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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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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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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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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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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DUMMY

여유로웠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대개는 예약을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얼빠진 얼굴로 나나가 그 광경을 바라보자니, 주화는 다가와서 오후 무렵에는 더 바쁠 것이고, 내일은 말 그대로 주야분주할 테라고 일러두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직감하기 위해 당장에 몰려드는 머릿수를 세다가 만 나나는 만약 자신이 없었더라면 여명과 주화가 생각의 산을 깎아버리고 내뱉는 숨을 아끼는 끝에 버텨야만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가 이러한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지 점심이 지나고서부터는 주화의 말처럼 예약 손님은 잦아든 반면에 직접 꽃다발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나나 씨, 뒤에 쇼케이스에서 아쉬람 다섯 송이만 좀 가져다줄래요?”


잠시 숨을 돌리려 장갑을 벗으려던 나나는 동작을 멈추고 여명을 바라보았다. 손님을 응대하랴, 직접 꽃다발을 포장하랴 나가사 빠질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골똘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알겠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나나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근데 아··· 아··· 무슨 꽃이요?”


꽃의 이름을 듣기는 했으나, 봐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녀가 식물에 자신만큼이나 해박하지 않다는 것을 차마 전제로 두지 못할 정도로 일에만 몰두했던 여명이 그녀의 질문에 급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살구색으로 핀 장미요.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해요.”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기는 했으나, 나나의 대답을 들을 여유는 없었기에 여명은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숙여 꽃을 다듬던 일을 계속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므로 나나는 다소 씁쓸히 웃으며 뒤쪽으로 계속 걸었다.

쇼케이스 앞에 도착하였을 때 나나는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시선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고개를 빼꼼 내밀며 살피기도 하다가 허리를 숙여 들여다본 후에야 살구색의 장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빨간색이나 흰색의 장미만을 주로 봐 왔던 나나는 멈춘 그 자세로 잠시 오묘한 연주황빛을 감상하였다. 그리고는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장미를 한 송이씩 빼내었다. 기왕이면 활짝 핀 꽃으로 고르자는 다짐이었지만, 장미의 색을 구경하느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나나가 가지고 온 꽃을 말없이 옆에 두자 이를 금방 알아차린 여명이 돌아보며 나나에게로 웃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나가 그 곁을 바로 떠나지 않고, 앞에서 꽃다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레게 바라보는 손님을 쳐다보았다.

속에는 베스트까지 갖추어 입었으며 같은 천으로 만들어진 한 벌의 양복을 구김 없는 상태로 단정히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점잖은 척을 해도 꽃다발이 곧 만들어진 후에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속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나 보다. 그것이 흐뭇해서 몰래 미소를 지은 나나가 뒤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곧 몸을 틀었다.


“정말 미안한데, 나 대신 이 꽃다발 좀 배달해 줄 수 있어요?”


주화는 덥석 꽃다발을 나나의 품에 안기려다 말고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어디로요?”


나나가 정확한 장소를 묻자, 주화가 두 볼을 부풀리며 망설였다.


“조금 멀어서 걱정이네요.”

“멀어요? 이 근처만 직접 배달해주는 거 아니었어요?”

“꼭 그게 원칙은 아니에요. 게다가 이 꽃다발을 우리가 대신 전하려는 것도 사연이 있기도 하고··· 또 손님께서 그만큼의 사례를, 그러니까 그만큼의 금액도 지불했으니까요.”


여러 도구와 다듬어진 꽃의 흔적으로 어지럽혀진 테이블 위를 주화가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곤란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리는 대신 택한 행동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래요?” 나나가 꽃다발을 응시하며 물었다.


아까 여명에게 직접 건네주었던 아쉬람이 뒷부분을 빼어나게 장식하고 그 아래로는 연분홍색 카네이션과 수국이 빼곡히 모였다. 마찬가지로 연분홍색의 플로드지가 여러 겹으로 꽃을 감싼 밑으로는 데님 소재의 리본이 묶여 있었다. 그것이 참 예쁘다고 나나가 속으로 감탈할 때에서야 주화가 사연이라는 것을 들려주었다.


“주문한 손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보내는 거요? 그럼 자신이 보내는 게 아니라 남이 보내는 거란 말이에요?”

“맞아요. 손님의 누나 분이 오래전에 난연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해요. 연락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하고요. 이 분은 계속해서 부모님과 같은 집에서 살고 계시는데, 누나가 떠난 후로 부모님이 가족의 날만 되면 많이 슬퍼하셨다고도 해요. 그날조차 누나에게서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결심이 섰는지 주화가 꽃다발을 나나의 품으로 작정하고 넘겼다. 방심하며 듣고 있던 나나는 엉성한 자세로 이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 분이 생각해 낸 방법이 이거예요. 자신이 꽃다발을 주문하고 아예 제삼자가 그걸 전해주면서, 누나한테서 온 선물이라고 말하는 거죠.”

“···그런 사연까지 다 배려하면서 꽃다발을 파는 거예요?”

“그렇다고 봐야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바쁜 거고요. 이 분도 그전까진 여러 꽃집을 다니며 무리한 부탁을 하시다가 이에 응해주는 우리 가게를 이번에도 찾아준 거예요.”


심호흡으로 잠시 숨을 돌린 주화가 테이블 끝에 있던 메모지를 찾아내 거기에 나나가 가야 할 장소와, 가는 방법을 적기 시작했다.


“걸어가려면 아마 오늘 저녁에나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름을 적어놓았으니까, 꼭 이 분이 보낸 꽃다발이라고 말해야 해요. 알겠죠?”


나나에게 그 메모를 넘겨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검토를 한 주화의 눈길이 멈추었다.


“어머··· 그러고 보니 나나 씨랑 이름이 같네요.”

“저랑 이름이 같다고요? 설마 백나나?”


그리고는 그대로 종이를 꽃다발을 들고 있느라 올리지 못한 나나의 손가락 사이로 끼워 주었다. 몸을 옆으로 꺾어서 종이에 적힌 이름부터 확인했다.


“아쉽게도 성은 달라요. 홍나나예요.”

“아······ 그렇네요.”

“그래도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잘 다녀올 수 있겠죠? 버스 타는 곳은 알고 있어요?”

“알아요.”


나나가 주화에게 먼저 등을 보였다.


“내가 가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포장 일을 도울 수가 없어서 말이죠. 미안해요.”


나나가 염려치 말라는 뜻으로 확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딱히 자신이 큰 도움이 된 적도 없었건만,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사과를 자주 받게 되는 날이다. 나나는 그것에 마음이 풀리면서도 도리어 마음이 언짢아지기도 해서 가만히만은 있을 수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발로 뛰며 일을 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다녀올게요.”


나나가 문쪽으로 걸어가는 틈에 여명이 만든 꽃다발을 들고 나가는 좀전의 중년 남성을 마주쳤다. 그는 아까보다 더욱 밝아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문을 비슷한 속도로 지나는 찰나에 그의 손에 들린 빨간 꽃다발과 나나가 들고 있는 꽃다발이 살짝 스쳤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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