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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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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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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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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7.01.11 18:48
조회
422
추천
11
글자
10쪽

엽인들 [친우..형]

DUMMY

애초에 성립이 되질 않는 싸움이었다. 엄청난 운동량 덕에 보디빌더같이 큰 근육과 힘을 가지게 되었다지만, 상대는 포식자의 사냥을 업으로 여기며 살아온 엽인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타이틀 중 동방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겸양에 불과할 정도로 강력한 초인이었으니..


‘오너라.’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을뿐더러 눈이 돌아가도 한참을 돌아간 명진이 그에게 도전한다는 건 그냥 자살행위였다. 온몸의 힘을 실은 주먹을 우악스럽게 휘둘러대는 저런 미친 짓 같은 것 말이다.


“좋구나.”


양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뻗어 오는 주먹을 가만히 지켜보던 관장은 불쑥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부드럽게 손을 뻗어 명진의 오른쪽 주먹을 장난하듯 쉽게 붙잡았다.


‘..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당황한 명진이 관장의 손에서 주먹을 빼내려고 어깨를 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할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는 두 가지 단어의 의미를 새기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그는 나지막이 말하며 손아귀를 움켜쥐어 주먹을 으스러뜨렸다. 뼈가 마치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것을 보고 들은 명진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터트렸지만, 관장은 처음과 같은 어조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인간의..”


말을 끝냄과 동시에 움켜쥔 손에 힘을 배가하자 붙잡힌 주먹의 근육과 피부가 악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찢어졌다. 목청이 터지라 비명을 질러대는 명진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관장은 피로 물든 손을 활짝 펴서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준다 싶더니, 손바닥으로 부서진 주먹을 그대로 강타해버렸다.


“나약함이다.”


겉보기에는 주먹을 살짝 미는 것처럼 보인 타격은 놀랍게도 팔의 근육과 관절을 모조리 부숴버린 뒤 어깨까지 탈골시켰다. 골육이 파열되는 끔찍한 통증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주춤주춤 물러서던 명진은 아예 짓이겨진 팔을 보며 절망을 뱉었다.


“아니야.” 몸의 일부를, 그것도 팔을 잃게 된 현실을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피범벅이 된 팔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 나오자 괴성을 질러대며 관장에게 돌진해갔다.


“이 미친 새끼야!”


그는 황소마냥 돌진해 가 상대의 머리를 향해 왼 주먹을 휘둘렀다. 같은 꼴을 또 당하게 되리라는 기본적인 판단조차 하지 못한 채 달려드는 부나방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흘린 관장의 신형이 작게 흔들린다 싶더니, 명진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어..?”


안쓰러울 정도로 한심한 의문을 흘리던 그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온다.


단 한 걸음!

명진의 좌측으로 나란히 서다시피 전진하며 적의 사각으로 이동한 관장이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서 그의 왼쪽 눈으로 검지를 밀어 넣은 것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뿌리까지 파고들어간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굽혀서 헤집고 검지를 뽑아내자, 끈적하고 투명한 액체에 휩싸인 눈알이 선홍빛 핏물과 함께 딸려 나온다.


“안..돼, 안 돼!”


팔에 이어 한쪽 눈마저 상실하고만 젊음은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짓눌린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나 관장은 그 마저도 용납할 수가 없었나 보다. 눈알을 뽑아낸 손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붙잡아 올리고 반대쪽 주먹으로 왼쪽 허벅지 뒤를 가격했다. 마치 무쇠해머에 직격당한 듯 둔탁한 소음이 명진의 뇌리를 울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진다. 하지만 죽음의 속삭임은 끝난 게 아니었으니..


“두 번째는..”

“그..만, 제발..”


사지육신을 부수는 폭력 앞에서 이미 훨훨 날아가버린 분노를 뒤로한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자비를 구걸하자, 관장은 알겠다는 듯 겨드랑이를 움켜쥔 손으로 그를 슬쩍 밀어냈다. 절뚝거리며 두어 걸음 휘청인 명진이 왼쪽 허벅지를 움켜쥐고 흐느낄 때, 어느새 성큼 따라붙은 관장이 장난처럼 다리를 휘둘렀고 칼날로 화한 발끝이 명진의 종골건, 왼발목 뒤쪽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렸다.


‘제..발.’


이제는 비명 지를 힘조차 없어 반쯤 벌린 입으로 신음하는 명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애처로웠지만, 관장이 그린 파괴의 흐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처음과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는 대가다. 모든 일에는 합당한 대가가 따른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더한 고통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참하게 망가진 다리로 바닥을 디뎠다가 극통에 놀라 반사적으로 발을 치켜든 명진이 울먹일 때, 그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린 칼날이 이번에는 철퇴로 화해 무릎을 후려쳤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발의 근육과 뼈가 짓이겨지며 뒤틀리자, 쇼크가 온 명진은 켁켁대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나 어느새 옆으로 와 머리카락을 움켜쥔 악마가 그 또한 허락지 않았으니.. 그가 속삭인다.


“주저앉으면 살려주겠다.”

“감..사..”

“그 목숨의 대가는 김창수라는 아이다. 그러니 선택해라, 이 또한 너의 결정이니까.”


소름끼치는 웃음을 흘린 관장은 짧게 주먹을 끊어 쳐 명진의 늑골을 강타했다. 울컥 피를 토해낸 명진은 갈비뼈가 박살이 나 폐를 찔렀음에도 몸을 경련할 뿐 쓰러지지는 않았다.


‘창..수..야.’


너무나도 큰 고통과 충격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지만, 악마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는 않았다. 그가 눈알을 뽑아내는 순간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깨달았기에..


‘창수까지는···안 돼.’


부서지다 못해 짓이겨진 팔과 다리, 뽑힌 눈과 가슴어림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너무 지독해 숨 쉬는 것마저도 겁이 났지만, 불현듯 눈앞이 흐려지고 멀리서 이명이 들려오자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나 때문에 창수까지..’


늑골이 부서져서 그런지 숨 쉬는 게 버거울 뿐.. 목구멍으로 차올라 입 밖으로 쏟아지던 핏물도 이제는 간간이 흘러나왔다.


'나만 가면...'


극심한 피로에 지쳐 잠이 쏟아질 때처럼 명진은 주위의 모든 것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죽는 걸까?’


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르자 더는 의식의 끈을 붙잡고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좆 같은 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끔찍했던 통증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멀어지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분명히 고통스럽겠지만,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모든 것이 그저 편안하게 받아들여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만, 우리 엄마 아버지 얼굴을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는데.. 죄송해요.’


그렇게 의식의 끈을 놓고 영원히 잠에 빠지려는 순간,


“형, 명진이 형!”


이제 삼도천에 닿았음에, 아무것도 들리지 말아야 할 귓전에 친우의 울림이 천둥처럼 와닿는다.


‘창수야.’


소리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명진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향했던 악마의 살기가 창수에게로 이어졌음을.


‘안..돼.’


함께 같은 일을 겪고도 자신처럼 크게 티 내지 않고 꼬박꼬박 출근까지 하는 친구였다. 꿈을 향해 한 발씩 내디디는 모습이 언제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물론 때때로 강한 척하는 게 짜증나기도 했지만, 형으로서 그 정도도 받아 주지 못한 자신이 못난 거였다.


‘이미 많은 아픔을 겪은 놈인데. 나는 어차피.. 씨 팔, 이렇게 됐지만, 창수는 안돼.’


자신이 겪은 폭력을 친우가 당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 있어? 야, 이 씨팔놈아! 나 멀쩡해, 이 좆 같은 새끼야. 나 아직 멀쩡하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쳐도 신음조차 뱉어지지 않는 상황이었건만, 명진은 자신의 몸이 더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몸부림쳤다. 관장이 풍기는 살기의 방향을 돌리려고 발악했다. 하나 처참하게 망가진 육신이 그를 거부하며 미약한 떨림마저도 허락지 않았다.


‘안 돼.’ 창수도 순식간에 부서지리라.

‘좆 같은 거! 야, 나 아직 안 쓰러졌다니까? 내가 선택하는 거라고 했으니까, 나한테만.. 나만 가지고 놀아, 이 개새끼야!’


더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고통과 죽음을 친동생 같은 창수마저 겪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꿈도 가진 것도 없는 초라한 놈이었지만, 혈혈단신 창수에게 만큼은 하나밖에 없는 형이지 않던가?


‘나 아직 안 쓰러졌다니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먹잇감을 향해 다가가는 게 느껴지자 악을 쓰고 미친 듯 절규했다. 한데 그러다 보니 불쑥 신음 하나가 뱉어지는 게 아닌가?


“창..수.” 입 밖으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가자 가혹한 통증이 다시 밀려들었다.


육신이 비명을 지르며 경련하자 절로 무릎이 굽혀졌지만, 그는 울먹이며 손을 뻗어 무릎을 잡았다. 부서진 다리로 바닥을 디뎠다가 너무 괴로워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여지없이 무너지는 몸을 붙잡아 세우며 울컥 피를 토해내고는 다시 한 걸음 더 걸었다. 그리곤 하나 남은 눈을 억지로 떠서 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봐! 나는 아직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그 빌어먹을 놈의 대가는 내가 다 지고 갈 테니까, 나한테만.. 내가 다, 전부 다 지고 갈 거야.’ 하지만 그의 안쓰러울 정도로 미약한 절규를 누가 알아들을 수 있으랴?


한데, 그를 부순 악마는 분명히 듣고 보았으니.. 자신을 향해 서너 걸음 다가오다가 결국 쓰러진 남명진의 선택을, 오롯한 의지를 그는 분명히 듣고 뇌리에 새겼다.


“그 또한 너의 선택임을 명심하여라.” 흉신악살의 살기가 사라진 관장의 눈동자에 예의 그 죄책감과 함께 정체 모를 광기가 맴돌기 시작한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음에도 눈 감지 않은 명진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멍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창수가 앉아 있었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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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엽인들 [친우..남명진] 17.01.06 37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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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엽인들 [친우..2] 16.12.30 448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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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엽인들 [학살조장..2] 16.12.28 514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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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엽인들 [다프네..사명] 16.12.27 421 13 13쪽
71 엽인들 [다프네..3] 16.12.27 517 11 13쪽
70 엽인들 [다프네..2] +2 16.12.26 521 14 13쪽
69 엽인들 [다프네..1] +2 16.12.26 577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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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아프가니스탄 [Episode..1] 예지자 16.12.22 551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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