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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2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2.01.10 16:57
최근연재일 :
2012.01.10 16:57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40,501
추천수 :
730
글자수 :
257,382

작성
11.10.03 17:41
조회
578
추천
9
글자
7쪽

미령(美靈)2-(16)

DUMMY

“이런 썩을 년 보라.. 그 안경 당장 못 벗어? 어디 신령님 앞에 시커먼 안경을 쓰고 나타나.”

도희는 그제야 물에 빠졌을 때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이 보였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벗었겠지만 눈앞이 깜깜한 지금은 그것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전 눈이 없어서.”

그동안 선글라스 없이 살았지만 역술원이 아닌 곳에서 남한테 눈을 드러낸 적이 없는 도희는 부끄러움에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 년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신령님 앞에서 감히 얼굴을 가리려하다니. 어서 벗지 못해?”

결국 도희는 부끄러움을 참고 선글라스를 박양에게 맡겼다.

곧이어 무속인의 구성진 무가(巫歌)와 함께 의식이 시작됐다.

자신의 눈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 도희는 무가와 함께 귓전을 마구 때리는 장구와 꽹과리 소리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의식은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도희는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어질어질했지만 도희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내림은 순탄치 않았다.

“오늘은 더 이상 안 되겠다.”

무속인은 마음을 열어야 신이 들어갈 것 아니냐며 박양에게 좀 쉬었다가 다시 할 것이니 새벽에 도희를 다시 씻겨서 데려 오라고 시켰다.

신당 안에 박양과 단 둘이 남게 된 도희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박양이 컵라면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도희는 잠깐이라도 누워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옆에서 박양이 컵라면을 후룩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도희한테는 잠이 우선이었다.

“이년아. 왜 마음을 열지 않는 거야?”

“누군데 다짜고짜 욕을 해요?”

도희는 욕지거리가 들리는 어둠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너한테 들어갈 신령 요령(妖靈)이다.”

“신령이든 요령이든 다 귀찮아요. 나 좀 내버려둬요.”

“이 년이. 안 되겠군.”

뭔가 도희의 눈을 비집고 들어오더니 속을 파헤치듯 마구 흔들어댔다.

통증은 없었지만 겁이 난 도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꿈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서 시간이 됐다며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박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박양을 따라 나선 도희는 살을 에는 쌀쌀한 공기를 얼굴에 맞으며 어제 갔던 계곡으로 향했다.

4월이 훨씬 지났지만 산속의 새벽공기는 초겨울 못지않았다.

낮에도 그렇게 추었는데 기온이 떨어진 새벽의 계곡물은 손이 얼 만큼 차가왔다.

도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몰라 박양에게 다 그만두고 서울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무희의 엄명을 받은 박양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옷을 벗긴 박양은 사시나무 떨듯 하는 도희를 물속에 떠밀어 넣었다.

얼음이나 다름없는 물에 빠진 도희는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 쉽게 일어설 수가 없어 팔만 허우적댔다.

한참 뒤 가까스로 물가로 기어 나온 도희에게 소복을 입힌 박양은 아직 몸도 풀리지 않은 도희를 데리고 신당으로 향했다.

“좀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너무 추워서.”

“여기 있으면 더 추워. 신당에 들어가면 괜찮아질 거야.”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차디찬 새벽 공기는 도희를 사시나무 떨듯 덜덜거리게 만들었다.

신당에 도착하자 무속인과 장구와 꽹과리를 든 고수(叩首)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씻겼어?”

“네.”

“그 밑까지 깨끗이 씻기지 않고.”

“확실히 씻겼어요.”

곧이어 새벽 의식이 시작됐지만 몸에 한기가 남아있는 도희는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떨리던 몸이 평온해지더니 한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더니 조금 전까지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하던 도희는 몸을 좌우로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도희가 무아지경에 빠지는 사이 그칠 줄 모르는 무속인의 춤사위에 신당 안은 점점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시간째, 절정에 이른 신당은 세상과 단절이 된 듯 모두들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뒤 정신을 차린 도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잔뜩 움츠렸던 것과는 달리 눈가엔 살기가 돌았고 표정 없는 얼굴은 냉정함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원래는 내 몸이 상해서 이렇게 속성으로 안 하는데. 무희가 특별히 부탁해서 해 준 거니까. 가서 잘해. 아이고 죽겠다.”

지친 몸으로 마무리를 끝낸 무속인은 도희와 박양이 인사도 하기 전에 자리에 누웠다.

“감사합니다. 보살님.”

다음날 아침, 서울로 가는 도희의 자태는 사춘기 소녀가 아니었다.

지난 이틀 동안 시간을 앞질러 갔는지 검은 선글라스를 쓴 도희는 성숙한 여인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2년 같은 이틀을 보내고 역술원에 도착한 도희는 마치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전화는 받았다. 수고했다. 아직도 죽고 싶더냐?”

“아닙니다.”

“그럼 됐다. 오늘부터는 방을 따로 쓰도록 해라.”

놀랄 일이었다.

그동안 늘 자신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던 무희가 무슨 생각인지 도희가 없는 사이 방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피곤할 테니 가서 좀 쉬어라.”

그런데 무희의 말을 듣고 기분 좋게 일어나던 도희는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이 나른한 것이 방으로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무희가 마련해준 방은 조금 작긴 했지만 소형냉장고까지 있어 도희 혼자 지내기엔 충분했다.

방안을 여기저기 더듬던 도희는 벽 한쪽에 작은 신당까지 있는 것을 알고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무희가 자신을 인정한 것이고 앞으로 손님을 따로 받아도 좋다는 의미인 것이다.

같은 시각 무희의 방에선 낯선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잘 왔다. 쓸 만하더냐?”

“그런데 왜 하필 장님 이예요?”

“장님이 어때서?”

“저까지 안 보이잖아요.”

“눈이 이 모양이라 멀쩡한 애는 내가 잡아둘 수가 없어.”

무희는 얼굴을 치켜들고 하얀 눈을 번뜩였다.

무희와 대화를 한 것은 도희가 몸속에 넣고 온 요령(妖靈)이라는 귀신이었다.

오래전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 빙의를 일으켰던 요령을 거울 속에 가둬둔 무희는 요기가 범상치 않음을 알고 거울을 깨뜨리지 않는 대가로 자신과 거래할 것을 제의한 것이다.

훗날 자신이 아쉬울 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요령은 무속인의 신당에 걸린 거울에 갇힌 채 무희가 꺼내줄 날을 기다려 온 것이다.

“멀쩡했던 눈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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