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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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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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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작성
20.08.2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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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78화

DUMMY

지나가듯이 한 말에 화들짝 놀란 나나가 저도 모르게 양팔을 벌려 자신 앞의 두 의자를 각각 짚었다.


“축제요? 축제가 있어요?”

“혹시 축제를 모르는 거예요? 나나 양의 세계에는 없는 말인가요?”


도리어 자신이 눈이 더 나온 조이가 두 눈을 번쩍거렸다.


“아니요······” 나나는 조이의 반응에 약간의 충격을 받고 말을 흐렸다. 그리고 최대한 열심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그런 게 아니라 여기에도 축제가 있다는 게 신기해서 물었던 거예요.”


그러자 조이는 자신이 너무 조급하게 실언했음을 알아차렸다.


“나도 그랬어요, 혹시 내 질문에 기분이 상했으면 미안해요.”

“괜찮아요.”


나나가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이 동작을 지켜보고 있던 조이는 마음이 놓였는지 나나가 궁금했던 점을 짚어주기 시작했다.


“매년 수도에서 축제가 열려요. 전통과 역사도 오래돼서 오죽하면 축제 이름도 ‘심연’이에요. 엄청나게 큰 축제인 게 이름에서부터 느껴지죠? 그렇다고 해서 12성인과 직접 관련된 건 아니에요. 속세의 인간들이 즐기는 축제거든요. 워낙 유구한 축제인지라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축제 이름이 그렇게 됐대요.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면 항상 개최돼요.”

“하지만 곧 축제 기간이라면서요?”


시간은 틀이 될지언정, 다른 틀에는 좀처럼 가두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임의적이거나 개인적이며 결국엔 일시적인 것인지라, 오히려 자신을 가둔 것을 반대로 속박하고야 마는 게 시간이다. 그렇다. 조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정에 따라 축제 기간이라 함을 개인적으로 정의(定義)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지조를 허물어뜨리지 않으며 자신의 정의를 설명했다.


“이제 곧 연습 기간이 시작된다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연습 일정이라든가 여러 가지 조율한 사항이 많아질 예정이라서 고여명 그분께 나나 양이 내 인사를 전해주었으면 했던 거예요. 계획이 제대로 잡히고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지니까요.”

“그럼···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제야 나나는 자신의 직장에만 신경을 쓰느라, 이곳에 사는 이들의 직업과 생계에 크게 여념치 않았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껏 해보았자 아는 것은 여명의 직업이 전부였다. 오늘 도진에게서 들은 백면 이야기도 지금의 궁금증과 맥락을 같이하기도 했었지만, 직접 그 상황이 닥치지 않고서야 좀처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조이는 부끄러운지 말갛고 소심한 홍조로 자신의 두 볼을 칠했다.


“지휘자 일을 하고 있어요.”

“지휘자요? 음악이요? 악단 말이죠?”


수줍은 태도와는 다르게 근사한 답변에 나나는 금을 캐듯이 연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조이는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우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나나가 입을 크게 벌리며 감탄하자, 이번에는 손사래를 치며 조이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자 했다.


“그래 봤자 객원으로 참가하는 거예요. 어쨌든 저한텐 영광이지만요.”

“그래도 지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모든 악기의 음을 개별로 다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정말로 그게 가능한 건가요?”


나나에게는 언젠가 오케스트라 앞에서 손으로 허공을 젓는 지휘자가 제일 한심해 보이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집단에서 제일 한심해 보이는 사람이 실은 그 집단 내에서 제일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주변에 음악을 하는 지인이나 친구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지휘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나나는 그저 궁금하기만 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눈앞에서 마주한 지휘자에 나나는 잔뜩 신이 났다.


“음··· 가능하죠. 그렇지 않으면 지휘를 할 수 없잖아요. 궁금한 게 많은 걸 보니, 나나 양은 음악을 꽤 좋아하나 봐요.”


조이의 말에 자신이 짚은 의자를 매만지는 나나가 지금까지 들뜨던 것과 다른 침착한 얼굴로 어색하게 뜸을 들였다.


“좋아하는데 음악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알려고 노력은 해봤는데 일단 음감 자체가 아예 없어요.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 중에서 지휘자가 대단해 보였고, 그쪽으로 제일 궁금하고 신기했어요.”

“그럼 나중에 한 번 연습 때 놀러와요.”


조이가 단박에 던진 화끈한 제안에 나나가 눈을 크게 떴다.


“나나 씨가 와주면 오히려 나도 더 좋을 거예요. 사람이 좀 필요했거든요.”

“사람이요? 혹시 단원이 부족한 거라면 저는 절대······”

“그런 게 아니에요.”


안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본 조이가 이내 나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 의도를 알아차린 나나가 짧게 탄성을 터뜨렸다.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워지는 그 표정을 포착해낸 조이가 싱거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꼭 와서 아이를 봐달라는 건 아니에요, 부담은 갖지 말고 편하게 오라는 뜻이었어요. 어차피 난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이 아이를 직접 우리가 키우자고 한 것도 나였어요. 도진이는 처음에는 반대할 것처럼 굴더니 몇 번 대화하고 나서는 그러자고 말한 거였고요. 그 애가 생각보다 마음이 여려서 만류에는 소질이 없어요.”


아이는 아까 바꾼 자세를 유지하며 그대로 잠든 기색이었다. 두 팔을 사소하게 움직이기는 했으나 잠결에 하는 것처럼 그 끝은 부드럽고 물렀다.


“참.”


아이가 편히 잠들도록 몸을 좌우로 움직이던 조이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나 양은 혹시 작명에 소질이 있나요?”

“작명이요?”


황당한 질문에 나나가 자신의 턱을 두세 번 긁었다. “이름 짓는 거요?”라고 물으면서도 그녀는 떨떠름한 나머지 굳이 반대쪽 턱을 마저 긁어야 했다.


“맞아요. 소실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나 양도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요?”

“이 아이 말이에요.”


등을 꼿꼿하게 유지한 채 고개만을 숙이며 조이가 품에 있는 아기를 가리켰다.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했거든요. 아무래도 혈연은 아니다 보니까 나까지도 아직 조심스러운 마음이 남았어요. 도진이도 그렇고. 직장에서는 다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도록 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이에게 할 짓은 아닌 것 같아서 이름을 정해주려고 하거든요. 그래도 나름 제가 보호자니까 어울리는 이름을 주고 싶은데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네요.”


아이에게 지극정성인 조이가 대단해 보이는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숙고하려는 까닭을 짐작할 수 없는 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이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였다.


“당장은 아니어도 괜찮아요, 혹시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줄래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미적지근한 대답에도 흡족했는지 조이는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다시 몸을 반복적으로 비틀었다. 그 품 안에서 잠든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저 아이는 커서 자신이 백면의 내생임을 먼저 알게 될까? 아니면 자신에게 이름이 없었음을 먼저 알게 될까? 크게 소용은 없는 의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저 아이에게는 어쨌든 이름쯤은 있을 테니 말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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