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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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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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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작성
20.08.2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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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82화

DUMMY

그래 봤자 며칠이 흐른 게 전부였다. 하지만 당장 영월에게로 갈 것처럼 굴었으나 한동안 나나는 꽃집 일에 전념했다. 자신이 나태하게 구는 것임을 은밀하게 인정해야만 했으나 그것보다도 그냥 그러기 싫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천일나무는 썩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는 성인(聖人)치고는 모두 태연하게 자신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주화의 일상은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꿈에 관한 이야기가 있던 직후로부터 이따금 그것을 언급하기는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스치는 순간의 짤막한 대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이 두 명의 여자는 서로의 옆을 꼭 붙어서 떠날 줄을 몰라야 했다. 정확히 애가 더 타는 쪽은 나나였다.


“인사드릴게요.” 여명이 말했다.

“저희 할머니예요.”


여명은 느릿하게 걷는 노파의 어깨를 감싸며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여명의 할머니였다. 손주가 꾸리고 있는 가게를 흐뭇하게 둘러보던 노파가 조금 고개를 들었다. 직원들을 바라보며 시선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옮겼을 때 노인은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썼지만 눈 속에 담긴 놀라움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이를 놓치지 않은 손자가 몸을 숙이면서까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명이 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보고 뿌듯해서 그렇다··· 참 다행이구나.”

“할머니도 참. 저 잘 지냈다니까요.”

“그래, 그래. 그래서 참 다행이구나.”


여명의 할머니는 거짓말을 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이런 노파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나가 먼저 그쪽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백나나입니다.”


이에 노파도 익숙하게 얼굴을 끄덕거리며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주화가 잇따라 몸을 숙이며 인사하는 동안에도 노파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이들이 인사를 마치자마자 할머니를 가게 안쪽으로 끌고 아직 남은 가게 구경을 시켜주려는 여명을 두고 계속 제자리에서 서있는 나나가 귓속말로 주화에게 말을 걸었다. 주화는 이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감추지도 않고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 하나 없이 모두 털어놓았다.


“편지를 써서 할머니를 불렀다고 했어요. 오늘 와달라고 직접 사장님이 그렇게 부탁하신 모양이에요.”

“이렇게 갑자기요?”


불평은 아니었으나 다소 커진 목소리로 답해놓고 보니 자신의 입을 반사적으로 나나는 틀어막았다. 뒤를 슬쩍 바라보았을 때 조모와 손자는 다행히도 이쪽의 대화에 귀기울이지 않은 것 같았다.


“사장님이 굳이 이런 건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왜 이런 전개가 되었는지는 쉽게 예상 가능해요. 아마 이제 곧 있으면 가족의 날이 오기 때문이겠죠.”

“가족의 날이요?”

“얼마 안 남았어요. 내일 모레거든요.”

“가족의 날이 뭔데요? 부부의 날이나 어버이날이랑 비슷한 건가요?”


5월. 원래 살고 있던 세계에서라면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 등의 기념일이 다 있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기는 했다. 대충 그 이름으로부터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는 있었으나 혹여나 하는 마음에 나나는 주화에게 물었던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같아 보여도 결국엔 다른 것이 존재하는 곳이 월계임을 이제는 무의식적으로고 자각하게 된 것이다.


“달라요.” 주화는 단호하게 답했다. “가족의 날은 자신과 함께해온 가족에게 그동안의 감사를 표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거든요. 때문에 가족의 형태는 상관없죠. 세계에서의 어버이날은 특정 대상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날이죠? 부모님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것 같아 보여도 다르다고 말한 거예요. 가족의 날은 ‘가족’이라는 특정 대상이라기보다는 대상의 조건만 제시해주고, 함께 그 날을 보내는 가족은 개개인이 정하는 거죠.”


나나가 옅은 감탄사를 뱉었다. 말을 마치는가 싶던 주화는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래서 종종 가족의 날에 청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서로의 가족이 되자고 말하면서요. 아무튼 여러모로 월계에서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일 거예요. 이 날만 되면 나도 엄청 바빠지거든요. 사장님도 그렇고.”


시원한 주화의 웃음에 나나도 덩달아 은은한 미소를 제 입에 걸쳤다. 그녀의 친절한 설명에 감사 인사를 전하려는 순간, 여명이 노파는 안쪽의 테이블에 앉혀둔 채 자신만 이곳으로 다가왔다. 손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은 그러면서도 연신 가게를 둘러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듯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를 관찰하고 있던 나나의 표정이 조금 온화해졌다.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맞은편 은행의 곽은비 씨한테 꽃다발을 전해드려야 할 텐데··· 미안하지만, 주연, 아니지 미안. 그래도 아직은 조금 어색하네. 주화 네가 만들어서 보내줄 수 있을까? 할머니가 모처럼 오신 거라··· 좀 농땡이를 피울까 싶은데. 무엇보다 네 실력이 나보다 좋기도 하잖아.”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며 주화를 추켜세우는 여명을 향해 주화는 흐드러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하라면 해야죠, 뭐. 알겠습니다 사장님!”


절도 있게 경례를 붙이며 그의 아양에 박자를 맞추는 것도 잊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그 옆에 있던 두 명은 물론이고 건너에서 이를 구경하던 노파도 대화의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음에도 환하게 방실댔다.


“신기해요.”


자신이 가진 사명감 때문인지 여명이 있는 쪽으로 갈까 싶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나나는 장미꽃을 다듬고 있는 주화의 옆에서 유심히 그녀의 손짓을 감상했다.

특별히 능력을 쓰면서까지 꽃을 다듬지 않고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던 주화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원래 살던 곳에 있는 꽃들도 모두 있는 것 같은데 월계에만 있는 꽃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해서요.”

“그래요?”


새로운 대화 주제가 흥미로운 듯이 주화가 답했다.


“네. 처음에 왔을 때 바다에 핀 꽃을 보면서 정말 기분이 이상했었거든요. 월계라는 곳은 제가 알고 있던 세계보다도 어쩌면 더 넓은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도 않아요.”


부드러이 나나의 말을 부정하면서 주화는 장미 한 송이를 두 손가락 사이로 돌돌 돌렸다.


“잘 찾아보면 월계에는 절대 없지만, 세계에만 있는 꽃도 있거든요.”

“세계에만 있는 꽃이요?”

“정말이에요. 나나 씨가 아직 꽃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요.”

“그게 무슨 꽃이에요? 세계에만 있는 꽃 말이에요.”


나나가 입술을 오므리면서까지 대답을 기다렸지만, 주화는 그럴수록 콧노래를 부르며 대꾸하지 않았다. 다 다듬은 꽃을 포장하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연주황빛의 리본을 묶는 것으로 마무리한 주화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나나를 보았다.


“궁금해요?”

“네, 궁금해요.”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나나가 눈을 크게 떴다.


“저번에 우리가 갔던 은행 알죠? 거기에 있는 직원 곽은비 씨한테 이걸 전해줄래요?”


그러고서 주화의 요청에 쉽게 응한 나나는 어떤 반응도 없이 덤덤하게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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