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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2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2.01.10 16:57
최근연재일 :
2012.01.10 16:57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40,484
추천수 :
730
글자수 :
257,382

작성
11.09.28 19:28
조회
597
추천
9
글자
7쪽

미령(美靈)2-(11)

DUMMY

성탄절 전야인 오늘은 보나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으로 생각한 영선은 걸음을 재촉했다.

가게에 도착해 보니 엄마는 주문 받은 물건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거 어제 다 만든 거야?”

“응. 조금 있으면 퇴근시간이야. 금방 몰려 올 테니 여기 앉아서 이것들 좀 포장해.”

지은이 말한 대로 퇴근시간이 조금 지나자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선물가게는 일 년 중 오늘이 제일 바쁜 날이었다.

저녁 내내 선물을 준비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가게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덕에 매출이 평소에 비해 몇 배나 올랐지만 바닥은 손님들이 신발에 묻혀 들여온 눈이 녹아 온통 난장판이었다.

그렇게 몰려들던 손님은 시간이 9시를 넘기면서 뜸해졌다.

지은과 영선은 질척거리는 가게를 청소하느라 12시가 지나서야 셔터를 내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 온 영선은 엄마가 샤워하는 동안 손금고에서 꺼내온 돈을 정리했다.

대충 계산해 보니 평소엔 많이 팔아야 20만원이 고작이던 것이 백은 족히 되고도 남았다.

“얼마나 되니?”

“자세히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백은 넘어. 매일 이렇게 팔면 우리 금방 부자 되겠다.”

영선의 푸념 섞인 말에 지은은 빙그레 웃으며 저녁을 준비했다.

잠시 후, 몰려든 손님 때문에 미처 먹지 못한 모녀의 야식이나 다름없는 저녁이 시작됐다.

저녁을 먹으면서 영선은 아침에 혜진이 했던 말을 꺼냈다.

“엄마. 혜진이가 그러는데 새벽에 화장실 가다가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는 걸 봤다지 뭐야. 웃기지 않아?”

“너희 밤새 게임했니?”

“밤을 새우다니 새벽에 잤어.”

“어련하겠니. 그 게임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2시다. 어서 치우고 자자.”

영선은 피곤해하며 어깨를 두드리는 엄마를 대신해 설거지를 시작했다.

지은이 그냥 두하고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빠른 손을 놀리는 영선은 거의 설거지를 끝내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 어떻게 만났어?”

“아빠하고 같은 회사 다녔었어.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뜬금없는 질문에 엄마 지은은 살짝 당황스러워 했다.

그것은 영선이 아빠의 과거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아빠 영욱이 이혼을 하고 지금의 엄마 지은을 만난 것이 영선이 태어나기 전이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영선은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럼 늦은 나이에 만났나봐?”

“왜?”

“엄마 나이를 보면 마흔이 넘어서 날 낳은 거잖아?”

“그렇지.”

“그렇게 늦게 결혼 한 걸 보면 아빠 별로 인기가 없었나봐.”

“인기가 없긴. 어쩌다 보니 결혼이 늦었던 거지.”

영선이 갑작스럽게 얘기를 꺼낸 것은 신년이 되면 다가올 아빠의 제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난히 영선을 예뻐했던 아빠였기에 그만큼 아빠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은도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영욱이었기에 죽을 때까지 사랑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17년간의 사랑을 젊은 날 겪었던 아픔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다 끝냈으면 어서 자라.”

엄마의 채근에 자기 방으로 돌아온 영선은 아빠생각을 하며 멀뚱히 어둠속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아빠 많이 드세요. 엄마하고 저하고 열심히 차렸어요. 제가 아들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다음에 근사한 사위 데려올게요.”

제사상 앞에 꿇어앉은 영선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불의 연기를 맡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두 번의 절을 마친 영선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제사상 뒤에 펼쳐 놓은 병풍에서 아빠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빠!”

“우리 딸 아주 예쁘게 컸구나.”

“시장하시죠? 얼른 드세요.”

영선은 아빠가 맛있게 음식을 먹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빠는 여전히 서서 병풍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어서 앉으세요.”

“실은 같이 온 사람이 있어서.”

잠시 후 병풍 속에서 나타난 것은 낯선 여자였다.

소복차림의 여자는 눈이 부실정도로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눈을 번뜩이며 아빠 옆에 앉았다.

“영선이군요?”

“예쁘게 컸지?”

영선은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봇 본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선을 빤히 바라보던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더니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 보다니. 어쩜 이렇게 예쁠까?”

“하긴 늘 그 안에 있었으니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지. 오늘 실컷 봐.”

아빠 영욱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여자는 영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참 뒤, 식사를 끝낸 영욱은 수저를 내려놓고 여자를 채근했다.

“이제 그만 가야 돼.”

“조금만 더 보고요.”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진 영선은 여자가 끌어안는데도 거부하질 못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부아가 나기도 했지만 엄마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아가. 아빠는 내가 잘 모시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한동안 아빠와 여자가 사라진 병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영선은 엄마 지은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뭐하니? 숭늉 안올리고.”

다른 집 같으면 집안의 장손에 속하는 남자들이 올리지만 자식이라곤 딸 하나뿐인 이 집에선 영선이 아들을 대신했다.

“엄마. 방금 아빠 왔었어.”

“당연히 오셨겠지.”

“아니 그게 아니고 어떤 여자하고 같이 오셨어.”

“여자라니. 어서 숭늉이나 올려.”

“정말인데.”

그러고 보니 아빠는 뭐가 바빴는지 숭늉도 들지 않고 가버렸다.

누굴까?

주방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눈을 뜬 영선은 꿈에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아빠는 그렇다 치고 같이 온 여자는 누구지?

영선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여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데, 눈부실 정도로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여자의 하얀 눈썹과 눈동자가 어딘지 낯설지 않은 것이다.

아는 사람인가 하고 천정만 바라보던 영선은 살며시 다가와 뺨을 핥아대는 슬기의 재롱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슬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보니 주방에선 엄마가 한창 점심 겸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엄마도 어제 피곤했던 가봐. 늦잠을 잤지 뭐니.”

“그래도 돼. 엄만 만날 일만 할 거야?”

“한 푼이라도 벌어놔야 이다음에 우리 딸 시집보낼 때 한 가지라도 더 해서 보내지.”

“그냥 적당히 하면 되지. 지금까지 키워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네요.”

“엄마 마음은 그런 게 아냐.”

“그럼 평생 엄마하고 사는 게 훨씬 낫겠다.”

“싱겁긴. 어서 밥 먹자.”

영선은 슬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수저를 들면서 간밤의 꿈을 이야기했다.

영선의 얘기를 들은 지은은 아빠가 저승에서 바람이 났나보다며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영선은 밥을 먹는 동안 또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꿈에서 본 여자를 과거에 본 적이 있나 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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