”

“아미타불. 올라갈 방법도 없지만 올라가는 순간 제갈대인이 만든 진법에 갇히게 될게요. 그 진법에 생문은 없고 사문만 있다고 하지 않았소.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외다.”

“그럼? 여기서 죽을 때 까지 있잔 말이오? 소림은 여기서 목탁이나 치고 기다리시던가! 우리 개방 동도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올라가 볼 참이니까!”


소림 대행이 말리자 개방 편하직이 침까지 튀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편방주. 개방이 어떤 상황에서든 죽음을 불사한다는 건 무림강호 전체가 다 아는 바요. 하지만 대사님의 걱정 또한 개방 동도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 아니겠습니까.”


취도관이 편방주를 좋은 말로 토닥였다.


“저나 대사께서도 이 곳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야 어찌 편방주보다 덜하겠습니까? 다만 모두가 온전히....”


그때 문이 열리며 벽리산이 뛰어 들어왔다.


“맹주! 밖에! 밖에”

“밖에 뭐? 누가 찾아오기라도 했냐?”


편하직이 괜히 벽리산한테 짜증을 부렸다.


“그렇습니다! 이곳을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동굴이 무너지고 나서는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소격동이 되었다,

그런데 찾아 온 손님이라니.


*

손님은 뒷짐을 지고 강변에 서서 소격동의 경관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경관 좋은 곳에 산보라도 나온 부잣집 자제인 듯 여유로워 보였다.


“군웅맹의 취도관이오! 대체 뉘신데 어떻게 이 곳을 방문하셨소.”


성질 급한 편하직이 나서기 전에 취도관이 먼저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손님이라는 사내가 뒤돌아서며 미소 지었다.


젊고 준수한 외모, 돌아서는 동작까지도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허리춤에 자색의 검을 비끌어 맨 사내.

도무지 어떤 배경을 가진 어디 출신의 인물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 저는 이름을 말할 수 없으니 그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뭐라? 남의 집에 불쑥 찾아와 놓고 이름을 숨겨? 대체 뭐하는 놈이냐?”


편하직이 버럭 성질을 부렸다.


“이름도 숨기고 얼굴도 숨기면서 이 곳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요. 아미타불.”


대행의 말에 사내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호, 제가 인피면구를 쓴 것도 눈치 채셨군요. 역시 법력 높은 대사님의 안목은 피할 수가 없군요.”

“으잉? 인피면구였어? 목적이 불온한 놈이구먼!”


훙분한 편하직을 가만히 말리면서 취도관이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대체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셨소? 들어 올 수 있는 방도가 없었을 텐데.”


사내는 가만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으잉? 하늘에서 왔다고? 뭐 등에 날개라도 돋혔나? 응? 응?”

“작은 언덕 하나 넘어 오는데 날개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황제의 명이니 언덕 정도는 훌쩍 넘어야지요.”


취도관과 나머지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황제의 명?”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소생은 황제의 명을 받드는 자검위의 수장이니까요.”


이름을 말하지 않는 자, 얼굴을 숨기는 자, 소격동에 쉬이 들어온 자,

그가 바로 자검위의 위주, 그 의문의 사내였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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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39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7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5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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