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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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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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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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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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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DUMMY

장미는 붉었다. 나무 한 그루를 이루는 것처럼 모여든 붉은 장미를 유순하게 감싼 포장지 역시 붉었다. 리본마저 튀지 않으려고 색의 조화를 이루었으니 농홍한 꽃다발은 그야말로 하늘의 달보다도 정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나나는 저번에 주화를 기다렸던 자리를 괜히 한 번 쳐다보고는 그 옆으로 있는 자동문 앞에 멈추어섰다. 갑작스레 손 안쪽부터 땀이 차기 시작하자 나나는 한 손씩 번갈아 가며 바지에 대충 닦으며 자세를 고쳤다. 이렇게 종종 배달 심부름을 대신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안 그런 척은 하고 있지만, 막상 그 상대를 맞닥뜨리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무거운 숨을 길게 뿜어낸 나나가 문이 열리는 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저번에도 느꼈으나 좀 더 가까이에서 본 은행의 풍경은 역시나 세계의 은행과 비슷했다. 창구마다 각각 다른 업무를 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볼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 길을 달리 찾을 뿐이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그들의 손동작을 유심히 살폈을 때 통장이라든가 지폐 같은 건 그들 사이에 오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도진은 이번에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머뭇거리는 건 아닌지, 급하게 두리번거리며 나나가 ‘곽은비’라는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문 근처에 자리한 인물들은 전부 남성이었기에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제외했다. 걸음을 떼며 나나는 천천히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다음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직원들의 이름이 쓰인 명패를 보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곽은비’라는 이름이 없어서 다시금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할 무렵에 나나는 공간의 가장 끝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자신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곽은비의 손짓을 먼저 보았다. 무언가 적당히 쌓인 서류를 정갈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곽은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딱히 뚜렷한 감정이 담긴 표정을 짓지는 않았으나 단정하게 묶어 넘긴 머리로 인해 일에 몰두하고 있는 얼굴은 그대로 드러났다.

주먹을 쥔 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데스크 위를 손마디로 두드렸다. 처음 두어 번에는 반응이 없던 상대방은 다시금 나는 소리에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아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지나치게 명랑한 얼굴로 지나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 은비는 정리하던 서류를 구석으로 치우며 자리에 앉았다. 정신이 없던 모양인지, 자신에게로 온 꽃다발은 보지 못한 상태였다.


“저··· 꽃다발 배달 왔는데요.”

“네? 어머, 세상에.”


그제야 자신 앞에 있는 붉은 꽃다발을 알아본 은비가 도로 일어섰다.


“김진석 씨가 보내신 거예요.”


나나가 말을 마치는 동시에 꽃다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주변에서는 딱히 이쪽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네?”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표한 은비가 말을 흐리며 돌아서려는 나나를 붙잡았다. 혹여 자신이 들고 오는 사이에 꽃다발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건지 조바심에 나나가 눈을 크게 뜨며 은비를 쳐다보았다.


“처음 뵙는 분이네요.”


그 순간 나나는 데자뷔를 느꼈다.


“아, 네. 얼마 전에 고용됐거든요.”

“그렇구나. 감사드려요.”


이것저것 말을 붙여오던 진석과는 다르게 그의 연인인 은비는 짧은 한마디로 대화를 더는 이어나가지 않았다. 고갯짓으로 답례를 대신한 나나가 마지막으로 천장에 달린 표지판을 보며 돌아섰다. 그곳에는 나나를 내심 흠칫하게 만드는 여섯 글자가 맨 위에 굵은 글씨로 딱딱하게 적혀 있었다.


[영혼 유산 상속]


마지막으로 눈길을 은비 쪽으로 주었을 때 꽃다발을 받아든 그녀의 두 볼에는 이제야 장미를 닮은 불그스름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공짜였다고요?”

“공짜라기보다는 단골손님한테 드리는 서비스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노파는 여명의 집으로 먼저 향한 것인지 가게 안에 있지 않았다.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여명 옆으로 쪼르르 달려든 나나가 여전히 이해를 못 하였는지 미심쩍은 눈치로 사장을 쏘아댔다.


“왜요?”

“오늘은 두 분이 꽃을 주고받은 지 3년째 되는 날이거든요.”

“그래요···? 가 아니라 돈을 안 받는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여명과 나나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던 주화가 그쪽으로 몸을 틀며 사장 대신에 대답했다.


“고민하는 진석 씨에게 사장님이 드리는 일종의 선물 같은 걸 거예요.”

“맞아!”


여명이 신이 나 손뼉을 크게 쳤다.


“어제 진석 씨가 오셨는데 기념일을 앞두고 고민하시더라고요.”


장부에서 시선을 놓지 않으며 여명은 태평하게 말꼬리를 이었다. 이에 금세 다른 질문으로 달려드는 나나였다.


“왜요?”

“아무래도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 큰 지출은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결혼이요?”


호들갑스럽게 놀란 나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번에도 주화가 부연설명을 맡았다.


“아까 말했죠? 가족의 날엔 청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아······ 그래서 그렇구나.”


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여명의 꾀를 이해하게 되자, 장부를 넘기던 손놀림을 멈추고 여명이 입을 열었다.


“꼭 금전 문제만은 아니긴 해요. 중요한 날들이 가까이에 붙어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웬일로 고민을 털어놓으시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의 해결방안으로 무료 꽃다발을 제안한 거였고, 손님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준 거죠.”


입술을 오므리며 흐뭇하게 광대를 올리며 웃는 나나는 이번 일의 주인공들보다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지 속으로 괜한 걱정을 했다. 그러다 마치 놓고 온 우산을 되찾으러 가는 사람의 발걸음처럼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며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설명은 감사한데,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거라니요? 지금 이야기한 게 단데.”

“아니, 그게 아니라요. 어떻게 할머니가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정말 어떻게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셨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요.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할머니께 연락하신 거예요?”


말을 꺼내기 전에는 주화가 있다는 것에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으나, 오히려 말을 하면서 이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숨 가쁜 질문을 연달아 듣기만 하던 여명이 빙그레 웃었다.


“어떻게 하긴요. 편지를 쓸 생각이 어느 순간 들어서 이걸로 편지를 직접 써서 집으로 보냈죠.”


그리고 그는 반대편 손을 들어 보였다. 꽉 쥔 손 가운데에는 백면의 유품 중 하나인 만년필이 들려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1부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네요.

제가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당초에 생각했던 수준 정도의 글이 나오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2부는 더 탄탄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되도록 미리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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