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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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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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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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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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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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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7화




아니나 다를까, 시온 기록실은 로그 기록을 보여 달라는 조정관리실의 요청을 단박에 거부했다.

“다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 로그 기록은 제공해드릴 수 없습니다.”

“알면서 그냥 물어본 겁니다.”

딱딱한 기록실 직원의 표정에서 바늘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완고함을 확인한 권경호는 혀를 차며 기록실에서 나왔다. 이제 다시 복도를 따라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위에 있는 조정관리실로 돌아가야 한다.

최첨단 게임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이런 아날로그적 연락체계라니. 기록실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간에 두 발로 직접 이렇게 찾아와야 했다. 지하 3층에 위치한 기록실은 다른 어떤 부서와도 연락망이 깔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독립성 보장과 보안을 위한 조치였다.

-시온의 모든 기록들은 합법적인 루트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외부로, 심지어 회사 내부의 다른 부서로도 전달할 수 없다!!-

6년 전 ‘화이트래빗’ 스캔들 이후로 생겨난 시온의 방침은 실로 엄격했다.

“그 미친 년 하나 때문에 여러모로 괴롭구나.”

권경호의 혼잣말은 팀장을 향한 것인지, 스캔들의 시발점이었던 BJ ‘화이트래빗’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아, 씨바, 추으주게써!!”

“저 토하거 가스미다!!”

강력한 역풍에 제대로 말도 못 내뱉는 슬기와 광개토의 마음을 알았는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던 세 명의 몸뚱아리가 돌연 허공에 뚝 멈추더니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20층 높이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이럴까? 오늘따라 시온의 경험들이 욕 나올 만큼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사뿐

지면에 닿기 직전에 뭔가에 걸린 듯 덜컥 속도가 줄어드는 바람에 사뿐히 바닥에 내려 설 수 있었지만, 대신 혀를 깨문 슬기는 입이 피투성이였다.

“이런, 지랄 맞을!!”

현실에서라면 아파서 미쳐 날뛰었겠지만, 다행히도 게임 안이었다. 그저 아릿한 통증만이 느껴질 뿐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뚝뚝 떨어지는 침이 기분 나빴다. 피는 나오지 않았다. 유혈 표현 설정을 꺼놨기 때문이었다.

“으악, 아가씨!! 피..피가!!”

그런 슬기를 돌아보다 광개토가 질겁을 했다. 손가락질을 하며 겁에 질린 광개토의 모습을 보아 그는 유혈 표현을 활성화 시켜놓은 듯 했다.

가운데 선 천마가 슬기에게 기가 막힌 질문을 해왔다.

“여긴 어딘가?”

“아니, 날아오기는 니가 날아와 놓고, 어딘지를 왜 나한테 물어?”

밤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는지 주변이 그저 어두워 보이기만 했다. 어렴풋이 보이기로는 어디 산 속 한가운데 인 듯 했다.

“우리 이제 어쩌지? 치안대까지 죽여 버려서 악명이 어마어마할 텐데.”

“상태창.”

광개토가 말하자 곧 눈 앞에 반투명한 초록창이 열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름: 광개토 계열: 없음 직업: 초보자

Lv. 10 경험치: 5528


힘: 19

지능: 9

정신력: 9

민첩성; 19

체력: 19

매력: 9


명성: 0

선업: -620


기술:

??? Lv .1(숙련: 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별다른 사전지식 없이 시작한 시온이라 광개토는 상태창을 봐도 뭐가 뭔지 알기 어려웠다.

“보자, 힘 19, 지능 9, 정신력 9...”

“잠깐만!”

광개토의 혼잣말을 듣던 슬기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너, 힘이 얼마라고?”

“19입니다.”

“씨팔!”

“19인데요?”

순간 말문이 막힌 슬기가 손을 내저었다.

“누가 19아니래?”

“방금 18이라고?”

그러자 천마의 고개가 돌아가며, 으스스한 기운이 일어났다.

“방금 욕한게냐?”

“아닙니다. 아니, 이건 뭐...”

광개토는 억울한 마음에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창의적 욕설키트를 장착한 천마는 욕을 기가 막히게 감지했다. 다만 슬기의 욕은 기이하게도 감지하지 못했는데, 생각이 없는 천마는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았고, 다른 둘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 힘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광개토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슬기가 질투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원래 능력치는 고정이야. 최대치로 해봐야 18이 한계라고.”

“아, 18이 한계...?”

광개토는 말하면서도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이상합니다. 저는 분명히 19입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잖아. 원래 처음 시작하면 15가 최대치라고. 19면 무려 4포인트나 높다는 건데 4포인트 더 찍으려면 보자...100렙에 한 번, 200렙에 한 번, 그다음부터는 50렙 업마다 한번이니까...300렙일 때나 찍을 수 있는 힘이라고!”

“와! 정말요?”

“아니, 사실 300렙도 불가능해. 방금도 말했지만 18이 최대치라니까!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야! 갓 시작한 뉴비가 힘이 19라는 건 정말 잘못된 거라고!”

손가락을 일일이 접어가며 설명하는 슬기의 표정은 마치 이따금 들려오는 금수저의 갑질 소식에 분개하는 일반인들의 모습 같았다.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 보여 광개토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잘생긴 광개토의 얼굴을 보며 슬기가 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너 혹시...버그 쓰냐?”

“아닙니다. 전 절대 버그 같은 건 알지도 못합니다. 그거보다는 사부님이 전수해준 파천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버그 플레이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광개토의 머리는 번개같이 다른 이유를 찾아냈다.

“상태창에 파천무라고 나와 있어?”

“어..그게.”

상태창을 다시 본 광개토는 하단에 위치한 ‘??? Lv.1’ 이라는 기술을 발견했다.

“그냥 스킬명에 물음표 3개가 뜬 스킬이 하나 있습니다.”

“엥, 그게 뭐야?”

슬기는 곧 ?로 표시되는 경우들을 떠올렸다.

“그건 아직 네가 그걸 알만큼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레벨이 낮거나, 아니면 버그라는 뜻이야.”

슬기의 나지막한 마지막 말에 광개토가 마구 손을 휘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아무튼 정말로 그 스킬로 능력치가 오른 거라면 진짜 대박이다.”

슬기는 질투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광개토를 부러워했다.

슬기의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운 광개토는 급히 처음의 화제로 돌아가려 했다.

“저, 아가씨. 제 선업 점수가 마이너스 620점인데, 혹시 이게 악명이랑 관계가 있는 건가요?”

“맞아, 그거야. 초보자주제에 -620이라니, 너 좀 쩐다?”

“이게 어느 정도인겁니까?”

광개토의 얼굴에서 초보자 특유의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순진한 표정이 떠올랐다. 저 표정을 100렙 때까지 유지할 수 있으면 최고의 사기꾼이 될 소질이 있다 할 것이다.

“작은 산적단을 하나 토벌해서 벌수 있는 선업 점수가 50점쯤 되고,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잡으면 좀 더 빨리 줄일 수 있겠지. 현상금이 높을수록 좋을 거야.”

슬기는 천마를 흘깃 쳐다보았다.

‘저 미친놈은 대체 마이너스 얼마쯤 될까? 한 일억쯤 되겠지?’

“아마 네가 저 자를 도모할 수 있다면 단번에 다 갚을 수 있을걸?”

“사부님을 말입니까?”

슬기의 턱짓에 광개토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황급히 천마를 돌아보니 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마도 도모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

“도모가 무슨 말이냐?”

“아닙니다!”

천마의 질문에 깜짝 놀란 광개토가 차렷 자세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나저나 어딘가에서 잠을 청해야 게임을 종료할 텐데.”

혼잣말을 하던 슬기가 천마에게 물었다.

“아저씨, 여기 근처에는 마을 없을까?”

“있다.”

천마는 산너머 북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슬기와 광개토는 그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대체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길래 마을의 위치를 파악해 낸단 말인가?

“혹시 지도라도 있어?”

“지도가 뭔가?”

“아..지겹다. 이제 그 레파토리도.”

하지만, 그래도 사부라고 광개토가 열심히 손짓발짓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산을 넘어 걸어가니 튼튼한 돌담으로 둘러쳐진 50여 가구 규모의 정말 작은 산촌이 내려다보였다. 대부분의 집들이 불이 꺼져있고, 몇몇 집과 마을 외곽을 두른 돌담 곳곳의 횃불만이 어렴풋이 마을의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다.

천마가 먼저 갔다간 또다시 욕 운운해대며 깽판을 칠거 같아서 슬기가 먼저 냉큼 달려 내려갔다. 그렇게 뛰어 내려가니 경비대원들이 금세 슬기를 발견했다.

“조, 좀비다!!! 좀비가 나타났다!!”

혀를 깨문 탓에 얼굴 하관과 가슴깨로 피를 잔뜩 묻힌데다 사람답지 않게 너무 못생긴 탓이었다.

작아도 마을이라고, 돌담 위를 지키는 경비대원들이 활을 쏴대는데, 캄캄한 밤인데도 그 정확도가 상당했다. 주변 몬스터들의 침입이 잦은 산속 마을이라 경비대원들의 실력이 상당한 듯 했다.

어깨에 화살을 한방 맞은 슬기가 다급히 돌아오다가 잔뜩 일그러진 천마의 얼굴과 마주쳤다.

앞머리 탓에 코 윗부분을 볼 수는 없었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턱선을 보아 꽤나 화난 듯한 표정이었다.

“..좀비는 욕이렸다?”

“아니야. 돌아가자.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아마도 어느 마을이든지 비슷한 반응일 거다. 슬기의 머릿속에 선업이 ‘–200’을 넘어가면 경비대원들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난 ‘마이너스 150’도 안 되는데?‘

슬기는 광개토와 달리 쌓아놓은 선업점수가 좀 있었기에 광개토와 똑같이 마이너스를 받았어도 그처럼 심각하게 악명수치가 올라가지는 않았었다.

“욕이 아니라도 사실 상관없다. 본좌의 전리품에 상처가 났구나.”

“아니야, 괜찮다니깐.”

하지만 슬기의 말을 들어야 할 천마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훌쩍 날아간 천마는 순식간에 마을의 숙련된 경비대원 둘을 죽여 버리고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는 경종을 치지도 않았다.

“어떡합니까, 아가씨.”

훌훌 날아오는 천마를 본 광개토가 울상이 되어 슬기에게 말했다.

“저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도 또 선업 점수가 내려갔습니다.”

선업점수가 40점이 깎인 걸 봐서 경비대원 한명 살해하는 데 20점인 듯 했다.

이윽고 천마가 도착하자 슬기가 고함을 질렀다.

“아저씨!! 자꾸 왜 이래? 아저씨 때문에 우리 선업 점수가 자꾸 깎이잖아!!”

“네 년은 본좌의 전리품이다.”

졸라 뻔뻔스런 천마의 대꾸에 슬기는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뭐? 나를 보호라도 하겠다는 거야?’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슬기가 천마에게 슬며시 물었다.

“혹시 아저씨..내가 마음에 들어? 내가 예뻐 보이니?”

헙!!!!

그 기습적인 공격에 광개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야 했다. 이토록 강력한 정신계 공격이라니!!

‘아가씨, 그런 말은 입가에 피라도 닦고 말씀하셔야죠?’

지금 자신의 표정을 보여줬다간 아가씨한테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결국 그들은 마을에 들어가지 못했다. 잘생긴 광개토도 범죄자를 죽이라는 경비대원들의 외침에 황급히 도망쳐야 했다.

깊은 숲속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다 모닥불을 피운 일행은 달이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사부랍시고, 광개토가 만들어준 나뭇잎 잠자리에 천마가 멀뚱히 앉았다.

슬기는 노숙이 익숙한지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서는 그 속으로 쏙 들어갔다. 천마는 조그만 배낭에서 그보다 훨씬 큰 침낭이 나오는걸 신기해하며 역시 요괴는 요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 먼저 나간다. 아침에 봐.”

두 눈을 감으며 슬기가 작별인사를 고했다. 곧 슬기의 모습이 노란 빛가루로 화해 흩어졌다.

“저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마도 내일 오후에나 다시 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광개토도 작별인사를 하고 곧 노란 빛가루로 변해버렸다.

천마는 사라진 둘의 빈자리를 잠시 쳐다보고는 팔짱을 끼고서 가만히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동안 슬기와 지내며 밤마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볼 때마다 요괴와 사람의 삶은 다르구나 했다.

천마는 홀로 꼼짝도 않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보았다면 무척 외로워 보인다고 하겠지만, 천마는 외로움이라는 걸 모르는 존재였다.

그렇게 스산한 달빛 아래서 천마는 전혀 지루해하지도 외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서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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