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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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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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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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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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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DUMMY

“저거 주세요.”


나나가 내민 카드를 받아든 여명이 생뚱맞은 상황에 상당히 당황한 얼굴을 보였고, 그의 손에서 카드가 쉽게 흘러내려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나나가 ‘저거’라고 어물쩍거린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칭한 데에는 메지국의 영향이 크기도 했다. 그러나 안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결론에 대충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던 사물을 가리키기 좋은 지시 대명사를 쓰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단어 선택의 방법을 바꾸었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뭉때리듯 손가락질로 가리킨 곳에는 수많은 화분이 옹기종기 집단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여명은 자신 나름대로 그 손가락이 가장 정확하게 가리키는 듯한 ‘저거’를 특대형 화분에 담긴 극락조로 알아들어야 했다.


“저거를요?”


여명이 자신의 검지로 비슷한 방향을 가리켰다. 정확히 극락조를 가리키는 거였다.


“네.”


나나의 대답을 얻었지만, 여전히 확신을 얻기 위한 의심의 기색이 여명의 눈에 나타났다.


“왜 굳이 저걸······”


그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나나가 두 눈썹을 올리며 거절당한 사람의 얼굴을 했다. 저 화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는데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는 그녀였다.


“왜요? 안 파는 거예요?”

“아뇨, 안 파는 건 아니에요. 팔기는 팔죠. 단지 나나 씨가 왜 굳이 저걸 필요로 하는지 잘······”


하루 쉰 만큼 이틀 치의 일을 해야 했기에 돌아오자마자 정신이 없어진 여명은 지금의 순간에 가장 정신을 바짝 부여잡아야만 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나나의 행동에 퍽 놀랐기에 그랬다. 그렇지만 그의 반응이 이렇듯 미적지근해질수록 나나의 어깻죽지는 갈수록 은근히 처질 뿐이었다.


“필요해서요.”


그에게는 구매 목적을 자세하기 밝히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저렇게 큰 거를요? 직접 들고 가져가기도 힘들 텐데······.”


염려스러운 마음에 여명이 자동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언가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먼저 알아챈 나나가 자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과 여명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했다.


“뭘 말하는 거예요?”

“네?”


나나의 질문에 즉각 반문한 여명의 대답을 끝으로 그들 사이에 잠깐의 적막이 돌았다. 서로 다른 소재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각자 자각한 시간이었다.


“극락조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

“극락조가 뭔데요?”


분명히 얼마 전에 주화로부터 각 식물의 명칭을 들어둔 나나였다. 그러나 그리 집중하지 않았던 탓으로 그걸 제대로 기억해낼 리는 만무했다. 지금 바로 곁에 주화가 있었다면 눈을 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나는 자신이 직접 배달이라도 해본 것들만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결국, 여명이 직접 나서 다가가 극락조 화분을 가리켰다.


“이게 극락조예요.”


그의 손길이 화분에 닿는 순간부터 나나는 기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던 것과는 정반대였던 화분이었으니 그럴 수밖에도 없었다. 올바른 의사소통을 위해 선택한 지시 대명사가 도리어 의사소통의 장해물이 되어버렸다.


“그거 전혀 아닌데요······.”

“그럼 뭘 말하는 거였어요?”


손을 뗀 여명이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나가 가리킨 게 무엇인지 나름대로 추측이라도 해보자는 심산에서 한 행동이었다.


“얘요.”


마치 조약돌을 줍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뿐하게 나나가 들어 올린 화분은 스킨답서스였다. 극락조 앞에 있던 것이었다.


“아··· 그랬어요?”


여명이 짧게 뱉은 탄식에는 민망함이 다소 섞여 있었다. 이 우연찮은 기회에 식물의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여명은 끝내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나나가 테이블 위로 떨어진 카드를 다시 주어서 내밀었다. 하지만 여명은 그것을 도로 들이밀기만 하였다.


“뭐예요?”


판매자의 태도라고는 할 수 없는 여명의 동작에 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냥 가져요.”

“그냥 가지라고요?”

“나나 씨한테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이렇게 우리 가게에서 일도 해주는데 당연히 그냥 줘야죠.”

“음··· 아녜요, 그냥 돈을 받으세요.”


나름의 꿍꿍이가 있던지라 여명의 선심에 난처해지기만 한 나나였다.


“괜찮아요. 나나 씨가 키우고 싶은 거면 그냥 가져도 돼요.”

“제가 키울 거긴 한데······ 그래도 받으시면 안 될까요?”


돈을 받아달라 애원하는 자신의 꼴이 조금 우습고 면구스러워진 나나가 애써 침착하게 청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기게 된 여명의 눈빛에 그녀는 이번에는 황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제가 원래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기도 하고, 금전 관계는 깔끔하게 하는 것도 좋아하고··· 딱히 제가 뭘 도와드렸는지도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런 게 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러니까 일반적인 거래를 하고 싶어서요.”

“그래요, 좋아요.”


여명이 그녀가 말하는 내내 고민하더니 이내 테이블 아래의 서랍으로 허리를 수그렸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손에 든 채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럼 이거랑 교환할래요?”


테이블 위로는 마끈으로 포장된 봉투 3개가 일렬로 놓였다.


“이게 뭐예요?”

“나도 빚지고는 잘 못 사는 성격이거든요.”


여명이 나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봉투 위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나나 씨한테 돌려줘야 할 물건도 있고.”


그가 말하는 물건이 무언지 생각해내기 위해 나나가 봉투에서 시선을 떼고 눈알을 위로 굴렸다.


“설마, 안경?”

“맞아요.”


그러고 보니 나나는 여명과 주화가 함께 심연도에 다녀온 것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뱅긋대며 웃은 그녀가 봉투를 집었다. 가장 아래에는 나나의 이름 세 글자가 쓰였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여명이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포장이 끝난 봉투에 세 사람의 이름을 새긴 것이었다.


“안에 쿠키도 넣어놨어요. 뒤에 두 개는 도진 씨랑 다른 분에게 전해줄래요?”


봉투를 요리조리 살피고 있는 나나가 얼굴을 기분 좋게 끄덕였고 이는 여명을 흡족시켰다.


“그럼 받으셨겠네요? 유품 말이에요.”

“맞아요.”


여명이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손바닥을 내밀었다.


“만년필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걸로 그 봉투에 나머지 세 분의 이름을 적은 거예요.”


그 말에 나나가 자신의 이름이 쓰인 곳을 한 번 쓸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거래 완료겠죠?”


그런 그녀를 부드러이 보던 여명이 생긋이 미소를 그렸고, 이를 놓치지 않고 바라본 나나가 떨떠름하면서도 약간 꺼드럭거리는 느낌으로 이에 응했다.


“뭐, 그럴게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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