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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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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0.12.30 16:20
최근연재일 :
2010.12.30 16:2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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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81
추천수 :
290
글자수 :
213,152

작성
10.12.2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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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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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로또의 미소 (21)

DUMMY

그런데 그 사이 재학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급히 서둘던 독두는 전원 케이블을 접어 넣다가 그만 노트북 표면에 작은 흠집을 내고 말았다.

‘이런. 이걸 어쩌지?’

손으로 문질러 보았지만 오히려 더 뚜렷해질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말 안하면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알겠어?’

독두는 서둘러 노트북을 가방을 처음 있던 자리에 두고 안방을 나왔다. 어쨌든 완벽하게 처리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잊은 것이 있었다. 노트북에 난 흠집에 신경 쓰느라 자신이 올라섰던 의자를 제자리에 두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독두가 방으로 돌아오고 몇 분 안돼서 재학이 돌아왔다.

“마형 죄송합니다. 아침에 집사람이 출근하면서 처갓집에 갖다 줄 물건을 깜박하고 나갔지 뭡니까?”

“아이고 아닙니다.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오늘 집사람도 늦게 들어오고 하니까 저녁 식사나 같이 하지 그래요?”

“아유. 아닙니다. 저도 집에 가서 마누라 저녁 준비해야죠.”

“아, 그렇군요.”

독두는 말이 끝나자마자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갔다.

“그럼 갈게요.”

“네. 금요일 날 봐요.”

사실 독두가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한다던 말은 물론 거짓이었다. 집안일엔 전혀 손도 대지 않는 그가 퇴근할 부인의 저녁을 준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서둘렀던 것은 메모리에 저장시킨 웅창의 파일을 한시라도 빨리 열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자마자 파일을 열어 보긴 했으나 엑셀이라곤 기초지식 밖에 없는 독두가 그것을 해석하기는 쉽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독두는 신경질을 내며 직접 계산을 해 보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부화만 더 치밀 뿐이었다. 다음날 재학의 집에 도착한 웅창은 평소처럼 재학이 갖다 준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박과장 어제 박과장이 얘기한 자료 구했어.”

“그래요? 그런 자료가 있었습니까?”

“미국 로또 자료인데 메가밀리언즈라는 것과 파워볼이라는 거야. 역사가 엄청나더군. 메가밀리언즈는 1996년부터 시작된 거고 파워볼은 1997년부터 시작된 건데 그때부터 2007년 1월까지 둘 다 천개가 넘어.”

“와! 그거면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테스트 해보려고 해도 데이터가 없어서 들쑥날쑥 했는데. 정말 잘 됐습니다.”

“그걸 어떻게 이용할 건데?”

“천개 이상이면 각 번호별로 일종의 유형을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유형?”

“그러니까 같은 숫자라고 해도 그것이 나오기 전에 어떤 형식의 숫자흐름이 있었느냐 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어떤 숫자가 나오기 전에 어떤 숫자들이 앞서서 나왔었느냐 하는 건데 각 번호별로 무척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올 겁니다.”

“아, 이제 알겠다. 그런데 그거 한 두 개가 아닐 텐데?”

“당연하죠. 하지만 한번만 정리해서 데이터화 시키면 그 다음은 프로그램이 해 줄 테니까 그 정도 고생은 해야죠.”

“그런데 그거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그건 팀장님께 달렸죠.”

“나한테?”

“네.”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엑셀 잘 하시잖아요.”

“후유, 알았어. 아무튼 박과장만 믿어.”

그때 노트북을 열려던 웅창은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띠었다.

“어? 이거 왜 이래?”

“왜요? 팀장님.”

“내 노트북 누가 만졌었나?”

“아뇨? 뭐가 잘못 됐습니까?”

“여기 좀 봐. 뭔가에 콕하고 찍힌 것 같은데.”

웅창의 얘기를 들은 재학은 노트북 표면을 살폈다.

“그리고 파워케이블도 그렇고 마우스도 그렇고 난 이렇게 안 넣거든.”

“그럼 집사람이 만졌나? 아냐. 그 사람은 어제 처갓집에 다녀오느라 오자마자 씻고 잤지.”

“분명 누가 손댄 거야.”

“어제 누구 오지 않았었나?”

그때 재학의 머리에 독두가 생각났다.

“어제 독두씨가 오긴 했는데.”

“독두씨가?”

“네. 저번에 집사람 때문에 지난주엔 모일 수 없다고 전화했는데 어제 집사람 어떤지 궁금해서 왔다고 하더군요.”

“그것 외엔 다른 말은 없었고?”

“네. 그냥 앉아서 얘기만. 설마?”

“왜?”

“어제 집사람 부탁으로 잠깐 나갔다 오긴 했는데. 그럼, 그때?”

“얼마나 걸렸는데?”

“한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제가 나갔다 들어오니까 금방 일서더군요. 설마 그 사람이 그랬을까요?”

“어디 한번 켜보자.”

웅창은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살폈다.

“없어진 것 있습니까?”

“파일은 그대로 있는데. 어? 이거 이상하네.”

“왜요?”

“내가 작업하기 편하게 바탕화면에 두었었는데 항상 제일 밑에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위치가 바뀌었어.”

“그래서 그게 거기 있었던 건가?”

재학은 어제 아내가 돌아와 묻던 것이 생각났다.

‘오빠. 여기 화장대 의자 오빠가 옮겨 놨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뭔가 생각하는 재학을 본 웅창은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뭐가?”

“어제 집사람이 불러서 갔더니 안방 화장대 의자가 장롱 앞에 있었습니다.”

“부인이 그런 게 아니고?”

“네.”

“그럼 그 사람이?”

“그런지도 모릅니다. 실은 팀장님 노트북을 늘 장롱위에 뒀었거든요.”

“그럼 틀림없네. 우리는 의자 없이도 꺼낼 수 있지만 마독두씨 키로는 어림도 없지.”

“그 사람이 뭣 때문에 팀장님 노트북을?”

“보나마나 내 파일을 복사해 갔을 거야.”

“그걸 뭐하게요? 어차피 다 같이 하고 있는데.”

“내가 처음에 그랬지? 그 사람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안 든다고.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 사람 모르긴 몰라도 이미 박과장 프로그램도 복사해 갔을 걸?”

“설마.”

웅창의 얘기를 들은 재학은 컴퓨터의 히스토리 파일을 확인했다.

“어때?”

“최근엔 별다른 것은 없는데.”

“그럼 프로그램 깔고 난 이후 한 달간 자료를 확인해 봐.”

“이거야 원.”

웅창의 말대로 오래전 내역을 확인하던 재학은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을 했다.

“어때? 있지?”

“네. 복사한 기록이 있네요.”

“그것 봐. 내가 그 사람 믿지 말라고 했지. 내 파일까지 복사해 갔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는 빠지려고 할 거야.”

“그럴까요? 혼자 하던 같이 하던 다를 게 없는데.”

“아니지. 1등 당첨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배당금이 적어지잖아.”

“아하, 그렇군요. 에이. 그럼 이제 그 사람 빼죠.”

재학은 화가 치밀었다.

“아직은.”

“왜요?”

“아직은 그 사람 직감이 필요해. 박과장 프로그램이 다 될 때까지는. 아무튼 그래서 내가 그 사람한테 프로그램 보완하는 거 말하지 말라고 한 거야.”

“그렇군요.”

“기분은 나쁘겠지만 프로그램 다 될 때까진 절대 내색해선 안 돼. 이에는 이로 답을 해야지.”

“알겠습니다.”

재학은 그제야 잠시 감정적이었던 마음을 가라 앉혔다.

“자 그건 그렇고 아까 말한 데이터가 바로 이거야. 이건 메가밀리언즈고.”

1054 4 10 20 29 45 21

1055 1 17 40 51 52 7

1056 21 35 37 39 40 35

1057 3 9 12 25 47 37

1058 19 24 30 34 56 19

1059 7 39 41 48 53 21

1060 16 30 38 45 51 5

1061 6 13 30 41 52 26

1062 8 17 20 23 50 17

1063 7 12 35 54 55 2

1064 5 18 37 39 43 42

1065 16 29 42 46 51 40

1066 36 41 50 55 56 9

데이터를 본 재학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파워볼이야.”

1002 7 10 25 32 41 22

1003 10 13 28 30 47 26

1004 4 8 32 47 51 27

1005 23 31 32 37 55 35

1006 14 15 27 43 53 28

1007 9 11 13 24 43 18

1008 24 38 39 46 47 26

1009 1 2 15 17 49 35

1010 15 21 27 41 47 20

1011 8 20 29 42 43 35

1012 1 21 30 34 36 37

1013 3 9 14 40 42 3

1014 14 30 39 43 46 14

1015 28 35 40 47 53 30

1016 15 19 24 27 47 11

1017 9 16 23 51 52 12

1018 2 23 24 27 36 3

“와! 진짜 엄청 납니다.”

“이거 둘 다 해야 하나?”

“그래야 경우의 수가 많아지니까요. 메가밀리언즈나 파워볼이나 랜덤하게 숫자가 나온다는 건 똑 같습니다.”

“그러면 일단 각 번호대별로 나누는 게 좋겠지?”

“그렇죠.”

“그럼 작업은 집에서 해야겠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독두씨가 알면 또 복사하려고 할 겁니다.”

“그것 때문에 집에서 하려는 거야, 아무튼 마독두 그 사람 항상 조심해.”

“알겠습니다.”

그 이후 웅창과 재학은 독두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저녁을 먹고 TV를 보던 웅창은 재학의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독두씨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가 없게 됐답니다.”

“그건 이제 필요한 거 다 가졌다는 의미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더럽네요?”

“어차피 예상했었잖아. 그러나저러나 그동안 5등 건지는데 그 사람 역할도 적진 않았는데.”

“팀장님 작업하시는 것만 끝나면 그 사람은 없어도 될 겁니다.”

“그렇겠지. 아니 그래야지. 그런 표리부동한 사람하고 같이 할 수는 없지.”

“그런데 작업은 어느 정도나 하셨습니까?”

“참, 그거 말야. 지금 메가밀리언즈 자료를 정리 중인데 같은 숫자라도 어떤 것은 20개가 넘고 어떤 것은 5개밖에 안 되는 것도 있어서 정리가 잘 안되던데?”

“아, 제가 미처 말씀을 못 드렸군요. 그건 최대 다섯 개까지만 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대상 번호 이전 5주나 4주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좀 수월하지. 사실 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수의 숫자가 똑같이 오는 게 있을까 했거든.”

“저런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아냐. 이제 막 시작해서 얼마 못했는데 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박과장은 프로그램이나 완성시켜.”

“네. 알겠습니다. 아직 이번 주 로또 작업은 안 하셨죠?”

“그거야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목요일이나 금요일 날 통화하면서 정해.”

“네. 저도 결과 나오는 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계속 수고 좀 해줘.”

“네. 그럼 이만 끊습니다.”

그런데 재학의 말과는 달리 작업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박에 없는 것이 1에서 45까지 각 번호별로 그 번호가 나오기 이전 4주나 5주간 앞서 나왔던 숫자들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번호 하나 당 수십 가지의 패턴이 나왔던 것이다. 독두가 빠져서일까? 아니면 새로운 작업에 매달리느라 집중력이 떨어져서일까? 웅창과 재학은 최근 3주 동안 5등도 건지지 못하고 매주 돈만 쓰고 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동안 3등과 두 번이나 4등에 당첨된 덕에 로또를 사느라 생활비를 축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5월도 이제 반이 지났지만 데이터 정리 작업은 물론 재학의 프로그램도 완료하지 못해 웅창은 은근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든 여름이 오기 전에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생활비도 그렇지만 둘이 합쳐 거의 천만 원이나 되는 아이들 2학기 등록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라곤 두 달 치 생활비와 주식이 전부였다. 전에 들었던 보험은 이미 준수 1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로 소진한지 오래다. 그러니 주식을 빼고 나면 지금 있는 돈으로는 올해 11월까지 밖엔 버틸 수가 없다. 그 안에 집이라도 팔린다면 다행이겠지만 개떡 같은 종부세로 인해 침체된 부동산 경기가 언제 회복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상태다. 만약 공부 잘하는 은진이가 장학금이라도 받는 다면 연말까지는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장권 바뀌면 나아질 줄 알았더니 별로네.’

웅창은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서민들 집도 안 팔리게 해놓은 그 인간 누가 안 데려가나?’

실로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비단 웅창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 컴퓨터 화면에서 조금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모래시계가 사라지고 숫자가 가득한 엑셀 시트가 펼쳐졌다.

‘이제 끝났네.’

메가밀리언즈와 파워볼의 역대 당첨번호를 재학이 말한 대로 정리하는데 이틀하고도 네 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많긴 많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몇 개나 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웅창은 재학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다 끝났어.”

“양이 만만치 않죠?”

“엄청나. 이거 하는데 여덟 시간이나 걸렸어.”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집에 있는 컴퓨터가 옛날에 산 게 돼놔서 처음엔 꼼짝도 않기에 다운 된 줄 알았어. 몇 번 강제로 자르고 다시 하기를 반복하다가 한번 그냥 둬 봤지. 그랬더니 이제야 끝났네.”

“고생하셨습니다. 용량이 얼마나 됩니까?”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는데 메일로 보내긴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제가 가야겠군요.”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내가 내일 갖고 갈 게. 어차피 프로그램은 그쪽에 있잖아?”

“그렇군요. 그럼 내일 오전에 오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알겠습니다.”

“프로그램은 얼마나 됐어?”

“거의 다됐습니다. 오늘 오후에 가상 자료를 갖고 테스트 해 봤는데 에러도 없고 결과도 꽤 만족스럽습니다.”

“박과장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말씀은 왜 하십니까?”

“지금 내 입장이 좀 그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재학은 웅창의 심정을 이해했다. 자신은 집사람이 벌고 있어 생활하는데 큰 걱정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웅창이 저런 말을 할 때는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우리가 쏟은 노력이 얼맙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린 틀림없이 됩니다.”

정말 의외였다. 재학의 입에서 이토록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말이 나올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박과장. 우리 그렇게 믿고 끝가지 한번 해보자.”

“당연하죠. 힘내십시오. 팀장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고마워.”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팀장님.”

“박과장도 고생 많았어. 그럼 내일 만나.”

그런데 전화를 끊은 웅창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여느 때 같으면 수고 많았다고 했을 텐데 조금 전 재학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의 말은 웅창으로 하여금 막연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일이 잘되려고 그러나? 맞아. 이건 분명 뭔가 잘되려고 그러는 게 틀림없어.’

사실 속마음은 반반이었지만 웅창은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은 그런 웅창의 가슴을 마구 흔들고 있었고 아이들한테 물려주려고 했던 주식을 팔게 될 날이 다가 온다는 사실이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런 기분은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 됐다. 재학의 집에 도착하면 좀 나아질 것을 기대했으나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잔뜩 가라앉은 웅창과 달리 재학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박과장 얼굴 보니 나도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네.”

“팀장님답지 않게 왜 이러십니까? 그냥 9부 능선까지 왔다 생각하십시오.”

“그래야 되는데 그게 영 쉽지가 않네.”

“데이터는 갖고 오셨습니까?”

“응. 혹시 몰라서 텍스트 자료로 변환한 것도 있어. 자, 여기”

웅창은 데이터가 들어있는 USB메모리를 재학에게 주었다. 메모리를 꽂고 파일을 연 재학은 한참을 훑어보더니 탄성을 내 뱉었다.

“와! 훌륭합니다.”

“그래? 내가 제대로 한 거야?”

“그럼요. 내일모레가 토요일이죠?”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내일모레가 토요일 맞아.”

“이번이 몇 회죠?”

“233회지?”

웅창은 미처 버리지 못한 낙첨된 232회 로또 영수증을 꺼냈다.

“맞네. 233회.”

“삼땡이라. 제발 이번엔 돼줘라. 로또야.”

그러면서 재학은 프로그램을 열었다.

“팀장님 이제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겠습니다.”

“제발 제대로 나와 줘야 할 텐데.”

모니터에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웅창과 재학은 숨을 죽이고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금방 끝나겠지 했던 프로그램은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여전히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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