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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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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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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955

작성
19.1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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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5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5화




땡땡땡~

장례식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경종이 울리고, 슬기와 광개토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제 막 시온을 시작한 초보인 광개토가 보기에도 천마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났다.

‘아무리 생각이 없더라도 이건 좀 심한거 아닌가? 어떻게 저 종을 칠 생각을 할 수 있는거지?!’

이건 둘 중 하나다. 천마의 지능이 수준이하든지, 사람이 아니든지 인거다.

이윽고, 저 멀리에서 경비병들이 발소리가 들려올 무렵, 슬기는 결단했다.

“아, 몰랑~!”

슬기는 마을 안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일단 어디론가 숨었다가 천마가 상황을 종결시키고 나면 나올 생각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렇게 쉽게 상황이 마무리 되지 않을 거라는 경보가 울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모쪼록 모든 상황이 잘 굴러가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쪽에서 경비대원 복장을 한 남녀 한 쌍이 튀어나왔다. 둘의 손에 들린 장창이 정확하게 슬기를 겨누고 있었다.

“어머, 왜 이러세요?”

“너는 저자와 한패인 주제에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이냐!”

슬기가 발뺌을 해보려 했지만, 경비대원들의 시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슬기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 패인 줄 알았지? 의문과 동시에 해답도 떠올랐다.

‘아, 우리 같은 파티지!!’

슬기는 왜 자신에게 장창이 겨누어진 건지 알아차렸다.

슬기보다 한발 늦게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던 광개토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어느새 튀어나온 남자 경비대원 두 명이 각기 들고 있는 창과 검으로 광개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

광개토가 놀라며 두 주먹을 치켜들자, 그걸 본 슬기가 외쳤다.

“개토야, 저항하지 마! 그냥 싸우지 말고 항복해. 항복하면 살 수 있어!”

만 2년 이상 시온을 플레이한 슬기는 이런 상황에 대해 여러 사례들을 들어왔었고, 취재를 한 적도 있었다. 경비대원한테는 그저 항복 하는게 최고다.

슬기의 외침을 들은 광개토도 두 주먹을 슬그머니 내렸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천마와 달리 이 누님은, 입은 좀 험해도 상식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인 듯 했기에 그 말을 듣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상식이라곤 개미 발톱만큼도 없는 담 위의 저 인간이었다.

“으하하, 이 놈들아, 사람이라고 해서 욕해도 봐줄 줄 알았느냐!!”

상식 없는 천마의 상식 없는 행동에 둘의 상식은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천마의 거침없는 손속에 순식간에 경비대원 둘의 몸뚱이가 허공을 훌훌 날아가 버렸다. 머리나 신체 일부분이 손실되지는 않은 것이 어느 정도 힘을 조절한 것 같긴 했지만, 무려 10여 미터를 날아가는 모양새를 보아 오십보백보였다.

“이, 이놈!! 저항하면 네 놈의 일행들을 죽이겠다!!”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다급한 목소리가 천마를 위협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죽이든 말든.”

어차피 요괴새끼들은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으앗!! 녀석의 일행들부터 먼저 제거하라!!”

인질을 잡겠다는데도 아랑곳 않는 천마의 반응에 경비대장은 마음을 돌려 먹었다. 곧장 슬기와 광개토 앞에 서 있던 경비대원들이 무기를 찔러왔다.

“헐, 어떡해요? 아가씨?”

휘둘러오는 검을 막으려 손을 뻗던 광개토는 자신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검격의 날카로움에 그만 어깨와 허벅지를 연속으로 베였다.

“뭐가 이렇게 빨라!!”

어제 이후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되어 내심 경비대원들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던 광개토는 곧장 가슴에 칼을 맞고 사망하고 말았다. 파천무를 익혔다지만, 경비대원들의 공세는 고작 10레벨이 저항할 수준이 아니었다.

경비대원의 날카로운 공세를 막아내던 슬기가 그 모습에 눈이 뒤집어졌다.

“아니, 욕이 아니라니까, 씨발!! 그리고 욕 좀 들으면 어때!! 세상에 어느 누가 욕 한마디 안 듣고 사냐!!”

슬기는 자꾸 욕을 운운하며 상대의 목숨을 앗는 천마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지가 무슨 전제국가의 군주라도 되나?! 아니면, 신이야? 아니지, 신 까지 갈 것도 없이 거대 종교의 교주라도 되나? 왜 자꾸 욕 조금 들었다고 죽이네 살리네 지랄이야, 지랄이!!’

마음이 평정심을 잃자, 공방을 주고받던 슬기의 손발도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머리를 거세게 얻어맞고, 휘청이는 틈을 타 찔러 들어온 장창에 가슴을 관통당한 슬기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허공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천마를 받드는 천마교국의 왕이자, 마교의 교주인 천마는 그런 둘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 살짝 불쾌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무시할 만한 것이었다. 제자와 아가씨는 모두 요괴라서 아마도 곧 다시 살아날 것이었다. 그것이 죽지 않게 보호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겠지만 보호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마의 불쾌했던 감정 한 조각은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욕을 들어서 불쾌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했던 경비대원들을 모두 때려눕힐 때까지도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생겨나는지 샘솟듯이 계속 나타나는 경비대원들을 보며 천마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경비대원들은 계속해서 충원되고 있는데, 전리품과 제자는 왜 아직 부활을 안 하고 있는 것인가. 살아나도 벌써 살아났을 시간인데, 왜 안 나타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요괴무리 100여 마리와 싸웠을 때, 요괴들은 한결같이 마을 회관에서 다시 부활했던 것이 기억났다.

‘아, 요괴들은 부활하는 장소가 정해져있구나.’

눈앞에 찔러들어 오는 창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겨내고, 달려오던 관성 탓에 빨려들 듯 다가오는 경비대원의 뺨을 한차례 갈기는 와중에도 천마의 상념은 계속 이어졌다.

‘설마...다른 곳에서 부활했나?’

‘부활지점이 이 근처가 아닌가?’

‘혹시 오늘 아침에 나왔던 노송촌에서 부활했을까?’

‘아니면, 수차례 죽은 요괴들처럼 부활하기를 멈춰버린 걸까?’

‘아니면, 이미 부활해서 지들끼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간 건 아닐까?’

‘전리품 주제에 주인의 손을 벗어나려는 걸까?’

‘검은 털 난 것들은 안 믿어야 하는 법인데, 괜히 제자를 들인걸까?’

온갖 생각들로 천마의 마음속이 점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게 내버려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였다.

천마의 기감에 익숙한 기척이 잡혔다. 슬기의 기척이었다. 마을 중앙 쪽에서 갑작스레 나타났다.

“부활했구나!”

천마의 목소리에 절로 반가움이 묻어났다. 잠깐이었지만, 전리품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짧은 순간은 상당히 불쾌했었다.

허공으로 두세 걸음 뛰어오르며 공중으로 훌쩍 몸을 날린 천마는 이내 기척이 느껴지는 마을 중앙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


슬기는 즉시부활을 할 것인지, 자동 부활을 할 것인지 잠깐 고민했다. 당장 부활할 것인가, 12시간 뒤에 부활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어떻게 부활을 하든 부활장소는 경비대의 감옥일 터였다. 경비대와 싸우고 죽으면 원래 감옥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그리고 죄의 경중에 따라 감옥에 구치되는 시간이 차이 나는데, 지금처럼 경비대원을 공격한 경우는 적어도 24시간은 갇히게 될 중죄였다. 현실 시간이 아닌 게임 접속시간으로 24시간이기에 이건 상당한 중벌이었다.

어느 누가 게임에 접속해서 자유를 구속당한채로 24시간을 있어야 하는데 좋아할까?

하지만 즉시 부활이 아닌 자동 부활을 선택한다면, 그 처벌 시간도 12시간이 딜레이 되는 것이다. 즉시부활서가 10실버, 현실 화폐기준으로 10만원 정도라는 건 부자인 슬기에게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어떡할까?’

잠깐 고민한 슬기는 결정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냥 즉시부활하지 뭐.’

-즉시부활 하시겠습니까?

네, 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하자, 곧 눈 앞이 빛으로 가득차며 이윽고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예상대로 투박한 석조 벽으로 둘러싸인 경비대의 감옥이었다.

“개토는 아직 안 왔나 보네?”

슬기는 현실과 달리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온이 너무 좋았다.

슬기는 계속해서 생각을 입으로 소리내어 말했다.

“아, 어쩌면 개토는 즉시부활을 못할 수도 있겠네!”

‘이제 너구리, 여우 잡는 녀석이 10실버를 모았을 리가 없지.’

삼면이 석조 벽이고 벽이 없는 한 쪽은 두꺼운 통나무로 된 창살이 매우 튼튼해 보였다.

예전에 경비대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취재한답시고,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갔다가 걸려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생각났다.

“렙업을 해도 감옥은 여전히 튼튼해 보이는구나.”

떨군 아이템이 있나 하고 살펴보는데, 떨군게 없다. 아니, 떨굴 아이템 자체가 없었다. 장비한 아이템이 없으니 떨굴 것도 없는 것이다.

두 손으로 통나무 창살을 붙들고, 감방 바깥을 기웃거려보았다. 입구 쪽에 꽂힌 횃불 덕에 간신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맞은편에 감방 하나가 다였다. 이 공간에 사람이라고는 슬기 혼자뿐이었다.

혹시나 누군가 들을까 하는 심정으로 슬기는 불만을 토로했다.

“누구 없어요? 나도 피해자예요!! 나도 미친개한테 물린 환자라고요!!”

큰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저 감방들을 웅웅 울려대기만 할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쿠웅~~

그때 감옥 내부를 울리는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어서 다시 쿠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앞 선 소리보다 훨씬 가까워진 소리였다. 그리고 마침내 귀청을 찢을 듯한 큰 충격음이 바로 머리 위 천장에서 들려왔다.

콰앙~~

천장 한쪽 귀퉁이가 굉음과 동시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뿌연 돌가루와 함께 한 인영이 감옥으로 내려섰다.

“아가씨야, 제자 놈은 어디 있느냐?”

꿈에 볼까 진상이었던 그 놈, 천마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옥까지 찾아와줬다는 점에서 눈꼽만치 반갑기도 했다.

“니 제자를 왜 나한테서 찾냐?”

“둘 다 같은 요괴지 않느냐!”

“뭐라는 거야, 병신이!”

천마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역시나 욕이 튀어나갔다.

그때 감옥 한쪽에서 하얀 빛 무리가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광개토가 나타났다.

“10만원 현질한다고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급히 말을 내뱉던 광개토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아니, 여기는 혹시 감옥 아닙니까? 감옥처럼 생겼는데 말입니다? 근데 감옥 뚜껑이 열렸지 말입니다?”

천마가 들어오느라 부숴버린 천장을 본 모양이었다.

“여기가 감옥이냐?”

천마가 뒷북을 치며 물어왔다.

“일단 담소는 나간 다음에 나누면 어떨까?”

슬기가 냉랭하게 쏘아붙이며 천마 옆에 붙자, 광개토도 얼른 슬기처럼 행동했다.

“나가자.”

슬기가 살며시 천마의 옷깃을 잡으며 말하자 천마가 대답했다.

“어딜?”

“씨발, 여기 있을래 그럼?”

“너만 괜찮다면야.”

천마는 그저 슬기의 기척을 따라 왔을 뿐, 어딜 가려고 온건 아니었다.

광개토가 얼른 말했다.

“사부님, 일단 감옥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알았다.”

천마의 눈짓에 슬기와 광개토의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

그리고 천마는 다시 천장을 부수며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려올 때는 혼자라 작은 구멍으로 족했지만, 올라갈 때는 구멍을 보다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5번의 천장을 뚫고 뛰쳐나간 곳은 커다란 3층 석조 건물의 꼭대기였다. 주변은 한창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호루라기 소리와 각종 고함 소리로 시끄러운 상태였다.

“저기다!! 지붕이야!! 탈출한 놈들이 지붕에 있다!!”

한 경비대원이 경비본부 옥상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허허, 이놈들은 그렇게 뒤져 나가고서도 학습 능력이 없는 모양인지, 자꾸만 욕을 해대는 구나.”

천마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전혀 웃음기 없는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슬기는 그만 피곤해지고 말았다.

‘학습 능력은 니가 제일 떨어지는거 같거든? 왜 자꾸 나를 피곤하게 만드니!!’

슬기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서, 천마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아저씨, 우리 그냥 가면 안 될까?”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걸 우려한 슬기는 일분일초라도 빨리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광개토는 처음 보는 경비본부 지붕의 풍경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중세시대 느낌이 나는 마을의 밤 풍경은 매우 흥미롭고, 신비로웠다.

그에게는 아직까지 이 모든게 그저 게임일 뿐이었고, 흥미로운 상황의 연속일 뿐이었다. 즉시부활서를 사는데 10만원이 들었지만, 그 정도는 한 달 용돈으로 감당할 수준이었다.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니 짙푸른 색의 복장을 한 경비대원들 사이로 달빛에 반사되는 새하얀 망토를 두른 사람들이 한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저 흰옷 입은 사람들은 뭡니까? 복장이 좀 멋있어 보입니다.”

그 말에 깜짝 놀란 슬기가 아래쪽을 내려다보고는 다급히 천마에게 말했다.

“야이, 자식아!! 너 때문에 치안대까지 나타났잖아! 어쩔 거야, 씨발!”

“아, 저 사람들이 치안대입니까?”

달빛에 반사되어 어지러이 흩날리는 치안대의 하얀 빛 망토가 흡사 유령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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