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흔적을 찾다(3)
※ 본 콘텐츠는 권리자와의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제작된 저작물로서, 모바일 RPG <이데아 - 플레니스의 수호자>의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커다란 숲에는 빛이 잘 들었다. 수아나는 빛이 가득 찬 오솔길을 걸었다. 한참 동안 빛의 인도로 길을 걷던 그녀의 눈앞에 오두막이 나타났다.
“파루로니아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수아나는 조심스럽게 오두막 안을 둘러보았다. 집 곳곳에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식탁이며 침상이나 선반에는 먼지가 별로 쌓이지 않았다. 최근까지 누군가 살았다는 증거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누군가 이곳에 있었어.’
집 뒤편에 쌓인 장작을 살피고 나서 수아나는 일어났다. 여태 그녀가 지나온 어떤 곳보다도 파루로니아의 기운이 진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며칠 정도 사이에 쌓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파루로니아가 이곳에 꽤 오래 머문 것임을 수아나는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강력한 마나의 흔적도.’
수아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파루로니아가 강력한 마나를 가진 무언가와 오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무엇을 한 것일까?
수아나는 계속해서 파루로니아의 흔적을 더듬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난히 볕이 환하게 드는 공터에서 수아나는 멈춰 섰다.
빛의 입자들을 수아나는 눈여겨보던 그녀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슬픔이란 감정이 빛을 통해 전달되어 왔다.
“파루로니아, 내 혼의 짝이여…….”
수아나는 내리쬐는 빛 속에 들어섰다. 파루로니아가 석상이 되어, 끝내 빛나는 가루로 사라진 그 자리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렀다.
“여기, 있구나.”
수아나는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반짝이는 기운이 수아나의 손 위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이윽고 강하게 남은 파루로니아의 기운을 모았다. 하나둘 그녀의 앞에 빛으로 이루어진 머리가 긴 여인 형태가 나타났다.
“형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을 소진하다니……. 네게 무슨 일이 있던 거니.”
수아나가 파루로니아의 형상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기운에 남은 기억이 수아나에게로 스몄다.
붉은 드래곤과 함께 싸웠던 기억과 어린 아이였던 소년이 자라나는 과정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마침내 흰 망토를 손에 쥔 청년의 모습이 비쳤다. 갈색 머리칼 아래 창백한 뺨, 깊은 눈을 지닌 헤스페리아족 남자였다.
―파루로니아,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빛으로 만들어진 파루로니아의 형상이 흩어졌다.
비로소 수아나는 파루로니아의 실종에 얽힌 모든 전말을 파악했다. 카문이 여신의 눈물의 일부를 가진 것과 더불어 파루로니아가 그를 제지하기 위해 칼을 보낸 것까지.
“칼 드레이브.”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란 헤스페리아족의 칼을 떠올리던 수아나는 파루로니아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운명의 끝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수아나는 알지 못했지만 이 문제는 혼자 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의장님에게 알려야겠어.”
수아나는 햇빛이 내리쬐는 곳을 나와 응달진 곳에 섰다. 그녀의 몸에 얼음이 모여들었고 이내 수아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
페이서스족의 황궁 내부, 거대한 의자 위에 순수한 빛에 가까운 흰색의 둥근 빛덩이가 둥둥 떠 있었고 그 주변으로 마치 별무리처럼 작은 빛들이 맴돌고 있었다.
“사실인가요?”
빛의 구체는 페이서스족의 의장 페르다니였다.
페르다니는 거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고, 그 모습조차 다른 페이서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의자의 옆으로 나비의 날개 같은 새하얀 날개를 하늘거리는 픽시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아주 작은 픽시는 나비의 날개를 하늘거리며 간간히 페르다니의 주변을 맴돌았다.
페르다니의 수호기사들로 그들 역시 본 모습은 페이서스였다.
“예. 여신의 눈물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서 수아나가 말했다. 이윽고 수아나가 그녀가 채집한 파루로니아의 기억을 페르다니에게 전달했다. 작은 뭉게구름은 수아나의 손을 떠나 빛덩이로 향했다.
페르다니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와 뭉게구름을 집어 삼켰다. 많은 이야기가 구름 속에서 페르다니에게 향했고 그 말들은 모두 고대의 언어였고 신의 말들이었다.
“사악한 드래곤족은 늘 이 세상에 파괴와 악몽만을 선사했지요. 지금 이 평화를 위협하는 그 시작도 카문이라는 드래곤족이군요. 카문이란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그가 반이나 흡수한 여신의 눈물은 저희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나머지 반은 파루로니아의 기억 속에 있는 헤스페리아족에게 있군요.”
빛덩이가 살짝 강한 빛을 발했다.
“칼 드레이브입니다.”
“헤스페리아족의 이름인가요?”
“예.”
페르다니가 물었고 수아나가 대답했다.
페르다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빛덩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대전에 낮고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파루로니아는 카문을 죽이기 위해, 아니 카문에게서 남은 여신의 눈물을 회수하기 위해 헤스페리아족을 선택했군요. 그런 불안정하고 약한 존재에게 대업을 맡기다니…….”
페르다니의 말에 수아나가 걱정스럽게 눈을 찡그렸다.
페르다니의 빛덩이가 살짝 떠올랐다. 좌우에 있던 픽시들도 덩달아 높이를 맞추고 날개를 흔들었다.
“여신의 눈물은 여신의 뜻이기도 해요. 그러니 수아나, 처음부터 이 일을 맡은 당신이 회수를 하세요. 파루로니아의 남은 정신과 기억까지도 모두 가져오세요.”
“예.”
수아나는 대답 후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긴 대전의 회랑을 지나 밖으로 나간 수아나의 눈에 구름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구름 위에 있는 궁전 그것이 페이서스의 황궁이었다. 빛이 흰색과 금색으로 이루어진 황궁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수아나가 나간 대전의 안에는 빛으로 이루어진 페르다니가 여전히 의자 위에 떠 있었다.
‘여신께서 자신의 모습을 보인 것은 이 소년이에요. 이 소년에게 어쩌면 이 세상의 운명을 맡기신 게 아닐까요? 저는 그 선택에 제 생명을 걸겠어요. 이 선택이 틀리지 않기를…….’
페르다니는 수아나가 읽은 기억 속에서 파루로니아의 당부와도 같은 말을 떠올렸다.
“여신의 눈물을 하등 종족에게 맡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페르다니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여신의 눈물은 무한의 에너지예요. 그 힘을 하등 종족에게 줄 수는 없지요. 의장님께서 취하셔서 노블 페이서스들보다 더 위에 올라가셔야 해요. 그리고 드래곤족을 멸하셔야 합니다.”
“여신의 눈물이 과연 그 정도의 힘이 있을까요?”
우측 픽시의 말에 페르다니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회수해 보면 알겠지요.”
페르다니의 빛덩이가 가볍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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