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넘기 방.

천하무식 천마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무협

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757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15 17:00
조회
702
추천
9
글자
12쪽

16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6화




4년전 슬기가 한창 잡지사 기자로서 열심히 활동할 무렵, ‘시온’의 개발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시온은 세계제일의 가상현실체험 게임으로서의 입장을 공고히 다지는 중이었다. 이전에도 수많은 가상현실체험 게임이 있었지만, 시온처럼 현실감 넘치는 환경을 구축하고, 제2의 삶이라는 슬로건에 걸맞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은 시온이 유일무이했다.

개발자와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대화가 오간 후에 임슬기가 물었다.

“이제 200렙을 넘어가는 유저들이 많이 늘어났는데요. 만약 이 유저들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핑계로 게임 내의 여러 질서와 규칙들을 어기려고 한다면, 시온은 이 유저들을 제재할 방도가 있습니까? 그리고 제재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자신을 부팀장이라고 밝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 개발자가 대답했다.

“자유를 즐기십시오. 시온은 유저분들의 자유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다만 그 도가 지나쳐 방종으로 변질되었을 때는 시온의 강력한 제재가 있을 수도 있겠죠.”

잠시 말문을 멈춘 개발자가 슬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자님은 우리 게임을 즐기고 계십니까?”

그 말에 슬기는 귀엽게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직 삶에 여유가 없다보니 시온을 할 기회가 없었네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기자님은 현실에서 어떻습니까? 자유롭게 지내십니까, 아니면 억압받고 지내십니까?”

“음... 자유롭게 사는거 같은데요.”

슬기의 화사한 얼굴에 사랑스러운 미소가 걸리자, 개발자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법과 규범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일부 유저들이 순전히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 법이나 질서 등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다른 캐릭터를 살해하는 PK가 있겠네요.”

잠시 숨을 돌린 개발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때 치안대가 출동합니다.”

“치안대는 경비대나 군대랑 뭐가 다른가요?”

슬기가 의문점을 제기했다.

“치안대는 오로지 플레이어의 범죄행위에만 반응하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잠깐만요. 유령이라고요?”

슬기가 되묻자, 개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가 마을과 같은 비전투지역에서 다른 캐릭터를 공격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그 행위는 바로 게임의 로그에 실시간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즉각 그 행위의 불법여부를 확인하고, 치안대를 출동시키죠. 그럼 치안대가 갑자기 스윽 하고 나타나는 겁니다.”

개발자가 양팔을 들고 유령이 달려드는 듯한 포즈를 취하자, 슬기는 어머! 하며 적당히 겁먹은 듯한 반응으로 응대해주었다.

“그럼 치안대는 정말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거군요.”

“그렇죠, 제2의 삶이라며, 현실성을 강조하는 시온에서 몇 안되는 비현실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강하기도 하겠죠?”

“그렇죠. 치안대는 언제나 세계 랭킹 5000위 이내 랭커들의 평균레벨로 레벨이 자동 변경되게 설정되어 있고, 한꺼번에 많은 수가 나타나기 때문에, 설사 하이랭커라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머, 듣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거 같네요. 정말이지, 시온에서는 나쁜 짓을 하면 안되겠어요.”

생긋 웃는 슬기의 미소에 힘을 얻은 개발자는 뒤이어 슬기가 묻지도 않았던 것까지도 먼저 마구 발설하기 시작했다.

결국 슬기의 미인계에 빠져 이런 저런 기밀까지 누설한 개발자는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렇게 말로만 들었던 치안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푸른 옷을 입은 경비대원들 사이로 흰 망토를 두른 치안대원들은 정말로 유령처럼 이리저리 휙휙 움직였다. 몇몇은 일행이 있는 건물 일층 출입구로 들어가기도 하고, 몇몇은 벽을 타고,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떡해, 치안대가 왔어.”

슬기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치안대는 왜 이제야 나타난 걸까? 저 미친 새끼가 저지른 불법이 한둘이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닌데, 왜 지금에서야 등장한 걸까?

“허허, 이 놈들이야 말로 진짜 요괴같이 생겼구나.”

천마가 왠지 모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놔, 그냥 감옥 안에 있을 걸, 괜히 탈옥해가지고!!”

슬기는 말하다 말고, 깨달았다. 아, 탈옥을 해서 치안대가 온 거구나!!

그 때 하얀 망토를 두른 치안대원 하나가 벽을 타고서 불쑥 지붕으로 올라왔다.


*


“치안대 출동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일도 아니다. 조정 관리팀의 이정아 사원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보고하면서 현장의 실황을 사무실 전면 모니터에 띄웠다.

곧 한쪽 벽을 꽉 채운 거대한 모니터에 한 시골 마을의 밤 풍경이 펼쳐졌다. 화면은 빠르게 어떤 건물 내부를 비추며 이동하고 있었다.

“야, 정신 사납잖아. 딴 놈 비춰.”

뒤에 팔짱을 끼고 선 노진숙 팀장의 한마디에 이정아는 얼른 2번 카메라로 시점을 돌렸다.

바뀐 화면은 한창 눈앞의 벽과 약간 위쪽 벽을 번갈아 비추며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간간히 벽의 틈새를 붙잡는 손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2번 치안대원은 벽을 타고 올라가는 중인 듯 했다.

“딴 놈.”

노팀장의 딱딱한 명령에 이정아는 얼른 3번 카메라를 틀었다. 3번도 역시나 벽을 오르는 중이었다. 이정아는 빠르게 4번, 5번, 6번으로 화면을 전환시켰다.

7번에 이르러서 다소 현장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치안대원의 시야가 잡혔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3층짜리 경비본부 건물이 우뚝 솟아있고, 그 지붕위에 두 사람이 서있다.

이정아는 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7번 치안대원의 시야를 크게 확장시켰다. 곧 지붕 위의 두 남녀의 모습이 줌인 되었다. 거의 맨몸과 다름없는 옷차림에 무기도 하나 안들고 있는 두 남녀는 사뭇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여자와 얼굴에 싱글벙글한 웃음을 띄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보고해.”

노진숙 팀장의 말에 이정아 옆자리의 권경호 대리가 얼른 보고했다.

“위치는 한 제국 남부에 위치한 ‘장대’시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두 남녀가 탈옥을 시도하는 바람에 불법 행위로 접수되었습니다.”

“탈옥? 그냥 가만히 좀 있으면 될 걸, 왜 탈옥을 하고 그래?”

노진숙은 툴툴거리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마침 모니터 한가득 자유분방하게 생긴 슬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탈옥을 할 것처럼 생긴 얼굴이군. 확실히 얼굴이 먼저 탈옥한 거 같아!”

노진숙은 틀림없이 전과가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두 남녀의 신원을 물었다.

권경호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노 팀장이 못마땅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대답했다.

“일단 둘 다 한국인이고요..”

“하여튼 한국인이 제일 문제야. 툭하면 시위나 하고 말이야. 시스템에 순응을 안 해.”

노팀장의 개인적인 판단을 무시하고, 권경호는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

“여자는 236레벨에 전사 계열인 슬기이고요, 남자는...10레벨의 계열 없음, 광개토입니다.”

남자의 특이한 이력에 잠시 머뭇거린 권경호는 노진숙의 반응을 기다렸다.

“뭐? 10레벨? 아니, 10레벨이 애초에 감옥에는 왜 간거야? 그리고 계열은 왜 없어? 10레벨이 되도록 계열 판정도 안 받고 뭐 한거야? 아직도 히든 클래스 운운하는 새끼들이 있어?”

말의 내용과는 달리, 노진숙의 목소리에는 짜증보다 흥미 내지는 관심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화면속의 치안대원들은 열심히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마침내 한 치안대원이 건물 지붕위로 올라섰다.

일부러 7번 치안대원은 멀찍이 선 채로 여전히 잔뜩 줌인을 한 채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게만 명령을 내려놓았다.

치안대원의 등장에 꺄악~!! 하고 소리가 들린 건 아니지만, 마치 들린 듯한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여자, 슬기의 놀란 표정과 크게 벌린 입이 보였다.

그런데, 그러면서 그녀의 입 모양이 뭔가를 말하는 듯했다.

‘안돼...?’

조정관리팀의 직원들 중 한국 사람들은 모두 그 입모양을 알아보았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그리고 갑자기 그녀 앞에 있던 치안대원이 폭발하듯 산산조각 나버렸다.

“어!?”

화면을 보고 있던 조정관리팀의 사람들이 일제히 신음을 내뱉었다.

“방금 뭐야? 무슨 일이지?”

권경호가 신음하듯 말하는데, 노진숙이 곧장 지시를 내렸다.

“지붕에 도착한 치안대원 시야로 얼른 바꿔.”

팀장의 명령에 이정아가 얼른 화면을 전환했다.

그러자 막 지붕에 당도한 치안대원의 시야가 모니터에 가득 비춰 들어왔다.

“야이, 또라이 새끼야!!! 그걸 왜 죽여?!”

조정관리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여자의 욕설에 모두들 인상을 찌푸렸다.

“이 미친 새끼, 정신병자, 괴물 새끼야!! 힘만 세면 다냐? 너 때문에 우리는 이제 완전 꼬였어!!”

“우리 꼬였어요?”

남자, 광개토의 얼굴에 나타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슬기의 잔뜩 화난 얼굴과 상당히 대조되어 보였다.

“그냥 도망가자니까, 왜 발정난 고양이 새끼마냥 들이대냐 들이대긴!! 가까이 오는 사람마다 머리통을 하나씩 다 날려야 기분이 좋아? 이 새디스트 자식아?!”

슬기의 욕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걸 보고 있던 다른 직원, 김지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여자 지금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 건가요?”

어? 그 말에 다들 조금씩 느끼고 있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 아가씨 말 좀 들어라. 그냥 가자고! 얘네들은 죽여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너 게임 접고 싶어?!”

그렇게 외치는 슬기의 시선은 같이 있는 광개토가 아닌 허공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왠지 한 명 더 있는 거 같지 않나요?”

김지희의 말에 노진숙이 턱을 괴고는 유심히 화면을 살폈다.

“은신 망토나 은신술은 아닌 거 같고, 투명화 마법도 아닌거 같은데...”

은신 망토는 자세히 보면 주변 사물과 미묘한 이질감이 있어서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사람들은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또한 투명화 마법은 공격이나 대화 같은 행동을 하면 주문이 깨지게 되어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슬기와 광개토의 몸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엄청난 속도로 치안대원의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으악!!!!! 미친 새...끼......(야)!!”

두 남녀의 비명이 금세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멋!! 뭐야!”

조정관리실의 직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얼른 치안대원의 시야가 그들을 쫓아 하늘을 바라봤지만, 캄캄한 밤하늘에 달도 어두워서 이미 탈옥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헐, 대박!! 우리 게임에 저런 이동술이 있었나요?”

묵묵하게 감정의 변화없이 시점을 조정하던 이정아의 입에서 마침내 탄성 섞인 질문이 튀어나왔다.

“아니, 저런 건 없어. 우리 게임에 저런 이동 기술은 없다고.”

노진숙은 다른 사람들에게 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이정아의 질문에 대답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이윽고 권경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온 기록실로 가서 오늘 오후부터 지금까지의 슬기와 광개토에 대한 로그 기록들 다 뽑아 달라 그래.”

팀장의 무리한 지시에 권경호가 반박했다.

“로그 기록은 중대한 범죄가 있지 않고서는 안 뽑아 줄텐데요.”

“방금 중대한 범죄가 있었잖아. 탈옥~!”

“에이~ 팀장님. 시온을 하던 플레이어들이 현피를 하다가 누구 한 명이 죽을 정도는 되어야 중대한 범죄죠.”

그것도 모르세요? 라는 뉘앙스가 들어간 권경호의 반박에 노진숙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40대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감지한 권경호가 얼른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바람소리 나게 권경호가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누가 그걸 모른데?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란 말야. 노진숙은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권경호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또 저렇게 눈치 빠른 모습을 보일 때면 만족스럽기도 했다.


작가의말

슬기의 과거사에 이어 시온 본사 이야기까지, 잠시 천마 이야기가 아닌 바깥 이야기로 외도를 떠나서 죄송합니다.

곧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하무식 천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1화 +1 19.11.17 662 9 13쪽
20 20화 19.11.17 676 10 13쪽
19 19화 19.11.16 661 8 12쪽
18 18화 19.11.16 696 9 13쪽
17 17화 19.11.16 702 9 13쪽
» 16화 19.11.15 703 9 12쪽
15 15화 19.11.15 742 9 14쪽
14 14화 19.11.15 777 10 13쪽
13 13화 19.11.14 798 10 12쪽
12 12화 19.11.14 847 10 14쪽
11 11화 19.11.14 902 10 13쪽
10 10화 19.11.14 962 12 12쪽
9 9화 19.11.14 972 9 12쪽
8 8화 19.11.14 1,039 11 12쪽
7 7화 19.11.14 1,107 10 12쪽
6 6화 19.11.14 1,164 12 12쪽
5 5화 19.11.14 1,248 13 12쪽
4 4화 19.11.14 1,680 14 12쪽
3 3화 19.11.14 2,041 19 12쪽
2 2화 19.11.14 2,776 19 12쪽
1 1화 +3 19.11.14 6,237 2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