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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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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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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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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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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2화





성을 빠져나온 천마의 눈앞에 끝도 없는 설산이 펼쳐졌다.

날카롭게 솟아 오른 산봉우리들이 아침 햇살로 새하얗게 빛나며 창날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흐음, 내가 이 풍경을 어디서 봤던가?”

불과 몇 십 분전에 깨어난 천마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할 텐데, 왠지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시원하고도 상쾌한 공기, 밟을 때마다 푹푹 꺼지며 자국을 남기는 눈 밭.

처음 겪는 신기한 것들에 천마는 잠시나마 성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첫눈에 발광하는 강아지 마냥 발자국을 남겨가며 폴짝폴짝 뛰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흥미를 잃고 만 천마는 땅을 박차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오호, 이것 봐라?”

천마는 자신의 몸이 생각 이상으로 가볍게 날렵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저 살짝 뛰었을 뿐인데, 한달음에 10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 버리다니!

게다가 몇 걸음 더 내딛던 천마는 본인의 몸이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한없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본좌는 아주 뛰어난 고수인가보군.”

스스로의 능력을 알면 알수록, 천마의 마음에 근거 있는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라는 의문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이제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NPC인 천마로서는 아직 그런 고차원적인 고찰은 무리였던 것이었다.

한없이 몸을 가볍게 만든 천마는 눈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한걸음에 10미터를 나아가던 보폭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금세 2, 30미터 이상으로 늘어나버렸다. 그렇게 달려 나가자 이내 천마의 시야 속에서 천마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천마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달리고 있는 거지?’

그저 천마성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했을, 아직 업데이트의 완전한 마무리가 되지 못한 천마의 인공지능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산등성이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북어 같이 생겼던 도적놈 이후로 처음 느끼는 사람의 기운이었다.

천마는 순식간에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그러자 그 너머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웬 여자가 한 명 보였다.

여자를 찬찬히 살펴보는 천마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뭐하는 여자지? 제정신인가?’

그 여자는 한 겨울과도 같은 새하얀 설산 풍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여름의 비키니 복장을 하고 있었다.

노출이 심할수록 방어도가 올라가는 게임산업의 기형적인 현상을 모르는 천마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복장이었다.

제정신이 아닌듯한 그 여자는 온갖 쓸데없는 장식들이 덕지덕지 붙은 활을 들고 주변의 산 짐승들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런데 공격을 받은 짐승들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활을 맞았으면 도망갈 생각을 해야 할 텐데,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듯이 달려들다가 여자 발밑에서 거꾸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동물의 시체가 여자 주변에만 열 마리 가량 되었다. 천마가 동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미련함에 혀를 차는 동안, 어느새 여자 주변의 동물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곰 한 마리의 숨통마저 끊어낸 여자는 이윽고 동물들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라, 저게 무슨 현상이지?’

곧 천마의 눈에 단연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해봤던 장면이 펼쳐졌다. 여자가 몇 번 뒤적이자, 동물의 사체가 사르르르 빛 가루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 손에 들린 건 달랑 동전 몇 개와 곰 가죽 한 장.


천마는 경악했다.


‘아니, 곰이 죽었는데 돈이 왜 나타나는 것이냐? 설마하니 곰이 사람처럼 돈을 들고 다닌단 말이냐? 허리춤에 돈 주머니라도 만들어 놓기라도 한 것이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저 큰 곰이 죽었는데 벗겨진 가죽은 고작 손바닥만한 크기에 불과하다니. 엉덩이 한 짝만 벗겨도 저거보다는 크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더니, 이 동네 곰은 죽어서 손바닥만한 가죽에다가 달랑 잔돈 몇 푼만을 남기는 모양이었다.

여기가 게임인줄 모르는 천마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웬걸? 곰만 이상한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그 뒤로 다른 동물들도 하나같이 돈을 내놓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허어, 사슴도 돈을 뱉고, 여우도 돈을 뱉는구나. 돈이면 안 되는게 없다더니, 이제 짐승들도 돈을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구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자 천마의 인공지능은 결국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마침내 납득하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난 후에도 이상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사냥을 마무리 지은 여자가 그 자리에 선 채로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이었다.

‘허어, 저렇게 입고서 가만히 있으면 꽤 추울 텐데?’

가만히 여자를 지켜보던 천마는 조금씩 여자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좀 전에야 활질하고, 사냥질 하느라 어쩌면 추위를 잊었겠다고도 싶었지만, 저렇게 가만히 있으면 오질나게 추울텐데?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지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천마는 발밑에 쌓인 눈을 손으로 한 움큼 쥐어 보았다.

차갑다!

예상한 대로였다. 한서불침의 육체를 가진 천마로서는 지금의 날씨가 전혀 춥지 않아서 혹시 정말로(여자가 비키니를 입고 있어도 될 정도로) 안 추운게 아닐까 하고 의심했지만, 눈을 직접 만져 본 순간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눈은 차가웠고, 날씨 역시도 그야말로 한겨울 날씨였다.

‘정상이 아니거나, 아니면 고수거나.’

어쩌면 저 여자는 미친 게 아니라 한서불침의 경지에 이른 고수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한번 말을 걸어봐야겠다.’

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정체불명의 존재, 혹은 고수에게 말을 걸기보다는 피하거나 모른 체 하기를 선택하겠지만, 천마는 애시당초 정상인이 아니었고, 천마의 인공지능에는 보스급 몹답게 ‘공포, 두려움’ 등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마가 한 걱정은 괜히 또 상대를 죽여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괜한 실수로 사람 하나를 죽여 버린 전적이 있었다.

‘사실 북어새끼도 내 검을 탐내지만 않았더라면...아니지, 그 야비한 눈빛으로 보지만 않았더라면..으음, 음침한 미소만 짓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날 쳐다보지만 않았더라면..크흠, 근처로 오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북어같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아아, 그렇구나!! 어쨌든 넌 내 손에 죽었겠구나.’

생각을 이어나가던 천마는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어떤 변명을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결국 그 도적놈 새끼를 죽여 버렸을 거라는 진실이었다.

아무튼 천마는 자신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사람까지 단칼에 죽여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여자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공을 디디며, 솟구치는 천마의 몸은 순식간에 여자 근처에 다다랐다. 무려 일 킬로미터에 달하던 거리가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적당한 목소리 크기로 대화가 가능한 거리로 급격히 좁혀졌다.

“소녀여.”

뒤쪽으로 다가갔던 천마는 혹시나 여자가 깜짝 놀랄까 저어하는 마음으로 인기척부터 냈다. 일종의 배려이자 자비였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자마자 여자가 뜻밖의 반응을 보여왔다.

천마가 그렇게 입고서 안 춥냐고 묻기도 전에 이 정신나간 여자가 먼저 대뜸 화살을 쏴 버린 것이었다.

그 신속하고 정확하기까지 한 화살 공격에 천마는 기분이 팍 상해 버렸다.

물론 그 공격이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진 않았지만, 공격을 받으면 받은 대로 돌려주고야 마는 NPC적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천마로서는 어떻게든 반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미친년이었던 게로구나!”

천마는 코앞까지 다가온 화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 내며, 그대로 발 앞의 눈덩이를 강하게 차버렸다.

그러자 천마의 진기가 실린 눈덩이가 벼락같이 날아가서는 여자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대로 여자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뭐야! 발가락에 기합 좀 넣었기로서니!”

천마는 자신이 행한 일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정말이지, 이정도로 미약한 힘에, 여자가 목숨을 잃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신체의 일부를 잃은 여자는 잠시 부들부들 떨더니 뒤로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에(하지만 천마는 정당방위였다고 생각했다.) 정말 깃털같이 가벼운 죄책감을 느끼며, 천마는 시체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역시나 예상대로 여자의 시체도 스르륵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겪는 상황에 천마의 인공지능이 빠르게 패턴을 파악하고 결론을 도출해 냈다.

‘북어도 그렇고 생닭도 그렇고, 이것들은 생긴 건 사람인데, 아무래도 사람이 아닌 것 같단말야...사람이 어찌 시체가 저절로 사라진단 말인가, 분명 이것들은 사람처럼 생겼으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홀리는...’

천마의 인공지능이 마침내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오호라, 이것들이 말로만 듣던 요괴라는 것들이로구나!”


사람을 홀리는 요괴들 따위야 몇 마리를 죽여도 거리낌이 없었다. 아니, 요괴 따위는 오히려 보는 족족 죽여야 하는 것들이었다.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 천마의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온해졌다.

게다가, 요괴를 죽이고 나면 좋은 일이 한 가지 더 있으니~!

‘요괴’의 시체가 사라진 곳에 새하얀 진주 귀걸이 한 쌍이 남았다. 흰 눈밭 위에 떨어진 새하얀 진주 귀걸이였지만, 모래알 가운데 모래도 찾아낼 정도로 초절한 눈썰미를 지닌 천마의 눈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그렇지, 노력을 했으면 마땅히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도적 요괴가 망토를 내놓더니, 이번 여자 요괴는 귀걸이를 내놓았다.

천마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우려다가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 굽히는 게 귀찮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천마는 허리를 굽히는 대신 진주 귀걸이에게 명령했다.

“니가 와라, 여기로.”

잠시 천마와 진주 귀걸이의 쓸데없이 치열한 대치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곧 진주 귀걸이가 천마의 손아귀 속으로 휘리릭 딸려 올라왔다.

“허허, 요괴 녀석들을 잡는 게 영 헛수고는 아닌 모양이군. 이렇게 잡을 때 마다 전리품들을 하나씩 떨궈주다니. 귀걸이야 내가 쓸 일 없겠지만, 전리품을 굳이 주겠다면야 나 또한 굳이 사양하지는 않겠네.”

바야흐로 요괴 사냥과 전리품에 대한 천마의 욕심이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요괴 년에게 일행이나 가족이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구나.”

원래 바퀴벌레 한 마리는 바퀴벌레 만 마리가 있다는 증거인 법. 요괴가 이 여자 하나 뿐일리 만무한 상황에 혹시나 소탐대실을 한 것은 아닌지 천마는 스스로의 행동이 자못 아쉬웠다.

“아니야, 혹시 또 모르지? 물어봤어도 이것들이 본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보장도 없고.”

천마는 애써 요괴들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어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해보았다.

그리고 그러던 중, 천마의 기감망이 은연중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다행히도 기감망에 새로운 요괴가 포착되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꽤 많은 수의 요괴들이었다.

“오호라, 역시 본좌의 예상이 맞았군.”

천마는 곧 만나볼 새로운 요괴와, 놈이 뱉을 전리품을 기대하며 가장 거리가 가까운 쪽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플레이어를 요괴라고 생각하는 천마.

npc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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