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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05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12 22:52
조회
67
추천
2
글자
11쪽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DUMMY

*

곽진산이 무리 열 여덟을 이끌고 가던 등천운을 만난 건 섬서성에서 막 감숙성으로 넘어간, 경계 근처에 있는 마을이었다.

크지 않은 식당에 홀로 앉아 늦은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요기거리 사람 수대로. 아, 술부터 내 주시오.”


여러 개의 탁자에 나누어 앉은 뒤에도 그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말투도 옷차림도 먼 길을 온 이방인 티가 났다.

그 중에서도 도갑을 허리에 가로 맨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사각에 가까운 커다란 가죽 도갑, 낡은 도갑에 그려진 두 마리 호랑이. 그런 독특한 도를 쓰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곽진산은 젓가락을 놓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 포권하며 인사했다.


“대도쌍운 중 등천운 대협 아니신지요? 강호에 드높은 협명은 익히 들어왔으나 여기서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등천운이라 불린 사내가 곽진산을 날카롭게 살폈다.

곽진산은 허리 숙여 인사하는 척 하며 품속의 피리를 슬쩍 보였다.


“오! 청악공 곽진산 대협이시오? 몰라 뵈어 죄송하오! 자, 여기 앉으시오”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동석했고 곧장 술 석 잔을 함께 비웠다.


“소문을 듣고 바로 나섰지요. 신인(神人)이 내려와 군웅맹을 다시 세우고 마교를 토벌한다고 하니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똑 같은 마음이외다. 아우 등지운이 일월교에 참살 당하고 대도쌍운은 없어졌소. 혼자 살아남기보다 장렬하게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소이다. 동생의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소? 여기 함께 온 친우들도 모두 같이 죽고자 온 것이오.”

“좋습니다! 제가 등지운을 대신해 등대협의 의제가 되겠습니다! 함께 싸우다 함께 죽을 형제로!”

“와하하! 좋네! 곽진산이 내 아우라니! 의형으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이겠네!”


이 둘 만이 아니었다.

일월교와 싸움에서 살아남아 숨죽이고 있던 강호의 수많은 협객들이 일월교 본교가 있는 설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출발했지만 목표와 목적지가 같은 지라 곳곳에서 의기투합해 힘을 합쳤다.

때로는 무리가 너무 커지자 분산해서 이동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게 이로운에 대한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신(神)이 세상에 내려 올 수는 없지만 소문 안에서는 모두들 그를 신이라 여겼다.

신이기를 바라는 마음, 신이라면 무너진 중원무림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이 모두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땐가부터 아무도 이로운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이 빠진 소문이 사방으로 흘러가면서 그냥 신인(神人)이 되었다.

신과 같은 인간.


*

“아! 이런 등신 같은!”


로운이 자기 머리를 콩콩 치면서 자책했다. 남들이 자신을 신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고. 뭐, 등신도 신은 신이다.


“설산이면 진짜 추울 게 뻔한테 왜 생각을 못했지? 다음 도시에서 두꺼운 옷 좀 사자.”

“괜찮아요. 이 정도 추위는 견딜 만 한대요?”

“여긴 아직 멀었으니까. 점점 더 추워질 거야.”


중원과는 온도 차이가 꽤 컸다.

열빙지도 겪은 두 사람이기에 이 정도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로운은 괜히 취소연이 마음 쓰였다.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은 그런 마음.


“이 산을 넘어가면 난주(蘭州)예요. 감숙성에서 가장 큰 도시이긴 한데.....”

“왜? 거기 뭐 안 좋은 거라도 있냐?”

“일월교 감숙교단이오. 일월교 무리들과 부딪히는 거 싫다면서요? 잔.... 잔..... 뭐라고 하셨죠, 부하들을?”

“잔바리!”

“아, 맞다. 잔바리들 다치는 거 싫고 교주만 딱 만나서 일을 끝내고 싶다 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입고 먹을 건 챙겨야지. 얼른 들어갔다가 잽싸게 떠나자고.”


두 사람은 속도를 높여 달렸다.

산 고개를 막 넘어서자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어? 저거 뭐야? 불 났는데?”


사각의 커다란 성 안쪽 한 곳에서 검은 연기가 가득 올라오고 있었다.


*

중원에 있는 일월교의 몇 개 교단은 모두 도심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주로 버려진 사찰이나 도관에 주로 교단을 세웠고 경우에 따라서는 봉문한 지역 세가의 장원을 뺏어 꾸미기도 했다.


하지만 감숙성은 중원의 외곽이고 일월교의 본교에 가까운지라 백성들의 저항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1차 정사대전 때부터 몰래 일월교를 믿어 온 숫자도 꽤 되었다.

때문에 교단을 성내에 차릴 수 있었고 그 규모도 상당했다. 일월교가 난주 백성들에게 베푸는 온정도 적지 않았다.

황실과 관리들은 원래 무림의 일에는 거리를 두는 게 상례인지라 일월교가 군웅맹과 적대적이지만 백성들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알아도 모른 척 한 쪽 눈을 감고 지냈다.


오늘도 교도들이 모여 정오 제례를 올렸다.

이로운에 관련한 소문들이 교도들 사이에 흉흉하게 떠돌고 있긴 했지만 유유곡 이후 그가 어디에 나타났다거나 일월교도를 공격했다는 소문은 더 이상 없었다.


정오제례는 평온하게 진행 되었다.

제주가 마지막 종을 울리자 교도들이 크게 절을 올렸다.

제례의 마지막 순서였다.


- 삘리리리— 삐이이이---


어디선가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신호였다.


- 콰앙!


정문이 박살 났다. 등천운이 대도 일격으로 두꺼운 정문을 단숨에 날려 버린 것이다.


- 와아아----!


등천운이 정문으로 들어 올 때 곽진산은 담을 훌쩍 넘어 뛰어들었다. 그의 양손에는 피리가 들려 있었다.


“죽여라!”

“불을 놓아라!”

“단 한 놈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군웅맹은 건재하다!”


등천운과 곽진산을 따라 수많은 중원의 무사들이 교단 안으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일월교도들은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


“막아라! 교위대! 전원 목숨을 걸고 저 놈들을 막으라! 일월의 성령이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교단을 호위하는 교위대 무사들이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서서 중원의 기습자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목숨을 건 자 부터 목숨을 잃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난주의 일월교단 전원이 황천길에 오르게 될 터였다.


그때였다.


- 쐐애액----!


파란 빛선 하나가 어디선가 날아왔다.


- 콰직! 쾅!


그 빛선은 일월교도를 도륙하던 이름 모를 중원 무사의 등을 꿰었다. 그리고도 한참 더 날아가 건물 담벼락에 박혀 들었다.


꼬치처럼 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중원무사의 등을 꿴 것은 깃발이었다. 파란색의 깃발.


“저, 저건?”


깃발을 본 등천운의 얼굴이 굳었다.


“와아! 청령기다! 청령기가 도착했다! 일월의 신이시여! 감사하옵니다!”


교단의 제주가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보며 오열했다. 살았다는 안도감, 살려준 신에 대한 절절한 감사의 표시였다.


“와아— 교단을 지켜라! 패악의 무리들을 도륙하라!”


푸른 옷을 입은 인물들이 교단 안으로 뛰어 들었다.

창해귀 벽리산이 이끄는 청령기의 정예들이었다.


유유곡 앞에서 지밀원주는 그곳에 있던 인물들한테 곧장 명령을 내렸다.

도제룡이 이로운에 패했고 이로운이 건재해서 본교로 간다면..... 필시 중원 무림은 희망에 들떠 다시 칼을 뽑아 드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

하여 중요한 요지마다 만약에 대비한 인원을 배치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감숙교단이 있는 난주는 중원에서 본교로 가는 길목이었다.

벽리산과 청령기에 속히 달려가 그곳을 지키라 명을 내렸는데 다행히 결정적인 순간에 도착한 것이었다.


전황이 급변했다. 교도들을 참살하던 등천운과 곽진산, 그리고 중원의 무사들이 이젠 벽리산과 청령기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피바다가 된 교단 마당에 참혹하게 학살 당한 교도들의 시신을 본 벽리산의 눈이 뒤집혔다.


“이 새끼들! 다 처죽인다! 죽인 다음에! 또 처 죽인다! 열 번 백 번 고쳐 처죽일 테다!


- 쓔아악---!


분노한 창해귀 벽리산이 가장 먼저 노린 것은 등천운이었다.


- 떠엉---!


벽리산이 내려치는 대도와 등천운이 받아치는 대도가 부딪혔다.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공력을 다해 일도를 나누었는데도 둘 다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이 평수를 이룬 것 같았다.

하지만 등천운은 애초에 벽리산의 상대가 아니었다. 벽리산의 숨결은 솜털조차 흔들리지 않았지만 등천운은 이미 속이 뒤틀리고 호흡이 격해졌다.


‘창해귀 벽리산. 청령기의 기주. 과연..... 높고도 높구나....’


하지만 물러 날 생각은 없었다. 죽을 자리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름 없는 놈 보다는 오령기의 기주 중 한 명과 도를 나누다 죽는 게 훨씬 명예로운 죽음이 될 거니까.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고 저승에서 기다릴 동생과 해후의 술잔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도 의미 없는 개죽음은 피하고 싶었다. 죽음의 대가로 의제라도 살리고 싶었다.


“곽 아우! 피해! 여긴 내가 막겠네.”

“함께 싸우다 죽읍시다. 의형의제 맺을 때 한 약조처럼!”

"어서 가래두!"


두 사람이 생사 결정을 의논할 시간을 줄 벽리산이 아니었다.


- 쓔아아악----!


벽리산의 대도가 이번에는 곽진산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 꽂혔다.


“가라고!”


등천운이 어깨로 곽진산을 밀어내면서 대신 벽리산의 대도를 받아쳤다.


- 떠엉--!


다시 한 번 대도와 대도가 충돌했다. 어깨로 곽진산을 밀어내느라 힘을 나눈 등천운이었기에 벽리산의 대도를 버텨내기가 훨씬 버거웠다.


- 컥!


등천운이 붉은 선혈을 토했다.


- 쐐애액---!


쉴 틈도 없이 벽리산의 도가 등천운을 베어왔다.


“조심하십시오!”


- 카카칵---!


곽진산이 등천운 앞으로 몸을 날리며 한 손의 피리로 대도를 비껴 냈다.

하지만 피리는 요혈을 노려 찌르는데 날렵한 무기였지 대도처럼 무거운 무기를 직접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피리가 도날을 긁으며 비껴 냈다 싶은 순간 도가 휘릭 뒤집히면서 피리 아래쪽을 베었다


- 츠칵--!


곽진산의 손목이 날아갔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손목은 여전히 피리를 꽉 쥐고 있었다.


벽리산의 대도가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곽진산의 목을 노리고.

거대하고 무거운 대도였지만 날렵하기가 연검 마냥 가벼웠다.


곽진산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피를 토한 채 물러나 있던 등천운도 도울 방법이 없었다.


- 따악----!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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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39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5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5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8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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