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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쿠

빙신전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수모쿠
작품등록일 :
2017.11.30 00:48
최근연재일 :
2018.05.24 11:05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74,941
추천수 :
815
글자수 :
310,718

작성
18.03.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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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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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첨 시작

DUMMY

역풍이 불면 바람의 도전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좋아. 얼마든지. 적이 강대할 때 나는 가장 강성해진다. 억압이 가해질 때 비로소 내 삶은 폭발력을 갖는다.

그래. 불어와라. 얼마든지. 이번에도 굴복시켜줄 테니까. 역풍이 불어올 때 10점을 맞추지 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시위를 놓으려니 문득 두려워진다. 정말 적중할까? 아버지가 떠나간 뒤로는 활을 당겨본 적조차 없었는데.

아니. 가능하다. 화살은 저기, 저곳에서 바람을 들이받고 하강할 거다. 충분히 가능해.

목적지는 과녁 한가운데가 아니다. 내 목표는...

따악!!!

뒤집힌 창자루가 휘청대며 몸을 떤다.

어? 안 쓰러지네? 이거야 원. 도대체 얼마나 힘이 좋길래...

그나저나 꽂힐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뜻밖이다. 아마 장식용이라서 창 자루를 무른 재질의 나무로 만든 모양이다.

어때? 놀랐지? 활터에 빈틈없는 정적이 내려앉는다. 함성도 갈채도 나오지 않는다. 눈을 의심하고 있는 거다.

스크린이 월도 자루에 박힌 화살을 비춘다. 그래도 분위기는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연히 빗맞은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겠지. 성가시네. 얼른 쓰러뜨려 버려야겠다.

챙!

화살이 월도의 날을 들이받는다. 그래도 쓰러질 듯 말 듯 흔들릴 뿐이다. 아, 진짜 더럽게 세게 박아놨네.

챙!!!

자루에 한 대, 창날에 두 대를 맞은 뒤에야 월도는 스르르, 바닥에 쓰러져 뒹군다. 월도가 바닥에 나뒹구는 순간, 귀를 찢어놓을 듯한 함성이 한 순간에 콱 차오른다.

와아아아아아아!!!

아이, 깜짝이야! 이 사람들이! 활 쏠 때 이렇게 소리 지르는 건 실례라고! 그리고 내가 원빈은 아니지만, 아직 두 발 남았는데. 이제 뭐 건성으로 쏴도.

쐐액! 따악!

과녁의 정중앙으로 날아가 박힌다.

아차, 이런! 과녁 정중앙에 맞출 생각이 아니었는데 깜빡하고 가운데를 쏴버렸다. 아, 이 10점 본능 이거 참 거추장스럽네. 하려던 건 따로 있었는데. 쩝.

마지막 한발이다. 시위를 당긴다. 조금 긴장되네? 하하.

파각!

거러췌! 어떠냐. 으하하하핫.

이번에는 정말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함성이 한 박자 늦게 튀어나온다.

우와아아아아아!!!

경악한 관중들이 잠시 넋이 나가 있었던 거겠지.

쾅!

깜짝이야! 본부석 마이크가 삐익! 비명을 지른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잔뜩 흥분한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주먹으로 본부석 책상을 친 것 같다.

─화살로 화살을 쪼갰어?! 저렇게 ㅈ같은 자세로 쐈는데? 이런 씹할! 뭐야? 주몽의 환생이야!?

마이크가 켜져 있는지 어떤지 분간도 못하시는 것 같은데? 어허, 체통을 차리셔야죠. 영주님.

진영과 유송의 얼굴은 흙빛이다. 당연한 일이다. 과녁의 정중앙에 가장 가까이 꽂아놓은 놈의 화살이 내 화살에 의해 양단되었으니 뭐. 하하.

아, 잊을 뻔했네. 선물 받은 깍지를 진영의 얼굴에 던져준다.

달그락! 받아들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선 진영의 발치에 깍지가 떨어져 구른다.

어? 왜 안 주워? 왜애? 비싼 장비 같던데.

─이런 건 너나 써. 나 같은 분한테는 필요 없으니까.

영기 옹과 대대장이 미친 사람처럼 내게 달려든다. 오오, 이건 뭐 산왕 전 이겨먹은 북산 분위기. 어쨌거나 이런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피해야 돼! 붙들리면 제 명에 못 죽는다!

으악! 이러지 말아요!

─크하하하하핫! 도련님! 뭘 어떻게 하신 거예요?!

─우리 몰래 연습은 또 언제 하셨대?! 아웅, 우리 귀염둥잉!!

나를 갓난애 안아들듯 잡아 올리더니 온몸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끌어안다가 이제 빙글빙글 돌린다. 아악! 이것 좀 놔요! 뼈를 다 부러뜨릴 셈이야?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는 동안 승혜의 얼굴이 언뜻 눈에 비쳐 들어온다. 두 손을 모으고 잔잔하게 웃고 있다. 너 그런 얼굴 되게 안 어울린다. 짧은 순간이지만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승혜 앞에 앉은 연구소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 팔로 턱을 괴고 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가 본부석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인마?

하하하.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저런 말투라니.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아, 영기 옹! 이제 저 좀 그만 내려놔요. 말도 못하겠어요!

─이 정도야 뭐... 딱히 연습 같은 거 안 해도... 기본적으로다가 그냥 할 수 있는 수준입지요. 고구려 후손 아닙니까? 하하하.

딱히 연습 같은 건 안 하고 있는데 나도 갈수록 아부실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

─으하하핫! 영주님, 아마도 저희 몰래 연습을 해 오신 것 같습니다. 따로 연습하시는 걸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이게!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짜식이.

생전에, 그러니까 저쪽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오늘처럼 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방금 내 모습을 아버지가 먼 곳에서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을 것 같아서다.

아버지가, 그러니까 이쪽의 아버지가 마이크도 안 잡고 소리를 지른다. 나도 가는귀먹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오늘 여기 있는 인간들 다 집에 못 가!

응? 이건 무슨 소리지? 다 영내대기하라는 거야? 잠깐만. 군대에서 영내대기는 사고 터졌을 때나 하는 거 아닌가? 조심스레 반응을 살펴보니 그건 이쪽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갑작스런 긴장국면에 모두 당황한 얼굴이다.

─오늘 낮술 푸자! 오랜만에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자고!

아... 난 또 뭐라고. 괜히 긴장했잖아요! 하하. 긴장은 이내 풀렸지만, 대대장은 아직도 조심스러워하는 얼굴이다. 눈치를 살피며 아버지에게 속삭인다.

─하오나 영주님... 그거는 저... 감시관하고도 이야기를 해봐야...

─아 이 씹할, 됐다고 해. 내가 직접 와서 내 돈 쓰겠다는데 제까짓 것들이 어쩔 거야? 이거 가지고 깝치면 먹고 남은 뼈다귀나 던져준다고 해. 당장 연회 준비해! 내일 아침까지 마셔야 되니까!

대대장과 영기 옹은 물론, 석구 옹까지 입이 귀까지 찢어진다.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크하하하하핫!

...지금 보니 대대장도 정말 걱정돼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다.

그때 계모가 아버지의 뒤로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영주님... 아직 오후 일정이 남아있습니다만...

어휴, 목소리도 간드러지네. 사내들 애간장 많이 녹였겠다.

─오후에도 일정이 있었어?

─네, 그러합니다. 음악회와 연극공연이 준비돼있습니다.

─아, 그래? 그러면... 임자가 나 대신 좀 가주지? 진영이도 데리고.

‘임자가’ 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아까는 거의 하대를 하던 아버지가 반 존칭을 쓴다는 건, 감히 거부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전포석 같은데.

계모는 얌전히 고개를 숙인다. 변화 없는 표정. 섬뜩하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표정관리 진짜 잘한다. 속에 구렁이 몇 마리는 들어가 있는 거 아닐까. 연구소장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앞으로 나선다.

─영주님. 이것을...

카본 소재로 보이는 활을 두 손으로 공손히 아버지에게 내민다.

응? 뭐야, 저 활은? 활에 작은 도르래들이 달려 있다.

─저희 연구소의 최신기술이 집약된 활입니다. 카본으로 구현할 수 있는 탄성역학의 결정체로 감히 소개해 올리고 싶습니다.

설명만 들어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그렇지. 너는 잘 몰랐겠지만, 원래는 궁술 경기가 예정돼 있었거든. 시합을 시켜서 제일 잘 쏜 사람한테 시상하려고 이걸 준비시켰던 건데, 지금 보아하니까... 너보다 잘 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뭐 귀찮게 시합 같은 거 더 할 필요 없잖아? 너 줄 생각은 없었지만 네가 오늘 어디 조금 잘했어야지? 치하하는 의미로 이걸 주마.

연구소장이 들고 있던 활을 받아든 아버지가 그걸 내 앞에 내민다.

나는 다시 얼마간 먹먹해진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내가 헐값에 팔아치운 양궁과 같은 색깔의 활이다. 모양도 성능도 다르겠지만 색깔은 꼭 같다. 이것으로 나는 모든 걸 돌려받게 되는 걸까?

손을 내민다.

그런데 손으로 활을 잡기 직전, 아버지가 활을 홱 치운다! 아니 이게 웬 초등학생 장난?

─에헤이,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 기다려봐 좀! 원래 이런 건 칭호하고 같이 내리는 거야. 그냥 주는 건 밍밍하잖아. 안 그래? 지금 너한테 내릴 칭호 때문에 고민 중이라고.

칭호요? 아니 뭐 번거롭게 그런 걸 다...?

─어떤 게 좋을까? 주몽의 환생? 신궁? 아니다, 궁신?

제발.

그런 걸로 나를.

부르지 말아 줘요.

아니, 그런 고민 자체를 그만둬 주셔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뭘로 하지? 좋은 거 생각해 놓은 게 없는데...

응? 뭐야 이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들 굶주린 짐승 같은 눈을 하고 있군. 갑자기 왜들 이러실까?

척인성이 근오까지 옆에 끼고 내 앞에 선다. 이제 근오는 나를 무슨 롹스타 보듯 바라보고 있다. 이거 뭐, 기분 좋은데? 나도 한 눈을 찡긋해 보인다.

─정말이지 신기에 가까운 궁술이었습니다! 적어도 이곳 동방에서! 궁술로 도련님을 능가할 자는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 동방신기東方神技라고 하심이 어떨는지요?

어허, 이 사람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뭔 소리하는 거여? 아직 팬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그 사람들이 가만 놔두고 볼 것 같애?

아 진짜 하루만 척인성 방에 자명종이 되고 싶다. 십오 분마다 한 번씩 울려주게.

─음... 그건 좀 올드한 느낌이잖아?

으어어어...! 큰일 났다. 조만간 문피아는 디도스공격을 받거나 해킹을 당하게 될 거야. 척인성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그, 그렇다면 궁술소년단弓術少年團이라는 칭호를 내리시어 후진양성의 뜻을 함께 세우시는 것이...!

척인성이 그 말 끝맺기도 전에 연구소장이 끼어든다. 혹시나 했더니 아첨의 릴레이가 이어진다. 내가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도련님께서는 실로 특출한 궁술실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특출하다는 뜻을 가진 엑스트라오디너리Extraordinary에서, EX와 O를 떼어 엑소EXO라고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아까 살펴보니, 아주 이국적인 느낌의 사격자세를 쓰시던데, 그렇게 되면 이국적이라는 뜻의 Exotic까지 중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까 월도의 날을 화살로 맞추실 때 첸! 이라는 소리가 났던 것을 저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유학파들은 아첨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답답한 소리 하시네. 팬들이 몰려와서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대야 정신을 차릴 건가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그렇게 하면 이번 화엔 항의 댓글 한 이천 개 정도 달린 다음에 계정 삭제될 지도 모른다고! 아마 작가는 산 채로 붙들려 화형당하겠지.

이번엔 대대장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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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꼬시다 +1 18.03.28 725 10 11쪽
43 악녀 +8 18.03.26 751 6 11쪽
42 아버지 +2 18.03.24 690 8 12쪽
41 꽃보다 화살 +10 18.03.22 803 10 11쪽
» 아첨 시작 +16 18.03.20 1,057 11 12쪽
39 바람이 분다 +5 18.03.18 724 14 11쪽
38 창 던지기 +8 18.03.16 792 8 11쪽
37 비무가 끝난 오후 +9 18.03.14 778 6 11쪽
36 접힌 투구 +6 18.03.12 875 13 11쪽
35 화염의 매 +10 18.03.10 1,176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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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부의 신 +4 18.01.28 913 11 11쪽
27 영웅의 귀향 +6 18.01.26 955 15 11쪽
26 자리다툼 18.01.26 867 13 11쪽
25 예복 +7 18.01.24 976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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