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189,613
추천수 :
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2.28 21:12
조회
705
추천
15
글자
10쪽

엽인들 [학살조장..귀향]

DUMMY

부대에서 지급 받은 자료에 따르면 1조장의 자산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작전 완수 시 부대에서는 백만 달러에 가까운 대가를 지급한다. 물론 거기에서 각자가 사용할 무기 등의 전투재원을 비롯한 모든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고 학살조의 공식 임무도 1년에 대여섯 번 이라지만, 실로 엄청난 액수가 아닌가?


‘뭐, 받을 만하지. 그런 돈을 준다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부대의 구성원 중 대다수는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돈을 물 쓰듯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1조장은 그들과 달리.. 아니, 아예 색깔 자체가 틀렸다. 그는 크고 작은 비공식적 임무까지 모조리 소화하며 전장에서 살다시피 했기에 돈 자체를 소모할 일이 없었다. 또한, 적의 무기를 빼앗아 쓰는 사람에게 고가의 전투재원이 주는 부담감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살인기계가 아니라 돈 버는 기계일지도..’


그렇게 약 7년간 모인 금액이 어느 정도냐 하면, 근사치에 이르는 금액을 대충이나마 본 채프먼이 한 번 더 물어볼 수밖에 없는 액수였다.


“저기, 분산시킨 걸 다 합치면 1억 달러에 육박합니다. 예, 물론 이렇게 큰 액수를 생각지 못하셨겠지만, 유닛의 수장으로서 받는 금액이 다르고 그동안 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셔서.. 그런데 정말로 9할을 도살자에게 주실 겁니까? 1할만 해도 돈이..”


천문학적인 숫자라 오히려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학살조장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는 1조의 선임요원이다.”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보던 채프먼은 넋이 나간 듯 끄덕이곤 바인더를 집어넣었다.


'선임요원이라고 해도 그 돈이면..'


그는 가까워져 오는 항구를 멍하니 보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대체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빌어먹을, 자그마치 억이야, 억!’


만약 나에게 그런 엄청난 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까? 라는 본능적인 망상을 잠시 하던 그는 학살조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연스레 눈길을 돌렸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보드카 병을 가볍게 말아 쥐곤 그를 보며 말했다.


“도살자에 관한 건 좋은 정보였어.”


갑자기 웬 공치사인가 싶어 의례적인 답을 하려했지만, 고저 없는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 특이한 눈만큼 실력도 좋은지 지켜보려고 했는데, 도움을 받았으니 대가는 줘야겠지. 상태도 썩 좋은 것 같지 않고.”


학살조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프먼의 눈에 의문이 어릴 때, 낡은 유람선이 선착장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학살조장은 보드카 병을 쥔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실 필요는.. 어?” 대가란 말에 미리 거절을 표하려던 채프먼의 눈에 놀람이 어린다.


학살조장의 손에 들린 보드카 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곤 다시 보드카 병을 확인하려 했는데, 쾅! 강렬한 총성이 귓가를 때리자 반사적으로 주저앉았다. 점퍼 안 홀스터에서 글록을 꺼내 총성이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세상에.’


객실 2층으로 오르다가 잠시 어깨를 스친 가이드로부터 심상찮은 위화감을 느낀 체호프는 놈과 일행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벨트 뒤쪽에 꽂아 둔 콜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뭔가 이상해..’


유람선이 곧 나루에 도착하니 미리 1층으로 가려고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패밀리의 행동대를 이끌며 가지게 된 위기감이 적색신호를 보내왔다.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야.’


그는 장난치듯 보드카 병을 흔들어 대는 동양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콜트를 뽑아 안전장치를 젖혔다. 그런데..


“어?”


동양인이 흔들던 보드카 병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의 가느다란 눈에 의문이 서릴 때, 둔탁한 소리가 귓가를 울리더니 옆에 앉아 있던 부하의 얼굴이 움푹 꺼지며 핏물이 터져 나왔다.


“뭐야?”


놀랍게도 부하의 안면 전체를 아예 내려 앉혀버린 건 보드카 병이었다. 심지어 깨지지도 않은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유리병을 보며 이를 악문 그는 동양인이 서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에 놀란 사람들이 바닥으로 몸을 던지고 테이블 아래로 움츠리는 것을 보며 연이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할 때,


“왜?” 그는 알 수 없는 의문을 뱉었다. 한데 목소리가 입안을 맴돌 뿐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았으니..


방아쇠에 걸친 검지에도, 권총을 든 오른손에도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눈앞이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왜..?'


온몸의 기운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주저앉을 때, 단말마의 비명이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반대편에 앉아 있던 부하의 것 같다는 생각을 끝으로 그의 의식은 흐려졌다.


"왜?"


채프먼은 마코브스키의 보디가드 중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목을 꺾은 채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괴물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도대체 왜 도와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학살 1조장이구나.’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켰다.


덩치 중 한 명의 얼굴이 보드카 병에 박살이 나는 순간 대머리에게로 이동해 심장을 강타, 뒤늦게 권총을 꺼내 들던 검정양복에게 성큼 다가서며 손을 붙잡아 으스러트리고 목을 꺾어서 마무리, 그리곤 얼굴이 망가진 놈의 미간에 총알 한 발, 이 모든 게 말 그대로 찰나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해? 인간이 아니라지만, 무슨 소리도 없이 저렇게..’


길게 숨을 뱉어 긴장을 완화한 채프먼은 글록을 들어 마코브스키를 조준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놈도 어쩔 수가 없겠지.’


백발 노인은 학살조장이 풍기는 끔찍한 살의에 짓눌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처량해 보였지만, 후덕한 인상과 달리 그는 악마 같은 인간이었다. 사람을 토막 내 가족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마피아의 보스였으니까.


‘임무가 아니라 해도, 너 같은 놈은 없어져야 해.’


그의 최종임무는 손에 든 글록으로 저 짐승과 가족을 죽인 뒤 연계작전을 맡은 자에게 글록을 인계하고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 까지였다. 작전과 연관된 다른 임무는 끝냈지만, 언제나 인의 장막 안에서 움직이는 마코브스키를 권총으로 죽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 오늘 정면 돌파를 감행하기로 했는데..


‘MP7은 괜히 챙겨왔네.’


그가 두툼한 배낭을 보며 입맛을 다실 때, 학살조장은 손에 쥔 권총의 방아쇠를 감히 당기지 못하는 겁쟁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아이에게 장난감을 빼앗듯 총을 가로채 강물에 던져버린 뒤, 옆에 앉은 노인의 보드카를 자연스럽게 건네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스탄다르트, 술을 마실 줄 아는군.”


그의 여유로운 모습을 살피던 마코브스키는 모든 걸 포기하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아내와 친우는 살려 주시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학살조장은 그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휴가를 축하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는 스탄다르트를 한 모금 더 들이킨 뒤에 걸음을 옮겼다.


유람선이 선착장에 닿았지만, 2층에 있던 사람 중 누구도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모두가 마네킹처럼 얼어붙은 와중에 그만이 홀로 움직이는 게 조금은 기괴해 보였지만, 채프먼은 그런 모습이야말로 저 괴물에게 어울리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저 자는 항상 저렇게 여유로울까? 압도적인 폭력이라는 게 바로 저런 거였구나.'


학살조장은 테이블 위 바인더를 챙긴 후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으며 작별을 고했다.


“채프먼, 조원들에 관한 거래는 계속됐으면 좋겠군.”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예, 어떤 방식으로 하실 겁니까?

“전문가의 선택에 맡기지. 네가 연락을 하면 내가 응한다.”

“알겠습니다, 좋은 휴가 되십시오.”


학살조장이 선착장에서 벗어나 인파 속으로 섞여 갈 때쯤, 마지막 유람을 끝낸 낡은 선박에서 여섯 번의 총성이 들려왔다. 그를 본 목격자들은 물속으로 뛰어든 암살자에 대해서 입을 모았지만, 검은 머리 동양인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함구했다.


‘악마를 부르면 그가 네 집 문을 두드리리라.’


제법 많은 수의 관광객들에 섞여 유유자적 걸음을 옮기던 동양인은 강의 이름을 딴 공원의 강변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휴가라, 나쁠 건 없겠지.'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묘한 설렘을 음미하며 강을 바라봤다. 사랑의 신[Amur]과 검은 용[黑龍]이라는 상반된 느낌의 이름을 가진 강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좋군, 스탄다르트를 한 병 가져올 걸 그랬어.’ 그는 편하게 벤치에 기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을 즐겼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과 일몰의 조화는 그야말로 멋들어져서 주변 모든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귀향길에 오른 자에게는 오래전 그곳에서의 일몰을 떠오르게 했다.


'바위는 그대로일까?'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니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와 귓가를 간지럽힌다.


‘언젠가 휴식이 필요할 때 이곳으로 찾아와, 나를 추억해다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포식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3 엽인들 [친우..각자의 길] +1 17.01.12 422 11 13쪽
92 엽인들 [친우..동생] 17.01.12 428 7 9쪽
91 엽인들 [친우..형] 17.01.11 423 11 10쪽
90 엽인들 [친우..파인(破人)] 17.01.10 504 11 12쪽
89 엽인들 [친우..간섭 ] 17.01.10 422 9 11쪽
88 엽인들 [친우..鬼 2] 17.01.09 363 12 9쪽
87 엽인들 [친우..鬼 1] 17.01.09 395 9 12쪽
86 엽인들 [친우..숙명] +1 17.01.09 413 11 9쪽
85 엽인들 [친우..脫] +2 17.01.06 345 10 11쪽
84 엽인들 [친우..남명진] 17.01.06 372 11 13쪽
83 엽인들 [친우..징조] 17.01.04 419 10 12쪽
82 엽인들 [친우..이수진, 정미혜] +1 17.01.04 553 12 11쪽
81 엽인들 [친우..김창수] 17.01.03 363 11 12쪽
80 엽인들 [친우..필연] 17.01.03 400 11 9쪽
79 엽인들 [친우..2] 16.12.30 449 15 11쪽
78 엽인들 [친우..1] 16.12.30 584 12 11쪽
77 엽인들 [최동민..어떤 죽음] 16.12.29 513 12 8쪽
76 엽인들 [최동민..어떤 삶] 16.12.29 591 13 11쪽
» 엽인들 [학살조장..귀향] +2 16.12.28 706 15 10쪽
74 엽인들 [학살조장..2] 16.12.28 515 11 12쪽
73 엽인들 [학살조장..1] 16.12.28 601 11 11쪽
72 엽인들 [다프네..사명] 16.12.27 421 13 13쪽
71 엽인들 [다프네..3] 16.12.27 517 11 13쪽
70 엽인들 [다프네..2] +2 16.12.26 522 14 13쪽
69 엽인들 [다프네..1] +2 16.12.26 577 12 12쪽
68 아프가니스탄 [Episode..5] 인연 +1 16.12.23 517 16 10쪽
67 아프가니스탄 [Episode..4] 인연 16.12.23 482 13 11쪽
66 아프가니스탄 [Episode..3] 예지자 16.12.22 708 12 9쪽
65 아프가니스탄 [Episode..2] 예지자 +1 16.12.22 573 12 12쪽
64 아프가니스탄 [Episode..1] 예지자 16.12.22 552 1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