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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908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19 19:59
조회
45
추천
2
글자
9쪽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DUMMY

*

취소연의 비명소리에 놀란 로운이 달려왔다


“뭐야? 뭐? 어떤 놈이야!”


로운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사방을 살폈다.

침상에 일어나 앉은 소연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 꿈.... 악몽을....”

“꿈? 아휴, 깜짝 놀랐네. 일월교 놈들이 들이닥쳤나 하고.”


소연은 아직도 반쯤 꿈속에 있는지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꿈인데 그래?”

“아버님이.... 돌아가신 거 같아요. 아버님이 어머님과 함께 제 앞에 나타나셨는데.... 온몸이 피로 물들어..... 두 분이 눈물만 흘리시면서.... 저한테 손을 흔들고는 떠나셨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소연은 말도 더듬었다.


“야야~ 괜찮아, 괜찮다고. 원래 죽는 꿈은 길몽이거든. 그런 꿈 꾸면 로또 샀어, 난! 대박 좋은 꿈. 물론 맨날 꽝이지만”


이불을 가슴까지 감싸고 쪼그려 앉은 소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꿈이 꿈 같지 않아요. 아버님 모습이 너무 생생했어요. 어머님도요.”

“음. 아마도 걱정이 많아서 그런 꿈 꿨나 보다. 소격동 안에 갇혀 있으시니까. 근데 잘 생각해봐. 지금 거기만큼 안전한 데가 또 어디 있겠냐? 일월교 일 끝내면 바로 가서 구해 드리자. 대한민국 경찰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거기 있는 사람들 다 꺼내줄게.”

“걱정 때문에 그런 거겠죠? 정말 아무 일 없는 거겠죠?”

“당연하지! 원래 꿈은 반대야. 아주 편안하게 휴가 보내고 계실 거다. 힘든 일은 나한테 다 떠넘기셨잖아. 으휴, 나만 개고생이지. 전생에 뭔 지랄을 떨었는지.”


로운이 일부러 신세 한탄까지 하자 소연이 눈물 맺힌 눈으로 배시시 웃었다.


*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일어나 싸우기는커녕 비명조차 지를 수도 없었다.

소림 대행도 개방 편하직도 두 눈으로 다 보고 있었지만 혈도를 눌려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벽자룡을 비롯해 살아있는 군웅맹 무사들 모두 똑같았다.


자검위의 위주, 그 사내가 맹주에게 한 짓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찢어지는 맹주의 절규가 귀에 때려 박혀도 듣고 있어야만 했다.


비명에서 울음으로 바뀐 그 절규가 끊어질 즈음, 맹주의 몸에서 빠져 나온 시커먼 무엇인가를 사내가 빨아들이자 맹주의 몸이 마침내 썩은 나무토막처럼 스러졌다.


맹주가 그렇게 죽어가자 대행과 편방주는 오히려 안도했다.

살아서 고통보다는 죽음이 훨씬 낫다는 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으니까.


맹주를 삼킨 사내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쾌락의 절정에서 몸을 떠는 것처럼.


사내는 만족한 듯 뒷짐을 지고 살아남은 자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주위의 풍경을 즐기며 산책하듯이.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쉬러 가는 듯. 맹주의 처소, 가장 큰 집으로.



그 여유로운 모습을 본 대행은 순간 깨달았다.

그 악귀가 사혈을 눌러 죽인 자들과 마혈을 눌러 살려 둔 자들의 차이를.


자신을 비롯해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무공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고강한 자들이었다.

강한 자들을 살려 놓은 이유는......


‘아미타불.... 인간을 먹는 자....!’


*

딱 반나절이었다.


소연이가 악몽까지 꾸는 걸 보고 로운은 설산이고 풍경이고 눈도 돌리지 않고 냅다 달렸다.

소연도 로운이 왜 서두르는지 잘 알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따라갔다.


로운을 모셔가겠다고 했다가 거부 당한 효지림은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중이었지만 로운이 속도를 올리는 걸 보고 그냥 포기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 반나절을 달리자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설산을 배경으로 하고 펼쳐진 호수. 건너편에 하얀색 커다란 성채까지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경치에 감동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 왔네. 저기 맞지? 근데 호수를 어떻게 건너가지? 아니면 삥 둘러서 가야 하나?”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요.”


소연이 앞을 가리켰다.

물살을 가르고 달려오는 배 한 척이 보였다.

배 위에는 일월교를 표시하는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일월교의 배가 오고 있네요. 막으려고 오는 건지 모시려고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어, 그러네. 막으려고 오는 거면 뺏어 타고 모시려고 오는 거면 그냥 타주면 되겠다.‘


후자였다.

뱃전에는 소유혼이 올라 있었다.

내령각은 일월교의 내부 일을 도맡아 하는 조직이었고 소유혼이 내령각의 각주였다.


회색 빛 머리칼을 치렁치렁 길게 기른 소유혼은 깡마른 몸에 가늘고 긴 실눈을 가진 인물이었다.


배가 호숫가 근처에 멈추자 소유혼은 뱃전을 차고 가볍게 로운 앞으로 뛰어내렸다.


“내령각주 소유혼이외다. 교주의 명으로 귀하를 모시고자 왔소. 배에 오르시지요.”


표정도 없고 말투도 건조했다. 딱 필요한 몇 마디로 용건을 전할 뿐이었다.


“어. 맹주가 왔는데 교주가 직접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내령각주는 뭔데?”

“초대한 손님이면 직접 나오십니다. 하지만 방문 손님은 직접 교단으로 가셔서 교주님을 뵙는게 관례이지요.”


예의 사무적인 대답이었다. 다만 예의를 잃지 않고 손으로 배가 있는 쪽을 안내했다.


“그래. 아쉬운 쪽이 찾아가자고. 만난 뒤에는 누가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로운은 소연과 함께 몸을 날려 배 위로 올랐다.


*

백탑성의 가장 높은 곳, 백탑옥.


교주는 옆에 내려 두었던 검을 집이들었다.


- 쓰릉


검을 반쯤 뽑았다.

햇살을 받은 검이 광채를 뿜었다.

마치 설산처럼 하얀 백광이었다.


- 쯔릉! 철컥!


하얀 빛이 검집을 빠져나왔다가 다시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발검과 납검이 동시였다.


그 동시의 사이, 찰나지간에 태양과 하늘, 그리고 설산까지 쪼개졌다. 하얀 백광으로.

철검을 부수고 취학명의 심장을 가른 그 검법이었다.


교주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잠시 명상에라도 잠긴 듯이.


교주가 눈을 뜨고 호수 저편을 바라보았다.

이로운이 거기 있었다.

균열이 거기 있었다.


때가 온 것이다.


배가 그들을 태우고 백탑성으로 출발하는 것을 본 교주는 백탑옥을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

두 번째 희생자는 편방주였다.


맹주가 죽은 다음날, 사내는 편방주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편방주도 맹주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죽음의 길을.

절규가 소격동을 흔들었고 고통이 극점에 달했을 때 사내는 악에 받친 편방주를 사내가 마셨다.

대체 그가 먹은 건 무엇일가?

영혼인지 내공인지, 아니면 인간의 육체 안에 존재하던 그 무엇인지.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사내는 대행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대행은 달랐다. 평생 불법을 수행한 구도자였기에.

그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또 견뎌냈다. 결국 대행도 인간인지라 고통에 지고 말았다.

하지만 절규하지 않았다. 짐승의 울음처럼 우응우응 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표정 없는 미소만 띠던 사내가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으드득!

결국 사내는 대행의 머리를 으스러뜨렸다.

사내는 원하는 수준까지 완벽하게 흑화되지 않은 영혼은 먹을 수 없었다.

대행이 처음으로 그걸 견뎌낸 것이다. 죽음이라는 종점은 마찬가지지만.


그 날 희생자는 벽자룡이 대행을 대신했다.


*

교주는 대전의 석좌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처럼.


소유혼의 안내를 받은 로운과 취소연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어도 교주는 눈을 뜨지 않았다.

등받이에 비스듬히, 그리고 깊게 몸을 뉘인 채, 한쪽 팔로 턱을 괴고 있었다.

마치 단잠에라도 빠진 듯 보였다.


“뭐야? 자는 거야? 사람이 왔는데 눈도 안 떠?”


로운이 소유혼을 보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교주가 잠 든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소유혼은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대기하고만 있었다.


“어이! 거 좀 봅시다!”


로운이 교주를 불렀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교주가 입을 열었다.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라네.”


그리고 눈을 떴다.


“뭐래? 뜬금없이.”


교주가 스윽 일어났다. 팔걸이에 걸쳐 둔 검도 집어들었다.


“나는 군웅맹의 맹주 자격으로....”


로운의 말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 스릉,


검을 뽑아 들었고.


- 텅


검집은 버렸다.


“아니! 만나자 마자 왜 칼부터 뽑는 건데? 일단 내가 할 얘기가....”


차박차박, 교주는 검을 아래로 늘어뜨려 든 채 계단을 내려왔다.


“검 말고 일원신주인가? 뭐 그런 거 있지 않아?”


차박차박, 교주가 늘어뜨린 검을 들어올렸다.


로운도 말을 멈췄다.

처음으로 검을 쥔 상대한테서 압박감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뒷춤으로 돌아갔다.

익숙한 단봉이 손에 잡혔다.


이 순간, 말은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교주가 말했다.


오늘이 바로 죽음에 닿는 날이라는 걸 깨달았다.

로운과 교주, 둘 중 하나가.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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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3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0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5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2 2 9쪽
»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8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6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8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5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8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3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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