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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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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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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09.0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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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97화

DUMMY

나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예고한 시간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눈치채고 그녀를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아침에나 넌지시 1시가 넘어서 그즘에 올 것 같다고 나나가 말을 흐린 탓도 있었으나, 벽면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횟수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다녀가는 상황 속에서 도울 일손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고 해서 당장 그녀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쉬운 감정을 느끼거나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일종의 여유였다.


“어서 오세요!”


계산대 밑으로 허리를 숙인 주화가 먼저 새로운 기척을 느끼고 인사했다. 서랍에서 체크무늬의 리본을 찾고 있었기에 눈도 못 맞추어가며 손님을 반겼다. 아무리 눈알을 바삐 굴리고, 다시 천천히 굴려봐도 찾던 물건이 보이지 않자 주화는 이전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인사를 건넨 손님에 대한 일종의 사죄이자, 응대였다.


“어서 오세······ 어?”


뒤쪽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걸어 나온 여명도 앞치마를 매만지느라 손님의 얼굴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터였다. 그가 고개를 들고 가게로 들어온 이를 마주한 순간은 주화가 같은 상대를 마주하며 웃는 찰나와 일치했다.


“안녕하세요.”


평소 세미 정장식으로 단정하게 옷을 입어 오던 도진이 의외의 모습으로 허리를 반 정도 숙이며 인사했다.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의 도진은 그가 어릴 적부터 지켜봐 온 주화로서도 낯설었다.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냐고 꼬투리를 잡으려던 주화도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며, 아직 그를 많이 만난 적이 없는 여명은 덩달아 같이 허리를 숙였다.


“도진아! 아직 가게 안 끝났는데, 어쩐 일이야?”


그래도 반가운 나머지 주화는 옷차림에 대한 언급보다도 그가 이곳에 들른 연유를 우선 화제로 삼았다.


“바쁜 날이니만큼 일찍 와서 도와드릴까 해서요.”

“마침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나나 씨가 아직 안 와서 실시간으로 예약 명단 관리까지 내가 하느라 조금 바빴거든. 익숙하긴 하지만 앉으면 눕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원래 이럴 땐 한 번 사양하는 게 예읜데, 오늘만큼은 사양하지 않도록 할게.”

“물론이죠.”


도진이 넉살 좋게 웃었다.


“나나 씨가 아직 안 왔다는 건 무슨 이야기인가요?”


그런 그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어떤 반응을 하면 좋을지 허둥대는 여명을 분명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 배달을 갔거든요. 정해진 시간이 있었던 건 아닌데 생각보다 길어지는 모양이네요.”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일변한 그의 안색에 여명과 주화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주화가 말했다.

“고객님과 관련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여명이 덧붙였다.


합동해서 내놓은 대답에 도진은 아직 의문이 남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척하며 주화의 지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명단이라는 것을 제 앞에 놓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하는 목소리를 따라 눈길을 움직이는 건 그다음이었다.


“나나 씨가 조금 늦긴 하네.”


뒤쪽 테이블로 돌아가는 여명이 나직이 뱉은 말에 도진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시계로 시선을 뻗었다. 그녀가 온 뒤로 자신은 언제부턴가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반면에 이곳에 온 이후로부터 나나는 부쩍 바빠졌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걸 모를 리 없는 도진이었다.

이들이 좀 전에 말한 ‘일’이라 하는 것도 어쩌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우연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번 가게 입구 쪽을 향해 눈을 흘긴 도진이 주화에게서 펜을 받아 들었다.


***


“백나나!”


모자를 쓴 수상한 남자가 나나에게로 다가왔다.


“뭐예요?”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조금씩 익혀가고 있던 터라 나나는 놀라지도 않고 부름에 응했다.


“갑자기 네가 생각이 나서 와 봤어.”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둘은 나란히 걷게 되어버렸다. 몸을 옆으로 밀어내며 거리를 만들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눈치도 없이 태강이 자꾸 붙었기 때문이다.


“좀 떨어져요. 저 바쁘거든요.”

“응, 그럴 것 같았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나가 의심의 눈초리로 고개를 삐뚤게 하였다. 모자챙에 가려진 태강의 눈을 정면에서 째려보기 위함이었고, 이를 미리 간파해낸 태강은 이미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회피했다.


“이 근처에서 네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좀 많아야지.”


손깍지를 낀 채 그대로 자신의 뒤통수를 감싼 태강이 능청을 부리며 답했다. 그런데도 얼굴의 전체가 드러나지 않으니 평소의 촐싹거리는 느낌은 덜했다.


“제 생각이요?”

“응. 아까 병원에 가서 천규를 보고 왔거든.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딱 널 생각하는 할멈이 하나 있지 뭐야.”

“할머니요? 뭐지? 나 여기서 할머니 아는 사람 없는데······ 아!”


나나는 여명의 조모를 떠올렸다. 하지만 태강은 이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병원 밖으로 나왔는데도 또 백나나 너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거야.”

“누군데요?”

“도진이. 이쪽 오는 길에 만났어. 꽃집 간다 그러더라고.”


나나가 화들짝 놀란 바람에 괴성을 질렀다.


“왜 그렇게 놀라?”

“나도진이 왜 가게에 벌써 가요? 오후까지는 도서관이나 어슬렁거린다고 그래놓고.”

“그거야 나야 모르지. 일찍 가서 도와준다던데?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신기한 건 하나 더 있다니까.”


도진이 그런 행동을 한 까닭을 궁리해보기도 전에 태강의 호들갑으로 나나는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다. 그녀의 얼굴은 못마땅하고 지루한 표정을 하고 있다.


“뭔데요?”

“도진이랑 이야기하면서 오니까 어쩌다 보니 나도 이쪽으로 오게 됐어. 그런데 여기서도 널 생각하는 사람은 만난 거 있지!”

“누구요?”


나나는 그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기에 약간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저기 저 뒤에 숨은 사람.”


태강이 손가락질로 어느 한 군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국 옆 골목이었다.


“누구지?”


등을 돌리고 선 탓에 얼굴을 식별할 수 없던 그녀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그 사람의 외관을 살폈다. 시선이 아래로 닿을수록, 질문은 스스로 답변이 되었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뒷모습만으로도 나나는 그 상대가 진석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진짜 바쁘거든요.”


나나는 눈길을 그쪽으로 고정시킨 채 태강에게 단호히 말했다.


“응?”

“그만 가볼게요.”


눈인사나 목인사 하나 없이 나나가 골목 쪽으로 돌진했다. 충동적이었던 만큼 순간적이어서 태강이 말을 더 붙일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나 할 말 다 안 끝났는데.”


내린 입꼬리로나마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던 태강이 긴 숨을 내쉰 후 자신의 두 볼을 부풀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감기를 앓은 탓에 부족한 글이 더욱 형편없어졌습니다.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어느덧 환절기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가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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