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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로또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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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0.12.30 16:20
최근연재일 :
2010.12.30 16: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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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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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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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로또의 미소 (12)

DUMMY

하지만 그의 형편상 웅창 컴퓨터에 깔려 있는 고가의 엑셀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엑셀을 이제 와서 배우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엑셀에 대한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독두는 영수증을 지갑에 넣고는 자료들을 열어놓고 거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웅창은 재학에게 가기 전에 은행에 들러 복권을 돈으로 바꾸었다. 당첨금은 모두 118,486원 이었다. 재학의 집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웅창의 코를 자극했다. 재학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웅창에게 가르쳐 주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박과장. 이게 무슨 냄새야?”

“오셨습니까? 비록 미완이긴 하지만 성공은 성공이니까 자축해야죠.”

“독두씨는?”

“연락했는데 자기는 괜찮으니까 그냥 우리끼리 하랍니다.”

“그 사람 돈 내기 싫어서 그럴 거야.”

“제 생각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간도 그렇고 팀장님도 좋아하지 않고 해서 술은 준비 안 했습니다.”

“잘했어. 우리 술은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에 마시기로 해.”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주방 식탁엔 이제 막 배달되어 왔는지 탕수육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같이 내야지 박과장 혼자 부담할 수는 없지.”

“아닙니다. 팀장님. 탕수육 한 그릇 이래봐야 만원밖에 안합니다.”

“만원?”

“우리 두 사람만 먹을 거라서 중간치로 시켰습니다. 그리고 술대용으로 제과점에서 파는 짜가 샴페인을 준비했습니다.”

“야, 신경 많이 썼네.”

웅창은 아침도 대충 때우고 나온 터라 마침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팀장님 건배하시죠.”

“그럴까? 자, 건배.”

지금까지 살면서 샴페인에 탕수육을 곁들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예기치 않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웅창은 실직자가 되다 보니 별 경험을 다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팀장님 무슨 생각하십니까?”

“저기 있잖아? 만약 우리가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런 광경 상상이나 했겠어? 탕수육을 샴페인 안주로 먹고 있으니 말야.”

“듣고 보니 그렇군요. 하하하.”

“난 박과장의 그 낙천적인 성격이 좋아. 솔직히 난 내 신세가 초라해진 것 같아 우울한 기분이 들참이었는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하긴. 나도 그래서 퇴직한 이후 한 번도 술을 대지 않았던 거야. 전에 박과장 만났을 때 처음 마셨지. 지금도 술 마셔?”

“실은 저도 끊었습니다. 그날은 팀장님 뵙는 날이고 해서 마신 거죠.”

박과장의 말은 웅창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퇴직한 자신에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비록 지금은 신세가 초라하지만 20년 직장생활 하나는 제대로 한 것 같아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날 박과장이 얼마나 고맙던지.”

어느새 웅창의 눈가엔 작은 이슬이 맺혔다.

“아유 팀장님. 왜 이러십니까? 별일 아니었는데.”

웅창은 이미 북받쳐 있는 속 때문에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열었다간 감정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팀장님께서 밀어주셨던 거 전부 기억합니다. 그 덕에 열등생이었던 제가 과장 달았던 거 아닙니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겁니다. 이제 좀 진정이 되십니까?”

“응. 미안해. 좋은 날 이런 모습 보여서.”

“야, 정말 의외입니다. 늘 선비 같았던 팀장님께 이런 면이 있었다니. 너무 뜻밖입니다.”

“아무튼 미안해.”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마 팀장님 이런 모습 본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 사람. 영광은 무슨. 자 어지간히 먹은 것 같은데 이제 일 시작할까?”

“네. 소파에 가 계십시오. 제가 이것들 얼른 치우고 커피 준비하겠습니다.”

“아냐. 이건 내가 치울 테니 박과장은 설거지하고 커피 끓여.”

웅창은 재학이 말릴 틈도 주지 않고 중국집 접시들을 현관 밖에 내다 놓았다.

그 사이 재학은 커피메이커에서 내려오는 커피를 보고 있었다.

“접시만 내 놓으면 되는 거지?”

“네. 앉아 계십시오. 금방 갖고 가겠습니다.”

웅창이 거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동안 재학은 큼직한 유리컵에 커피를 담아 왔다.

“실은 아까 팀장님 그러실 때 하마터면 저도 울 뻔 했습니다.”

“그래?”

“네. 사실 저라고 속이 안상하겠습니까? 그동안 몇 번 울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다짐했죠. 지금은 울지 않겠다. 목표를 이루고 나서 그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거 한꺼번에 울겠다고.”

재학의 말을 들은 웅창은 지금까지 자신의 다짐은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우리 지금은 아무리 힘들고 속상해도 좌절하거나 울지 말자. 우리 그날이 왔을 때 실컷 울자.”

“네. 팀장님.”

“그럼 다시 시작할까?”

“넵.”

재학의 방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하면서 웅창은 지난주 했던 방법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런데 분명 맨 아래쪽 셀에 있는 값으로 번호를 정했던 거였지만 어떻게 수식을 구성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웅창은 그제야 자신이 시트를 작성하면서 귀찮은 마음에 소홀히 했던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표시해 갖곤 안 되겠네. 그러면.’

웅창은 셀의 계산식을 파악하여 각 평균들의 항에 기호를 붙였다. 220회와 비슷한 시기의 것들은 횟수 옆에 ‘기준’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나머지는 알파벳과 가 나 다 라 로 분류시켰다.

‘이제 헷갈릴 일은 없겠군. 그러나저러나 뭔가 더 보완하면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리를 끝내고 시트를 보던 웅창은 문득 데이터가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엔 기준 앞에 5주간 자료를 참조했지. 그러면.’

웅창은 로또 리스트 파일을 열고 지난주에 했던 것처럼 220회 추첨일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번호들을 새로운 엑셀 시트에 옮기면서 자료를 기준 이전 5주였던 것을 10주로 늘렸다. 정리를 끝내고 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그래.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지.’

웅창은 곧바로 지난주와 같이 평균값들을 계산했다. 그 결과 시트 맨 아래쪽엔 28 26 24 20 16 28 18이라는 7개의 숫자가 표시되었다.

“박과장 내 방법으로 해보니까 이번엔 중복된 번호들이 나오는데?”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비교할 거니까 괘념치 마십시오.”

“참. 그렇지.”

웅창은 예측치를 포함한 번호들을 SORT했다.

10 14 16 16 17 18 18 18 19 19 20

21 24 24 25 25 26 26 26 28 28 28

28 28 28 29 30 32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뭐가요?”

재학이 다가오자 웅창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26과 28이 압도적이군요.”

“그러게 말이야. 뭐가 잘못 됐나?”

“일단 번호는 나왔으니까 오늘은 그만 하시고 내일 다시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재학의 말에 시계를 본 웅창은 어느새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시트 표기를 잘못해 그것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야겠네. 오늘은 이상하게 피곤한데?”

“그럴 만도 하시죠. 아까 감정이 받치셨으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지. 그리고 내 노트북 여기 두고 가면 안 될까? 어차피 집에선 하지도 못하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제가 보관 하겠습니다.”

“그럼 두고 갈게.”

재학의 집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은 웅창은 또 다시 시트를 생각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주에 나온 번호들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뭔가 빠뜨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네. 지난번 보다 더 많은 데이터로 뽑은 건데.’

그러한 생각은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웅창을 괴롭혔다. 다음날 웅창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있었다.

“여보 왜 안 드세요?”

“응? 그냥. 입맛이 없네.”

“어디 안 좋아요?”

“아냐. 그냥 입맛이 없는 것뿐이야. 다녀올게.”

수지행 버스에 몸을 실은 웅창은 거의 정신 나간 듯 멍하니 창밖만 응시했다.

“야, 오버하지 마. 남자는 너무 잘해줘도 여자한테 싫증이 나는 거야.”

문득 뒷자리에 앉아있는 20대 여자들의 대화를 들은 웅창은 갑자기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그래 어쩌면 내가 오버한 것인지도 몰라. 로또는 6개 번호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참조 기간도 10주가 아닌 5주로 해야 될지도 몰라.’

어느새 웅창의 머릿속은 모든 것을 로또와 결부시키는 습관이 배어있었다. 웅창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웅창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생리현상과 같은 것이었다. 버스가 재학의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뛰다시피 하여 내린 웅창은 재학의 아파트까지 쉬지 않고 뛰어갔다.

“아니 팀장님. 왜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십니까? 뛰어 오셨습니까?”

“응. 내 노트북 어디 있지?”

재학은 평소 같지 않게 서두르는 웅창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행동으로 보아 뭔가 급한 것 같아 곧바로 안방 장롱위에 두었던 웅창의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노트북을 받아든 웅창은 윈도우가 뜨자마자 어제 만들었던 엑셀파일을 열고 새로운 시트에 지난 5주간 자료를 기준으로 시트를 만들고 계산 값들을 살폈다.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지만 어제 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웅창은 이번엔 지난주 했던 것처럼 5주간 자료를 대입했다. 하지만 오히려 안 하니만 못했다. 웅창은 자기 컴퓨터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재학을 불렀다.

“박과장 이것 좀 봐.”

재학은 웅창이 가리키는 노트북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이건 엑셀시트 아닙니까?”

“여기 맨 아래에 내가 뽑은 번호가 있어. 어제 뽑았던 것보다는 훨씬 감이 좋아.”

“그런데 한자리 수는 하나도 없군요?”

“그게 마음에 좀 걸려. 이게 내 방식의 한계인 것 같아. 아무튼 일단 한번 보자구.”

11 16 18 18 18 19 21 22 22 22 23

23 25 25 25 29 29 29 29 29 30 30

34 35

“중복된 숫자들은 18 22 23 25 29 30 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11 16 19 21 34 35네.”

“참 팀장님 지난주에 11은 한번 나왔었죠?”

“지금까지는 주로 중복된 것들 위주로 했으니까 이번엔 중복된 것들에서 두 개 그렇지 않은 것들에서 네 개를 뽑아 볼까?”

“글쎄요. 일단 저하고 독두씨가 뽑은 숫자들을 보고 결정하시죠.”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웅창은 중복되지 않은 숫자들 중에 220회 당첨번호가 네 개나 있다는 것을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박과장 작업은 아직 멀었지?”

“네. 내일 모레까지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두씨는 뭐하고 있을까?”

같은 시각 독두는 자신의 노트북에 자료들을 올려놓고 그 옆엔 낡은 서적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인사동에 갔다가 우연히 구입한 고서적이었다. 독두가 작자 미상의 책을 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기엔 1에서 60까지 숫자에 대한 해설이 붙어있었고 각 숫자의 길일을 계산하는 방법이 적여 있었다. 독두는 노트북 모니터에 있는 역대 로또 번호의 리스트를 올려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열심히 계산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이번 숫자들은 5 11 19 25 27 30 37 40 43 44 가 나오네.”

독두는 그 중에 5와 11에 강한 직감을 느꼈다.

“11은 지난주에 나온 번호고 주기적으로 봐도 나올 번호가 아닌데?”

잠시 깊이 생각하던 독두는 결국 11을 빼기로 결정했다.

“11은 절대 아냐. 그러면 5 19 25 27 30 37 그리고 44는 나올 주기가 아니니까 40번대는 40하고 43이다.”

독두는 자신이 뽑아낸 숫자들을 갖고 로또 용지에 마킹을 했다. 사실 그동안 독두는 재학 모르게 별도로 로또를 사왔다. 그러면서 재학에게는 자신이 뽑은 숫자 중 두 개와 뽑지도 않은 번호들을 적당히 섞어서 내 놓았던 것이다. 그나마 그가 두 개를 공개한 것은 자신이 뽑았던 번호들로는 5등마저도 안 되는 때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한텐 5 16 18 25 27 30 35 43을 주어야겠군. 자, 로또야 다른 사람은 필요 없고 나한테만 와주면 네 임무는 그것으로 끝이다.”

한편 시간이 되어 집으로 향하는 웅창은 자신이 뽑은 12개의 숫자가 쓰인 메모 쪽지를 보고 있었다.

‘그것참 이상하네. 어째서 중복되지 않은 숫자들에 미련이 가는 거지?’

어쩌면 이것은 평생 올바르게만 살아 온 웅창에 대한 하늘의 계시인지도 몰랐다.

웅창은 다시 한 번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당장 재학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웅창의 머릿속엔 6개의 숫자 11 16 19 21 34 35가 빙빙 돌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느낌이 드는 번호는 처음이었다.

‘혹시 이것이 1등 번호?’

다음날 집에서 나온 웅창은 편의점에 들러 11 16 19 21 34 35를 마킹하여 로또를 두 장 샀다. 하나는 재학에게 주려는 것이다. 재학의 집에 도착하니 이미 그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응. 자, 이거.”

“이거 로또 영수증 아닙니까?”

“이상하게 어제 중복되지 않은 숫자들에 미련이 가더라구. 그래서 그 번호로 두 장 샀어.”

재학은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아,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만약 이거 당첨되면 20프로 드리겠습니다.”

“됐어. 이게 당첨되면 나도 당첨되는 건데 그걸로 충분해. 작업은 얼마나 돌아갔어?”

“이제 70프로 돌았습니다. 지금 160번 넘었습니다.”

“어떻게 계산을 하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

“로직은 저도 확실히 모릅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정말 괜찮던데요? 특히 주가 동향은 거의 70프로 적중입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내가 갖고 있는 주식도 한번 알아봐야겠군.”

“그렇게 하시죠. 참, 아직 우리사주 갖고 계시죠?”

“응. 그런데 조만간에 팔아야 될 것 같아.”

“생활자금 때문에요?”

“그것도 있고 또 다른 일 때문에. 그런데 막상 그럴 수밖에 없어지니까 무척 서운하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나 로또가 있지 않습니까? 로또만 당첨되면 열배는 족히 될 겁니다.”

“그건 그래. 하지만 주식은 애들한테 물려주려고 했던 건데.”

그 얘기를 하고 나니 웅창은 한숨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힘내십시오. 어제 팀장님이 그러셨잖아요? 그날이 오기 전엔 울거나 좌절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미안하다. 박과장.”

웅창은 노트북을 켜서 어제 작성했던 시트를 올렸다.

‘이런 미처 보너스 볼을 생각 못했군.’

웅창은 즉시 보너스 볼만 따로 분리해 냈다.

1 1 2 4 4 4 5 6 8 9 11

13 14 14 14 16 16 16 17 20 20 21

26 27 27 30 31 31 34 38 38 42 43

그것을 본 웅창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중복되지 않은 것들만 다시 분류했다.

2 5 6 8 9 11 13 17 20 21 26

30 34 42 43

그것들 중 아침에 로또를 살 때 마킹했던 번호를 제외시켰다.

2 5 6 8 9 13 17 20 21 26 30

42 43

그런데 13개 숫자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렇지 모레 마독두가 오면 그때 결정하자.’

웅창은 문득 시계를 보았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이미 점심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었다.

“박과장 점심시간 지난 것 같은데?”

재학은 그제야 시계를 보았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곧 준비하겠습니다.”

거실로 나온 웅창은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너무 작업에 몰두한 탓인지 머리는 물론 눈까지 침침했다. 소파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웅창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닥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당장은 남은 돈이 있어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았지만 재학에게 말한 대로 주식까지 팔아야 할 상황이 닥치면 지금처럼 그것을 이겨 낼 확신이 없었다.

“팀장님. 마침 찬밥이 있는데 삼겹살하고 김치 넣어서 볶음밥 해 먹는 거 어떻습니까?”

“그거 좋지. 그런데 할 줄 알아?”

“저 실직한지 벌써 4개월 넘었습니다. 이제 구단은 못돼도 최소한 주부 삼단은 됩니다.”

“그럼 부탁할 게.”

웅창은 자신도 재학처럼 낙천적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제법 익숙한 솜씨로 김치 볶음밥을 만드는 재학을 보며 그동안 집안일 하는 아내를 한 번도 도와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오십시오. 다 됐습니다.”

“일단 냄새는 좋네.”

웅창이 숟가락으로 한입 떠먹는 것을 보는 재학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야, 이거 보통 솜씨가 아닌데?”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언제 이렇게 배웠어?”

“다 모진 상황 덕이죠. 집사람이 일을 하고 전 집에 있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하게 되더군요. 한 달 전부턴 제가 저녁도 준비합니다.”

“대단하네.”

“대신 설거지는 집사람 몫이죠.”

“이왕 해줄 거면 풀 서비스를 해야지.”

“그게 좀 그렇더군요. 요리까진 모르겠는데 설거지는 좀.”

그 사이 웅창은 게 눈 감추듯 마지막 숟가락을 뜨고 있었다.

“잘 먹었어. 정말 맛있네. 볶음밥 전문집 차려도 되겠다.”

“아닌 게 아니라 나중에 그거 할 생각입니다. 요리를 해보니까 재미도 있고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어차피 취직할 것도 아니고 해서 한번 해 보려고요.”

“그럼 나도 거기 투자할까?”

“그럼 진짜 좋죠. 팀장님은 사장 겸 매니저하시면 되고 전 주방장 하면 되죠.”

“사장은 무슨, 종업원이지.”

“아이고 팀장님 그 연세에 종업원하시면 오던 손님도 등 돌립니다.”

“그런가? 하하하. 자 그럼 또 시작해 볼까?”

“들어가 계세요. 제가 커피 갖고 갈게요.”

“이거 매번 미안해서 어떡하지?”

“별 말씀을요.”

방으로 들어 온 웅창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웅창의 가슴엔 미래가 안개 속처럼 연상됐다. 평생 살면서 확실한 보장 하에서 모든 것을 해왔고 그렇기에 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자존심 때문에 식구들 앞에서 내색하지 못했을 뿐 이런 상황에 익숙지 못한 웅창은 하루하루가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만약 당첨이 된다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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