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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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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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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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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11.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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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3화





천마의 움직임은 여유로우면서도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휘적휘적 가볍게 보폭을 옮기는데도 주변에 있던 나무며 돌이며, 눈들이 미칠듯한 속도로 뒤로 사라져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1킬로미터를 움직인 천마의 눈 앞에 칼을 든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처음에 죽였던 도적놈이나, 방금 죽였던 여자와 같은 기운을 가진 남자였다.

“니 놈도 요괴냐?”

질문을 던진 순간, 천마의 발은 이미 남자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있었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도 아닌 것이었다.

천마의 가벼운 발길질에 거세게 앞으로 엎어진 남자는 하필이면 목뼈가 부러졌는지 그 자세 그대로 사망해버리고 말았다.

“흐음? 요괴들이라 그런가? 내구도가 형편없군.”

조금 전에 여자도 가볍게 차서 날린 눈덩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던 걸 기억하며 천마는 요괴들은 다 이런가 하는 생각을 했다.

“뭐, 요괴들인데 상관없지.”

요괴들을 죽인거라 그런지 솜털만한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요괴의 시체가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지고 나자, 그 자리에는 까만색의 고급진 가죽 장화 한 켤레만이 남았다.

천마는 슬쩍 장화를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역시 요괴라 발냄새가 안 나는가?”

냄새가 나면 버릴 생각이었지만, 안 나니까 챙겨놓기로 했다. 어쨌건 이건 요괴를 잡아서 얻은 전리품이었고, 전리품은 쓰나 안쓰나 챙겨두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런데, 전리품을 챙기려고 보니, 마땅히 들고 다닐 가방 같은 게 없다.

잠시 장화를 쳐다보던 천마는 장화에게 명령했다.

“따라오너라. 좋은 말 할 때.”

그러자 거짓말처럼 장화가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자연의 기운인지, 천마의 기운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장화를 붙들어 올린 것이었다. 장화는 마치 자의식이라도 가진 양, 그렇게 둥실둥실 천마의 뒤를 따라갔다.


천마는 두어 걸음 걷다 말고, 주변에 잡히는 요괴들의 기척에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이렇게 스물여덟까지 세면 너무 지루하겠지?”

천마는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머릿속으로 스물여덟마리의 요괴를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각 그룹은 대략 반경 300미터의 활동범위를 가지고 선 아홉, 열 마리의 요괴들이었다.

“자 그럼 쇼핑을 해볼까?”

사실 천마는 ‘쇼핑’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모르면서 그저 머릿속에서 떠오르길래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아무튼 천마는 그에게서 가장 가까운 그룹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그룹의 한가운데 위치에 선 본좌가 말했다.

“자, 이리 오너라.”

그러자 불현듯 블랙홀과 같은 암연 덩어리가 천마의 손앞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불길한 소리와 함께 블랙홀이 인력을 발생시키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주변 일대에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던 요괴들이 한꺼번에 블랙홀 쪽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마치 뒷덜미를 잡힌 채 강제로 질질 끌려온 듯 한 몰골의 요괴 열 마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하느라 그들의 등 뒤, 그러니까 모여들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원의 한가운데 서 있는 천마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천마의 검이 수평으로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후두둑-

다 익은 감이 감나무에서 떨어지듯 요괴들의 머리가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떨어져 나가면 요괴라 할지도 살 재간이 없다는 걸 이미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아는 천마의 깔끔한 광역 살상 기술이었다.

역시나 머리를 잃은 요괴의 몸뚱이들이 일제히 털썩하고 자리에 쓰러지더니 잠시 후 사라졌다.

천마는 가볍게 콧노래로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며 요괴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목걸이도 있고, 무기도 있고, 상의도 있었다.

역시나 쓰든지 말든지 간에 전리품은 모두 챙기고 봐야했다.

악세사리류 들은 앞서 따라오고 있던 장화에 모두 집어넣고, 옷도 돌돌 말아 장화에 쑤셔 박았다. 겉만 번드르르 해 보이는 도끼와 장검은 장화 뒤에 졸졸 따라오게 끔 만들었다.

“보자, 이제 열아홉 마리가 남았구나.”

천마는 두 번째 요괴 무리를 향해 눈을 돌렸다.


결국 천마는 일대에 존재하는 요괴들을 모조리 척살하고야 말았다.

첫 살인이 어려울 뿐, 그 이후로는 일도 아니었다. 하물며 사람이 아닌 요괴를 죽이는 것인데, 죽이면 죽일수록 알 수 없는 쾌감이 생겨났고, 잡을 때마다 차곡자곡 들어오는 전리품 모으는 재미도 꽤나 쏠쏠했다.

“이게 끝인가? 아쉽군. 이제 이 주변에는 없는 모양인데.”

천마의 혼잣말처럼 이제 그의 기감망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천마는 몰랐지만, 이 지역은 시온에서 변방 중에서도 가장 변두리 지역으로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몹만 잡아대는 작업장 오토 캐릭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그 말인즉, 천마가 잡은 총 서른 마리의 요괴들도 중국의 이름난 작업장 길드의 오토 캐릭터들인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사실을 모르는 천마는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동쪽은 가도가도 재미없는 산만 가득할 것 같군. 어디보자, 그럼 이번에는 북쪽으로 가볼까?”

그렇게 거대한 재앙이 북쪽을 향해 경로를 수정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천마의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


-띠이~ 띠이~ 띠이~ 띠이~

중국 상해시 내에 위치한 시온 작업장.

갑작스런 경고음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어느 개자식이야!! 어떤 미친 놈들이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리냔 말이다!!”

작업장 한켠에 위치한 조그만 휴게실에서 늦은 아침을 먹던 시온 작업장의 관리인, 우천이 모처럼의 식사를 방해받은 것에 분노하며 작업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떤 새끼가...!!”

우천은 말하다말고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뭐야?”

그의 눈에 실내에 놓인 서른 대의 시온 다이버가 전부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불빛들이 의미하는 바는 한가지였다.

홍운의 상해 제13 작업장 소속의 오토 캐릭터 30개가 모두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건..아냐, 이러면 안 된다고, 아니라고!!”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우천의 입에서 횡설수설 튀어나왔다.

그가 관리하는 오토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중상위 유저 수준을 갖추고 있어서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드래곤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꺼번에 몰살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우천은 다이브마다 일제히 켜진 빨간 사망 경고등이 그저 기계적 결함이나 버그이길 간절히 바랐다. 만약 저 경고등이 사실이고, 정말로 한꺼번에 오토 캐릭터 서른 개가 모두 죽어버린 것이라면, 그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아닐거야, 아니라고!! 이건 꿈이야!!”

그가 이렇게 놀라 안절부절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속한 길드, 이 시온 작업장을 운영하는 홍운 길드는 무서운 조직이었다. 길드에 손해를 끼친 사람들이 행방불명이 된다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잘못했다간 우천 그 역시도 공공연한 비밀의 일부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씨...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우천은 가장 아끼는 오토 캐릭터 ‘설산신녀’의 다이브를 열었다. 그리고 다이브 안에 있는 인공 의체를 거칠게 꺼냈다.

플레이어가 입장한 것처럼 다이버와 시온의 시스템을 속이는 인공 의체는 그 성능에 걸맞게 가격도 꽤 나가서 본래 그렇게 거칠게 다루면 안 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천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기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한낱 인공 의체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었다.

다이브의 빈자리에 누운 우천은 곧바로 게임을 실행했다.

주변이 삽시간에 칠흑같은 어둠에 잠기고, 곧 조그마한 창이 하나 떴다.

-마지막 액션 캠을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래! 확인, 확인한다고!”

우천은 핏발 선 두 눈으로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어떻게 죽었는가?

그리고 무슨 아이템을 떨궜는가?

장비한 물품 중 하나를 반드시 드랍하는 것. 그것이 시온의 사망 패널티였다. 저레벨일 때는 대수롭지 않은 패널티일 수도 있겠지만, 고레벨로 올라갈수록 이 패널티는 심각한 손실을 가져왔다.

서른 개의 오토 캐릭터를 모두 확인한 우천은 애써 침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이 정도면 생각만큼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다고. 다행히도 무기는 두 개 밖에 안 떨궜어.”

우천은 이 정도 손실이라면 목숨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이어서 그는 컴퓨터를 켰다. 이번 사태의 전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어쩌다 오토 캐릭터 한둘이 죽은 거라면 그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작업장을 연 이래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상 사태였다.

이번 사태는 절대 숨겨서도 안 되었고,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천은 보고서를 작성해 나갔다.


-일시: 4월 16일 장소: 상해 제13 작업장

-제목: 불가항력적인 오토 캐릭터 전원 사망 사고 사건과 손실에 대한 건

-이하 내용(시간 순으로 정리)

-9시 44분: 흑의에 회색 망토를 착용한 괴한(이하 흑귀)이 등장. 은신 기술을 가지고 있어 기습을 당함. 눈뭉치를 맞고 설산신녀 사망.


보고서를 쓰다 잠시 생각하던 우천은 ‘눈뭉치를 맞고’ 라는 문장을 지우고는 ‘정체불명의 암기를 맞고’라고 고쳤다.


-9시 45분: 인근에 있던 무적검마가 배후 기습을 당해 사망. 역시 흑귀의 소행으로 보임.


우천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차마 ‘엉덩이를 차여 넘어졌는데 목뼈가 부러져 사망’이라고 쓸 수는 없었다. 어쨌든 뒤에서 기습적으로 공격받은 것은 사실이니 ‘배후 기습을 당해’라는 표현이 딱히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9시 46분: 천마1, 천마2, 천마4, 월랑...(생략)...흑풍대3, 흑풍대4 이하 28개 오토 캐릭터가 거의 동시에 사망. 역시나 흑귀의 소행으로 판단. 흑귀는 특수한 아이템을 갖춘 최소 하이 랭커로 추정.

흑귀의 장비(추정)

1) 강력한 인력을 발생하는 구슬.

2) 은신 아이템(혹은 기술)

3) 일격에 다수를 살상할 수 있는 검

-이상의 사건은 하이랭커로 추측되는 흑귀(신원불명)가 치밀한 준비아래 기습적으로 공격해옴에 따라 본 작업장에서 대처할 시간도 없이 불과 2, 3분만에 상황 종료.

-전원 사망한 탓에 흑귀의 이후 행적 추적이 불가.


보고서를 마무리 하기 전 우천은 고민했다.

“그냥 이렇게만 적어서는 곤란해. 어떻게든 내 책임을 줄여야 한다고.”

사실이 그랬다. 우천의 잘못은 식사 시간은 식사를 한 것 밖에 없었다. 웬 미친놈이 갑자기 튀어 나와 가지고선 이렇게 큰 손실을 끼칠 줄 어떻게 알았겠느냔 말이다.

이건 그가 자리를 지켰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우천은 보고서의 마지막에 한 줄을 추가했다.


-흑귀의 무력으로 보아 사신급 100인대 수준의 병력 요(要).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흑귀를 이 정도 강자라고 보고해야 윗선에서도 그에게 크게 책임을 묻지 않을 터였다.

“네 놈이 자초한 일이다. 이 미친놈아.”

우천은 클릭 한번으로 보고서를 상급 관리자에게 보냈다.


*


그 시각 천마는 요괴들이 득실득실 거리는 요괴소굴(이라 쓰고 마을이라 읽는다)에 당도했다. 곧 있을 전리품의 대향연을 기대하며 천마는 기쁜 마음으로 소굴에 진입했다.


작가의말

오토 캐릭터들은 다 죽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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