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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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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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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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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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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7.01.03 20:42
조회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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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9쪽

엽인들 [친우..필연]

DUMMY

부리부리한 눈에 커다란 코, 굵은 눈썹과 하관, 190cm가 훌쩍 넘는 키에 곰 같은 덩치를 가진 김창수와 180cm가 조금 안 되는 키에 길게 찢어진 눈매, 갸름한 턱선을 가져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남명진.. 이 두 청춘이 걸어온 삶의 여로는 가진바 외모나 분위기처럼 상이했지만, 처음 만난 날부터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다.

생긴 얼굴처럼 서글서글하고 시원한 창수가 붙임성 있게 말을 걸었고, 보기보다 모난 성격은 아닌 명진이 그를 받았으니.. 청춘이 친해지는 데 뭐가 더 필요할까?


‘이놈만 보면 이상하게 힘이 난단 말이야.’


항상 활력이 넘치고 유쾌한 놈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자, 환한 얼굴로 그를 반기던 창수가 눈살을 찌푸린다. 그는 명진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이 아저씨 겨우 요거 올라왔다고 지치신 거? 그래가지고 우리 이쁜이들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


그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웃어 넘기며 바위 위로 올라가던 명진은 껄껄대며 골반을 앞뒤로 흔드는 창수를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형, 이것 좀 봐. 이 정도는 돼야 애들이 깜빡 죽는다니까?”


헛웃음을 흘린 명진은 창수의 엉덩이를 한 대 갈기며 답했다.


“야, 너처럼 그러면 죽어 인마. 일단 비켜봐, 나도 할 건 해야지.”


그는 바위 중간에 떡 하니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가슴 속 응어리진 대상 모를 울분과 갑갑함을 힘껏 끌어 모았다가 단박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데..


“남, 명, 진!” 재미있게도 그 역시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게 아닌가? 미친놈이라며 창수를 욕하던 그가 말이다.


처음 술자리를 가진 날 그는 왜 하필 이름이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창수가 길거리의 사람들을 쭉 가리키며 답하길..


“형, 저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 이름 석 자 제대로 외쳐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좆도, 군대에서 신물이 나게 했잖아.”

“아, 형! 그건 까라니까 까는 거잖아. 그리고 남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하는 거 말이야.”

“그건 또 무슨 개똥 철학이냐? 타인이 부르고 내가 들으려고 짓는 게 이름인데. 물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단순한 나눔에서 집단 속 특출난 개인을 위한 호칭이 종교적..”

“아, 형! 또 이상한 소리 하네. 일단 한잔 마셔.”


창수는 명진의 잔에 술을 채워주고 한잔 들이켠 뒤 묘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냥, 형도 한 번 해봐. 그러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테니까.”


다음 날 산에 오른 명진은 창수가 없는 걸 확인하고 이름을 외쳤다. 어색했던 외침이 고함으로 그리고 절규로 변했고.. 창수가 봤다면 평생 놀림감이 됐을 행동까지 한 뒤로는 그도 이름 석 자를 부르짖었다. 그때 흘린 눈물의 의미는 오직 그만이 알겠지.


“남 명 진!”


창수의 것만큼 커다란 소리였지만, 색깔은 아주 달랐다. 들끓는 청춘을 내지른다기 보다는 마음속 억눌림과 분노를 토해내는 것이라 일면 악다구니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창수는 그마저도 듣기 좋은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문득,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사실은 조금 모자라 보였는데..'


창백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아파 보이는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었고, 낡은 트레이닝복 아래로 보이는 비쩍 마른 몸은 산행을 이기지 못해 떨리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려고 했다. 한데 날카로운 눈매와 어딘지 모르게 시니컬한 눈빛이 괜히 시선을 붙잡길래, 툭! 하고 말을 던지니 탁! 하고 받는 게 아닌가? 그러다 저러다 보니 같이 산에서 내려왔고 저녁에 술잔을 걸치며 의기투합했다.


‘괜찮은 사람이야.’


목에 핏대를 세운 채 몇 번이고 고함을 질러대던 명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창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혼잣말이 아닌 대화를 하기 위해서 문장을 뱉어내는 건, 근 이틀 만에 처음이었다.


“봤냐? 이 정도는 질러줘야, 아! 저 친구가 이쁜이들 좀 울려 봤겠구나, 하는 거야.”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절레절레 고개 흔들던 창수는 옆으로 와 털썩 주저앉는 명진의 창백한 얼굴과 마른 몸이 눈에 거슬려 작게 한숨 쉬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형, 오늘 밤에 나 일하는 가게에 놀러 와. 사장이 오늘 일찍 들어간다니까, 우리 쌈박하게 한잔하자.”


힙색을 끌러 바위 위에 내려놓던 명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이쿠 사장님,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안주는 고기로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를 본 창수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뒷짐을 졌다.


“거, 이 양반 이거 안 되겠네. 공짜 술 먹으면서 고기까지 찾고 말이야.”


명진은 양손을 비비며 고개를 굽실거렸다.


“제발, 고기 좀 주세요. 제가 요 며칠 사이 고기라고는 라면 건더기 먹은 게 전부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비굴한 표정을 보는 순간 창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형! 이럴 땐 나잇값 좀 해라. 내 얼굴이 다 빨개지네.”

“나잇값? 무슨 체통, 체면, 품위 뭐 이딴 거? 어이쿠 사장님, 그런 건 저기 저 높으신 분들한테나 주시고요, 저는 형이고 나발이고 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우리 잘나신 동생님 덕에 호강 좀 하게 해주십시오.”

“아, 형.. 그리 불쌍하게 좀 쳐다보지 마.”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낄낄대다가 햇살이 따스해져올 때쯤 명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제수씨는 잘 계시고?”


능글능글 농담을 주고받던 창수가 바로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 형님도. 내 주제에 무슨..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거지.”


창수가 얼굴을 붉히자 명진의 입가가 비죽이 올라간다.


“우리 제수씨 성함이 그 뭐더라, 수지, 수민..? 아, 수진 씨라고 했던가? 캬, 무슨 얼굴에 몸매가 그냥 연예인 해도 되겠던데? 대학생이라고 했지? 아마 남자들이 줄을 설 거야, 줄을. 나라도 그 줄에 설 걸?”


당황한 젊음은 눈가를 실룩이며 목소리를 깔았다.


“남명진 형님, 우리 수진이는.. 걔가 예쁜 건 맞는데 연애 같은 거나 하는 그런 애 아닙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시죠?”


그러자 명진이 띤 미소가 노골적인 조소로 변해간다.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거친 인생을 살아온 놈이 좋아하는 여대생 앞에서 순박한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래? 그런데 창수야, 이건 내가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어, 뭔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아, 뭔데 그래?”

“그 연애 같은 거 안 하는 수진 씨 있잖아?”

“어, 수진이가 또 왜?”

“그 아가씨가 너 하고는 연애했으면 좋겠지? 그 예쁘고 막 안아주고 싶은 우리 수진 씨가 너랑은 사귀었으면 진짜, 미친 듯이 좋지 않겠어?”

“아니, 그건..”

“아, 말 돌리지 말고 그래, 안 그래?”

“형, 그게 아니고 나는 그냥..”

“그래, 그게 아니고 나는 그냥 사귀었으면 좋겠다, 이거잖아?”

“아니, 형..”


덩치에 안 어울리게 얼굴이 빨개져서 어눌하게 변명하는 창수와 음흉한 눈빛으로 농을 던지며 공격의 수위를 높여가던 명진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대화를 멈췄다.


‘뭐..?’


둘은 서로를 보며 왜 말을 멈췄느냐고 눈으로 물었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게 멈췄고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들며 둘을 휘감은 채 서서히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둘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형, 이게 뭐야?'

‘몰라, 갑자기 이게 무슨 좆 같은 일이야?’


입을 벌리기는커녕 육체적인 모든 활동을 강제당한 채, 알 수 없는 공포에 잠식되어가던 둘은 불현듯 샛길을 향해 고개 돌렸다.



그리곤.. 이면에 선 혼돈을 마주했다.




처음 느끼는 색깔의 생소한 분노, 잔잔하게 시작된 그 감정은 이내 커다란 파장이 되어 마음을 울려댔다.

이곳은 자신만의 공간이어야 했다.

오롯이 홀로 안식에 잠겨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과거를 추억해야 했다.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성전이 바로 이곳이었기에, 감히 더럽힌 버러지들을 바로 찢어발기지 않았다. 한낱 먹잇감의 피와 살로 이곳을 더럽힐 수 없어 품은 송곳니를 꺼내 그들의 혼에 낙인을 새겼다.


‘죽어라.’ 그들의 영혼 깊숙이 씻을 수 없는 공포를 각인시켰다.


계절의 막바지, 어느 이름 없는 바위 위에서 그렇게 또 하나의 연과 연이 엉키며 악연의 가면을 쓴 필연을 잉태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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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아프가니스탄 [Episode..2] 예지자 +1 16.12.22 57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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