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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2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2.01.10 16:57
최근연재일 :
2012.01.10 16:57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40,488
추천수 :
730
글자수 :
257,382

작성
11.09.29 22:13
조회
734
추천
11
글자
7쪽

미령(美靈)2-(12)

DUMMY

며칠 뒤 해가 바뀌고 아빠 제삿날, 평소보다 일찍 가게를 닫은 지은과 영선은 제사에 쓸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야. 슬기. 거기서 뭐해? 이리 안 나와?”

슬기는 아직 음식도 차려지지 않은 제사상 밑에 엎드려 분주한 영선과 지은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후 내내 부산거린 끝에 음식 장만이 끝나고 저녁때가 되자 영선은 엄마가 갖다 주는 음식으로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음식을 배열하는 영선은 자꾸만 꿈에서 본 장면들이 떠올라 수시로 병풍을 힐끗거렸다.

“이율조시던가? 조율이시던가.”

“벌써 4년째인데 아직도 그걸 못 외었니?”

엄마와 옥신각신하면서 음식들을 배열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상차림이 끝나고 지방을 붙인 영선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영선은 엄마가 따라주는 술을 제사상에 올렸다.

“아빠. 많이 드세요.”

절을 끝낸 영선은 제사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꿈에서처럼 아빠가 나타나진 않았다.

이런 날 집안에 친척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엄마 지은이 혈혈단신인 탓에 집안엔 여자 둘뿐 이었다.

그나마 슬기가 자근거리며 돌아다녀 조금은 적막함이 덜했다.

그런데 제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지은이 숭늉을 가지러 주방으로 갔을 때 바람에 날리듯 촛불이 살랑거리는 것이다.

영선은 어디 문이 열려있나 하고 둘러봤지만 거실 창문은 물론 주방의 작은 창문까지 모두 굳게 닫혀있었다.

한동안 살랑거리던 촛불은 지은이 숭늉을 들고 오자 살랑거림을 멈추었다.

영선은 어쩌면 꿈에서처럼 아빠가 왔다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숭늉을 정성스레 올렸다.

바로 이때 희끄무레한 것이 숭늉을 내려놓는 영선의 얼굴을 스치면서 병풍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순간, 깜짝 놀란 영선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꿈에서 본 것처럼 하나가 사라지자 또 다른 하나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엄마 봤어?”

“뭘?”

“금방 여기 나타났던 거.”

영선이 가리키는 곳을 본 지은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희끄무레한 것이 사라져버려 영선이 본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바람도 없는데 지방이 나풀거린 것이다.

“촛불 때문인가?”

“그게 아니고. 금방 여기에 희끄무레한 것이 지나갔단 말야.”

영선의 뜬금없는 소리에 지은도 한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얘가 무섭게 왜 이러니? 장난 그만해.”

엄마는 한숨 섞인 웃음을 짓고 주방으로 갔다.

“장난 아닌데.”

방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의아해하던 영선은 엄마의 채근에 상에 올렸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내렸다.

오늘처럼 제사를 지내는 날은 모녀가 진수성찬을 먹는 날이었다.

식구가 적다보니 식사는 늘 단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설거지 할 것이 많아 제삿날은 뒷정리 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저녁을 겸한 음식을 먹고 엄마가 설거지하는 동안 제기들을 정리한 영선은 겨울바람이 내는 음산한 소리에 조금 전 무엇을 본 것일까 생각했다.

“다 됐다. 늦었는데 어서 자라.”

“고생했어. 엄마.”

그런데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온 영선은 문득 뭔가 빠진 것은 허전함을 느꼈다.

슬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방에 있나하고 문을 열어보았지만 피로에 지친 엄마가 샤워하는 소리가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슬기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때, 마지막으로 베란다를 확인하고 들어오던 영선은 섬뜩한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베란다와 소파 사이 빈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것을 봐서 찜찜했던 영선은 살짝 겁을 먹고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가운데 그 좁은 틈에서 보인 것은 슬기의 엉덩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창 신이 난 슬기가 뭔가를 열심히 물어 뜨고 있는 것이다.

“아유 깜짝이야. 너 뭐하니?”

영선이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슬기는 입에 작은 종이쪼가리를 물고 있었다.

“뭐야? 이건.”

영선이 뺏어보니 제사 때 썼던 지방쪼가리였다.

“어쩐지 뭔가 빠졌다 했지. 비켜 봐.”

생각해보니 제사가 끝나고 바로 태웠어야 하는데 그것을 깜박한 것이다.

슬기가 있던 구석을 들여다보니 소파 팀에 갈기갈기 찢어진 지방조각들이 즐비했다.

영선은 엄마가 보기 전에 그것들을 쓸어 모아 베란다에서 모두 태워 없앴다.

지방을 태우는 것은 제사 때 왔던 혼령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던 영선은 혹시 아빠가 보고 서운해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영선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며칠 전 꿈에서 보았던 여자의 얼굴이 생각나 오싹하기까지 했다.

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여자의 모습을 현실에서 떠올리니 소름이 돋았다.

영선이 이런 방학을 보내는 사이 무희와 살고 있는 도희는 차츰 현실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희의 수발을 들면서 옛날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익혀 이제는 역술원 안을 혼자 돌아다닐 정도로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무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전처럼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네 몸 하나는 건사하겠구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널 담금질 할 거다. 그런데 너나 나나 소경이 쓰는 점자를 모르니 무조건 듣고 외울 수밖에 없다.”

그날부터 무희의 가르침이 시작됐지만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용어들은 외국어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하루 네댓 시간씩 계속되는 강의를 일일이 듣고 기억해야 하는 도희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럴 때 눈이 보였더라면 노트에 받아 적었겠지만 도희는 또 한 번 눈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한때는 MP3라도 장만할까 했지만 도희에겐 그 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년아. 그런 잡스런 것에 녹음해 놓는다고 네 골통 속에 들어간 다더냐? 이 년이 어디 신성한 것을 날로 먹으려고 해?”

한편, 더 이상 혜진에게 접근할 수 없게 된 교아와 패거리들은 새로운 자금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만큼 사는 집 아이들은 옛날의 자신 못지않은 배경 때문에 섣불리 손 댈 수도 없었다.

더구나 마정의 아버지가 다짐한 일도 있고 하여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아 모이는 것을 자제해 왔던 마정은 1인자이긴 했지만 교아처럼 좌중을 압도하진 못했다.

이를 답답해하던 교아는 툭하면 1인자 자리를 자신에게 양보하라며 마정의 심기를 거슬렸다.

그러나 이미 날개를 잃은 교아의 요구는 마정의 코웃음밖엔 되지 못했다.

“주제에 어딜 나서. 감히. 그럴 시간 있으면 아버지 면회나 가지 그러니?”

마정 빈정거림은 그렇지 않아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아버지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 교아의 속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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