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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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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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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7,868

작성
17.01.09 19:56
조회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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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9쪽

엽인들 [친우..鬼 2]

DUMMY

관장의 기분 나쁜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의 머릿속을 울리는 건 힘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검은색 액체가 주는 불길함을 쉽사리 떨칠 수 없어 일단은 망설였다. 지난 한 달여간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알 수 없는 약을 들이미는데, 어찌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그래도 정말로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면?’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던 명진이 케이스를 향해서 주춤 걸음을 옮기자, 노골적으로 관장을 노려보던 창수가 다급히 그를 말렸다.


“형, 잠시만. 저기요 관장님, 혹시 그거 마약 같은 겁니까?”


밑바닥 생활을 해본 창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관장은 노골적인 조소를 흘리며 당당히 되물었다.


“김창수라고 했었지?”

“예, 그런데요?”

“이게 마약이라면 네놈은 벗어나지 않겠다는 말이냐?”


창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미련없이 주사기를 케이스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명진이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히 외치며 나섰다.


“아니요! 저는.. 저는 원합니다.”


그러자 관장의 눈가에 기이한 열기가 스친다.


“강요가 아닌, 스스로 택한 것임을 명심하여라.”


그리곤 검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를 내밀자, 한 걸음 빨리 움직인 창수가 명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 저게 무슨 약인지도 모르잖아? 저게 진짜 마약이면 어쩌려고 그래? 형은 잘 모르겠지만, 뽕쟁이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망가지는데. 씨팔, 인생 막장이 아니라 끝장나는 거야. 그러니까 형, 일단 나랑 의논부터 하자.”


나름 생활하며 험한 꼴을 많이 봐서 그런지 창수는 저 관장이라는 인간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피맛을 본 놈이라 동네 양아치가 사시미를 들고 덤벼도 웃고 마는데, 그냥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자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독고다이 칼잡이들도 비슷한 냄새를 풍겼는데, 저 양반은 그 정도도 아닌 것 같아.’ 저 관장이란 자에게서는 지독하다 못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시꺼먼 피비린내가 났다.

그래서 명진을 말렸건만, 어깨를 붙잡는 순간 이를 악문 명진은 그와 의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새끼야, 이거 놔.”


으르렁거리듯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명진의 모습에 창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형, 정신 차려! 저런 약까지 쓸 만큼 급한 건 아니잖아? 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 꾸준히 운동만 하면 형도 강해질 수..”


명진은 창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그의 말을 잘랐다.


“좆 까고.. 급하지 않아? 그래, 너야 괜찮겠지. 하지만 약해빠진 나는 아니거든, 아주 죽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잘난 넌 계속 그렇게 운동이나 해, 나는 뽕맛을 봐서라도 벗어나야겠으니까.”


그는 보란 듯 주사기를 받아서 격렬한 운동으로 핏줄이 불거져 나온 팔뚝에 망설임 없이 꽂아 넣었다.


“나는 이미 끝까지 왔어.”


주사기 안 검붉은 액체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명진의 눈동자에는 강함을 향한 열망 따위가 아니라 섬뜩한 광기가 서려있었다. 그를 보고 눈을 빛낸 관장은 창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네놈은 언제까지 허세나 부릴 게냐? 바탕이 너저분한 쓰레기에 불과하여도, 이미 죽음을 본 놈이 이까짓 마약을 무서워해?”


명진의 어이없는 행태에 말문이 막혀 한숨만 쉬던 창수는 쓰레기란 말에 울컥해서 한마디 하려다 말고 침음을 흘렸다.


‘죽음? 그날 산에서 본 게 죽음이라고?’


관장의 눈동자가 다시 번들거리는 순간 창수는 자신의 삶을 옥죄는 공포와 마주했다.


“싫..어, 그만..”


명진이 형 앞에서는 강한 척 했지만, 그 역시 제대로 잠드는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 공포에 쫓기며 비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하던 그는 관장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젖까지 차오른 간절함을 끝끝내 뱉지 않았다. 그러자 관장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다른 길은 없다.”

‘길? 하지만 진짜 마약이면 어쩌지?’


관장이 내민 게 마약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 끔찍한 약물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목도해온 그로선 이렇게 망설이는 게 당연했다.


‘빌어먹을!’ 솔직히 말하자면, 저 재수없는 꼰대에게 고개 숙이기 싫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리라.


이를 악문 채 자신을 노려보는 창수의 충혈된 눈을 가만히 마주보던 관장은 얼마 전 동생에게 받은 자료 속 김창수라는 인간이 걸어온 삶의 행적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친우가 저리 혼자 가게 둘 게냐?”

‘친우? 명진이 형?’ 그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주사를 맞고 경련하던 명진이 힘없이 주저앉는 게 보인다.


‘형.’ 지난 두 달여 사이에 많이 피폐해진 모습이었다. 그래서, “명진이 형.”하고 소리내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자 그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래, 약한 형을 내가 옆에서 지켜줘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하고, 함께 이겨내는 거야.’


주사를 맞은 명진의 반응이 마약을 한 것과는 달라서 안심한 나를 외면한 채 그는 형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묘한 눈길로 그를 보던 관장은 검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를 내밀며 결정타를 날렸다.


“혼자서 견뎌낼 수 있을까?”


약을 받아들인 명진과 거부하겠다는 자신, 둘 중 누구를 향한 물음인지 알 수 없었음에도 그는 약해빠진 형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당신이 아니라 형을 위한 겁니다.”라고 중얼대며 주사기를 받아 명진이 했던 것처럼 팔에 꽂고 약을 주입했다.


‘형, 우리 함께 이겨내자.’ 아마도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우정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한 사내의 뒷모습이 그려지고 있으리라. 어느새 미소를 지운 관장의 눈동자에 비친 건 자기합리화의 끝을 달리는 겁쟁이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텅 빈 주사기를 떨어뜨린 창수는 학질이라도 온 것처럼 떨다가 널브러져 의식을 잃었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는 관장의 눈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더니 섬뜩한 광기로 버무려진다.


“너희를 내 사명의 도구로써 택하였음을..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원망해라.”


궁지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둘이 사자[死者]의 윈혼을 쥐어짜내 만들었다는 극독[毒] 악귀[鬼]에 오염되자 관장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또한 너희의 선택이니, 저주받은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날 이후 주기적으로 귀를 쓰기 시작한 명진은 창수에 대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온종일 체육관에서 살며 모든 것을 퍼붓는 명진에 비해 일하는 시간만큼, 하찮은 우월감을 줬던 여유만큼 운동하는 시간이 적은 창수가 오히려 조급함을 느끼곤 했다.


“형, 그러다 나보다 더 강해지는 거 아니야?"

“그래?”


이제 그런 것에는 관심 자체가 없다는 듯 짧게 답한 명진이 단련에 박차를 가할 때마다 창수는 이를 악물었다.


‘명진이 형이 나보다 강해질 리 없어.’


귀는 근육과 체력의 회복 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다 못해 세포 자체를 변형시켜버린 것만 같았다. 이제는 잘 지치지도 않는 둘의 운동량은 인간의 한계점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창수가 20km를 질주와 전력질주로 내달리고 수월하게 회복하는 것도 그에 기인한 현상이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다고?’ 놀랍게도 부작용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 불안한 이 기적의 액체는 둘에게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둘이 귀의 위력에 매료되어 갈 때, 다시 방관자로 한 걸음 물러선 관장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스스로 택하고, 간절히 원하고, 필사적으로 바라고, 절대적으로 믿을 때 신비의 끝자락이나마 엿볼 수가 있다.’






시대의 적[敵]으로 탄생한 혼돈의 송곳니 아래 생이 뒤틀려 버린 피식자들이 그에 맞설 수 있는 신비를 홀로 계승해온 엽인[獵人]과 운명적으로 조우한 것은, 미물로선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의 계획일까? 아니면 각자의 지독한 욕구가 만들어낸 우연의 겹침이요, 가혹한 악연에 불과한걸까?


마치 이를 살피려는 듯 계절은 흘러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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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엽인들 [학살조장..2] 16.12.28 514 11 12쪽
73 엽인들 [학살조장..1] 16.12.28 598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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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아프가니스탄 [Episode..2] 예지자 +1 16.12.22 57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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