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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00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07 19:52
조회
66
추천
2
글자
9쪽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DUMMY

*

- 흐읍...!


취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에는 뽑아 낸 침 두 개가 물려 있었다. 안색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해냈다는 생각 때문에 웃고 있었다.


“고마워, 누이!”


그런데 소연이 눈이 스르륵 감기며 다리가 풀렸다.


“엇!”


로운이 얼른 쓰러지는 소연을 잡았다.

정신을 잃은 소연의 입술이 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입 꼬리를 따라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야! 정신 차려! 누이! 누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진 소연이 겨우 웅얼거렸다.


“독...”


소연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독?”


비종이 로운의 팔에 꽂은 건 독침이었다. 취소연이 급하게 침을 빨아 낸 이유가 그거였다. 암살자의 침에는 극독이 발라져 있을 걸 예상했던 거다.

소연은 침만 빨아낸 게 아니라 독이 퍼졌을 로운의 피도 함께 빨아냈다. 다급한 상황인지라 뱉어낼 여유도 없었다. 독을 삼키지는 않았지만 머금고 있는 동안에도 극독은 소연의 몸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저 씨발 새끼가!”


이미 죽은 놈을 향해 욕을 해도 소용없었다. 망했다. 로운은 독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뭐 다른 거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119를 부를 수도 없고 병원도 없다.


“진정하자! 영화! 무협소설! 중독 됐을 때 어떡했더라?”


다행히 해독제가 생각났다. 독을 쓴 놈들은 항상 해독제도 가지고 다녔었다. 적어도 무협소설 안에서는 그랬다.


얼른 목이 부러진 비종의 몸을 뒤져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비종의 품속에서 작은 약병이 나왔다.

문제는 약병이 하나가 아니었다. 마개 색깔이 다른 두 개의 병.

둘 중 하나는 해독제라 쳐도 다른 하나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로운은 생각할 것도 없이 소연의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내 입으로 가져갔다.


- 쩝쩝쩝


피 맛 외엔 아무런 냄새도 없었다. 미식가는커녕 주면 먹는, 안 줘도 먹고 보는 식탐가인지라 맛에 대해선 혀가 짧았다.


약병 하나를 땄다. 설령 여기 극독이 들어 있어도 먹어야했다. 소연은 자기를 구하려고 독을 빨다 중독되었는데 자신이 겁 낼 일인가? 소연을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장담했는데.


살짝 맛을 보았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제기랄. 내 혀가 돌았나. 맛을 구분할 수가 없네!’


얼른 다른 병을 땄다. 병을 따자마자 좋은 향이 났다. 혀보다 코가 일을 잘했다.

맛을 보니 시원한 허브차 같은 느낌이었다.


‘피비린내 말고는 냄새가 없었어. 아까 약병도 맛이 없었고. 그럼 일단 이거다.’


약을 흘려 넣으려고 소연의 입을 살짝 열었다. 그런데 소연의 입 안에 피가 그득했다.


“아! 병신! 기도확보! 경찰학교에서 그렇게 배워 놓고는!”


소연의 고래를 옆으로 돌리고 입안에 손을 넣어 핏물을 긁어냈다. 하지만 핏물이 다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중독된 피가 입안에 있으면 계속 악영향을 미칠게 틀림없었다.


더 이상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취소연의 입에 입을 마주 댔다. 힘껏 그녀의 입 안의 고인 피를 빨아냈다. 한 방울도 남지 않게.

그리고 나서야 조심스레 약을 흘려 넣었다. 부디 이것이 해독약이 맞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로운은 소연을 들쳐 매고 달리기 시작했다.

몇 개의 마을을 만났지만 그냥 지나쳤다. 작은 마을은 소용없다. 큰 도시에 가야 제대로 된 의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유백은 죽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자한테.


삶에서 죽음의 경계를 넘는 순간, 유백은 너무나 행복했다.

죽을 수 있다는 게 이토록 행복할 줄은 몰랐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 하더라도 행복했다.

살아서 겪는 그 고통이 지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기에.


유백의 눈가리개가 사라지고 나타난 사내.

그가 머리에 손을 올리자 이상한 기운이 유백의 백회혈을 타고 온몸으로 번졌다.

그러자 갑자기 눈이 밝아지고 귀도 뚫리는 게 느껴졌다. 온몸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어둡기만 하던 석실 구석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석실의 오래된 돌 냄새, 이끼 냄새, 습기 냄새까지 느껴졌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의 발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으헉! 이게 뭐지? 어떻게 내 몸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지? 대체 이 사람은...?’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무언가 엄청난 힘을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가 밀어 넣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온몸의 힘을 돋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착각이었다.

조력자가 젓가락을 배에 꽂을 리는 없으니까.


고통은 배에 박혀있는 그 젓가락부터 시작되었다.

사내가 젓가락을 잡고 비틀기 시작했다.


- 끄아아아아------!


젓가락을 살짝만 비틀어도 엄청난 고통이 온몸에 전해졌다.

그런데 비틀기까지 하자 인간으로서는 절대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이 육체를, 영혼까지 찢기 시작했다.


사내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유백의 감각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린 이유, 고통을 몇 백 배 더 크게 느끼게 하려는 것.


- 끄아아아아악----!

고문이 시작 되었다.

손톱을 뽑았다.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손목을 잘랐다. 귀도 잘랐다. 코도 베었다. 살점을 찢었다. 혀도 뽑았다. 눈을 파냈다.


- 끄아아아아악----!


비명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그냥 죽고 싶었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혼절도 하지 않았다.


사내의 두 번째 목적이 그거였다. 알 수 없는 기운을 주입해 유백이 쉽게 죽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고통을 몇 천 배 더 느끼게 하는 것.


- 끄.........!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유백한테는 영겁 같이 긴 시간이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유백의 고통이 절정을 넘어 설 때, 사내의 손에서 하얀 빛이 보였다.

빛으로 둘러싸인 사내의 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내의 손이 머리 위에 닿았다.

그리고 온몸이 그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행복했다. 그 순간이.

달콤했다. 그 죽음이.

오로지 죽음만이 그 고통의 끝이니까.


- 휘유웅--


사내가 유백의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유백의 몸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온몸의 수분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 풀썩


유백이 쓰러졌다. 온 몸은 말라붙은 찰흑처럼 부스러졌다. 지푸라기처럼 날려갔다.


사내는 지긋이 눈을 감고 여운을 즐겼다. 아주 달고 맛있는 식사를 마친 듯. 기분 좋은 포만감을 만끽했다.


황제한테 원하는 것을 주는 대가로 얻는 것들 중 하나였다.

악인의 영혼. 악성에 물 든 자가 극악의 공포와 고통 안에서 악성이 폭발적으로 커졌을 때 그의 영혼을 먹는 것.


사흘에 한 번, 한 달에 열 번.

비밀스런 황실의 금지에서 악령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자검위의 수장이지만 황제가 신이라 부르는 사내.


그는 또 다른 이에게도 신이라 불리었다.

정확히는 신의 사자라고.


*

“하아~ 이것 참. 독은 독인데 무슨 독인지는 모르겠소. 나도 평생 의원을 천직으로 살아왔지만 이건 도무지 근원을 모르겠다니까. 독물에는 최고라는 사천당가도 이건 모를 게요.”


도시에서 가장 큰 의원을 찾아 왔는데도 늙은 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천당가? 그건 어디 있습니까?”

“찾아 가도 이젠 없소. 일월교 한테 작살났지. 뭐. 거지꼴로 어딘가 떠돌아다니려나....”

“아....”

“그래도 독이 온몸에 퍼지지는 않았소. 내공이 깊은 지라 혈도를 스스로 봉해 독을 최대한 모아 두었구먼. 모으지 못한 독은 미미한지라 해독제가 잘 들은 것 같고.”

“해독제가 모아 놓은 독은 해독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워낙 극악한 독이라 쉽지 않소이다. 이 분이 깨어나서 스스로 내공과 해독제를 이용해 독을 밀어낸다면야 가능할 수도 있겠소만 정신을 잃은 상황이라...... 군웅맹주 정도 되는 분이 와서 도와주지 않고는 힘들지 않겠소?”

“군웅맹주?”

“그렇소, 군웅맹주. 그 정도는 되어야....”

“난데? 내가 맹준데?”

“에?”


로운이 방 안을 돌아보더니 한쪽에 놓인 커다란 물동이로 다가갔다.

한 손을 물동이에 대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뭐하는 거요? 그건 내가 귀한 약재를 달이려고 넣어둔 거요. 썩 물러나시오!”


하는데 갑자기 물동이에 담긴 약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으헉! 지, 지금 뭘 한 거요? 불도 안 지폈는데 어떻게 약물이?”

“이 정도면 맹주든 아니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원하면 금방 얼음으로 만들 수도 있고!”

“아! 아니오! 충분하오! 그 정도 내공이라면.... 차고 넘치오!”


의원이 두 팔을 저으며 말렸다.


“그럼 방법만 알려 주십시오. 어떡하면 독을 뽑아내고 깨어나게 할 수 있는지.”

“하... 그러면..... 근데 대체 대협은 뉘시오?”

“나, 맹주라니까! 군웅맹주! 진짜 꼭 보여줘야 아나?”


로운이 품 속에서 맹주령 귀퉁이를 슬쩍 꺼내 보였다.


맹주령을 본 의원의 표정이 사색이 되더니 풀썩 무릎을 꿇었다.


“사... 사천 당가 당요환이 맹주를 배알 하옵니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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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39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5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7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4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5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5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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