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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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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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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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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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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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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8화




“이번에도 아저씨가 먼저 왔구나.”

노란 빛 무리가 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침낭속에서 슬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길다란 고치 비스무리한 것에 못생긴 얼굴만 내밀어진 모습은 마치 흉측한 누에 같았다. 이제 저 얼굴에서 명주실만 뿜으면 되는거다.

천마는 무뚜뚝한 어조로 인사했다.

“어제보다 조금 늦었구나.”

“미안해, 아저씨.”

어제 로그아웃을 늦게 했더니 간병 아주머니가 아침에 늦게 깨워줬다. 그래서 늦었지만, 그런 남 탓 같은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 안의 슬기는 활기차고 주도적인 사람이었다.

벌떡 일어난 슬기가 광개토의 빈자리를 보고는 천마에게 물었다.

“광개토는 오후에나 접속한댔었지? 그럼 우리끼리 좀 돌아다녀볼까?”

“안 기다려도 괜찮으냐?”

“내가 파티장이라서 괜찮아. 접속하면 내 옆에 나타날거야.”

접속이 뭐냐라고 물으려던 천마는 생각만 했는데도 머리가 아프려 하자,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럼 어디로 가려느냐, 요괴들 본부가 있다는 곳으로 갈 것이냐?”

“어떻게 가, 거길! 아저씨가 깽판을 놓는 바람에 조그만 마을도 못 들어가는 처진데, 도시에 갔다가는 정말 유혈사태가 벌어질걸. 그러게 본 아가씨가 하지마라고 하면 좀 안하고, 참으라고 하면 좀 참고 그래야지!”

슬기의 역정에 천마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흐흐흐, 전리품이 주인한테 기어오르려고 하는구나.”

주인을 몰라보는 개는 패야 하는 법.

천마의 손이 슬기에게 향하자, 슬기는 그만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거인의 손아귀에 잡힌 것처럼 온 몸이 강하게 죄어오고, 점점 허공으로 떠오르는데, 바둥거리기 조차 못했다.

“아, 아저씨..”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라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슬기 역시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천마를 노려보았다. 이제 죽어도 두려울 것 없기에 슬기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아니, 이 못생긴 년이!”

분노한 천마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슬기도 천마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슬기의 체력이 바닥났다.

아,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천마의 손아귀 스킬이 풀렸고, 슬기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이제 알겠느냐, 네년의 목숨은 본좌의 손에 달렸다는 걸. 언제라도 지금처럼 불손한 언행을 보였다가는 목숨을 거둬버리겠다.”

주저앉은 슬기를 보며 천마가 냉담하게 말했다.

“...그냥 죽여.”

슬기의 힘겨운 혼잣말은 아주 작았지만, 초인의 범주를 넘어선 천마가 그 소리를 못 들을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천마는 되물었다.

“뭐라고?”

“그냥 죽이라고, 살인마 자식아! 다른 사람 목숨을 개미 목숨만도 못하게 여기는 새끼가 나는 왜 죽이다 말았대?”

“어허~”

슬기의 폭발에 천마가 헛기침으로 당혹함을 숨기려했지만, 그녀의 주둥이는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나버린 후였다.

“내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라고 했고, 참아야 할 것을 참으라고 했고!! 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너 때문에 벌어졌다고 했을 뿐인데, 감히 날 죽이려 들어?! 뻔뻔스럽기는! 말 들을 짓을 해놓고는 말하면 죽이겠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협박할 필요도 없어. 니 꼴리는대로 죽이고 싶으면 죽여!! 그냥 죽여도 되는데 왜 안 죽일까?!”

슬기가 마구 몸을 들이밀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 지껄여 대는데, 천마는 어어? 하며 그저 밀려나기만 했다. 할 말을 한 차례 쏟아낸 슬기의 눈이 천마를 정확하게 노려보며 희번뜩 거렸다.

“한번만 더 죽이니 살리니 해봐. 그냥 콱 죽어버리고 안 살아날 테니까!!”

슬기의 경고에 천마의 어깨가 움찔했고, 그녀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어? 이게 효과가 있어?’

“나 그냥 콱 죽고 안 나타 날거야!!”

“...알았다. 아가씨야.”

정말로 그녀가 그렇게 해버린다면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덧 그녀와의 동행에 적응해버린 천마로서는 간밤에 느꼈던 그 기이한 감정(괜찮다라고 쓰고 외롭다라고 읽는 그 감정)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아 그만 원치 않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슬기는 경고가 먹힌 김에 좀 더 지르기로 했다.

“내 말 안 들어도 콱 죽어버리고 안 나타날 거야!”

“알았다.”

“전리품이니 뭐시기니 하면서 무시해도 그냥 죽어버리고 안 나타날 거야.”

“알았다. 아가씨야.”

알았다고 하는 천마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한풀 기가 꺾인 느낌이 있었다.

‘오~ 이거 뭐지? 분명 지금 내 얼굴은 추녀 그 자체일 텐데, 마치 현실에서 내 진짜 얼굴을 본 남자들 같은 반응이잖아?’

슬기는 자신의 목숨으로 협박하자 순순히 항복을 선언하는 천마가 사뭇 새롭게 보였다.

“본 아가씨의 말을 잘 들으란 말야. 안 그러면 나 죽어버릴 거야!”

“죽는건 괜찮다.”

“그리고 부활 안 할 건데?!!”

“...알았다. 말을 들어주마.”

방금 전까지 천마의 손아귀에 붙들려 캑캑 거리던 여자가 갑으로 부활했다.

슬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협박이 먹힐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꽤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천마 역시도 본인이 왜 이 못생긴 여자의 말에 전전긍긍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본인은 의식 못했지만,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면 줄수록 그의 기분이 나아졌다는 점이었다.


*


천마의 공능으로 날아오른 천마와 슬기는 눈 아래 펼쳐진 첩첩산중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저씨, 마법사야?”

“마법사가 무엇인가?”

“마법사가 아니면 대체 어떻게 이렇게 날 수 있는 거지?”

“아, 이건 파천무 8단공에 오르면 가능한 것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을 본좌의 뜻대로 순응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모든 힘?”

“그렇다, 아가씨야. 아가씨는 항상 자신을 바닥으로 잡아당기는 힘을 못 느끼는가?”

‘그런 힘이라면...?’

슬기의 머릿속에 적절한 단어가 떠올랐다.

“음...만성피로?”

“그게 뭔가?”

슬기와 천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 놈의 유치원생 같은 아저씨는 뭔 말만 했다면 뭐냐고 물어대니 귀찮기 그지없다.

“있어. 어른이 되면 누구나 느끼는 불가항력 같은 거.”

“불가항력은 또 무슨 소리...”

슬기는 천마의 질문을 잘랐다.

“그냥 그 파천무인가 뭔가 설명만 하시지?”

“알았다. 파천무 8단공에 오르면 본인이 느끼는 모든 힘에 대하여 순응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공능이 생겨난다. 이는 중력도 마찬가지! 중력에 저항하면 이렇게 몸을 자유로이 띄울 수 있다.”

“뭐? 뭐에 저항을 한다고?”

중력에 저항한다는 말에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대꾸를 하려던 슬기는, 곧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임인데 안 되는게 어딨겠어? 그러고 나니 다시금 마음속에 탐욕이 생겨났다. 그녀는 소도둑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진짜 나 이거 배우고 싶어졌는데.”

“남자가 되고 싶다고?”

천마의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꾸에 나지막이 한숨을 쉰 슬기가 화제를 돌렸다.

“아저씨, 이 근처에 혹시 요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슬기의 질문에 천마가 잠시 주변을 돌아보더니 이윽고 한쪽을 가리켰다.

“좋았어!! 저기로 가보자.”

슬기의 말에 둘의 몸이 천마가 가리켰던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험준한 산세 속에 조그마한 부락이 보였다. 대략 100여 미터 정도 상공에서 살펴본 그 부락은 확실히 산적놈들의 소굴이 분명했다. 이유인즉, 첫째로 여자나 아이가 너무 적고, 둘째로 주변에 논이나 밭이 없으며, 마지막으로 남자들이 하나같이 남자답게 생겼다.

“아무래도 내가 찾는 놈들이 맞는 거 같아.”

“아가씨야, 산적은 왜 찾느냐?”

“씨발, 그 왜, 멍청한게 움직였다하면 여기저기 똥을 싸지르는 누구 때문에 선업 점수가 팍팍 깎여서 이러는 거잖아.”

“어느 놈이냐, 그게!”

천마는 분노했다. 감히 내 전리품을 화나게 만들다니, 아예 똥을 못 싸게 찾아다가 똥꼬를 막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슬기는 이제 좀 익숙해져가는 천마의 유체이탈적 화법에 그러려니 하고 설명했다.

“암튼 그래서 우리는 산적도 토벌하고, 악당도 때려잡고, 이런저런 선행들을 많이 해서 선행점수를 쌓아야 돼. 자자, 얼른 내려가자. 먹잇감을 두고 딴 짓하면 안 된대.”천마는 요괴가 사람을 죽이겠다는게 좀 내키지 않았지만 잠자코 슬기의 명령을 따랐다. 슬기의 손짓에 둘은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다.


*


장병태는 강의실로 들어가 평소와 다름없이 입구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이미 그의 지정석과 다름없어진 자리였다.

테블릿을 꺼내들어 수업 시작하기 전에 잠시 인터넷 서핑이나 하려고 하는데,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병태야. 시온 시작했냐? 니 귓말 엄청 기다렸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같은 과 동기인 강성근과 전대식이다. 그 뒤로 퀸카 이지수도 보였다. 안녕 하며 손 흔드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캐릭터 이름을 안 알려 줬던가?”

대식의 말에 병태가 손을 저었다.

“아니, 알려줬어. 알려줬는데 중간에 좀 이상한 일들이 있어가지고 말야.”

다급히 변명하던 병태가 멈칫했다. 내가 얘네들한테 미안할 만한 일을 한건 아니잖아. 오히려 연락이 없었던 건 이 녀석들이었다.

“근데, 니들이 귓말 보내줘도 되잖아. 내가 캐릭터 이름 미리 알려줬었잖아.”

“뭐, 인마?”

언성이 높아지려는 강성근을 전대식이 말렸다.

“성근아. 병태는 완전 생초본데 잘 모를 수도 있지.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연락을 먼저 하는게 맞지. 안 그러냐?”

그러면서 그가 병태에게 물었다.

“너, 그럼 진짜 캐릭명을 그...뭐더라? 주몽? 그걸로 했냐?”

“광개토라고 했는데.”

“아, 맞다. 미안. 광개토나 주몽이나 다 고구려 왕 아니냐. 헷갈렸다.”

대식의 말투가 정말 미안해 하는듯해 병태는 살짝 마음이 풀렸다.

대식이 다시 말했다.

“그럼 당연히 시작마을은 올드파인 마을로 정했지? 이스트랜드 헤인 왕국에 있는 마을말야.”

그의 말에 장병태는 혼란스러워졌다.

“아, 아니. 노송촌이라고 했잖아.”

“노송? 올드 파인을 한자로 바꾸면 노송이긴 하지. 내가 노송촌이라고 했었어?”

대식이 되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장병태는 당황스러웠다.

그런 병태에게 강성근이 말했다.

“노송촌이라면 마을이름이 한자인거 같은데, 헤인 왕국도 아닌 거 아냐?”

“헤인 왕국? 한 제국이라며!”

“아냐, 헤인 이라고 했는데? 아, 헤인 제국이라고 잘못 말했나보다. 그래서 한 제국이라고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

강성근의 능청에도 병태는 설마 이들이 자신을 속였겠어? 라며 마음속의 경고를 애써 무시했다.

“아, 난 한제국의 노송촌인줄 알고...”

“야, 어쩌냐? 한 제국이면 완전 남쪽 아니냐?”

강성근이 전대식을 쳐다보며 묻자, 전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완전 멀 걸? 중간에 태평양처럼 넓은 바다도 있고. 귓말 날리고 싶어도 날릴 수 있는 거리가 아니야.”

“병태야, 할 수 없네. 그냥 너는 너 혼자 게임해야겠다. 우리가 너 있는 곳으로 가려면 한 달 내내 이동만 해야 돼. 그런데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니냐. 하루 종일 사냥해서 렙업해야지.”

전대식과 달리 강성근은 하나도 미안한 기색 없이 제 할 말을 늘어놓았다.

“그럼 어떡하지? 캐릭터 새로 만들까?”

당황해하는 병태를 전대식이 가만히 붙들었다.

“만들긴 뭘 만들어. 시온의 방침이 1인 1캐릭터 라는거 몰라? 그냥 그걸로 게임하고, 언제 우리 지역으로 넘어오게 되면 그때 같이 게임하도록 하자.”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퀸카가 예쁜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나도 헤인 왕국에 있으니까, 꼭 놀러와. 오면 같이 여행가도록 하자.”

강성근과 전대식 때문에 생겨나려던 은근한 불쾌감이 이지수의 나긋한 한마디에 휙 날아가 버렸다.

“야, 근데 말야. 혹시 계열 선택하는데, 계열없음으로 뜨는 경우도 있어?”

병태는 친구들을 만나면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었다.

“계열없음이 떴다고?”

눈이 동그래진 강성근과 전대식이 되물었다.

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강의실로 교수님이 들어오시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야, 점심 먹으면서 얘기하자.”

그렇게 말하며 친구들은 멀찍이 떨어진 자기네들 자리에 앉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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