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작은 서재

소원을 이뤄주는 카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KN카노
작품등록일 :
2022.05.14 21:10
최근연재일 :
2022.06.12 03: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690
추천수 :
257
글자수 :
166,889

작성
22.05.21 03:06
조회
29
추천
1
글자
12쪽

첫사랑은 언제나 (fin)

DUMMY

“가, 감사합니다···”


담백하고 기름진 고기를 먹으며 흘깃 J를 바라본 유미래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시선에 당황한 그녀는 고기를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켜버렸다.


“아, 저기 안 드세요?”

“널 보고 있는 걸로도 만족해.”


J는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인지 유미래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쳤다.


유미래는 이제 J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얼굴은 계속해서 붉으락푸르락하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와인은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남자가 웨이터 연기를 충실히 하면서 가끔 말을 걸어올 때가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둘 다 음료수면 돼.”

“알겠습니다.”


남자는 와인 대신 포도 주스를 와인잔에 따라주며 유미래의 귀에 속삭였다.


“만족하셨나요?”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유미래의 귀에 꽂혔다.

그의 말은 유미래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았다.


유미래는 그렇다고 대답하면 이 꿈같은 시간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아··· 아니요.”


남자는 유미래의 표정을 잠시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J가 있는 곳으로 가, 똑같이 포도 주스를 따랐다.

J에게는 따로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아직인가···”


하지만 J는 마치 유미래가 남자의 말을 부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J가 아무리 싫어한다고 해도 유미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것은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이고, 집착이었다.


“저기, 저희 다른 곳도 가봐요. 이런··· 고급스러운 곳 말고도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 데이트도 해보고 싶어요!”


J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미래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


“그렇습니까. 그럼 다른 장소로 이동하도록 하죠. 영화관은 어떠신가요?”


영화관, 유미래가 생각해도 커플들이 자주 가는 곳이긴 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면 꼭 커플 한둘은 같은 영화를 보곤 했으니까 말이다.


“좋아요! 영화 보러 가죠!”


유미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시야는 흐릿하게 변해갔다.


유미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영화관 안이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광고가 흘러오고 있었다.


‘이런 것까지 디테일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유미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옆자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유미래의 옆에 J는 보이지 않았다.


‘어? 뭐야, 어디 가셨지?’


유미래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영화관에 달린 출입구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천천히 열리는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 찾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새까맣게 늘어진 긴 머리에 땅에 닿을 정도로 길고 뾰족한 손톱.

그것은 어느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째진 입으로 미소를 지었다.


― 아하하, 하하하하!


그것이 갑자기 유미래를 향해 달려왔다.

삐걱거리는 긴 몸으로 성큼성큼 좌석을 넘어 달려오는 그것을 피하고자, 유미래는 의자 사이를 빠져나갔다.


쿵, 쿠득···

그것이 지나가는 곳은 손톱에 긁혀지고 힘에 눌러져 성한 곳이 없었다.


그것을 피하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유미래는 결국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낄낄 웃으며 유미래의 앞에 다가왔다.


“사, 살려···”


푸욱―.

유미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친 곳은 없나?”


다정한 J의 목소리를 듣고 유미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 이상한 것은 없어지고 대신 J가 유미래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유미래는 그의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나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어, 아까 그건···”


J는 갑자기 유미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계단을 올라 출입구가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이야기는 나중에, 지금은 일단 자리를 피하자. 세상이 틀어지기 시작했어.”

“틀어진다니요?”


유미래는 J와 함께 출입구를 나갔다.

그리고 문밖의 세상은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위는 온통 검은 하늘이었고 아래에는 사람이 아닌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어? 잠깐만···’


그녀는 이런 풍경을 글로 읽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도 언급했었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지옥으로 환생했다.’에서 나오는 무너진 도시의 모습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나?”


유미래는 잡은 J의 손을 꽉 쥐었다.


“소설 속에서 봤던 장면이에요. 그 있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말했던 거요.”


J는 잠시 주변을 보며 고민하더니 유미래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서 걸었다.

주변에 이상한 괴물들이 많았지만, K와 함께하는 덕분인지 아까처럼 유미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은 없었다.


“과거에 이런 소원을 빈 사람이 있었어. ‘하루라도 좋으니까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소원.”


J는 길을 걸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미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Cafe: Cog는 그 소원을 이뤄줬지. 그 사람을 위한 거짓 세계를 만들어줬어. 그런데 그 사람이 욕심이 생긴 거야.”


J는 어두운 골목 앞에서 멈춰서 유미래를 돌아봤다.


“그 사람이 빈 소원대로 제한 시간은 하루였어.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세계를 빠져나가고 싶지 않아서 이 세계에 숨어버렸지.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어?”


어찌 보면 유미래와 같은 상황이었다.

유미래는 사랑을 알고 싶다는 소원만 빌었을 뿐이었다.

그와 이어지고 싶다는 소원이 아니었는데도 욕심을 부려서 이곳에 남았다.


유미래는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졌다.


“어, 어떻게 됐는데요···?”


J는 한숨을 내쉬다가 시선을 아래로 돌리고 말했다.


“자기가 원하던 세계에서 지옥 같은 경험을 하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어.”


무관심하게 내뱉어진 그 말은 유미래의 마음을 철렁 가라앉혔다.

자기 자신도 저렇게 될 거로 생각하면, 남자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하던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

유미래는 겁에 질려있었다.


“저,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걸까요?”

“없긴 왜 없어. 그 녀석을 찾아서 돌아가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 어디서 낄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이 와중에도 유미래의 심장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J만 보면 이렇게나 가슴이 울리는데, 어떻게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괜히 아니라고 대답해서···’


그녀의 한 대답 때문에 J마저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닌가.

이대로 남자를 찾지 못한다면 J가 말했던 것처럼 영영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유미래는 만약 그 된다면 죄책감에 못 이겨서 성불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 다 했으면 찾으러 가자. 이러고 있을 시간에 빨리 그 녀석을 찾아서 패버려야지.”


유미래는 이런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고 강하게 있을 수 있는 J가 부러웠다면 부러웠다.

그래서일까, J처럼 힘을 내보고 싶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먼저 한다면 그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닮아지고 싶단 말이야. 그만큼 가까워지고 싶고···’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하며 J와 유미래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사람이 아닌 것들이 어디를 가든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데이트는 즐기고 계시나요?”


그리고 그 괴물들의 사이, 전봇대에 올라가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은발의 남자였다.


“이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야? 빨리 여기서 나가게 해줘.”


J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화를 내자, 남자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보였다.


“소원은 이미 이뤄졌는데도 이곳에 남고 싶다고 생각한 건, 거기 계신 그녀가 아닌가요.”


남자는 싸늘한 눈동자로 유미래를 바라봤다.

그것은 마치 육식동물이 먹잇감을 보는 눈이었다.


“너, 이 녀석을 먹을 생각이었나?”


J가 그렇게 말하자, 유미래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J의 말을 넘겼다.


“무슨 소리인가요? 그건 큰 오해예요.”


J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화난 표정을 풀었다.


“그래, 네가 사람을 먹을 리가 없지. 그럼 이 상황은 뭐지?”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유미래를 가리켰다.

유미래는 자기 자신이 가리켜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에요.”


‘원했다고···?’


남자는 전봇대에서 뛰어오르더니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터벅터벅, J와 유미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J 씨가 돌아봐 주길 원해서, J 씨도 자신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죠?”


유미래는 가시가 돋친 남자의 말에 찔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는 것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된 거예요. 무서운 소설 속 상황이라면, 어쩌면 여자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럼 어떻게 돌아갈 수 있지?”


J의 질문을 들은 남자는 유미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눈을 마주했다.


“소원이 이뤄졌다고, 더 이상 이곳은 필요 없다고··· 당신이 말씀하시면 됩니다.”


유미래는 떨리는 몸과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한마디만 하면 없어질 환상의 세계다.

그녀의 한마디 말이면 영원히 사라질 곳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곳은 이제 필요 없어요!”


자신의 두 번째 소원을 포기했다.

그러자 세상은 새까맣게 타기 시작했다.

유미래의 시야에서 모서리부터 점점 검은 그림자가 올라왔다.


유미래는 눈을 질끈 감고 모든 것이 끝나길 빌었다.


···


유미래가 정신을 차리자, 주변이 카페의 배경으로 변했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부스스 눈을 비비고 카페에 달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녁노을의 빛을 받는다.

거짓된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유미래는 옆을 바라봤다.

J는 보이지 않았다.


“J 씨라면 일어나자마자 카페를 나가셨습니다.”


유미래는 이 착잡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고백도 안 해봤는데 차인 느낌이 이런 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죠.”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에 놓인 종을 쓸어 만졌다.

그것은 J를 부를 때 사용하던 종이었다.


“당신과 그는 분명하게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또다시 만날 일이 오겠죠. 그것도 머지않은 미래에 말이에요.”


유미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를 머지않은 미래에 만날 수 있다니, 그것이 거짓된 정보라고 해도 그렇다는 말만 들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유미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영감도 충분히 얻었어요! J 씨를 만나기 전에 더 멋진 어른이 될게요!”

“네, 그러도록 하세요.”


유미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생각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J를 만난다면 도와줬던 은혜도 값을 겸, 그의 마음을 흔들어보겠다고···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완벽한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며 카페를 나갔다.


「 첫사랑은 언제나 환상과도 같아서 」

fin.


작가의말

유미래 에피소드도 끝이 났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도 기대해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원을 이뤄주는 카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좀 더 공부하고 돌아오겠습니다 22.06.15 20 0 -
공지 22화, 오래된 추억 (4)부터 글 쓰는 방식을 조금씩 고쳐가고 있습니다. 22.05.30 32 0 -
36 오두막 (fin) 22.06.12 22 0 11쪽
35 오두막 (1) 22.06.11 16 0 11쪽
34 은하수를 만나고 싶은 남자 (fin) 22.06.11 18 0 11쪽
33 은하수를 만나고 싶은 남자 (1) 22.06.09 19 1 9쪽
32 산불 22.06.08 22 1 10쪽
31 작은 산의 거울 (fin) 22.06.07 21 0 14쪽
30 작은 산의 거울 (1) 22.06.07 22 2 10쪽
29 새로운 얼굴 (fin) 22.06.05 19 0 11쪽
28 새로운 얼굴 (2) 22.06.05 18 2 9쪽
27 새로운 얼굴 (1) 22.06.04 20 3 11쪽
26 어린 여우와 가족 (fin) 22.06.03 25 0 13쪽
25 어린 여우와 가족 (2) 22.06.01 31 0 10쪽
24 어린 여우와 가족 (1) 22.05.31 23 2 11쪽
23 오래된 추억 (fin) 22.05.30 27 3 11쪽
22 오래된 추억 (4) 22.05.30 22 3 9쪽
21 오래된 추억 (3) 22.05.28 23 0 9쪽
20 오래된 추억 (2) 22.05.28 22 0 10쪽
19 오래된 추억 (1) 22.05.27 26 0 10쪽
18 행운은 어디에 (fin) 22.05.27 26 0 11쪽
17 행운은 어디에 (2) 22.05.26 26 0 10쪽
16 행운은 어디에 (1) 22.05.24 29 0 10쪽
15 게임 속 세상 (fin) +2 22.05.23 33 0 11쪽
14 게임 속 세상 (2) 22.05.23 31 0 10쪽
13 게임 속 세상 (1) 22.05.21 37 0 10쪽
» 첫사랑은 언제나 (fin) 22.05.21 30 1 12쪽
11 첫사랑은 언제나 (2) 22.05.20 33 2 10쪽
10 첫사랑은 언제나 (1) 22.05.19 42 2 10쪽
9 앞과 뒤 (fin) 22.05.19 48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