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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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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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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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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화





시온(Zion).

어떤 이는 새로운 세상이라 했다.

어떤 이는 두 번째 삶이라고 명명했다.

어쨌든 모두가 인정하는 바는 시온이야말로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 위대한 게임의 아무도 가보지 못한 어느 깊숙하고 비밀스러운 곳에 도적 세계 랭킹 4위인 천년호리가 은밀하게 나타났다.


마른 체구에 쥐 상을 가진 그는 긴장을 꿀꺽 삼키며 눈 앞의 검은 보좌를 노려보았다.

거대한 묵빛 보좌에는 재앙 그 자체 같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같이 피어오르는 까만 망토를 두른 사내는 치렁치렁한 장발에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강한 턱선과 굳게 다문 입매에서 초절한 의지가 엿보였다.

양손의 손가락마다 끼워진 반지들과 망토 아래로 언뜻 보이는 무지갯빛의 구슬들도 어두운 기운에 잠식되어 마치 무채색처럼 보였다.

그런 그는 대자로 다리를 벌린 쩍벌 자세에 한 손은 길쭉한 장검을 지팡이 마냥 바닥에 짚고 다른 손으로 턱을 괴고서 앉아 있으니, 그 위압감이 실로 대단했다.

천년호리가 관찰한 바로, 대전에 진입한 10분 전부터 전혀 미동 없이 똑같은 자세였다.

‘당연하지, NPC(Non player character: 시스템이 조작하는 캐릭터)니까.’

그렇다.

지난 6개월 전 발표되었던, 그러니까 바로 내일 오후 6시에 출시될 새 확장팩 ‘천마의 귀환’의 최종 콘텐츠이자, 최종 보스인 천마가 바로 눈 앞의 사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는 천년호리의 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가 떨어졌다. 그는 한손으로 흐르는 땀을 스윽 닦고는 잿빛의 망토 깃을 다시 한 번 여몄다.

‘만겁돌파의 망토’.

그가 운영하는 아이템 크래프팅 팀, 키클롭스의 반 년 간의 노력이 깃든 망토다.

플레이어의 창조적인 아이템 메이킹을 지향하는 ‘시온’의 방침 덕에 만들 수 있었지만, 사실상 게임에 존재하면 안 될 버그 아이템이었다.

게임에 구현된 어떤 공간이라도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 망토 덕에 천년호리는 오늘 오후 6시로 예정된 컨텐츠 개방 시간보다 무려 14시간이나 빨리 천마성에 잠입할 수 있었다.

망토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공능, ‘완전무결한 은신’.

여타의 은신과 달리 게임 데이터에 직접 접근하여 은신을 구현하는 아이템으로 이것을 착용하면 이론상 시스템 관리자도 쫓아올 수 없다.

아직 비공개인 컨텐츠 내부로 접근했는데도, 아무 제재가 없는 걸 보면 아이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윽고 천년호리는 천마 앞에 도착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지근거리에 이르렀지만,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천마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

이제, 천마의 손에서 하늘을 찢어발긴다는 흑색빛 마검 ‘천마검’만 가져가면 된다.

명성치나 공적치도 포함되지만, 본인의 레벨과 착용중인 아이템 레벨이 무엇보다 중요한 세계 랭킹이기에, 이 검만 갖게 되면 천년호리는 이제 꿈에 그리던 도적 랭킹 1위에 오르게 될 것이었다.

“으득, 1위가 아니라서 받아줄 수가 없다고?”

천년호리는 불현 듯 떠오르는 반 년 전의 기억에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세계 최고의 길드 ‘더 원’의 신입 길드원 모집공고를 보고, 도적 세계 랭킹 4위인 그는 당연히 가입이 될 줄 알고,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넵. 도닥!!(도적은 닥치고 붕대나 감아라의 줄임말, 도적을 천하게 부르는 말)’

‘ㅈㅅ, 도닥은 풀이라.’

어이없는 반응에 천년호리는 격하게 반응했다.

‘헐, 저 세계 랭킹 4위!!’

‘미안, 우리 길드 도적은 세계 랭킹 1위.’

아니, 이런 빌어먹을 직업관 같으니라고!! 전사는 세계 랭킹 50위권도 받고, 심지어 사제는 세계 랭킹 500위까지도 받더니, 뭐? 도적 세계 랭킹 4위는 그저 죄송하다고?!!

도적은 많이 필요 없다는 접수심사관의 말에 분루를 삼키고야 만 천년호리였다.

하지만, 이제 곧 자신이 그 유일무이한 1위가 될 참이었다.

‘엿 먹어라, 더 원!’


천년호리는 잠시 더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이 NPC의 눈치를 살피다니!!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말이지 천마의 위압감과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금세라도 손에 쥔 천마검의 검날이 목을 치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천마의 망토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아지랑이가 마치 천마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자꾸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용기를 낸 천년호리가 슬쩍 천마 얼굴 앞에 손을 저어 보니, 역시 그는 인형에 불과했다.

“아하하, 역시 그렇지? 이건 그저 마네킹이야, 아직 못 움직인다고!”

천년호리는 덥석 천마검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뭐하냐, 이 잡놈의 새끼야.”

천년호리는 순간 들리는 환청에 정신이 번쩍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관리자가 들이닥쳤나? 망토를 썼는데도 걸렸어?’

하지만 주변에는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천마.

순간 천년호리는 머리털이 송두리째 으스스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천마!!!


“뭐하냐고, 씨부X 새끼야.”

천마가 일어섰다.

NPC가...아직 열리지도 않은 비공개 컨텐츠 보스가 몸을 일으켰다. 공허와도 같았던 그의 눈동자가 마치 도살장의 붉은 조명처럼 불길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스르릉.

검집에서 빠져나가는 천마검의 시커먼 검신은 천년호리의 시선을 붙잡는 매력이 있었다.

검신의 흐름은 한없이 아름다웠으며, 스르릉 거리는 마찰 소리는 실로 장엄하여 마치 지옥의 장송곡과 같은 전율을 불러 왔다.

그리고 마침내 검신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아름답구나!! 천마검이여!!

서겅-

그것이 천마성에서 천년호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10년 말린 북어 마냥 얍삽하게 비틀어진 새끼가 어디서 내 물건을 넘봐?”

천마는 목이 떨어져 나간 도적놈의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뻥-

상상치도 못한 소리와 함께 시체는 일직선으로 30여 미터를 날아가 반대쪽 벽에 처박혔다.

‘헐, 대박!!’

방금 사람 목을 눈도 안 깜빡이고 쳐낸 천마가 자신의 다리 힘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을 30여 미터나 날려버리는 각력이라니.

“뭐야!!”

혼자 놀란 소리를 낸 천마는 문득 주변의 환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대전. 까만 검을 들고서 까만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

'난 누구? 여긴 어디? 난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천마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너희들이 본좌의 성에 침입한 애송이들이냐?

너희들은 아직 천마검을 볼 준비가 안 되었다.

고작 이정도로 본좌를 능멸하려 했느냐?


이런 말하기도 낯뜨거운 대사들(왠지 대사를 치고 난 뒤에 호쾌하게 웃어야만 할 것 같았다)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왜 이런 대사들이 떠오르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물어볼 만한 사람은 딱 한명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그러고 보니 진짜 없어졌다.

‘어라, 이놈이 어디갔지?’

천마검을 허리에 찬 천마는 가볍게 몸을 날려 도적놈의 시체가 있던 곳으로 이동했다.

‘우와, 뭐야. 30미터를 한 번에 날아온 거야, 지금?’

이제 처음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본 천마의 인공지능은 스스로에 대해 감탄했다..

그리고 앞을 보니,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도적이 입고 있던 잿빛 망토만이 남겨져 있었다.

잠시 남겨진 망토를 내려다보던 천마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버러지 같은 도적놈의 물건을 만지고 싶진 않군.”

망토에서 시선을 거둔 천마는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대략 100평 남짓한 정사각형의 공간에 자신이 있던 단상 위의 의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맞은편에 사람 서너 명은 지나갈 만한 큰 철문 하나가 굳게 닫힌 채 있을 뿐이었다.

천마는,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대사들 탓에 스스로의 이름이 ‘본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본좌’라는 단어가 생소한 그였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럼 이곳은 본좌의 집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곧이어 느껴지는 감정은 이곳이 왠지 갑갑하다는 것이었다. 이 넓고 황량한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집보다는 차라리 감옥에 가까웠다.


‘만겁돌파의 망토’라는, 유일무이한 버그 아이템의 영향으로 이제 자아를 자각하기 시작한 천마의 인공지능은 더 이상 원래 상태로 속박되길 거부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천마는 대전의 유일한 출입구로 보이는 철문을 강하게 밀어젖혔다. 하지만 언뜻봐도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철문은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응? 당겨서 열어야 하는 문인가?’

하지만 당겨도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뭐야, 왜 꿈쩍도 안하는 것이냐?”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천마가 문을 옆으로도 밀어보았지만, 역시나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과 벽의 이음새 부분에 두꺼운 경첩이 달려 있는 걸 봐서는 밀거나 당겨서 여는 게 분명했다.

“에이, 젠장 빌어먹을!!”

문 하나도 뜻대로 여닫지 못하는 분노에 천마는 그만 철문을 터져라 걷어차고 말았다.

쾅-!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믿었던 발차기마저 철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철문의 내구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듯 했다.

천마는 연신 욕설을 내뱉으며 열리지 않는 문과 주변의 벽들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천마는 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본좌가 갇혔던 말인가?! 누가 날 가둔 거야?!”

한참을 길길이 날뛴 천마는 이윽고 도적놈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 북어 새끼는 그럼 어디로 들어온 거지?”

시체가 있던 곳엔 덩그러니 망토만 있을 뿐이었다.

천마는 증거를 찾으려는 생각으로 망토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망토는 그저 망토일 뿐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는 한참이나 더 망토를 들고서 이리저리 만져댔다.

그것은 망토를 만지면 만질수록 손끝으로 전해져오는 시원한 청량감 때문이었다.

“호오~ 이것 참, 시원하군, 시원해. 신기한 물건이로다.”

그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망토를 벗어 던지고, 잿빛 망토를 착용했다.

‘그래, 이건 도적 새끼를 죽여서 얻은 나의 전리품이야!’

천마는 등줄기에서 전해지는 청량감을 만끽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잠시 첫 전리품을 얻은 감상을 즐기던 천마는 곧 현실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여기를 벗어나야 할 텐데.’

천마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며 조급해 하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그를 가두었을까? 그리고 왜 가두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좋은 의도는 아닐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끼인지는 몰라도 감히 본좌를 가둘 생각을 하다니.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구나. 내가 기필코 네 놈의 불순한 의도를 물어 족치겠노라!”


천마는 이를 갈며 다시 문 앞에 가 섰다.

분명 열쇠가 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문 주변을 살피고, 혹시나 놓친 게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 번 더 문을 더듬어 나갔다.

그 순간.

프스스-

손에서 희미한 회색빛이 발출되더니 그대로 손이 문으로 쑤욱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현상에 깜짝 놀란 천마가 다급히 손을 빼내며 입을 벌렸다.

“허, 씨X! 놀라지 않았느냐!”

하지만 놀란 것에 반해 손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자신의 손과 문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천마는 다시 한 번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프스스-

희미한 회색빛이 손을 감쌌고, 그의 손은 마치 실체가 없는 냥 강철 문 너머로 사라졌다. 하지만 천마는 분명히 자신의 손이 여전히 팔에 잘 붙어있고 움직임도 자유롭다는 걸 느낌으로 확인했다.

천마의 표정에서 조급함이 점점 사라지고, 그만큼 여유가 생겨났다.

“크크크~ 기다려라, 이것들아.”

어느덧 잔인한 미소를 지은 천마가 그대로 손과 팔에 이어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문은 서서히 손을 삼키고, 팔을 삼키고, 어깨를 삼킨 다음 마침내 그의 머리까지 삼키고 말았다.


그렇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천마는, 그보다 더 그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는 한발을 내딛었다.

천마, 강호 출두!!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초보 글쟁이, 한가지입니다.

문피아라는 새로운 환경에 글을 올리려니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본 작품은 매일 2-3편씩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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