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빛과 그림자(2)
※ 본 콘텐츠는 권리자와의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제작된 저작물로서, 모바일 RPG <이데아 - 플레니스의 수호자>의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붉은 송곳 군단과 군단장님의 영광을 위하여!”
챙!
타오르는 횃불 아래 수많은 병사들이 잔을 부딪쳤다.
성채 바깥뜰에 삼백 명의 군단병들과 이백의 마른돌 뱀족이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잡혀 온 노예들이 야윈 몰골로 술과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여기 술 더 가져와!”
쾅!
붉은 갑옷의 전사가 탁자를 치며 잡아먹을 듯 소리를 높였다.
큰귀쥐족 노예들이 낑낑거리며 자신들 몸보다 큰 술통을 날라 왔다.
붉은전사 중 한 명이 장난기가 동했다. 그는 로프를 던져 큰귀쥐족의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탕! 쨍그랑!
큰귀쥐족들이 술통에 짓눌려 신음했다.
“멍청한 이종족! 감히 술을 엎다니, 벌이다! 이놈들을 독수리 먹이로 줘!”
킬킬거리며 붉은 갑옷의 전사가 마른돌 뱀족을 불러 끌고 가게 했다.
“살려 주세요……!”
“죄송해요. 제발……”
엉엉 울며 두 노예가 끌려 나갔다.
상석에는 우람한 근육질의 아고스족 남자가 묵직한 강철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뿔이 달린 투구 아래 주황색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아고스족의 용맹한 전사이자 카문의 데메스트인 붉은 송곳 군단장 가로였다.
드래곤족의 피가 일부 흐르는 그는 특유의 잔혹함과 파괴력으로 붉은 송곳 군단을 이끌고 있었다.
그가 거느린 삼백 명의 군단병들 모두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칼과 마리, 포크는 밤이 이슥해지길 기다렸다.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저물고 온 세상이 검게 물들 때 어둠 속에서 칼이 조용히 말했다.
“아까 보니 잡아 온 자들은 성 안에 있는 것 같아. 가급적 조용히 흩어져서 탐색하자. 포크는 형제들을 찾아봐. 나는 성의 구조와 전력을 살필게. 이번 잠입은 어디까지나 탐색이니 섣부른 행동하지 말고, 새벽별이 빛날 때 우리가 모였던 언덕에서 다시 만나.”
칼의 말에 검은 머릿수건을 한 포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단도를 단단히 차고는 쏜살 같이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사사사사삭!
포크는 조심스럽게 성벽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파수병들이 보이지 않았다. 붉은 송곳 군단이 데려온 병사들의 수에 비해 성채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팍!
포크는 붉은색 성벽에 발톱을 박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벽을 타고 오르는 것쯤 오랜 시간 밀림을 오간 그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기다려, 형제들, 내가 구하러 간다!’
손쉽게 성벽을 오른 포크의 앞에 거대한 창문이 보였다.
포크가 슬쩍 들여다보았다. 어두침침한 횃불만 하나 걸려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포크는 조심에 조심을 기하며 몸을 굴려 창문으로 들어섰다.
빙그르르, 착!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포크는 곧장 벽에 붙어 섰다.
‘방심하지 말자, 포크.’
포크는 수염을 까딱거리며 어두운 복도로 달려갔다.
“위험하니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칼이 말했다. 그는 마리에게 염탐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 생각했다.
“알았어.”
마리는 순순히 칼의 말에 따랐다. 그녀의 마법은 염탐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마리 자신도 알고 있었다.
“칼.”
칼이 막 출발하려는 찰나 마리가 그를 불렀다.
칼이 돌아보자 마리가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는 아이처럼 툭 한마디 내뱉었다.
“조심해.”
마리의 귀여운 모습에 칼은 자신도 모르게 빙긋 웃고는 망토자락을 날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리는 칼과 포크가 사라진 어둠 속을 응시했다.
타타탓!
칼은 흰 망토를 날리며 날렵하게 성벽을 뛰어올라 성채의 망루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하필 오늘 당번일 게 뭐람.”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연회에 가고 싶다.”
“빨리 교대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안 가네.”
붉은 갑옷을 입은 순찰병들이 따분하게 하품을 했다.
칼은 기척을 죽이고 그들의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쉬익!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 한 점에 순찰병들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뭐지? 뭔가 지나간 거 같은데.”
“올빼미인가 보지.”
성에 들어온 칼은 어두운 복도를 살폈다.
어둠에 녹아든 채 칼은 성의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갈색 고수머리 아래로 칼이 날카롭게 주위를 살폈다.
‘성 전체에 사악한 기운이 짙게 배어 있군. 카문의 것이 틀림없어.’
칼의 눈에 검붉은 기운이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돌 성에 다다를 즈음부터 칼은 성 전체에 짙게 밴 카문의 기운을 느꼈다.
파루로니아의 힘과 기억을 전수 받은 덕이었다.
카문의 기운과 더불어 칼은 공기 중에 희미하게 흐르는 은빛 입자를 보았다. 파루로니아의 기운이었다.
‘게다가…….’
우웅! 우웅!
칼이 팔을 슥 들어 소매를 걷었다. 그의 손목에서 십육각형의 마나석이 강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여신의 눈물이 강하게 반응하고 있어.’
카문은 여신의 눈물 반쪽을 갖고 있었고, 그가 있다면 파루로니아의 기운이 있는 것과 마나석이 반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칼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 성, 흥미가 생기는군.”
칼은 조금 더 성을 면밀히 살펴보기로 했다.
칼은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윽고 칼의 모습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포크는 발소리를 죽인 채 복도를 쪼르르 이동했다.
수 분째 포크는 성채를 돌며 형제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성 한번 더럽게 크네. 잡혀 온 형제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포크는 문득 맞은편에 불이 환하게 켜진 창을 발견했다.
포크는 다시 벽을 타고 불 켜진 창으로 다가갔다. 안에서는 왁자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와장창!
소란에 포크가 슬쩍 창을 훔쳐보니 거대한 연회장이었다.
큰귀쥐족 두 명이 술을 흠뻑 뒤집어쓴 채 거대한 술통 밑에 깔려 버둥대고 있었다.
“와하하하! 멍청한 이종족!”
붉은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신나게 웃어젖혔다.
‘에그, 천하의 몹쓸 놈들 같으니!’
포크는 큰귀쥐족의 명운을 잠시 빌고는 빠르게 연회장을 훑었다.
큰귀쥐족, 노란꼬리여우족 등등 많은 종족들 사이에서 너구리족은 눈에 띄지 않았다.
‘……형제들은 없군.’
다시 안도인지 실망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그때 포크가 들여다보고 있는 창가 쪽으로 붉은 갑옷을 입은 전사 두 명이 다가왔다.
‘이크!’
포크는 얼른 창 옆에 바짝 붙어 섰다.
두 전사는 창턱에 기댔다. 포크의 바로 곁으로 울퉁불퉁한 투구를 쓴 뒤통수가 닿을 듯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바로 발각될 위기였다. 포크는 숨까지 멈추고 굳어 있었다.
“그래서 그놈들은 갱도 가장 안으로 보냈지…….”
“그래. 그것들은 땅굴을 파는 거라면 이골이 났지!”
긴장하고 있는 포크의 귀로 두 전사의 말소리가 들렸다.
‘갱도?’
숨을 참으며 포크가 귀를 기울였다.
“하, 매일 노예가 부족하다고 재촉해서 죽겠네. 우리 같은 전사들이 웬 광부 노릇인지.”
“매일 수없이 죽어 나가니까 그러지, 그래도 광산 철수하는 날에는 싹 다 잡아 죽일 테니 그때까지 근질거려도 참자고.”
두 전사가 킬킬거렸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포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 모가지, 확 코가 등을 보게 만들어 버려?’
포크는 전사의 목에 뛰어올라 우두둑 목을 꺾는 상상을 했다. 팔을 뻗기만 하면 바로 전사의 머리통을 갈길 수 있는 거리였다.
포크는 팔을 뻗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렀다.
“알았어! 갈게!”
포크의 시야에서 전사의 뒤통수가 사라졌다. 포크는 벽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광산에 모두 붙잡혀 있는 게로군!’
포크는 성채 뒤편의 산으로 눈을 돌렸다.
포크는 어두운 광산에서 탁한 공기를 마시며 괴로워하는 형제들을 떠올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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