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흔적을 찾다(2)
※ 본 콘텐츠는 권리자와의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제작된 저작물로서, 모바일 RPG <이데아 - 플레니스의 수호자>의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쾅! 쾅!
“하하하하하!”
드래곤의 거대한 웃음소리가 섬 전체에 마치 천둥처럼 울렸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아우성치는 소리가 혼란하게 들렸고, 배를 타고 섬을 나가려던 주민들도 드래곤의 공격에 불덩이가 되어 사라졌다.
폴의 병사들은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모두 정원에 모여 있었다.
테라스에 서 있던 폴은 그들의 모습에 곧 방으로 돌아가 갑옷을 입고 검을 들었다. 그가 나오자 백여 명의 병사들이 비장한 눈빛으로 검을 하늘로 들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우아아아!”
폴의 목소리가 울리자 함성소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 소리가 허공에 떠 있던 드래곤의 귀에 닿았다.
카문은 고개를 돌려 폴과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땅에 서 있는 그들은 개미처럼 작게 보였고 나름대로 갖춰 입은 모습에 싸우려는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카문의 머리 위로 두 개의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났고 강렬한 불덩이가 그들을 향해 떨어졌다.
쾅!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사람의 시신으로 보이는 파편들이 튀었다. 붉은 연기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크으…….”
바닥에 쓰러져 있던 폴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일어났다.
“이럴 수가…….”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구덩이와 검게 그을린 병사들의 시신들뿐이었다. 참혹한 모습에 폴은 전신을 떨었다.
그때 붉은 연기와 함께 카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아고스의 청년이었고 비릿한 조소를 입가에 걸고 있었다.
이질적인 사내의 모습에 폴은 전신이 굳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카문의 검이 폴의 목을 뚫었다.
퍽!
카문의 검은 마치 금방이라도 용광로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치이익거리며 폴의 살을 태웠다. 검신에 묻은 핏방울 역시 금세 증발되어 사라졌다.
“손맛이 좋군.”
카문은 폴의 목에서 검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검이 살을 뚫고 들어가는 그 느낌이 생각보다 큰 재미를 주었다.
폴은 이미 죽은 시신이 되어 있었는지 부릅뜬 눈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검으로 죽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스륵.
카문의 신형이 붉은 그림자와 함께 마을 쪽으로 향했다. 살아남은 섬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기 위함이다. 단 하나의 생명체도 허락할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카문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한결 후련한 기색으로 카문은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 급하게 쿠하스와 키르쿠스가 마중 나왔다.
곧 대전으로 들어간 그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쿠하스, 네 말대로 제법 재미있는 산책이었어.”
“감사합니다.”
쿠하스가 깊게 읍했다. 카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신의 눈물은 어떻게 되었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 페이서스족이 농간을 부려 숨긴 것 같습니다.”
쿠하스의 대답에 카문의 얼굴에 살짝 노기가 일어났다. 그것은 쿠하스를 향한 게 아니라 페이서스를 향한 것이었다.
“파루로니아…… 끝까지 나를 귀찮게 하는군.”
카문은 조용히 파루로니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때 대전으로 로브를 입은 온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는 짙은 갈색 로브를 걷은 후 바닥에 엎드려 카문에게 인사했다.
“카문 님께 인사드립니다.”
“일어나라.”
카문이 허락하자 온은 감사인사를 하며 일어섰다. 온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마나석의 수집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분부 내리신 대로 헤스페리아 왕국 주변 이종족들을 자극하니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온의 말에 카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문은 여신의 눈물의 반을 흡수한 뒤 마나석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나석을 이용해 강력한 군대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대륙에 감춰져 있는 마나석을 모아 힘을 키울 계획이었다.
‘마나석들을 가공해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로드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녀의 보고에 카문은 좀 전의 짜증이 살짝 누그러지는 듯했다.
“동부의 광산은 작업을 마쳤습니다. 다음 타깃은 서부의 광산입니다만…….”
온이 말끝을 흐리자 카문이 검은 눈썹을 치켜떴다.
“초록뱀족을 자극하는 것은 성공했습니다만, 갑자기 방해꾼이 나타나는 바람에 일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변명은 죽음뿐이다. 나는 변명을 몹시 싫어한다.”
팔걸이에 얹은 카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온은 카문에게 존경과 애정을 갖는 만큼 그를 두려워했다. 카문의 살기를 느낀 온은 두려움에 어깨를 떨며 말을 이었다.
“그자의 팔목에 굉장한 힘이 담긴 마나석이 있었습니다. 초록빛의 마나석으로 상당한 마나의 힘이 느껴지는 물건이었지요. 저는 그것을 빼앗아 카문 님께 바치고자 공격했습니다만, 그자가 가진 힘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굉장한 힘이 담긴 마나석?’
카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카문은 찬찬히 자리에서 일어나 온의 앞에 섰다. 보랏빛 가운 자락을 눈앞에 두자 온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자세히, 말해 보도록.”
“보기에는 평범한 헤스페리아족의 젊은 남자였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마나를 몸 전체에 두르기도 하는 등 자유자재로 다뤘습니다. 그 솜씨는 마치…….”
“나와 비슷하더냐?”
카문이 나직하게 묻자, 온의 까만 눈동자가 놀라움에 크게 뜨였다.
“맞습니다.”
“재미있군.”
카문은 그대로 방 안을 잠시 거닐었다.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헤스페리아인인가? 아니면 그 팔찌의 힘일까? 흥미로운 일이로군. 그 힘을 가진다면 나름대로 쓸 만할지도 모르겠어.’
카문은 드래곤처럼 마법을 부리며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을 몇 알고 있었다. 드래곤의 피가 섞인 이종족들이 몇 있었기 때문이다.
온이 이야기하는 그 인물도 거기에 속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팔찌의 힘인데 그 정도로 강렬한 성능을 자랑하는 팔찌라면 욕심을 가져야 했다.
“좋다. 온, 너는 네 일을 계속해라. 만일 그 헤스페리아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죽이지 말고 생포하거라.”
“예.”
근래 몇 년 동안 보인 중 가장 너그러운 표정으로 카문이 말했다.
온은 머리를 연신 숙이며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 카문은 고개를 돌려 쿠하스를 향해 물었다.
“쿠하스, 파루로니아 년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쿠하스가 동공이 긴 초록색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의 코는 드래곤족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났다. 일전 여신의 눈물을 알아낸 것도 그의 코와 정보수집 능력 덕이었다.
“파루로니아의 냄새를 좇아라. 만약 마주치게 되면 싸우지 말고 피하거라. 그년이 부상을 당했다고 하지만 페이서스에서도 꽤 잘나가는 년이라 상대하기 버거울 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문이 명령을 내리자 쿠하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카문은 키르쿠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넌 그냥 성이나 지켜.”
“저도 몸이 근질거립니다.”
“잔다.”
“예.”
카문의 대답에 키르쿠스는 짧은 숨을 내쉰 체 대답했다.
“…….”
칼은 슬쩍 옆을 곁눈질을 했다. 마리는 아무런 말없이 총총 반 발짝 정도 앞서서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광산을 조사하기 위해 갱도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은 거야?”
칼이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마리가 귀족 특유의 아래로 내려 보는 눈초리로 대꾸했다.
칼은 혼자 머리를 긁적였다.
전날 저녁식사를 비롯해 조식 때도 마리는 줄곧 이런 상태였다. 식사 내내 마리는 아주 우아한 태도로 식사를 했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칼은 불편함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칼이 말을 걸어 보려 해도 마리는 ‘식사 중에 한담은 예절에 어긋나.’라는 말로 응수하고는, 냅킨으로 입가를 꼼꼼히 닦은 후 일어나 버렸다.
‘페이서스의 지식으로도 여자 속은 모르겠군…….’
칼은 이내 단념하고는 폐갱도를 걸었다. 나무로 지반을 받쳐 놓은 갱도는 사용하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보다도 칼의 주의를 끄는 것은 역시 막대한 마나석의 기운이었다.
천장에 둥근 라이트 마법을 밝힌 상태로 어두운 갱도를 유심히 살폈다.
‘온천의 효능도 여기서 나온 것이겠군……. 만일 여기에 있는 모든 마나석을 캐서 쓴다면, 꽤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을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칼은 불현듯 멈췄다. 온천장의 주인이 말했던 바이키네스 광산이 무너진 일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원수는 외길에서 만난다더니! 또 방해하러 나타난 거냐?”
돌연 날카로운 외침이 동굴 속에 울렸다. 칼과 마리가 놀라 돌아본 곳에는 일전의 마법사 온이 있었다.
“넌, 그때의…….”
마리가 눈썹을 모았다.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온이 완드를 쳐들자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갱도 속에서 칼과 마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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