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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로또의 미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0.12.30 16:20
최근연재일 :
2010.12.30 16: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8,308
추천수 :
337
글자수 :
213,152

작성
10.12.2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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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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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22쪽

로또의 미소 (9)

DUMMY

“전에 제가 우연히 사우나에 갔다가 알게 된 사람인데 그 사람도 직장에서 명예퇴직 당하고 이것저것 손댔다가 잘 안돼서 저보다 먼저 로또에 손을 댄 사람입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군. 그 사람은 어떻게 해왔대?”

“그 사람은 좀 주먹구구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동안 3등에도 당첨돼 봤고 4등에도 꽤 많이 당첨됐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로또에 대한 감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필요하겠지.”

“그 사람 덕에 저도 로또에 빠지게 됐죠. 지금은 그 사람의 감과 저의 수학적 공식을 조합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매회 기본은 하고 있습니다.”

“기본?”

“그 사람과 같이 한 이후 매회 5등 당첨은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와!”

“그 사람이 찍은 번호와 제가 산출해 낸 번호 중 중복된 것으로 조합을 했더니 로또 사는데 돈은 전혀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조합만 잘하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네.”

“그런데 그동안 해보니까 수학적인 스킬과 그 사람의 감만으로는 1등 번호를 만들어 내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계?”

“네.”

“더 이상 저희가 하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것 때문에 매회 나머지 3개의 번호를 적중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박과장이야 아는 사람이니 괜찮지만 그 사람 입장에선 난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팀장님 제의를 받아들였던 건 팀장님께서 갖고 계신 스킬입니다.”

“스킬?”

“네. 저희는 지금 나무 밖에 보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팀장님께서 숲을 보는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옛날에 팀장님 밑에서 일하면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저 잘났다고 목에 힘만 주던 임원들보다 시야는 물론 예측력이 뛰어났던 팀장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기억하십니까? 전에 불법복제 단속 나올 거 미리 예측하셨던 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막상 일이 터지니까 잘못한 부서 담당 임원은 제쳐두고 팀장님만 들볶았던 거.”

“아, 그일. 그랬지. 그때도 내가 우릴 고소한 벤더 측과 이면 접촉으로 해결하겠다니까 쓸데없는 짓이라고 못하게 했지. 그때 내가 이면 접촉해서 고소 취하하게 협박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별것 아닌 것 때문에 대망신 당할 뻔 했지.”

“그렇습니다.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건 팀장님의 그런 안목입니다.”

“아무튼 난 누가 오든지 상관없어. 그런데 나 여기 온 거 그 사람도 알아?”

“네.”

“뭐라고 안 해?”

“제가 모시던 분이라고 하니까 자기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난 별 도움도 주지 않고 어부지리로 득을 보게 될까 걱정이야.”

“그런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커피 다 내려왔네요. 잠깐만 계세요.”

연하게 내려진 브라질 산토스의 향이 어우러진 가운데 얘기는 계속됐다.

“맛 어떻습니까?”

“야 아주 좋은데? 이거 혹시 브라질 산토스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실은 집에서 이걸 먹고 있거든.”

“그렇군요. 뭔가 팀장님하고 저하고 궁합이 맞나 봅니다.”

“그런가 보네.”

“그런데 팀장님.”

박과장은 의미 있는 표정으로 웅창을 바라보았다.

“뭔데?”

“방금 말했던 그 사람 말입니다.”

“응.”

“그 사람이 거기 출신입니다.”

“거기 출신이라니?”

“그 왜 있잖습니까? 팀장님 싫어하시는.”

“아, 그거. 그 사람이 거기 출신인가?”

“네.”

“그건 좀 그러네. 사람들이 대부분 간사스러운 데다 속과 겉이 달라서 말이야.”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어차피 한번 성공하고 나면 그것으로 서로 갈길 가면 되는 거니까 그때까지 그냥 참으시죠?”

“그렇게 하지. 대신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을 거야.”

“그거야 팀장님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팀장님께선 어째서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내가 거기 출신한테 두 번이나 당했잖아. 옛날에 믿고 보증을 서줬는데 결국 은행 돈 떼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그 돈을 모두 내가 갚아야했지. 한번은 그렇게 당했고 또 한 번은 끝까지 의리 지켜가며 제 목숨 살려줬는데 돌아온 건 배은망덕이더라구. 그 다음부턴 거기 출신은 절대 믿지 않기로 했지.”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리고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 목적 달성하고 나면 그걸로 끝내기로 했으면 좋겠어.”

“한번 만요?”

“응.”

“꼭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잘만 하면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현실이 되는 건데.”

“물론 그렇지. 그런데 사람이 욕심을 부리다보면 반드시 화가 미치는 법이거든. 로또는 한번으로도 인생역전이잖아.”

“그건 일단 그때 가봐서 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그걸 얘기하기는 좀 이른 것 같은데.”

“하긴 그러네. 아무튼 내 생각은 그래. 그리고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해야 돼. 로또 1등 예측공식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평생 사람들 피해다느라 숨어살아야 할 거야.”

“그건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난 식구들한테도 얘기 하지 않으려고 해.”

“저도 집사람한테는 얘기 안 했습니다. 그냥 팀장님하고 사업 구상한다고 했습니다.”

“잘했어. 그런데 아까 얘기한 사람 사는 데가 멀어?”

“아닙니다. 여기서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데 15분이면 올 수 있습니다.”

“그럼 오라고 해. 당장 시작하지 뭐.”

“네.”

재학이 전화를 하고 20분 쯤 지나자 얘기했던 사람이 도착했다. 그는 재학보다 키가 작고 보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간사함이 풍겨 나오는 것이 정이 가지 않는 타입이었고 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아니면 체질인지는 모르나 머리가 상당히 빠져 있었다. 그가 웅창을 보고 조금 어색해 하는 눈치를 보이자 재학이 웅창을 소개했다.

“마형 인사하시죠. 제가 얘기했죠? 전에 제가 모셨던 강웅창 팀장입니다.”

웅창은 그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애써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처음 뵙습니다. 강웅창입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마독두라고 합니다. 여기 박형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낮추십시오. 저도 박형하고 나이가 같습니다.”

“아, 네. 앞으로 잘해 봅시다.”

“아, 예,”

인사를 나누면서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웅창에겐 탐탁지 않았다. 그는 연신 굽실거렸고 게다가 가식적인 웃음은 더욱 웅창의 마음에서 멀어질 뿐이었다.

“마형, 이렇게 모이고 보니까 마치 TFT 같군요?”

“그러네요. 잘됐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선배님이 팀장하시면 되겠네요. 그렇죠? 팀장님.”

웅창은 갑자기 쑥스러웠다.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을 본 재학은 웅창이 대답하기도 전에 결정을 해 버렸다.

“당연하죠. 그럼 팀장도 정해졌고 프로젝트 이름은 뭐로 할까요?”

“그건 팀장님이 정하셔야죠.”

갑작스런 독두의 제의에 잠시 당황한 웅창은 생각나는 대로 망을 꺼냈다.

“그냥 ‘로또프로젝트’ 라고 하죠. 그리고 다른 사람 있는 자리에선 약자를 써서 ‘LP’라고 하구요.”

“역시. 팀장님이십니다. 전 좋습니다. 박형은 어때요?”

“저도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정하죠. 오늘은 팀 창단일이고 하니까 제가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그거 좋죠. 전 팀장님께 그동안 저희가 했던 거 말씀드리겠습니다.”

재학이 다과를 준비하는 동안 독두는 웅창에게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제가 하던 방법은 게일하워드법과 후나쓰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거기에 박형이 고안한 공식을 혼합했었죠.”

“게일하워드법과 후나쓰법이요?”

“모르고 계셨습니까?”

“네. 그게 뭐죠?”

“그러셨군요. 하긴 로또에 빠지지 않고는 그런 게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당연하죠. 두 가지 모두 로또 당첨비결에 대해 쓴 책인데 게일하워드는 캐나다 출신 여성으로 로또 당첨비법을 수학적 통계로 분석한 사람입니다. 그 여자가 쓴 책이 로또 마스터라는 건데 국내에 번역판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후나쓰는 일본 사람인데 로또 명인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됐겠군요?”

“게일하워드는 모르겠는데 후나쓰라는 사람은 2등과 2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4등과 5등은 수없이 당첨됐고요.”

“1등은 한 번도 못해본 모양이죠?”

“그럴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국내에서 그 사람들이 쓴 책을 안 본 사람이 없겠죠.”

“그렇겠죠. 그런데 독두씨께선 그 책 읽어보셨나 보죠?”

“네 읽어보긴 했는데 전 별로였습니다.”

“그래요?”

“네. 게일하워드법은 당첨번호 6자리를 합친 숫자의 70%가 1백6에서 1백70 사이에 있고 당첨된 6개 숫자 중 1개는 바로 직전 회차 추첨에서 당첨된 숫자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당첨숫자 중 적어도 1개는 지난 10회 동안 한 번도 당첨되지 않은 숫자고 나머지 숫자는 지난 10회 추점 동안 당첨됐던 숫자라는 건데 제가 내린 결론은 주먹구구식이라는 겁니다. 물론 참고는 하고 있지만요.”

“그렇군요.”

“그나마 전 로또에 빠진지 오래여서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만 사실 당첨번호 예측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못됐습니다.”

“그럼 후나쓰법은 어땠습니까?”

“후나쓰법은 게일하워드법 보다는 좀 구체적이었습니다. 후나쓰법에 의하면 과거에 많이 나온 숫자는 다시 나올 확률이 적고 잘 안 나오는 숫자 역시 추첨될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간 숫자를 고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일하워드 보다는 구체적이긴 했지만 로또 분석을 오래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또한 쉽게 와 닿지 않는 내용입니다.”

“결국 두 가지 모두 이미 나왔던 번호로 추론한다는 것은 똑 같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두 일반사람이 이해하기엔 너무 전문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이일을 같이 하게 됐습니까?”

“처음엔 저 혼자 했었죠. 그런데 한번은 사우나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로또 얘기가 나왔는데 박형도 저처럼 예측공식 만든다는 걸 알고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거의 맞추지 못했었는데 박형하고 같이 하면서 5등엔 거의 매주 당첨됐습니다.”

순간 웅창은 재학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재학의 말에 의하면 독두가 3등에도 당첨돼 봤고 4등은 수없이 됐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독두의 말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재학이 독두의 허풍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이것들 좀 드시고 하시죠.”

재학이 내려놓는 쟁반엔 음료수와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박형,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습니까?”

“이것 전부 여기 팀장님께서 사 오신 겁니다.”

“아, 그러셨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좀 사오는 건데 그랬습니다. 팀장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결례라니요?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자, 어서 드시죠.”

웅창과 독두가 간식을 먹는 동안 재학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저희가 했던 방법은 제가 통계학적 방법으로 숫자들을 선택해 리스트를 만들면 여기 있는 마형이 그 중에서 몇 개를 골라 조합하는 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학적으로 번호를 추출하는 박형에 비하면 제 방식은 주먹구구적인 면이 강합니다. 전 박형이 추출해 놓은 숫자들 중에서 게일하워드법과 후나쓰법, 그리고 제가 로또를 하면서 얻은 감각을 적용해서 숫자들을 조합한 겁니다.”

“어쨌든 그동안 거의 매주 5등에 당첨되었다면 결코 주먹구구식이라고 할 수는 없죠.”

“여기 박형 얘기 들으니까 팀장님께선 우리와 다른 방식을 쓰고 계셨다던데. 어떤 겁니까?”

“그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전 1번부터 45번까지 각 번호 다음에 나왔던 숫자들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독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웅창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1번부터 45번까지 그 뒤에 나왔던 숫자들을 순서대로 분류한 거죠. 예를 들면 전주에 첫전 열에 1번이 나왔으면 이번 회에 첫 번째 열에 나온 숫자를 뒤에 붙인 거죠. 그걸 순서대로 정렬해 보면 여러 개가 됩니다. 그렇게 45번까지 분류한 것을 갖고 그 숫자들의 증감을 구한 뒤 그것들의 평균치를 감안한 방법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 주에 일 시작할 때 또 얘기하기로 하죠. 그리고 한 가지 말해둘 것은 지금부터 6개월 내에 목표를 이룬다는 겁니다. 그때까지 못해내면 미련 없이 손 떼기로 하는 겁니다. 두 분 나이도 있는데 평생 여기에 매달려선 안 됩니다. 저야 이미 오십을 넘겨 중반에 이르렀지만 두 분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팀장님.”

재학은 웅창의 말에 동의를 했지만 독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웅창과 재학은 그저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갑자기 끊어진 대화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의식한 독두는 애써 호들갑을 떨며 그 순간을 모면했다.

“자, 그럼 오늘은 우리의 TFT 탄생을 축하하고 앞으로 우리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건배를 제의합니다. 선창은 팀장님께서 해주시죠.”

“그럴까요? 자, 그럼 건배.”

“건배!”

이렇게 남들이 들으면 황당 또는 한심해 할 수 있는 팀이 결성된 것이다. 하지만 웅창과 재학 그리고 독두에게는 자신들의 모두를 건 것과 다름없는 승부수였다. 그나마 받은 퇴직금도 바닥이 나가고 있어 부인이 버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 재학, 개인 사업에 손댔다가 돈만 날리고 가족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독두, 그리고 당장은 아니지만 길어야 연말이면 통장에 돈이 바닥날 웅창, 이들 모두 집이라도 팔아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개떡 같은 부동산 정책에 얼어버린 부동산 시장은 그마저도 못하게 만들었다.

불경기 때문에 재취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재학,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독두 그리고 남은 것이라곤 달랑 집 한 채 뿐인 웅창이 택할 길은 이것뿐이었다. 재학과 독두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웅창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비록 탐탁지 않은 독두가 팀에 끼어있긴 하지만 분명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혼자 답답한 마음을 감당해야 했던 굴레를 같이 나눌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뿌듯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 온 웅창은 가장 먼저 통장의 잔고를 확인했다. 아직 삼천만 원이 조금 못되는 것을 확인한 웅창은 인터넷에서 노트북을 검색했다. 하지만 대부분 이백만원대였고 조금 낮은 가격의 물건은 사양이 많이 처지는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수입 한 푼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백만 원씩이나 주고 살 수는 없었고 어차피 엑셀만 돌아갈 정도의 사양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웅창은 중고 사이트를 찾아 백오십만원을 주고 온라인으로 구매를 했다. 사실 백오십만원도 지금의 웅창에게는 큰돈이었다.

‘당첨만 되면 이까짓 백오십이 문제냐? 사업 밑천이라고 생각하자.’

웅창은 적지 않은 돈을 쓴 다음에 오는 쓰린 가슴을 그렇게 위로했다.

만약 실직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다음 달 월급이 있으니 그리 큰돈으로 생각되진 않았을 것이다. 실직이라는 것이 현실이 돼선 안 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돈도 지금은 가슴 한쪽이 잘려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그리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달 생활비를 그렇게 써버린 웅창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한편으로는 다 잘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자의적인 위안이 뒤섞인 가운데 다음 주부터 시작될 새로운 시간들을 상상했다. TFT가 일을 시작한 첫날은 모두에게 고무적인 날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로또를 예측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 과거에 나왔던 번호의 증감 추이. 둘째, 1번부터 45번까지 각 번호의 출현 빈도. 셋째, 각 회차별 합계. 넷째, 각 회차에서 나왔던 보너스 번호가 다음 회차에 끼친 영향의 유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저희가 그동안 분석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각 열의 1번부터 45번까지의 이후 숫자들입니다.”

재학의 명쾌한 설명이 있긴 했지만 웅창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 게 있어야 한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인지 잘 와 닿질 않네.”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만든 리스트를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웅창과 재학이 진지하게 대화하는 동안 독두를 듣기만 했다.

“다른 것은 그런대로 알아듣겠는데 직감이 필요하다는 말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직감을 어떻게 구하지?”

“그것은 지금까지 여기 마형이 맡았습니다.”

재학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자 독두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은 자신의 직감을 믿은 데서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꿈에서 예시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 그 직감은 어떤 거죠? 그냥 느낌 같은 건가요?”

“아닙니다. 단순히 이것이다 하는 느낌만으론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직감을 얻는 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방바닥에 마흔 다섯 개 번호를 나열해 놓고 각 번호를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다 보면 그 번호들 중에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번호가 있습니다. 전 그런 번호들만 추출해서 여기 박형이 추출한 번호와 비교했던 겁니다.”

“그런데 매주 5등 번호가 나왔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대단한 직감이군요.”

“과찬이십니다. 팀장님. 제 직감이 좀 남다르긴 하지만 1등 번호를 뽑기엔 아직 충분치 못한 거죠.”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1등에 당첨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매주 5등에 당첨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까지 제 직감이 맞아떨어지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주먹구구식이라 언제까지 적중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논리적인 방법을 만들었는데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마형. 그런 게 있었습니까?”

“네. 그런데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은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동안 몇 번 검증해 봤는데 확률은 육칠십 퍼센트였습니다.”

“마형이 만들었다는 건 어떤 겁니까?”

하지만 독두는 웅창과 재학의 바람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아직 공표할 단계가 못됩니다. 지금은 누덕누덕 기워져있는 상태라 내놓기가 좀 그렇습니다. 나중에 정리하고 나서 얘기하겠습니다.”

순간 웅창은 독두의 눈빛을 훔쳐보았다. 그것은 웅창에게 독두의 첫인상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알겠습니다. 박과장 난 뭘 하면 돼?”

“저하고 여기 마형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으로 번호를 추출할 테니까 팀장님께선 인터넷에서 로또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검색해 주시고 팀장님 리스트를 매주 업데이트 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그동안 저희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들은 거의 무시했거든요. 또 그럴 시간도 없었고요.”

“시간이 많이 걸리나?”

“네. 제 공식은 한번 추출할 때마다 이백 번 이상 계산을 해야 합니다.”

“이백 번 이상?”

“그렇습니다. 이번 주가 219회니까 218번 프로그램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많이? 어떤 프로그램인데?”

“대학 수학교수들 몇이 모여서 확률계산용으로 만든 건데 자기들 말로는 미국 NASA에서 쓰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합니다.”

“그걸 뭐하려고 만든 거야? 그 사람들도 로또 하나?”

“그런 건 아니고 증권사에서 의뢰 받고 만든 건데 마침 그 대학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어 술 한 잔 거대하게 사주고 복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 그렇게 복사해도 괜찮은 건가?”

“물론 학교에서 알면 그 사람 당장 파면이죠. 하지만 다른 데 유출만 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그렇겠지. 하긴 아직 공개된 게 아니니까.”

“그것으로 추출된 번호들을 제가 만든 공식에 대입해서 18개를 만들어냅니다. 그것들을 여기 마형이 골라낸 숫자들과 비교해서 마지막 6개 번호를 결정하는 겁니다.”

“그거 돌리는데 얼마나 걸려?”

“메인프레임에선 한두 시간이면 되는데 집에 있는 PC로 하려니까 용량이 딸려서 최소한 나흘은 걸려야 합니다.”

“그럼 차라리 노트북을 살게 아니라 돈 좀 들여서 서버를 하나 살걸 그랬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로또는 토요일 오후 6시까지만 사면되니까 공연히 돈 들일 필요는 없죠.”

“참 여기 인터넷은 어떻게 연결하지?”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브가 있으니까 거기 연결하시면 됩니다.”

“야, 철저하군.”

“그럼요. 마형도 컴퓨터를 써야 해서 반반씩 부담했죠.”

“난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쓰려니까 좀 미안하네.”

웅창과 재학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독두는 은근히 생색을 냈다.

“아이고 팀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차피 한배 탔는데 괘념치 마십쇼.”

“아, 네. 감사합니다.”

“아유 팀장님 말씀 낮추시라니까요.”

독두는 마치 하인이 상전 대하듯 말했다. 그의 간사스러움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렇긴 했지만 웅창은 개의치 않았다.

“자, 그럼 TFT 첫날을 시작해 볼까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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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또의 미소 (9) 10.12.20 1,546 11 22쪽
8 로또의 미소 (8) 10.12.20 908 12 16쪽
7 로또의 미소 (7) 10.12.20 923 18 13쪽
6 로또의 미소 (6) - 중복 게재 정정분 10.12.19 1,093 4 16쪽
5 로또의 미소 (5) 10.12.17 1,536 11 39쪽
4 로또의 미소 (4) 10.12.17 1,251 11 24쪽
3 로또의 미소 (3) 10.12.16 1,455 14 19쪽
2 로또의 미소 (2) +1 10.12.16 1,882 19 23쪽
1 로또의 미소 (1) +2 10.12.16 3,305 25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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