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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카노
작품등록일 :
2022.05.14 21:10
최근연재일 :
2022.06.12 03: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78
추천수 :
257
글자수 :
166,889

작성
22.05.30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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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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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오래된 추억 (4)

DUMMY

작은 절벽은 바위에 피가 적셔진 것처럼 붉었다.

그 절벽의 옆으로는 우거진 소나무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알겠느냐?”


아이는 강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강운은 커다란 바위를 하나둘 뛰어올랐다.

아이도 그의 발소리를 따라 바위를 겨우겨우 기어서 올라갔다.


그러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아이의 눈에 보였다.


“너는 이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저 나무를 바라보며 단서가 굴러올 때까지 기다리거라. 나는 다른 마을에 다녀와야겠다.”


아이는 싫은 표정을 짓다가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근처에 앉아서 나무를 바라봤다.


“이러고 있으면 단서가 굴러온다고?”


절벽을 내려가려던 강운은 아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 데굴데굴 굴러서 네 앞으로 올 게다. 직접 다른 마을까지 찾아가는 것보다 좋지 않더냐. 꼭 해가 지고나서 내려가야 한다.”


그는 평소처럼 느긋이 웃으며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아이는 작게 한숨을 쉬고 계속해서 나무를 올려봤다.

그 커다란 나무는 적어도 몇십 년은 살아온 듯 했다.


아이는 하염없이 그 나무를 바라봤다.

하지만 단서가 굴러오기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지. 돌아가자.’


아이는 해가 다 지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절벽 아래를 내려봤다.

높은 곳에서 본 마을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그 노을을 잠시 바라보다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내려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강은비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달려갔다.


― 촤악,


대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물을 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더 뿌려라.”


― 촤악,


어느 시종이 우물의 물을 길어서 강은비에게 뿌렸다.

강은비의 옷은 몸에 달라붙을 정도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며 물을 뿌리라고 지시하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자, 잘못했어요. 소녀는···”

“시끄럽다!”


― 촤악.


시종은 강은비의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강은비에게 물을 부었고,

강은비는 계속해서 사과했다.


아이의 눈에는 앞세계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이것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의미 없는 괴롭힘이다.


아이는 처음으로 화가 났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단 한 명의 소녀가 괴로워하고 있다.

그걸 보고도 못 본 체한다면···


아이는 움직였다.

죄를 저질러 더러움이 번진다고 해도 괜찮았다.

지금은 강은비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이가 발을 움직이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이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폴짝 뛰어서 우물의 난간에 올라갔다.

쿵, 우물에 붙어있던 돌들이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뭐, 이게 왜 떨어진 게야.”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님.”


아이는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입을 벌리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머리에 피가 쏠려 눈이 충혈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다.


“저건 뭐냐!”


강은비의 어머니가 아이를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이의 머리에서 뿔이 자라났을 무렵이었다.


“도, 도깨비다!”


시종이 아이를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강은비의 어머니도 몸을 덜덜 떨며 겁에 질린 얼굴을 했다.


아이는 더 이상 이성을 잡을 수 없었다.

혐오스러운 인간을 찢고 밟아서 삼켜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식욕이었다.


“이래서 해가 지고 나서 가라고 했거늘.”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강운이었다.

강운은 으르렁거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야. 화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과 너는 상성이 좋지 않다.”


아이는 가까이 다가온 강운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이성을 놓아버린지라, 누가 누구인지도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운은 왼팔을 내어줬다.

그의 왼팔이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물렸다.

하지만 강운은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네 의의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식히고 오너라.”


강운은 부채를 들고 있던 오른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톡 쳤다.

그러자 아이는 힘없이 뒤로 밀려나고, 우물 안으로 퐁당 빠져버렸다.


“운아!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방금 그것은 또 뭐냐!”


강운은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강은비의 상태를 살폈다.

강은비는 열이 나고 있어서 얼굴이 새빨간 홍당무처럼 되었다.


“미안하구나. 지금은 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강운이 강은비를 안아서 방으로 데려가며 시종에게 말했다.


“이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거라.”

“예!”


강은비를 안고 있는 강운과 시종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굵은 목소리를 가진 중년 남자가 그들을 불러세운 것이다.

그는 남매의 아버지다.


“아버지.”


그는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설명해야 할 게다.”

“알겠습니다.”


강운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긴장한 어머니를 데리고 둘의 방으로 들어갔다.

강운은 그들이 다른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강은비와 시종을 방에 데려갔다.

그리고 혼자 방에서 나와 아이가 떨어진 우물 아래를 바라봤다.


아이는 어두운 우물 속에서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무겁지도 않은데 계속 아래로 가라앉았다.

게다가 숨을 쉬지 않는지, 산소 거품도 올라오지 않았다.


“네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 기억하거라. 그리고 그 원인을 제대로 해소하려면 뭘 해야 했는지도 생각하거라.”


강운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 우물에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이야. 네가 은비 앞에서 누군가를 죽였다면,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 것 같더냐. 고마워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되었다. 분명 은비는, 아니 은비만 포함되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 널 괴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강운은 터벅터벅 우물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의 부모가 들어간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생각했다.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강은비를 지켜줬을까.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의의를 찾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생각하던 아이는 밤이 되어서야 우물을 헤엄쳐 나왔다.

화는 가라앉았지만, 머리만 지끈지끈 아팠다.


“난···”


아이는 앞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뒷세계에서 살아가는 도깨비도 아니고, 요괴나 귀신도 아니었다.


‘그럼 난 대체 뭐야?’


강은비가 물을 맞던 곳에 큰 웅덩이가 고여있었다.

아이는 그 웅덩이에 비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검은 머리, 색이 빠져서 하얗게 변해버린 눈···

아까 생겼던 뿔은 어느새 없어졌다.


‘난···’


아이는 대문을 지나 집을 나갔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가 보이던 절벽 위로 터덜터덜 올라갔다.


밤이라서 그런지 나무는 낮에 봤을 때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단서는 데굴데굴 굴러서 온다.’


아이는 다시 근처에 앉아서 나무를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강운이 아무 의미 없이 말하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낮에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밤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도깨비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이에게 다가오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아이는 쓸쓸했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아침이 되어 해가 뜰 무렵에 강운은 아이를 찾아 나무의 앞에 왔다.

나무를 보다가 잠들어버린 아이의 옆에는 몸이 약한 도깨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 위험한 인간이 왔다.

― 도망가자.


그들은 강운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강운은 부드럽게 웃다가 아이의 몸을 흔들며 깨웠다.


“아이야. 해가 중천이다. 일어나거라.”


아이는 끔뻑 눈을 뜨고 하품했다.

그리고 불만을 토해냈다.


“단서가 안 굴러오잖아.”


강운은 후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분명히 굴러왔었다. 허나 내가 쫓아낸 모양이구나.”


강운은 풀숲을 바라봤다.

눈만 보이던 작은 도깨비들이 흠칫 놀라며 이리저리 도망갔다.

아이도 그들의 발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려 그 광경을 목격했다.


“뭐야?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강운은 커다란 나무를 바라봤다.

커다란 나무에 달린 잎이 바람을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 나무의 앞으로 가자구나. 조금만 더 하면 용을 찾을 수 있을 게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앞장서서 나무의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나무는 아이보다 20배는 컸다.


“나무에 손을 얹어보거라.”


아이가 그 나무에 손을 얹자, 아이의 손바닥에서 환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에서 나오는 따스한 온기가 아이의 몸에 휩싸였다.


“눈을 감고 나무의 기억을 읽어보거라.”


아이는 그 말을 따라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상은 그 어떤 빛보다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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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작은 산의 거울 (1) 22.06.07 2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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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추억 (4) 22.05.30 2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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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행운은 어디에 (1) 22.05.24 29 0 10쪽
15 게임 속 세상 (fin) +2 22.05.23 33 0 11쪽
14 게임 속 세상 (2) 22.05.23 31 0 10쪽
13 게임 속 세상 (1) 22.05.21 35 0 10쪽
12 첫사랑은 언제나 (fin) 22.05.21 29 1 12쪽
11 첫사랑은 언제나 (2) 22.05.20 32 2 10쪽
10 첫사랑은 언제나 (1) 22.05.19 41 2 10쪽
9 앞과 뒤 (fin) 22.05.19 48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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