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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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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189,550
추천수 :
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7.01.10 19:32
조회
503
추천
11
글자
12쪽

엽인들 [친우..파인(破人)]

DUMMY

역시나 노골적이고 기분 나쁜 말에 당사자인 명진은 당황해 고개 숙였지만, 창수는 이를 악문 채 관장을 노려봤다. 그런 천둥벌거숭이를 향해서 관장은 냉소를 던졌다.


“김창수?”


창수가 말없이 눈에 힘을 주자 관장의 조소가 짙어진다.


“어디 쓰레기통에서 골목대장이나 한 모양인데, 그 어쭙잖은 몸뚱이에 배인 썩은내가 가시질 않는다.”


창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지자 관장의 어투 역시 달라졌다.


“그깟 자존심 하나 버리지를 못해서 싸구려 가면이나 뒤집어 쓴 주제에 이제는 짖으려고 하는구나. 몸뚱이를 보니 몰래 근육강화제라도 주워 먹은 모양인데..”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조롱 섞인 웃음을 터트린 관장은 창수가 주먹을 으스러지라 말아 쥐자 언성을 높였다.


“타고난 근골이 좋으나 정신이 썩었어, 오늘 네놈도 봤으니 느꼈을 게다. 이미 뒤처져도 한참 뒤처졌다는 것을. 어설프게 눈에 힘이나 주지 말고 평생 변명이나 하며 살거라. 처먹은 영양제 게워내기 싫으면.”

“이런, 씨 팔..”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창수가 양손을 깍지 껴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으르렁거렸다.


“아직 노망나긴 젊으신 것 같은데, 꼴에 낡아빠진 체육관 관장이라고 고개 좀 숙여줬더니, 이 양반이 함부로 나불거리시네.”


그의 몸에서 과거 깡패시절에나 풍겼었던 위험한 냄새가 흘러나오자 관장의 조롱이 노골적으로 변했다.


“잘도 짖는구나. 그렇게 시끄러우니 버림받고 쓰레기통을 전전했겠지.”

“뭐? 이런 개새끼야, 너 뭐라고 했어!”


과거의 상처를 들먹이는 저급한 도발이었지만,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인 건 확실한 듯했다. 창수는 관장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며 이를 갈았다.


“아저씨, 그만 지껄이고 한판 뜹시다. 내가 평생 기어 다니게 해줄게.”


불안한 눈빛으로 둘을 보던 명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한데 그의 눈빛에 어린 건 두려움이 아니라 묘한 기대와 설렘이었으니..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일까? 괜히 긴장돼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입술을 깨물 때, 둘의 간격이 부딪쳤고 하나가 바로 주저앉았다.


“썩은 정신이 재능을 망쳤으나, 그 젊음이 아까워서 뼈는 건드리지 않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 있는 관장의 모습은, 운동과 실전으로 다져진 거구를 일격에 거꾸러뜨린 사람 같지 않게 평온해 보였다. 그의 얼굴에 그려진 조소마저도 강자의 여유로 보이니.. 바닥에 꼬꾸라진 채 위액을 게워내다가 혼절한 창수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명진의 눈빛은 경악에서 동경으로 변해갔다.


‘이거였어.’


아무리 운동을 해도 따라잡지 못할 것만 같았던 창수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압도적인 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풍기는 강자의 여유는 그의 마음속에 조그만 불꽃을 일으켰다.


‘내게 부족한 것이..’


단순히 강한 힘과 튼튼한 몸 따위가 아니라 압도적인 폭력이야 말로 열쇠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창수를 내려다보던 관장은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시선을 옮겼다.


“얻고자 하면 여기 내 앞에 서서 주먹을 휘둘러라.”


관장을 보던 명진의 눈빛이 동경에서 당황으로 바뀐다.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냥.."


관장의 폭압적인 무력을 방금 목도하지 않았던가? 순식간에 무너져 토사물에 얼굴을 처박은 창수의 비참한 모습이 바로 저기에 있었다.


“저기, 관장님도 아시다시피 창수가 저보다 강합니다, 싸움도 잘하고요. 사실 전 살면서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못 해봤고 창수는 그래도 예전에.. 그게 저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명진은 고개를 숙인 채 더듬거렸지만, 마음속으로나마 생각했다.


‘더 열심히 단련해서 언젠가는.. 당당히 맞설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최대한 공손히 거절한 명진은 추레하게 널브러진 창수에게 다가가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용기와 만용은 달라. 오늘 일로 나와 창수의 수준을 정확히 알았고 목표도 잡았으니까, 이걸로 충분해.’


자신의 처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그는 창수를 똑바로 눕히려 허리를 숙였다. 그를 본 관장의 비웃음이 들려온다.


“수천수만 번 다짐만 하는 인생, 역겨운 자기합리화 속에서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하지 못하고 비루하게 살아왔겠지. 자신이 패배에 길들여진 지도 모른 채,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자위나 하면서 죽어가는 게 바로 너 같은 쓰레기들의 삶이다.”


그의 조롱어린 말에 명진의 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멈추자 거북한 쉰소리가 이어진다.


“하찮은 각오라도 행할 때 의미를 가진다. 어떻게든 부딪쳐야 조그만 길이라도 열리고, 그에 목숨을 걸어야 이기고 벗어날 수도 있다. 네놈처럼 변명이나 하고, 외면하고, 그 비루한 삶을 합리화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죽기 싫다며, 제발 벗어나게 해달라고 찾아와서 빌던 놈이 조금 편해졌다고 망설이다니, 역겹구나.”


관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뇌리로 꽂혀 들었다.


“딴에는 네놈이 열심히 하고 있다 생각하겠지. 하나 그딴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타의로 망가진 인생에 분노하지도, 널 패배자로 만든 세상에 감히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발버둥치는 못난 자학일 뿐이다.”


어금니를 으스러지라 악문 명진의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관장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어찌할 테냐? 애처롭게도 포식자로 말미암은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 괜찮아졌으니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자위나 하려거든 떠나라. 그 쓰레기통 같은 방구석에 숨어서 타인과 세상을 원망하며 벌레처럼 살다가 죽어라. 네놈 같은 쓰레기들이 세상에 널렸으니 외롭진 않을 게다.”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있던 명진의 눈에서 분에 찬 눈물이 흘러내린다. 힘없는 자의 원성을 본 관장의 비웃음은 짙어졌고.


“우습구나. 맞서서 패배한 것도, 치열하게 살았으나 도달하지 못한 것도 아니라 고작 분하나 이기지 못해 눈물이나 흘리는 쓰레기였다니. 네놈은 그냥 죽는 것이 옳다.”


관장의 말이 끝나자 명진은 발작하듯 울부짖었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 망할 놈의 세상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생각한 게 기백 번이지만, 불쌍한 가족 때문에..

그래도 바뀌기 위해서 산에 올랐는데, 조금만 더 있었으면 움직이려고 했었는데, 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들을 당하는 거냐고..

발버둥에 못난 자학이라도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냐고 그동안 억눌러 온 울화를 폭발시켰다.

죽음에 쫓겨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젊음의 외침은 그야말로 아프고 애달팠지만, 관장은 경멸로서 그를 볼 뿐이었다.


“맞설 용기가 없음을 세상과 주변 탓으로 돌리고 처한 현실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관장의 몸에서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포악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내가 이 자리에서 끝내주마.”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죽여 본 자가 흘린 살기였음에 뚝뚝 눈물을 흘리던 명진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난생처음 느끼는 섬뜩함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처절한 괴로움과 분노로 울부짖던 젊음이 1초 상간,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얼굴로 떠는 건 참 처량해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죽음 앞에서 초라한 게 또 인간인 것을. 관장은 그의 새파랗게 질려가는 얼굴을 보며 기이한 울림을 뱉었다.


“말해라.”


그의 음성은 강력한 명령이 되어 하릴없이 떠는 젊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숨고, 도망가고, 원망하고, 외면할 테냐? 네가 정녕 죽고 싶다면, 말해라.”

“저는..”


살기에 질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명진은 힘없이 주저앉으며 뇌까렸다.


“저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원망, 자신을 미치게 한 공포 등의 수많은 감정에 앞서는 단 하나의 바람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저는 살고 싶어요. 이 좆 같은 삶에서 제발 좀 벗어나서.. 그냥 한 번이라도 좀 제대로 살고 싶어요. 관장님,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냥 살고 싶어요.”


흐느껴 절규하는 젊음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관장의 눈에서 살기가 흩어진다 싶더니, 더 짙고 시꺼먼 광기를 머금었다. 그의 옷 아래로 새겨진 혈문이 핏빛 광채를 흘린다.


“살고 싶다 하였느냐?"

“예, 살고 싶습니다.”

“남명진, 너는 정녕 내가 살길을 열어 주길 원하느냐?"

“예, 제발..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이제 너는..”


관장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평소의 껄끄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머리가 아닌 영혼을 뒤흔드는 울림이며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힘이요 언어고 명[命]이었다.


“네 삶을 직시하여라.”

“삶..?”


어느새 넋이 나간 젊음의 머릿속에 참으로 못난이의 짤막한 인생사가 떠올라 흘러간다. 현실의 외면, 나태,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 자의 기약 없는 약속과 지독한 후회들..


‘내일부터, 언젠가는..’


풍족하지 않은 삶을 실패의 변명으로 삼고, 현재의 비참함을 사회와 환경 탓으로 돌리며 자기합리화에 빠져 살았던 모습들..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마치 자신만 피해자인 양 해왔던 불평들, 절망적인 죽음의 공포를 애써 외면하며 젖어들었던 성취감과 의미 없는 자위..


‘그래도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야?’ 되돌아보니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난..”


그의 새빨갛게 충혈된 눈동자에서 전과 다른 의미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의 불안정한 눈빛과 비대해진 자괴를 주시하던 관장은 하나의 명을 더했다.


“너는 지금 이곳에서 그 절망과 분노를 모조리 다 토해라. 내가 부숴주마. 또한 너는 여기 내 앞에 서서 과거의 모든 걸 부정하고 벗어나 술을 받아들임에 망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파인[破人]을 말하는 관장의 눈빛에 짙은 슬픔과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죄책감이 어렸지만, 하나의 명을 더하는 데 주저하지는 않았다.


“남명진, 너는 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천적에 맞설 의지를 갖추게 되리라. 인을 파하는 순간 나아갈 의지를, 벗어나게 될 힘을, 그 억압된 굴레를 모조리 부정할 하나의 사명을 어깨에 지게 되리라.”


끊임없이 뇌리를 맴돌며 메아리 치는 음성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몇몇 문장만큼은 확실히 알아들었기에 명진은 되뇌고 또 되뇌었다.


“나아갈 의지, 벗어날 힘."


평범했던 삶의 모든 것을 부숴버린 공포, 영혼 깊숙한 곳에 각인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힘. 그리고..


“부..정할 사명.”


관장이 보여준 압도적인 강함은 명진의 마음속에 갈망이라는 조그만 불꽃을 피워 목표라는 연료를 주입했다. 그러자 기다린 듯 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이제 여기 내 앞에 서서, 네게 싸울 의지가 있음을 증명해라.”


괴이한 울림을 실은 명이 귓가를 울리는 순간 명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두 주먹을 으스러지라 움켜쥔 채 관장을 노려보다가, 어느 순간 괴성을 질러대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창수처럼 한 판 하자는 말이나 싸움을 위해 몸을 푸는 행위 따위는 없었다. 그의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는 이성이 사라지고 광기와 분노, 대상 없는 투쟁심과 파괴욕구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해서 관장은 더없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맞이했다.


“좋구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여, 탈인[脫人]하려거든 파인[破人]하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스러짐은 오롯이 그대의 잘못이니, 견뎌서 그 역량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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