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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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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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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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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08.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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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84화

DUMMY

“농담하는 게 아니라요.”


여명을 바라보는 나나의 눈초리가 따갑다.


“나나 씨.”


이에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리어 고민하는 듯한 여명이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는 사이에 주화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 돼요?”

“오늘 저녁이요?”


나나가 새삼스러운 전개에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묻는 말에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이미 가능을 뜻하는 말을 내뱉고 있던 것이다.


“괜찮기는 한데······ 왜요?”


그러자 흡족한 듯 입을 다무는 여명에 나나는 고개를 더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을 길게 머뭇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어쩌면 여명은 조금은 부끄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미적거리는 탓에 나나가 시선을 주화 쪽으로 돌렸을 때, 그녀 역시 두 인간을 호방하게 바라만 보고 있지, 자신이 나설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오늘 오랜만에 같이 저녁 식사 안 할래요? 도진 씨도 오면 좋을 텐데··· 아무튼 오랜만에 나나 씨를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서요.”

“오늘요?”


문득 나나의 머릿속에는 노파의 얼굴이 그려졌다. 아마 여명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만약 이 저녁 식사에 참석하게 된다면, 노파 역시 그 자리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나나는 잠깐 고심에 사로잡혔으나 끝내는 즉흥적으로 답해버리고 말았다.


“갈게요.”


그녀의 긍정적인 답변이 떨어지자마자 여명은 장부와 나나를 번갈아 보면서 기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나나의 옆에서 묵묵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주화가 이제야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음을 깨닫고 그런 그에게 어서 말을 걸었다.


“사장님, 저는요?”

“···어? 어 그럼······”


미처 그녀를 생각지 못했던 여명이 당황하면서 말까지 더듬을수록 주화는 짓궂게 웃었다.


“그냥 해본 소리예요. 대신 다음엔 저만 맛있는 거 사주셔야 해요.”


자신까지 그 자리에 끼게 되면 여명이 생각보다 난처하고 곤란할 것을 알고 적당히 장난을 멈춘 주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마음속으로 난감함을 드러낸 것에 있어 꽤 진심이었기에 일부러 물러서게 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는 개인적인 아쉬움으로만 남겨두기로 하였다.


“그래, 그럴게. 오늘은 미안해. 나 때문에 수고도 많이 해줬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나중에 제대로 갚으셔야 한다니까요? 저한테는 공짜가 안 통하거든요. 그렇죠, 나나 씨?”


천연덕스럽게 구는 주화가 갑작스레 나나의 어깨 위로 자신의 팔을 올려두었다. 깜짝 놀란 나나가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번 역시 능청거리는 주화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후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나에게 짧고 단호히 속삭였다.


“잘 부탁해요.”


다음에는 곧바로 어깨에 올린 팔을 내려놓고 얼굴도 멀어졌다. 그런 주화를 멍하니 바라보게 된 나나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명은 계속해서 장부를 보고 있었으며, 나나에게 할 말을 다 건넨 주화는 다시금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모두 제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


“오랜만이군.”


문을 열고 들어선 주화는 어두컴컴하고 적막한 집안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놀라지도 않고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아주 익숙하게 신발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잘 지냈나?”


목소리는 끊기지 않고 다시 들려왔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주화는 평상시처럼 행동했다. 먼저 가방을 소파 위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고 어두운 거실을 그냥 둔 채로 화장실로 먼저 들어갔다.

간결하면서도 굵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손을 씻은 후에 거울을 바라보며 저녁이 되어 노곤해진 자신의 눈빛을 들여다보았다. 밖은 다시 고요해졌다. 어디까지나 잠시일 테다. 이곳을 도로 나가게 되면, 그 목소리가 다시 자신을 건드릴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보다는 가벼운 숨을 길게 보낸 주화가 머리를 매만진 끝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아낸 후 거실의 불을 밝혔다.


“못 지낸 것 같지는 않군.”


난데없이 환해진 공간에 조금도 눈을 찌푸리지 않더니 침입자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웬일이에요?”


식탁 쪽으로 다가가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이를 집어 든 주화가 그를 향해 물었다. 얼굴을 다 가린 거나 마찬가지로 제대로 드러나는 거라곤 눈 한쪽밖에 없는 상태라 하여도 주화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단지 그의 독특하고 낡은 말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접 여기까지 행차하시고. 원래 섬 밖으로 잘 안 나왔잖아요?”

“그랬었지.”


거실에 놓인 테이블을 괜히 툭 친 영월이 어정쩡한 자세로 답했다.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춘 주화가 물을 들이켰다. “여긴 또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비밀번호도 몰랐을 텐데.”


영월은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고 주화를 의젓하게 보았다.


“그런 것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 초영을 아직도 모르진 않을 테고.”

“아··· 그랬구나.”


씁쓸한 표정을 지은 주화가 컵을 내려놓았다. 짐작은 했지만, 확실히 초영의 짓이었음을 확인받게 되자 마음 한구석이 조금 공허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더는 주연이 아니게 되었고 완벽하게 주화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길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거예요?”

“······그럴 일이 있었지.”


주화는 식탁의 의자를 잡아당겨 거기에 앉았지만, 이를 보고도 영월은 다가오지도 않고 거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성격을 모르지 않은 주화였기에,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정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기로 결심하였다.


“천규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그럼요.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태강은 괜찮나요?”

“그야 모르지. 아마 자기 딴에는 잘 지내고 있는 게 분명할 테지만. 그나저나 아직 가보지 않았다면, 잘 됐군.”

“무슨 소리예요? 잘 됐다니.”


주화가 턱을 괴었다.


“태강은 천규를 데리고 도망쳤다. 그것도 이곳으로 말이지.”

“도망을 쳤다고요? 그런데 천규는 의식불명이잖아요.”

“그래. 그 때문에 다른 인간한테까지 손을 댄 것 같더군. 아무튼 주화, 너의 도움이 필요해서 내가 직접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초영의 입을 통해서보다는 내가 직접 말하는 것이 너에게도 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단 판단 아래였다.”


망부석처럼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영월이 성큼성큼 걸어서 그녀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주화가 고개를 더 높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그의 표정은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부탁을 해도 좀 되겠나?”


위엄과 절도가 느껴지는 품위와는 다르게 다소 공손하고 정중한 당부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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