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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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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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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작성
20.08.2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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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85화

DUMMY

실로 오랜만이었다. 여명의 집은 그때 그 풍경에서 꽃이 더 만개한 것을 제외하면, 변한 게 없었다. 이를 구경하던 나나가 눈치껏 몰래 도진의 팔을 툭툭 쳤다.


“뭐야?”


그녀는 소곤거리며 그에게 바싹 다가가 붙었다.


“뭐가요?”


도진은 그녀가 건드린 팔을 문지르며 새침하게 답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었냐는 거지. 요즘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갑자기 왜 이 집 앞에서 네가 나오는 건데? 뭔데? 뭔데?”

“그건······”


현관문으로 가는 그들의 걸음이 거의 비슷한 속도로 느려졌다.


“여명 씨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고여명 씨한테? 우리한테는? 우리는 몰라야 하는 비밀이야?”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여명 씨한테 먼저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어차피 집에 가면 조이랑 나나 씨한텐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얼른들 와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이쪽으로 닿는 여명의 눈길에 도진과 나나는 각각 비밀을 들킨 사람마냥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먼저 예사롭게 답한 건 나나였다.


“네, 갈게요!” 그리고는 아까 쳤던 도진의 옷을 잡아끌었다.


세 명이 나란히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식사가 준비된 것처럼 음식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들뜬 나나가 아까 잡은 후에 아직도 놓지 않은 도진의 옷을 몇 번 펄럭거렸다. 여명은 그녀와 같이 신이 나 보였고, 이 둘을 지켜보던 도진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자신을 꼭 잡은 나나의 손을 풀어야 했다.

부엌으로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반가운 목소리를 내는 여명을 지켜보던 도진이 엄격한 조교처럼 나나에게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나나 씨 잊지 마요. 우리가 놀러 온 건 아니에요.”

“알아. 나도 처음엔 올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고. 지금은 솔직히 배가 고파서 그래. 무보수로 일하면 원래 배가 더 고픈 법이거든.”

“···그랬군요.”

“아, 참.”


나나가 그에게 말할 것이 떠오르는 바람에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반사적으로 흠칫 몸을 뒤로 빼는 도진의 반응에도 그녀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하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왜 그래요?”

“나도진 잘 들어.”


그때 부엌에서는 여명의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잠시 말을 멈춘 나나였으나 그녀는 곧바로 여명이 바깥으로 나오거나 이쪽을 부르지 않게 되자 살금살금 도진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대고 속삭였다.


“할머니랑 우린 처음 만난 사이야.”

“예? 설마 그럼 저 안에 있는 분이 그 할머님이신 겁니까?”


감색 격자무늬가 수놓인 커튼을 가리키며 도진이 눈을 회동그랗게 떴다.


“응. 그리고 아까 먼저 꽃집에서 먼저 만났었는데 아무튼 처음 만난 것처럼 그렇게 되어버린 거야.”

“그럼 여명 씨는 아직 모르는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난 고여명 씨의 직원이고 넌 고여명 씨의 친구고. 그렇게 설명하도록 하자. 그런데 말이야, 너.”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데도 그런 도진이 얄미운지 나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할 이야기란 거, 나한테 먼저 안 알려줄 거야?”

“그게 좀······ 그런데 말이죠.”

“왜?”

“그냥 여명 씨한테 먼저 말하는 게 낫겠어요. 아무튼 나나 씨한테만 비밀인 것도 아니니까 이번만은 넘어갑시다.”


도망치려는 도진을 “야!”라고 부르며 불러 세우려고 했으나 마침 커튼을 걷으며 얼굴을 내민 여명 탓에 나나는 입을 애타게 다물어야 했다.


“할머니께서 상을 여기에 차려놓으셔서 그런데 두 사람 다 거실이 아니라 이쪽에서 식사해도 괜찮겠어요?”

“그럼요.”


도진은 묻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각 답했고 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거실은 한 번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인사하세요. 이쪽은 아까 뵈었었죠?”


여명이 손짓으로 먼저 나나를 가리켰다. 그의 손에 이끌려 음식 준비를 멈춘 노파는 손에 묻은 물기를 옷에 닦아내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 모습에 넙죽 손을 내밀여 인사에 응하는 나나였다.


“안녕하세요.”

“알고 말고, 꽃집에서 일하고 있던 아가씨 아닌가? 차린 건 많이 없지만 저녁 배불리는 먹기를 바라네만.”

“차린 거 많으신데요······ 감사합니다.”


흘깃 던진 시선에도 식탁은 가득 차 있었다. 도리어 그렇게 말하는 나나 자신이 민망해질 만큼의 성의가 보일 정도였다. 노파는 미소를 지었고 웃는 그 모습 그대로 도진에게로 눈길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에 도진이 어깨에 힘을 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나도진입니다.”

“반갑다네. 나는 여명히 친할머니입니다.”


이번에도 노인은 악수를 청했고 도진은 자신의 앞에 다가온 그 손을 제 두 손으로 맞잡았다. 몇 번 손을 흔들고 나니 손은 자동으로 풀어졌다. 적당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마친 후 그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잡으며 식탁 앞으로 모여들었다. 여명과 노파가 나란히 앉았고 그 앞으로 여명의 맞은편에 나나가, 노파의 맞은편에는 도진이 앉았다. 자리에 앉으려 무릎을 굽히던 나나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음식 하나를 발견하고 감탄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깜짝 놀란 여명이 묻자, 괜히 자신이 촌스럽게 굴어버린 것 같아 나나는 부끄러운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네? 아, 아뇨 그게 아니에요. 문제는 무슨. 아하하, 단지 제가 메지국을 좀 좋아해서요. 그래서 너무 좋아서 그만······ 안 그래도 배고팠던지라!”


그녀의 변명이 뒷부분을 제외하면 거짓임을 아는 도진이 작게 킥킥거렸다. 이와중에 자신을 놀리는 그를 밎살맙게 흘긴 나나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식탁 쪽으로 돌렸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 중에는 늘 먹고 살았던 것들과 비슷하게 생긴 음식들이었지만, 그래도 신기해서 나나는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이 구경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 조금만 더 나아가면 자신을 눈여겨 바라보는 노파가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와, 맛있겠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나나의 활기찬 기합 뒤로 식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여명이 어떤 결심으로 자신의 할머니를 직접 이곳으로 초대했는지, 그런 종류의 심도 있는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으나 가족 간의 즐거운 대화를 초대받은 자리에서 엿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노인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이미 월촌에서 들었던 것이지만, 이는 충분히 모른척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반찬을 집을 때마다 때로 자신의 입맛에 꼭 맞는 것을 찾아내었던 나나였지만, 그녀는 메지국처럼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대한 본심을 꾹 누르며 식사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던 때이기도 하였다. 도진은 수저를 바삐 움직이지 않았으나 일정한 박자로 계속 식사를 하고 있기도 하던 참이었다.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명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을 꾹 다무는 것이었다. 그가 할 말이 없어진 까닭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음은 자신이 먹고 있던 반찬에 정신이 팔렸던 나나가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나가 덩달아 자신마저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여명이 입을 열었다.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할머니한테도, 그리고 앞의 두 분한테도.”

“할 말이 있다고?”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노파였다.


“네. 사실 부탁이기는 하지만요.”


여명이 곧은 자세로 굳은 얼굴을 움직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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