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연재수 :
333 회
조회수 :
14,169
추천수 :
244
글자수 :
1,286,707

작성
20.08.24 23:59
조회
26
추천
0
글자
7쪽

81화

DUMMY

“설마··· 혹시 백면의 꿈을 꾸었던 거예요?”


나나의 섬세한 표정 변화를 눈여겨보던 주화가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물었다.


“모르겠어요, 꿈을 꾸었던 건 기억나지만. 그 꿈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요.”


말을 더덜거리지는 않았으나, 꿈과 관련하여 궁금답답하기는 나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말끝에서 그녀는 숨이 뚫으려는 듯 거친 한숨을 몰아냈다. 그러다 꿈을 망각하고 만 자신을 변호하려는 것처럼 갑자기 커진 소리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백면 꿈이었을까요? 생각나지 않는 꿈은 다들 가끔 꾸잖아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고 보니 까먹는 그런 꿈 말이에요.”

“나나 씨를 탓하려는 건 아니에요. 누구의 탓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이 모든 걸 유산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남겨둔 백면의 탓이겠죠.”


유산. 그 단어에 나나는 갑자기 괴로워진 심정에 이마를 짚었다. 백면. 그는 너무 많은 걸 남겨두었다. 지나치게 많은 재산이었다. 몇몇 유품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포함한 재산과 자신의 이름을 남겨두는 것까지는 어디까지나 그의 명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영혼까지 남겨버린 것이다. 그 측면에서 백면은 상당히 무책임한 성인이었다. 나나는 지금 당장 백면이 왜 무책임한지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져야만 했던 책임이 오로지 자신에게로 전가된 것 같은 버겁고 억울한 감정에 열이 올랐다.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이 안 나요.”


나나에게는 그 아침인 줄 알았던 새벽의 끝자락에서 만난 흰 나비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거예요. 최근에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무언가 백면이 새로운 단서를 던진 것은 없는지 일종의 조사였던 거예요. 그러니 기억해내려고 굳이 애쓰지 마요.”


오히려 주화가 나서서 나나를 변호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나에게 슬그머니 제안을 하나 했다.


“만약 정말 그 꿈이 백면인지 확인하려거든 영월에게 가보는 건 어때요?”


그 소리에 괴로움으로 숙였던 나나의 이마가 정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월은 꿈과 기억에 관해서 나나 씨를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나나의 대답은 주화로부터 들려오는 말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나나는 답하면서도 주화를 바라보지 않았고,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에 사로잡혀 버렸다. 언젠가 한 번 영월에게서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나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녀의 흰자위가 번득 움직였다. 그리고 빛은 곧 가운데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집어 삼켜졌다.


***


밤이 실내로까지 번졌다. 모두가 각기 일을 하느라 떠난 이가 더 많은 곳의 복도는 더욱 캄캄했다. 이를 덤덤히 바라본 후 방에 들어서자마자 영월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로 텅 빈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는 안락의자였다. 필시 누군가가 방금까지만 해도 그곳에 앉아있었음을 알리는 동요(動搖)였다.


“들통날 짓을 염치도 없이 잘도 하는군.”


의자가 있는 방향으로 허공에 지른 것 같은 경책은 그가 시선이 옮겨지는 쪽으로 다다랐다. 침실이라고 하기에는 서재를 방불케 하는 방안의 준엄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튀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잖아?”


초영은 이 방 안을 채운 공기를 한껏 무겁게 묶어두고만 있는 영월의 모양새가 우스운 까닭에 배꼽이 웃듯 덧없는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방의 주인이 왔으니 자리도 비켜주고, 이 정도면 예의 있는 거 아닌가?”


팔짱을 낀 그녀가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방의 두 면이 오동나무로 만든 책장으로 가득 찼는데 관람객이라도 된 듯이 이를 천천히 훑어보던 초영은 책 한 권을 꺼낼지 말지 고민하던 손짓을 결국 관두고 도로 수수(袖手)하였다.


“오늘 천규가 있던 병원에 들르고 왔어. 어차피 잠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문병이라도 하러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지 뭐야. 뭐, 진작 가야 했지만 말이야.”


흔들의자를 지나쳐 책상 쪽으로 간 영월이 금장 몰딩으로 장식된 원목 의자에 떨어지듯 가볍게 툭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의 초영을 건너보았다. 왠지 상사에게 보고하려고 온 것 같은 풍경이란 생각이 들어 초영은 다리를 삐딱하게 하고 섰다.


“그런데 천규는 못 봤어.”

“무슨 소리지?”


그녀가 전한 소식에도 영월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얼굴을 가린 천 너머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것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야만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초영은 계속 그들 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천규가 없었단 소리야.”


그리고 혹시라도 영월이 자신에게 캐물을 상황에 대비하여 바로 말을 덧붙인 그녀였다.


“혹시라도 몰라서 병실은 다 뒤져봤어. 중환자실은 못 봤지만, 영월 네가 그런 데다가 천규를 둘 리는 없을 테니까.”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작 눈썹을 매만지는 것이 영월의 흔들림이라면 흔들림이었다. 그는 확호불발의 굳은 마음을 가진 자였다.


“그리 놀랄 것도 없군.”

“무슨 소리야? 천규가 그럼 깨어난 뒤 갑자기 잠적했단 소리야?”

“아니다.”


초영의 질문을 가볍게 부정하며 영월이 다리를 꼬았다.


“만약에 천규가 병상에서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뒤로 천규만 사라져야 하는 법이지.”

“그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월의 말에 초영은 우선은 그를 경청하기로 결심했다.


“초영. 최근에 기척이 약해진 성인이 또 있음을 알고 있을 테지?”

“기척이 약해진? 야담 말하는 거니? 아니면 나?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내 몫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녀의 추측은 모두 틀렸다. 그러므로 영월은 고개를 세게 가로저었고, 이를 불쾌하게 바라본 초영이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재촉했다.


“그럼 도대체 뭔데? 또 누가 있단 말이니? 흑석?”

“흑석은 나만큼이나 자주 외부로 나가지는 않지.”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라는 거야. 그럼 도대체······”


항의하는 어조로 말을 늘어놓던 초영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초영.”


그런 그녀를 부른 영월이 확고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다른 한 명의 이름을 더 불렀다.


“태강이다. 아무래도 단독으로 무슨 짓을 꾸민 게 분명하다. 그 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천규와는 한 번도 달리 죽어본 적이 없을 테니 더욱이 그럴 것이다. 아니, 확실하지.”


그가 말을 더하면 더할수록 초영의 얼굴은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달이 만든 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7 96화 20.09.08 28 0 7쪽
96 95화 20.09.07 34 0 8쪽
95 94화 20.09.06 26 0 9쪽
94 93화 20.09.05 28 0 8쪽
93 92화 20.09.04 28 0 7쪽
92 91화 20.09.03 26 0 8쪽
91 90화 20.09.02 28 0 7쪽
90 89화 20.09.01 42 0 8쪽
89 88화 20.08.31 25 0 8쪽
88 87화 20.08.30 28 0 8쪽
87 86화 20.08.29 28 0 8쪽
86 85화 20.08.28 27 0 8쪽
85 84화 20.08.27 25 0 7쪽
84 83화 20.08.26 29 0 7쪽
83 82화 20.08.25 27 0 8쪽
» 81화 20.08.24 27 0 7쪽
81 80화 20.08.23 24 0 9쪽
80 79화 20.08.22 26 0 7쪽
79 78화 20.08.21 29 0 8쪽
78 77화 20.08.20 28 0 7쪽
77 76화 20.08.19 31 0 7쪽
76 75화 20.08.18 25 0 7쪽
75 74화 20.08.17 25 0 8쪽
74 73화 20.08.16 29 0 7쪽
73 72화 20.08.15 27 0 7쪽
72 71화 20.08.14 29 0 7쪽
71 70화 20.08.13 28 0 9쪽
70 69화 20.08.12 28 0 8쪽
69 68화 20.08.11 28 0 8쪽
68 67화 20.08.10 27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