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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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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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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08.1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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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75화

DUMMY

여명은 크라프트지로 만들어진 각대봉투의 윗부분을 접은 후에 그 부분이 다시 펴지지 않도록 마끈으로 봉투 전체에 리본을 묶었다. 마무리로는 먼지가 묻지는 않았는디 손으로 봉투 겉을 가볍게 털어댔다. 난연으로 향하는 기차 안이었다. 이를 물끄러미 보던 주화가 물었다.


“이런 데에도 직업 정신을 발휘하시네요.”


여명이 낮게 웃었다.


“그러게. 어쨌든 선물이라 그런가 봐.”


주화가 의자에 더욱 등을 파묻으며 해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대답에도 일리가 있기에 쉽게 수긍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기도 하다.


“사장님은 진짜 이 일을 즐기시네요.”

“혹시 내 마음을 읽은 건 아니지?”

“아마 모든 사람이 다 사장님 마음쯤은 읽을 수 있을 텐데요?”


그녀는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명이 봉투의 바닥 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럴까?”

“그럼요.”


차창 너머로 풍경은 계속 바뀌고 있었으나, 하늘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달이 그들을 계속 쫓아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른 새벽이었기에 그 추섭(追躡)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건 나나 씨한테 줄 건가요?”


그 옆으로 포장된 봉투 두어 개를 두고, 마지막으로 포장한 것을 연신 매만지는 여명의 행동을 진작에 눈치채고 기회가 생기자 이를 에둘러 언급한 주화였다.


“아, 응.”


짧게 동의한 여명이 대답을 끝내는가 싶더니 뒤이어 말을 덧붙였다.


“나나 씨가 안경을 빌려줬거든.”

“안경?”


주화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나나가 처음에는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안경을 쓰나 안 쓰나 주화의 뇌리에 박힌 나나의 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전혀 마음에 여겨두고 있지 않았던 특징이었다.


“그것도 유품이라고 그랬어.”


주화가 이제야 완벽히 이해가 되었는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돌려주려는 거야. 겸사겸사 내가 좋아하는 빵도 선물하고.”

“그 빵집 엄청 자주 가시나 봐요. 돌아올 때 귀천으로 먼저 가자고 하셔서 놀랐어요.”


자신의 옆자리에 가지런히 놓인 봉지를 쳐다본 여명이 다음 차례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이에 주화의 시선도 그 봉지가 있는 자리로 따라갔다.


“응. 어릴 때 가족들이랑 휴가 때마다 자주 갔거든, 귀천 쪽으로. 그리고 항상 그 빵집에 들러서 한끼는 반드시 해결했던 것 같아.”

“좋은 추억이네요.”

“···그렇지. 몇 안 되는 좋은 추억 중 하나야.”


주화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여명을 찬찬히 쓸었다. 모든 게 쉽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집이라면 고집으로 난연에 이르러서는, 여명의 곁에서 아닌 척을 하며 자신의 입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에 와서는 야담이든 자신이든 누가 맞다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백면이 시작해버린 일이었던 것이다. 두 명이 개입한 일은 흑과 백처럼 입장이 뚜렷하게 나누어지지만, 세 명 이상이 개입해버린 일에는 입장 같은 게 중요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누가 먼저 이 일을 짚어냈는지 그것만이 일의 방향을 결정한다.

게다가 백면은 본인이 직접 저주를 내린 집안에서 환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된 건 아니지만, 백면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거란 생각에 완곡하게라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게 자신의 직감이었다. 눈을 껌벅이는 것으로 사색에서 벗어난 주화가 턱을 약간 숙이며 여전히 여명을 바라보았다.


“피곤해? 아니면 혹시 배고프면 지금 하나 먹을래?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괜찮아요!”


자신의 그 행동에 여명이 옆의 봉지 쪽으로 손을 뻗으려는 것을 급하게 저지했다. 손짓을 멈춘 여명이 머쓱해진 기운에 손을 테이블 위로 도로 두었다. 그러자 주화는 이번에도 재빠르게 이유를 설명했다.


“아······ 배고픈 게 아니라 좀 졸려서 그랬어요.”

“그렇구나. 그럼 눈 좀 붙여. 방해하지 않을게.”


얼결에 잠을 청하게 된 주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돌려 눈을 감았다. 그러자마자 아까 달아났던 사색이 다시금 그녀에게 바짝 붙었다. 반대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자신을 배려해 여명이 움직임을 최소화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은 정적만큼이나 낯선 일이다. 저런 사람이 백면의 내생이라는 건, 절대로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


“나 돈 좀 줘.”


함께 집을 나선 도진을 말로써 붙잡은 나나가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돈을 빌리는 자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기세가 너무나 등등하다. 당혹한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도진은 마치 빌린 돈을 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에서 하얀색의 카드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덜컥 나나 앞으로 내밀었다.


“뭐야?”

“이걸 써요.”


그걸 받아들었지만, 카드를 월계에서까지 볼 줄은 몰랐거니와 이렇게 돈을 달라는 요청에 카드를 덥썩 주는 도진의 반응이 의외였던 까닭에 나나는 그 자세 그대로 도진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카드를 줄 줄은 몰랐네. 그런데 내가 돈을 달라고 한 건 그냥 지폐 몇 장만 달라는 뜻이었어.”

“지폐요?”

“응. 현금 말이야.”


지갑을 넣으며 도진이 짙은 눈썹을 미세하게 구부렸다.


“그런 건 월계에 없어요. 월계에서 돈은 이 카드 한 장이 전부예요. 현금 같은 건 없죠.”

“그럼 이게 돈이라고? 카드로만 생활이 가능해?”

“나나 씨가 있던 세계에서와는 다르게 월계에서는 카드에 돈을 넣고 돈을 빼는 방식으로만 거래를 하거든요.”


아직 미심쩍은 기분에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문득 제일 궁금했던 것 하나가 떠오른 나나가 도진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안에 돈은 있어?”

“그럼요.”

“어떻게? 우리 중에 딱히 돈을 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도진이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며 대답했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우리 돈은 맞아요. 나나 씨의 돈도 맞으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 쓰도록 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돈도 맞다니?”


돈을 주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돈이 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나나였다.


“백면이 남긴 돈이에요. 자신 앞으로.”

“백면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앞으로 말이죠. 자신의 내생을 위해 돈을 마련해두었던 거죠.”


그의 말에 나나는 쥐고 있는 카드를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는 충격 또한 담겼다. 이런 것조차 백면의 흔적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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