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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재

소원을 이뤄주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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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카노
작품등록일 :
2022.05.14 21:10
최근연재일 :
2022.06.12 03:1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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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글자수 :
166,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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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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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게임 속 세상 (fin)

DUMMY

― 749번째 죽음, 축하드립니다.


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다리를 움직여 처음부터 다시 자신을 키워갔다.


‘이번엔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몬스터의 패턴을 파악한 상태였다.

모든 던전의 공략은 이미 머릿속에 들어왔고, 강한 무기를 얻는 방법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마왕 성의 99층을 지키고 있는 미노타우르스만 쓰러트리면 도착인데, 이번엔 작은 실수로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휘두르기만 피했더라면···’


그는 이미 죽음이 익숙해졌고, 이제는 공략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프고··· 힘든 것은 힘든 법이었다.


‘이번엔 꼭 깨자. 근데 왜 마왕을 쓰러뜨려야 했더라···’


그에겐 더 이상 목적의식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이 쓰레기 게임을 클리어해서 하늘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의 코를 짓눌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박민혁은 최단루트로 마왕 성에 도착했다.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레벨은 99, 더 이상 올라갈 수 있지도 않았다.


1층··· 2층··· 박민혁은 순식간에 마왕 성을 올라갔다.

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높아서, 꼭 탑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99층의 미노타우르스.


“이곳까지 찾아온 인간은 처음이다. 경외를 삼도록 하지. 하지만 그것도 이것까지다.”


이미 외워버린 그 대사를 외치는 미노타우르스가 양손에 도끼를 들었다.

코로는 불을 내뿜고, 커다란 뿔은 번개를 내리친다.


박민혁은 무겁고 거대한 검을 들고도 그 공격을 전부 다 피해버렸다.

그 속도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99층, 28번째의 도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미노타우르스의 무거운 몸이 바닥에 떨어지고, 붉은 피가 온 세상을 덮었다.


‘스피드에 조금 더 투자해서 다행이야.’


박민혁은 터벅터벅, 미노타우르스가 지키던 거대한 문에 손을 댔다.

자기보다 10배는 더 큰 문이었지만, 그가 살짝 밀기만 해도 손쉽게 열렸다.


― 짝, 짝···


그 문이 열리자마자 느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긴 복도 같은 거대한 방의 끝에 앉아있는 것은 거대한 뿔을 단 한 남자였다.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드디어 찾아주셨군요. 몇 번이나 세계를 재시작하셔야 성이 풀리시는 건가요.”


그가 앉아있는 거대한 의자의 주위에는 누에고치 같은 것이 몇 개나 놓여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당신의 시체입니다. 회수하는 것도 꽤 힘들더군요.”


박민혁은 드디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냈다.

첫 번째 죽음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말했던 것.

그것은 ‘마왕을 죽이면 저주가 풀릴 것’이라고 했던 그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목소리랑 똑같아. 매번 매번 죽을 때마다 나를 놀리던 그 목소리··· 그것도 네 목소리었냐?”


마왕은 크게 웃었다.

이 커다란 방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던 마왕은 투명한 눈동자로 박민혁을 바라봤다.


“그렇습니다. 목소리를 기억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마왕은 의자에서 일어나, 박쥐 같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천장이 높은 덕분에 하늘에 있는 마왕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당신의 저주는 풀어드리겠습니다.”


마왕이 박수를 두 번 치자, 박민혁의 발 주위로 새하얀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이 사그라질 때쯤에 마왕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부터 당신은 죽으면 무로 돌아갈 겁니다. 미리 축하드려요.”


마왕은 기뻐하라고 말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박민혁은 이 상황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기쁘겠냐?”

“어이쿠, 기쁘지 않은 표정이군요. 좀 더 기뻐해 주시길 바랐는데.”


마왕은 하늘에서 내려와, 살포시 박민혁의 맞은편에 착지하더니 허공에서 거대한 검을 꺼냈다.

하얀 불꽃이 붙어있는 독특한 마검이었다.


“준비는 되셨나요?”


마왕이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바로잡았다.

그가 준비 자세를 취하는 동안, 박민혁은 지금이 기회라고 여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까다로운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런 야비한 행동을 쓰는 것도 공략의 일부였다.


박민혁의 검은 용이 지키고 있던 독이 담긴 검.

그 어떤 상대라도 한 번 맞으면 독의 피해를 받게 되는 검이다.


마왕이 그것을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 검의 독이 검을 들고 있는 팔에 스쳤다.

마왕의 창백한 피부는 조금씩 썩어갔다.


“좋은 검을 얻으셨군요. 역시 실력은 어디 안 가네요.”


마왕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반대 손에 들었다.

이것은 턴제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여유롭게 웃고만 있었다.


박민혁은 이를 갈며 다시 달려갔다.

검을 바닥에 긁히지 않을 정도로만 아래로 내리고 달려가서 아래에서 위로 마왕을 공격했다.


하지만 마왕에게 그 공격은 닿지 않았다.

마왕은 날개를 이용해서 하늘로 뛰어올라, 저 멀리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자 박민혁은 손을 펼쳐서 소리쳤다.


“파이어!”


그의 손바닥에서 붉은 마법진이 생기더니 붉은 불이 붙은 운석이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불타는 운석은 그대로 마왕의 날개에 스쳤다.


“마법. 그 짧은 시간 동안 마법도 익혀오신 건가요.”


마왕은 날개에 붙은 불을 툭툭 털어내고는 진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구경은 끝났습니다. 저도 놀아볼까요.”


마왕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더니 순식간에 박민혁의 앞에 나타나 하얀 불이 붙어있는 검으로 그를 내리찍었다.

박민혁은 겨우 자신의 검으로 그 검을 막아냈지만, 마왕의 검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같이 느껴졌다.


마왕은 날개를 펼쳐서 뒤로 물러난 다음에 그를 놀리려는 듯이 웃었다.


“다음 공격은 하늘에서 떨어질 예정입니다. 진짜 마법을 보여드릴게요.”



마왕이 손을 뻗어 천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천장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와장창 무너져 버렸다.


부서진 천장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하늘이 붉은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유성우들이 하늘을 붉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곧바로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왕은 터벅터벅 박민혁에게 다가오더니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 존재한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민혁을 지나쳐, 자신이 앉아있던 거대한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봤다.


“이것이 당신이 원하던 이 게임의 엔딩입니다.”


그 붉은 유성우는 그대로 박민혁의 머리 위로 떨어져···

세상을 붉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그 어떤 게임보다 허무한 엔딩이었다.


박민혁은 생각했다.

약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없었고,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박민혁은 느꼈다.

이세계를 원하던 과거가 싫어졌고,

게임 속 세계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자신이 싫어졌다.


박민혁은 후회했다.

어머니가 도와줄 때 뭐든 해볼 걸 그랬다고,

그 무슨 일이든 이 썩은 세상을 구하는 일보다는 쉬울 거라고···


‘아··· 엄마 보고 싶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빌었습니다.”


박민혁은 눈을 떴다.

이곳은 어느 카페의 안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자신과 방금까지 싸우던 마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접시를 닦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박민혁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빈 것은 ‘아들이 방에서 나와 현실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


달그락···

박민혁이 컵을 내리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의 어머니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박민혁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기 직전에 남자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그녀의 소원은 단순한 방법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니까요.”


남자는 냉장고에서 작은 젤리가 담긴 접시를 꺼내서 박민혁의 앞에 내어줬다.

게임에서 봤던 마왕과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 모양의 젤리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


남자는 젤리 주변에 하얀 생크림을 뿌려서 장식했다.


“그리고 당신의 망상을 부숴줄 또 다른 망상이었습니다.”


남자는 작은 포크를 박민혁에게 내어줬다.

그리고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주문하신 ‘현실’입니다. 당신이 망상에서 빠져나와 다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생각해보니 그 세계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을 안 먹고 살았지···’


박민혁은 홀린 듯이 포크를 들어, 젤리를 조금 잘라 생크림에 찍어 먹었다.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맛이 났다.


부드럽게 퍼지는 생크림의 달콤함과 포도의 향기였다.

게임 속 세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익숙한 맛이었다.


“아직도 게임이 좋니?”


그의 어머니가 물어왔다.

그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게임이 이제 지긋지긋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어머니를 미워하고 싶었다.

그 세상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죽음을 경험하게 된 것은 결국 어머니의 소원 때문이니까.


그렇다고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런 소원을 빈 것은 결국 자기 때문이니까.


그래서 박민혁은 두손 두발 다 들기로 했다.


“내가 졌어. 뭐든 여러 번 죽는 것보다는 쉽겠지. 학원이라도 다녀볼게.”


박민혁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당신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언젠가 그것과 만날 날이 오겠죠. 그때는 부디, 지금 이 기분을 잊지 않기를 빕니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줬다.

그것이 작별 인사라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근데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뭐야.”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만, 비가 오잖아! 빨리 돌아가자!”


카페의 문을 열어보던 박민혁의 어머니가 박민혁의 팔을 붙잡고 달려갔다.

박민혁은 카페를 나가면서도 몇 번이고 카페를 돌아봤다.


‘어쩌면··· 게임 속 세상에 가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을 겪은 걸지도 모르겠어.’


「 게임 속 세상과 현실 세상 」

fin.



남자는 박민혁이 나간 카페의 문을 닫았다.

손님이 나가자마자 숨어있던 토끼들이 나와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저도 그 공간에 가보고 싶었어요!”

“나도나도!”


남자는 천천히 눈을 뜨고 토끼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당신들이 갔으면 그에게 몇 번이고 죽었을 겁니다. 아직은 약하고 어린 도깨비니까요.”

“에이~”


남자는 그들이 두고 간 접시와 컵을 가지고 싱크대로 갔다.

덜그럭, 쏴아아··· 식기 도구를 씻는 소리가 카페에 퍼졌다.


“그럼 저 인간에게 준 선물은 뭔가요?”

“맞아 맞아! 그게 궁금해요!”


덜그럭, 덜그럭···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설거지를 이어갈 뿐이었다.


“대답 안 해주시네~”

“또 다음 이야기에서 해주실 모양인가 봐!”


토끼들은 서로서로 마주 보며 꺄르륵 웃었다.

평화롭지만, 비현실적인 현실의 톱니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박민혁 에피소드가 끝이 났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뭘까요? 힌트는 기자입니다!

그럼 다음 에피소드에서 만나요!


(수정)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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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행운은 어디에 (1) 22.05.24 29 0 10쪽
» 게임 속 세상 (fin) +2 22.05.23 34 0 11쪽
14 게임 속 세상 (2) 22.05.23 32 0 10쪽
13 게임 속 세상 (1) 22.05.21 37 0 10쪽
12 첫사랑은 언제나 (fin) 22.05.21 30 1 12쪽
11 첫사랑은 언제나 (2) 22.05.20 33 2 10쪽
10 첫사랑은 언제나 (1) 22.05.19 4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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